제목 : 가족의 탄생 ( The Birth of A Family )
감독 : 김태용
출연 :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김혜옥
<가족의 탄생>의 제목은 ‘가족’의 ‘탄생’이지만, 그 탄생은 ‘남녀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집안과 집안이 만나고,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고’와 같은 일반적인 가족의 탄생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가족의 탄생>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있고 나머지 한 이야기가 그 두 이야기를 엮어주는 형태로 되어있다.
에피소드 하나. 미라는 5년 만에 찾아온 동생 형철(엄태웅 분)의 방문이 반갑지만 기쁨도 잠시. 데리고 온 부인 무신(고두심 분)이 엄마뻘인데다가 어린 딸까지 딸려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에피소드 둘. 선경은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며 엄마 매자(김혜옥 분)를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 엄마가 싫어 한국을 떠나려하나, 엄마가 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다.
에피소드 셋. 경석과 채현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아무에게나 도움을 주고 사랑을 주는 헤픈 채현이 경석은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화의 세 가지 이야기는 얼추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대신 이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통적인 장애가 하나 있다. 바로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없다는 것.
미라는 형철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숨겨두었던 가족 사진을 꺼내놓으나 그 속에는 달랑 미라와 형철 둘뿐. 영화가 명시적으로 밝히는 건 형철이 빵에 있었다는 사실 뿐이지만 그로 인해 미라의 가족은 풍비박산이 난 듯하다. 선경은 또 어떤가. 아빠가 다른 동생이 있고 혼자 나와 사는 걸 보니 그녀의 아빠와 엄마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닌 걸로 보인다. 경석이라고 다를쏘냐. 여친 채현을 집으로 초대하며 하는 말. 우리 '누나'가 널 보고 싶대.
이렇듯 <가족의 탄생>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족관계에 있어 절름발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인 셈. 하지만 영화는 이를 상상하게만 할 뿐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는다. 왜? 당초 영화의 목적은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나아가 따로 흩어진 이 가족들이 어떻게 다시금 모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근데 그 결과가 예사롭지가 않다. 헤어진 가족들이 재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이합집산 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것.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가족의 재결합>이 아닌 <가족의 탄생>. 이 영화는 바로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 봉합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족 재구성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EPISODE 1. 미라, 형철 그리고 무신의 이야기.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미라에겐 연락이 안된 지 오래된 철부지 동생 형철이 있다. 아무리 철이 없고 사고뭉치의 동생이지만 미라에겐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기에 형철을 항상 애틋하고 보살펴 주고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형철이 결혼한 아내라면서 엄마뻘 되는 무신을 집에 데리고 온다. 서로가 어색한 미라와 무신. 시누와 올케라는 어쩌면 보통의 사이에도 거리감이 멀게 느껴질지 모르는 사이인데, 게다가 그 나이 차이가 20살 넘게 차이나는 시누와 올케라니, 서로에게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어려운 동거를 시작하게 된 세 사람. 무신의 전 남편의 부인의 딸 채현의 등장으로 가족의 양상이 바뀐다. 채현의 등장과 함께 형철은 또다시 철부지 사고뭉치로 변해 집을 떠나고, 결국 형철이 없으면 어떠한 사이도 아닐 미라와 무신, 그리고 채현 이 세 사람이 가족으로 탄생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조가 이야기 해본 논제는,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미라, 무신, 채현이 결국엔 한 가족이 된다는 점이다.
형철로 인해 맺어진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할 처지에 있다. 어머니뻘 되는 올케, 딸뻘되는 시누이에, 자기자식도 아닌 그것도 전 남편의 그 전 부인의 딸. 어떻게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형철이라는 인물 하나로 엮였다. 그런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으로 탄생하게 된 까닭. 영화에서 그들로 하여금 비추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여기서 두 가지의 의견이 나왔다.
첫 번째 의견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오직 형철이라는 인물로 엮여지게 된 세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 되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팽배한 혈연, 지연, 철연등의 부조리한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의견이다.
두 번째 의견은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발췌해 낸 것이다. 형철이 떠난 후 미라와 무신이 밥상을 두고 대면하고 앉아있고 그 뒤편으로 마당에서 뛰노는 채현이 있다. 세 사람의 행동은 똑같은데 낮과 밤이 수차례 바뀌면서 시간의 흐름을 연상시켰다. 영화는 그 장면을 통해 시간이 흐름으로써 그들이 가족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연인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얽히고 설켜 한 집에서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들도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 져가고 결국엔 사랑하는 가족으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EPISODE 2 . 선경, 매자의 이야기.
한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은 엄마 매자를 선경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을 쫓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사랑에 매달려 사는 엄마를 보며 지긋 지긋한 사랑에 대한 회의를 갖고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던 선경. 그러던 선경이 매자가 병이 들어 죽고 난후 매자가 갖고 있던 자신의 소품을 보고 자신에 대한 엄마의 마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지긋지긋해 했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물론 선경은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엄마 매자처럼 헌신적이고 현실에서 어긋난 사랑을 추구하진 않았다. 그토록 현실을 추구하고 사랑은 나몰라라 했던 선경이 엄마 매자와 내연남 사이의 아이 경석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린 경석을 사랑으로 키워 한 가족을 이룬 것을 보면 선경은 남과 여의 사랑이 아닌 따뜻한 가족이라는 사랑을 느낀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리얼리스트 선경과 로맨티스트 매자의 이야기에서 이야기한 논제는
결국엔 가족, 사랑 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쫓는 선경과 사랑에 눈먼 매자.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사랑으로 용서하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EPISODE 3 . 경석, 채현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의 채현과, 두 번째 이야기의 경석. 이 둘은 시간이 십여 년쯤 흐른 뒤 서로 사랑을 한다. 이 둘이 사랑을 함으로써 두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해 헤퍼 보이는 여자 친구 채현을 경석은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영화를 쭉 봐오면서 우리 조원들이 채현을 보며 느낀 점은 같았다. 가족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채현은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찌 됐건 그런 채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석은 채현과 다투게 되지만 결국 채현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맘에 무작정 그녀를 따라 나선다. 그녀가 간곳은 다름아닌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 미라네 집이다. 미라와 무신은 경석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반겨준다. 두 이야기의 모든 주인공들이 이렇게 해서 가족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가족의 모습은 예상 밖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란 개념은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관계. 그래서 해체된 가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영화는 화해를 통해 재결합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뤄지는 해체된 가정의 봉합은 전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인물의 설정부터가 그렇다. 무신을 찾아온 딸과 함께 살게 되는 미라. 그녀와 무신의 딸은 애당초 남남. 더군다나 무신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더 정확히는 무신의 전남편의 전처가 낳은 딸을 거둬들인 것이니 그 둘 역시 엄연히 말해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경석과 채현 그리고 선경도 마찬가지. 이들의 가족들도 피를 통해 이뤄진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러니 포스터에 나와 있는 대로 미라, 형철, 무신, 선경, 경석, 채현 모든 주인공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면 ‘피’가 아닌 ‘정’으로 똘똘 뭉친 대안가족이 되는 셈.
<가족의 탄생>이 보여주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사실 미라나 선경처럼 나사가 하나 빠진 패밀리의 모습을 주위에서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지금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전에 비해 많이 희미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이 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붕괴된 가정을 억지로 화해로 이끌어 재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지금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음 맞는 사람끼리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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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