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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4:1-27절) 지혜의 약속 3-166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운동선수나 음악가로 키우려고 할 때, 열 살 전후의 어린나이 때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배우도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생각하지만, 사람이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생각이 유연(柔軟)하고, 몸도 유연하고, 무한정으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가르쳐야 훌륭한 선수나, 음악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어지고, 몸이 굳어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코치가 가르쳐 주어도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고집이 있어서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배우는 사람은 아마추어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프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훌륭한 신앙인이 되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사실 나이가 든 후에는 이미 머리가 굳어져 있고, 생활방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도 처음 믿을 때,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할 수만 있으면, 어렸을 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 4장은 아직 신앙인격이 성숙하지 못한‘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자 세로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대할 것인지, 가르쳐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장에는‘아들들아’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1절)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했고, 10절)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고 했습니다.
20절에도 보면‘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언 4장에서 일관되게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잠시라도 이 가르침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신앙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데, 성경 지식이나 하나님 말씀의 지식만 필요하다면, 우리는 죽어라하고 하나님 말씀만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나 믿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세상 지식(知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현실 사이에 어디에 우선권을 두어야 할지, 갈등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청년들 중에서는 신앙이냐? 공부냐? 혹은 신앙이냐? 결혼이냐? 혹은 신앙이냐? 직장 생활이냐? 하는 것으로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성경은 우리가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성공을 대립적(對立的)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신앙으로 공부도하고, 연애도 하고, 세상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세상에서 너무나 늦어지게 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다고 해서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실패하고 연단을 받지만, 오히려 세상 지식을 붙드는 사람이 더 빠르게 성공하는 현실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오늘 말씀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짧은 기간을 볼 때에는 세상 지식이 빠른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언젠가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4:1절)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우선 오늘 말씀은 인생을 다 산 어른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아직 앞길이 창창하고, 가야 할 길이 먼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들은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야심만만하며, 무엇인가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보다 이들에게‘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체험을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사소한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너무나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많은 길들 중에서 어느 길이 나의 길인지, 알지 못합니다. 즉 우리는 인생의 많은 길들 중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나의 적성(適性)에 맞는 길을 찾아서 열심히 달려가야 성공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려면, 나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쳐주는 분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아비의 훈계는 정신적인 가르침 정도로 생각하지,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전문화하면, 전문화할수록 아버지의 훈계나 성경의 가르침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가르침을 받아서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성공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가르쳐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경적인 가르침을 참고로 하는 것은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主人)이 나인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인생이고, 우리는 어디에 길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붙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主人)이 되셔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의 주인(主人)이 되어서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主人)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다가 한번 크게 실패한 후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처음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주인(主人)이 되어서 살아가다가 한번 큰 실패를 당한 후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주인(主人)으로 모실 때가 더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은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반항하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결국 말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젊었을 때, 잠깐 방황하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인생을 산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 빨리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신앙적인 감수성(感受性)이 아주 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보면‘아비의 훈계’가 나오고‘명철’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즉 여기서‘아비의 훈계’라고 하는 것은 책망 형태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서툴기 때문에 끊임없이 야단을 맞으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배워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처음 수영(水泳)을 배우거나, 야구나 농구를 배울 때에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코치로부터 끊임없이 야단을 맞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도 처음에는 끊임없이 야단도 맞고, 책망도 받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眞理)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또 아무리 배워도 그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배울 때에는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진리(眞理)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무엇을 처음 배우려고 하면, 이미 자존심(自尊心)이 있어서 야단을 치면, 기분이 나빠서 그 뒤부터는 배우러 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어른이 되어서 믿는 자들은 자꾸만 설교에서 칭찬을 받고, 축복(祝福)만 받으려고 하고, 야단을 치거나, 책망하는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젊은이들은 아직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만을 그대로 가르쳐주어도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명철(名哲)’이라는 것이 나오는데,‘명철’은 하나님의 지혜가 이미 세상에 적용이 되어서 실용화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이론(理論)은 알지만, 이것을 현실화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지혜와 현실 사이에 너무나도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부딪치면서 자꾸만 기도하고 경험을 쌓게 되면, 성경적인 지혜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명철(名哲)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자기 길을 찾기 위해서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향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기 이전에 책망의 말씀을 배우며, 이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명철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절)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여기에 보면‘선한 도리’가 나오고‘내법’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일정한 법칙(法則)이 있고,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단순히 어떤 지식을 외워서 기록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것에 대하여 배운 바가 있는데, 세상의 원리는 야생 동물의 원리입니다. 즉 강(强)한 사람이 약(弱)한 자를 누르거나, 잡아먹으면서 사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강(强)하고 빠르고 사나운 자가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우리가 순한 양(羊)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마리의 양(羊)이 되어서 이리 가운데서 산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자(牧者)의 음성을 잘 듣고, 철저하게 목자(牧者)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광합성(光合成)을 해서 열매를 만들어내는 식물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다른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선(善)한 도리는 세상의 성공의 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 세상에 가지고 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선(善)한 도리로 살려면, 우리가 넘겨야만 할 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에 믿음 생활하면서 세상적인 방법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은 오지 않는 무기력한 시기를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3절)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이것을 보면,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강(强)하게 된 자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아버지 밑에서 야단을 맞으면서 실수를 연발하는 아들이었고, 어머니가 보기에, 도대체 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약(弱)한 아들일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인생의 최고 중요한 지침으로 붙드는 것은 무조건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배우고 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욕망이 너무나도 강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려고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손에 걸려서 큰 실패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려고 할 때, 이미 우리는 세상의 방법은 쓸 수가 없고,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 못하는, 철저하게 어중간한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가장 힘들고, 위험할 때가 바로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직 어릴 때입니다.
우리가 야생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아무리 사자나 곰이나 늑대라 하더라도 새끼일 때에는 스스로 사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미 사자나 늑대가 사냥하러 가고, 새끼들만 남아 있을 때가 이 새끼들이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때인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신앙으로 살기로 결단을 하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자마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축복이 임한다면, 말씀의 길로 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세상 적으로 길이 막히고, 하나님의 능력은 오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를 거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부터도 약(弱)하고, 특히 스스로 먹고 살 것도 없는 궁핍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상태를 거쳐야 할까? 우리는 이런 연약(軟弱)한 상태를 거쳐야만 과거의 혈기(血氣)가 빠져나가게 되고, 진정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백 퍼센트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 학벌을 믿고, 자기 머리를 믿고, 재주를 믿고, 큰 소리를 치며, 살다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지게 되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데, 하나님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그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5절)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이스라엘의 상태가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집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적인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들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흔하다고 해서 자 녀들이 그 말씀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잔소리로 생각하기 쉽고, 세상의 지식이나, 세상의 방법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식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强)하다 하더라도 부모님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는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아주 강(强)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자녀들이 처음에는 세상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결국 부모님의 믿음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적인 전문 지식을 더 인정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그만큼 더 세상에서 뒤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로 보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고생하는 사람들과 믿음 없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길게 보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어디론가 미래를 향하여 가야 하는데, 사실은 아무도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의 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붙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죄(罪)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명령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면, 처음에는 유약(幼弱)한 아이같이 무기력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길이 열리게 됩니다. 즉 우리가 죄에 빠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경고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서 계속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5절)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나 혼자 명상을 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진리와 타종교의 차이점입니다. 타종교는 깊은 명상을 통해서 진리를 터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정리된 생각이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야만 이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주업(主業)이고, 그 다음에 세상일을 해야 세상 욕심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또‘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어떤 욕심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대개 우리는 우리 욕심대로 합니다. 왜냐하면 한 두 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고 해서 당장 우리가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두 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욕망대로 했을 때, 마음에 기쁨이 없고, 우리 내면(內面)이 너무나도 황폐(荒廢)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깨닫는 것이 내 욕망대로 하면, 나의 내면(內面)이 더러워지고, 황폐해지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6절)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여기에 드디어 지혜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우리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복(福)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 현실적인 이익을 붙들 것인가? 를 두고 갈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욕심을 따라가면, 우리 욕심이 채워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결국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은 그때 반드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충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7-9절)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하남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축복(祝福)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만 보면, 다른 훌륭한 책과 비슷하게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네가 얻은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진 명예나 지위를 잃어버리더라도 명철을 얻는 것은 더 큰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나, 응답을 가져오는 것도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노하우입니다.
지혜를 높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지혜 외에 다른 것은 붙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지식이나 방법은 모두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 때, 하나님의 능력도 독점적으로 그 사람에게 공급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과 부흥이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지혜가 그를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품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즉 머리로 알던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게 되면, 가슴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이미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의 모든 감정이나, 태도가 변하게 됩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 세상의 어떤 보물(寶物)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재활용 공장을 뒤지는 것과 같습니다. 솔로몬은“...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전 1:9).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를 하나님과 거의 동격(同格)이 되게 합니다.
Ⅱ.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길 지금까지 잠언 기자는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을 정적(靜的)인 관점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잠언 기자는 동적(動的)인 관점에서 우리 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을 향하여 이동하는 인생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는 순례자(巡禮者)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인생길에는 많은 함정(陷穽)과 암초(暗礁)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이런 암초가 있는지, 어디에 이런 함정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처음 세상 지식을 붙들 때에는 아주 넓고, 좋은 길로 달리는 것 같지만, 한창 달리다 보면, 길이 끊어져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면, 처음에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가면 갈수록 길이 더 탄탄해지고, 넓어져서 끝까지 안전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10절)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이 말씀은 십계명에서 제 5계명에 가장 가까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오래 사는 것을 다른 계명에 두시지 않고, 오직 부모가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배우는 것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국에 가서 어려운 학문(學問)을 배워오라고 하지도 않으셨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技術)이나, 무기(武器)를 가져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평범한 것을 요구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만 배우면, 절대로 가나안의 복(福)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천국의 진액(津液)이 있어서 천국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천국의 진액(津液)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천국의 열매가 가득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복을 빼앗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强)하지 못하고, 유식(有識)하지 못해서 천국의 열매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2절)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라갈 때에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바로 그 길로 가는데, 우리는 너무나도 쓸데없는 것 같은 연단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자(牧者)가 양(羊)을 데리고 갈 때, 가시밭길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절벽 옆에 있는 위험한 길로 가기도 하지만, 목자(牧者)는 반드시 길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위험한 짐승이 있는 줄 알기 때문에 피해서 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목자(牧者)를 따라가 보면,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목자(牧者)를 따라갈 때에 다리에 힘이 없어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아직 진리(眞理)에 굳게 서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라면, 자랄수록 더 빨리 달리게 되고, 나중에는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13절)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예를 들어서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심부름을 시키면서 찾아갈 집 주소라든지, 혹시 만나야 할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주면서 이것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훈계(訓戒)를 생명처럼 붙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죄(罪)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罪)에 넘어가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그런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데, 사고가나거나, 사람이 죄(罪)에 빠지는 것은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손에 쥐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죄(罪)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있으면, 도망쳐야 합니다. 14-15절)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여기서 사악한 자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길입니다. 즉 성공하고, 출세하는데 지름길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길로 다니지 말라는 것은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 많은 연단을 주시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하고, 출세해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백 퍼센트 하나님이 열어주실 것입니다. 여기서‘사악한 자’라고 하는 것은 꼭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일단 그 길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이 보이면, 피해야 하고, 혹시 한 걸음이라도 들어갔으면,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그들은 맹수의 원리로 성공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6-17절)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이들이 악(惡)을 행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악(惡)을 행하는 것이 그들의 본업(本業)인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원리는 강(强)한 자가 약(弱)한 자를 잡아먹고, 빼앗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의(不義)의 떡을 먹으며, 강포(强暴)의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는 길이 이 방법 외에는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공은 다릅니다. 18절)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여기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인(義人)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더니, 조금씩 환하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 심령의 복(福)이 나중에는 물질적인 복(福)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복(福)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복(福)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 완전한 복(福)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영역에 모두 다 복(福)을 주시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게 하십니다. 19절)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악인(惡人)은 사실 길을 모르면서 눈앞에 있는 이익(利益)만 바라보면서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생각지 못한 암초(暗礁)에 걸려서 넘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버립니다. 그는 먼 곳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 곳을 볼 수 있으려면, 우리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내 발의 등이고 내 길의 빛’이기 때문에 반드시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악(惡)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인데, 현재의 이익만 보고, 살아가기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Ⅲ.정신적인 건강 오늘 말씀은 세 번째 아들에게 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둘 때, 우리 마음이 건강해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21절)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의 태도는 말씀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불필요한 것들이 들어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이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한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준비시켜 주셔야 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것보다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번창할 때에는 사실 자기 능력을 과신(過信)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면,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주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맛을 보게 되면, 세상의 다른 것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중요한 약속(約束) 같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서 책상 앞에 적어놓을 것입니다. 즉 여학생들의 수첩을 보면, 그 안에 빽빽하게 친구들과의 약속(約束)시간이나, 생일 같은 것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눈앞에 둘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안을 채우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을 채우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입만 벌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먼저 생각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곧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 육체의 건강이 된다고 했습니다. 22절)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이미 성경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정신적인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실어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화가 나서 말을 하면, 그것이 독(毒)이 되어서 사람의 정신이 병들게 됩니다. 즉 화가 나서 하는 말은 끓는 물과 같아서 자기 속에 담아놓으면, 자기 속이 타게 되고, 남에게 말을 하면, 상대방의 속이 타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을 마음속에 채워 놓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줍니다.
우리가 조용한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서 치료해주십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내 마음에 말씀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이 욕을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마음이 마른 나뭇가지 같아서 나쁜 말 한 마디에 큰 화상(火傷)을 입어서 나중에는 우울증(憂鬱症)이 오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했지만,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친 것입니다. 23절)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에게 보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열쇠를 해서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물(寶物)보다 더 중요한 자기 마음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탄은 말로 우리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음을 도둑질당하지 않으려고 하면, 마음에 문을 달아서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들 중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과 사탄이 하는 말을 구별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야단치셔도 절대로 절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을 싸매어 주고 치료해주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말이나, 사탄이 하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병들게 합니다. 우리가 그런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는 것으로 가치가 판가름 나게 됩니다. 우리가 깊이 있는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담으면, 우리의 인격이 달라집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면, 말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24절)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말을 하더라도 비비꼬아서 사람을 약(藥)올리려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혀가 얼마나 간사한가하면, 이것으로 사람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무참하게 깎아 내리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사정없이 후려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독사(毒蛇)의 혀처럼, 날름거리면서 사람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고, 사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로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 바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자신감을 얻겠습니까? 여기에서부터 인생의 치료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25절)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사람을 바로 보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아래위로 흝어보는 사람이 있습니 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외모나 감투 같은 것을 보지 않고, 눈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온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대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욕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26-27절)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우리가 가는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이 길은 한꺼번에 달려간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꾸준히 가다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뜻에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했을 때에는 이길 저 길을 정신없이 돌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의 길을 찾았을 때에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길을 찾았고, 이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목표한 곳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갈 필요가 없습니다. 즉 좌로나 우로나 가본다는 것은 호기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결국 인간의 길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길을 끝까지 가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는 자꾸만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싶은 변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은 세 번에 걸쳐서‘내 아들아 들으라.’고 하면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훈계를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병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성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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