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 한 장 -36회-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라는 틀 안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더 좋은 것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큰 것으로 자신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 이것은 어릴 적 친구들
과의 놀이에서도 분명하게 들어나는 현상이다. 더구나 이제 곧 사회라는 거대한 집합체의 한 구성원
이 되는데 이왕이면 더 확실한 위치에 서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희숙과 선영, 분명 다른 인격과 생활의 습관과 인생에 대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둘 다가 아니
라면 그 중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 결국 본의 아니게 둘 중 하나에게는 상처가 되겠지만 현대인
에게 있어서 남녀의 교제라는 것은 유교 사상이 뿌리 박혀있지 않는 한 만나고 헤어지며 또 만나는 그
런 것 아니겠는가?
한 여자는 고아나 다름없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언니와 형부를 제하면 아무도 없으나 한 여자는 교
수인 아버지의 후광에 자신과 같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도시의 세련미도 있다.
한 여자는 상황에 따라 들어내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한 여자는 어느 상황이든지 살펴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한 여자는 적은 학력에 벌써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반해 한 여자는 앞으로 사회의 상류층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결국 어느 여자를 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한 여
자는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것이고, 그것도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다는 점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나를 위해 마음 씀이 적지 않지만 그 마음 쓰는 것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반면, 한 여자는 내 입장과 생활을 어느 정도 헤아리면서 내 자존심에 상처 나지 않도록 배려하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오빠! 저 책 안사?”
퇴근길에 만난 선영은 서점 앞을 지나다가 내게 물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서점 진열대에는 1993년 영
성문학 수상작 모음집이 놓여 있었고, 영성문학 수상작 모음집을 매년 구입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 그
녀의 말이었다.
“어! 책이 나왔네, 그럼 사야지”
나는 선뜻 서점 안으로 들어가 책을 한 권 들었는데 계산은 선영이 먼저하고 있었다.
“사 주는 거야?”
“그래, 오빠 내가 선물할게 이번 신춘문예 당선 선물이야 ”
“고맙네. 지난번에도 신춘문예 당선 선물이라고 선물 줘놓고”
“그건 그거고, 오늘은 오늘이지, 고맙기는 나중에 오빠가 좋은 것으로 사 주면 되지”
“참! 내 사진 한 장도 없지? 이 사진 갖고 다녀.”
선영은 가방 속에서 사진을 꺼내 책갈피에 넣는다. 지난여름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러는 선영의
얼굴에는 내게 필요한 것을 사 주었다는 즐거움이 환한 웃음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 선영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선영과의 만남, 그리고 내일 신춘문예 당선 축하라는 이름
으로 희숙의 가족과의 식사 약속.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 하는데,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
는 중이다. 언젠가는, 아니 가능한 빠른 시일 내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하고, 당사자에게 어떤 방식으
로든 말해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