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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0-14절. 다락방에 모여 기도함
10절.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s they were gazing intently into the sky while He was going, behold, two men in white clothing stood beside them.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καὶ ὡς ἀτενίζοντες ἦσα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πορευομένου αὐτοῦ,
and as looking intently they were into the heaven as is going He
직역하면 ‘그가 가고 있을 때 그들이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올라가실’(πορευομένου)은 현재분사로서 예수님이 현재 올라가고 계시는(is going)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ἀτενίζοντες ἦσαν)에서 앞의 동사(ἀτενίζο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looking intently), 원형(ἀτενίζω)은 ‘눈을 고정해서 쳐다보다, 계속 바라보다’( look fixedly, look steadily)이며, 뒤의 동사(ἦ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계속 바라보면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의학용어인데, 저자가 의사인 누가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Linguistic Key)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καὶ, ἰδοὺ, ἄνδρες δύο παρειστήκεισαν αὐτοῖς ἐν ἐσθήσεσι λευκαῖς,
and, behold, men two had stood by them in apparel white
직역하면 ‘그리고 보라, 그들 곁에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있었다’란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주의를 기울여서 확실히 보라는 뜻이며, 다음에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할 때 쓰는 감탄사와 같은 것입니다.
‘곁에 서서’(παρειστήκεισαν)는 대과거로서(had stood by)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쳐다보고 있기 이전에 벌써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11절.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also said, "Men of Galilee, why do you stand looking into the sky? This Jesus, who has been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in just the same way as you have watched Him go into heaven."
이르되
οἳ καὶ εἶπαν,
who also said,
직역하면 ‘그들이 또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said) 과거에 분명하게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Ἄνδρες Γαλιλαῖοι, τί ἑστήκατε βλέποντες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Men Galileans, why have you stood looking into the heaven?
직역하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는 뜻입니다.
‘서서’(ἑστήκατε)는 완료형(have you stood)입니다.
‘쳐다보느냐’(βλέπ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looking) 계속 ‘쳐다보면서’ 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οὗτος ὁ Ἰησοῦς ὁ ἀναλημφθεὶς ἀφ’ ὑμῶ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this the Jesus the having been taken up from you into the heaven,
‘올려지신’(ἀναλημφθεὶς)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taken up) 과거에 분명히 승천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확실히 지적해주는 말씀입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οὕτως ἐλεύσεται ὃν τρόπον ἐθεάσασθε αὐτὸν πορευόμενο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thus will come in that manner you beheld Him going into the heaven
직역하면 ‘이처럼 그가 하늘로 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 모습대로 오실 것이다’는 뜻입니다.
‘본’(ἐθεάσασθε)은 부정과거로서(you beheld)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모습을 보았던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심을’(πορευόμενον)은 현재분사로서(going) 지금 가고 계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대로’(ὃν τρόπον, in that manner)는 동일한 부활의 몸으로, 구름을 타시고, 큰 영광 가운데서(마태복음 24:30) 재림하실 것을 가리킵니다(NASB).
‘오시리라’(ἐλεύσεται)는 미래형입니다(will come).
1. 하늘로
예수님의 승천의 의미는 장소적인 천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모두 장소적입니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
2. 그러므로 플라톤(Platon)처럼 천국을 영적인 천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3.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런 <분별력>을 헬라어로 <프로네시스>(φρόνησις)라고 하고, 영어로는 <sense, wisdom, understanding, prudence>라고 합니다.
이런 영적 분별력이 없이, 무조건 맹종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실상 맹신자요 미신적인 사람입니다.
종교적인 사기꾼들은 순진한 성도들의 건전한 분별력을 마비시키고서, 결국 가정을 파괴하고, 돈을 다 빼앗아 먹어버립니다.
4.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5-18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2절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하더라도, 미혹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즉 교권을 가지고 교주 노릇을 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돈을 빼앗아 먹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5장 14절에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6. 예수님은 세상 끝 날에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할 터이니까,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은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새벽에 예배를 드리고, 오늘 심방을 하고, 밤에는 기도하고 잘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8.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주님이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12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they returned to Jerusalem from the mount called Olivet, which is near Jerusalem, a Sabbath day's journey away.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Τότε ὑπέστρεψαν εἰς Ἱερουσαλὴμ ἀπὸ ὄρους τοῦ καλουμένου Ἐλαιῶνος,
Then they returned to Jerusalem from mount of the called Olivet
직역하면 ‘그 후에 그들이 감람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돌아왔다’(ὑπέστρεψ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returned)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감란원이라 하는 산’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승천이 이루어진 예루살렘과 베다니 사이에 있는 감람산의 동쪽 기슭을 가리킵니다(NASB).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ὅ ἐστιν ἐγγὺς Ἱερουσαλὴμ, σαββάτου ἔχον ὁδόν.
which is near Jerusalem, Sabbath holding journey
직역하면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이 허용하고 있는 여행이었다’는 뜻입니다.
앞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이고(is), 뒤의 동사(ἔχον)는 현재분사로서(holding) 원형(ἔχω)은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have, hold, possess)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란 1,100미터 졍도 거리를 가리켰습니다. (NASB).
13절.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had entered the city, they went up to the upper room where they were staying; that is,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Andrew, Philip and Thomas, Bartholomew and Matthew, James the son of Alphaeus, and Simon the Zealot, and Judas the son of James.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다 거기 있어
καὶ ὅτε εἰσῆλθον εἰς τὸ ὑπερῷον, ἀνέβησαν, οὗ ἦσαν καταμένοντες,
and when they had entered into the upper room, they went up, where they were staying;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다락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이 머물고 있던 곳으로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들어가’(εἰσῆλθον)은 부정과거이고(they entered), ‘올라가니’(ἀνέβησαν)도 부정과거이고(they went up), ‘유하는’(ἦσαν καταμένοντες)은 두 동사로 되어 있는데, 앞의 동사(ἦ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과거부터 계속 있었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καταμέν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taying) 계속 머문 상태를 뜻한 것으로서, 두 개의 동사를 합하면 ‘머물면서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1.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흩어져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다락방에 들어가 모여서 기도한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 받기를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사도행전 1:4)에 첫 번째로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다락방’은 최후의 만찬이 거행되었던 큰 집의 다락방을 가리키고(마가복음 14:15),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다락방을 가리킵니다(사도행전 12:12).
그런데, 이 다락방(ὑπερῷον)이 안채의 윗층에 지은 방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안채의 바깥에 건축한 큰 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고대와 오늘날도 수리아 지방에서는 다락방을 안채 밖에 손님을 접대하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로 쓰고, 각종 행사와 모임도 하는 방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심지어 거기서 장례까지도 치렀습니다.
그래서 이 다락방은 안채에 비해서 넓었습니다.
이 다락방은 소위 우리나라의 사랑채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제일 먼저 짓는 것이 이 다락방(사랑채)이었습니다.
엘리사를 대접했던 수넴 여인도 부자여서 엘리사 선지자를 위해서 이 다락방(사랑채)를 지었던 것입니다(열왕기하 4:10). Schtifer. Palestine in the time of Christ)
2.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ὅ τε Πέτρος καὶ Ἰωάνης καὶ Ἰάκωβος καὶ Ἀνδρέας, Φίλιππος καὶ Θωμᾶς, Βαρθολομαῖος καὶ Μαθθαῖος, Ἰάκωβος Ἀλφαίου καὶ Σίμων ὁ Ζηλωτὴς καὶ Ἰούδας Ἰακώβου.
who both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Andrew, Philip and Thomas, Bartholomew and Matthew, James (son) of Alphaeus, and Simon the Zealot, and Judas (son) of James.
‘바돌로매’를 사도 요한은 나다나엘로 불렀고(요한복음 1:45-49, 21:2),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동생 야고보’를 가리키고(마가복음 15:40),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다대오’를 가리킵니다(마태복음 10:3, 마가복음 3:18).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비교해볼 때, 베드로에서부터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까지 가룟 유다를 포함해서 10명은 동일하고, 2명의 이름이 불일치합니다.
즉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 들어 있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셀롯인 시몬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대로 다데오는 야고보의 아들을 가리키고, 가나안인 시몬은 셀롯인 시몬을 가리킵니다.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se all with one mind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to prayer, along with the women, and Mary the mother of Jesus, and with His brothers.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οὗτοι πάντες ἦσαν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ὁμοθυμαδὸν τῇ προσευχῇ,
These all were steadfastly continuing with one mind in the prayer,
직역하면 ‘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계속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힘쓰더라’(ἦσαν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는 두 개의 동사로서 앞의 동사(ἦσα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계속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 뜻하고, 뒤의 동사(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teadfastly continuing)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켜서, 두 동사를 합치면 ‘무엇을 꾸준히 계속 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여기서는 ‘기도를 꾸준히 계속 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σὺν γυναιξὶν καὶ Μαριὰμ τῇ μητρὶ τοῦ Ἰησοῦ, καὶ σὺν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αὐτοῦ.
with women, and Mary the mother of the Jesus, and with brothers of Him.
1. ‘여자들’이란 사도들의 아내들과(고린도전서 9:5), 예수님을 물질로 섬겼던 여인들(마태복음 27:55, 누가복음 8:2-3 24:22)을 가리킵니다.
‘예수의 아우들’이란 누가복음 8장 19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제들을 가리키며, 그 중에 야고보는 나중에 교회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행사했습니다(사도행전 12:17, 15:13, 갈라디아서 2:9). NASB
<야고보의 복음서>라는 외경에는 ‘예수의 아우들’이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전처에게서 난 이복 형제라는 주장이 있으나, 외경이 아닌 정경에는 예수님의 아우들이 마리아에게서 난 친동생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Baker, Thomas Whitelaw)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을 보아,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한 성모 마리아의 숭배 사상은 근거 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락방에서 기도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①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와 ②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섬겼던 여자들인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매 등과 ③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믿었습니다.
그 중에 야고보는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했고,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즉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멤버들인 장로(제자들), 권사(여성들), 가족들과 80-90명의 일반 성도들이었습니다.
2.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 목격자들은 5백 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어디로 가버리고 120명만 남아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행사에는 많이 참석하고,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도 주일 낮 예배 참석수의 3분의 1정도만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5백여 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승천하시는 굉장한 광경을 보고 너무나 황홀했지만, 막상 성령 받도록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모두가 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도 무슨 찬양제나 체육대회나 야유회처럼 굉장한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실상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하는 일에는 등한시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스펙타클(spectacle)한 행사에도 많이 참석하고, 그 후에는 은혜받고 매일 조용히 새벽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찬양과 성경 공부와 헌금과 봉사와 전도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행사에만 늘 앞장서고 기도에는 등한시하는 교회 중직자는 목회에 방해꾼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3. 우리 주님은 나환자 10명을 치료해주셨는데,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했을 때,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7: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4. 이 120명이 기도하는 자세는 어떠했나요?
(1) 더불어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합심 기도는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 한 마음으로(ὁμοθυμαδὸν: with one mind)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합심하여 기도하면 주님이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그러기 때문에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3)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전 성경에는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누가복음 18장 7-8절에는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적으로 찾아가서 불퇴진의 기도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와 같은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라도, 먼저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