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택배 하나를 받았다.
열어보니, 건축용 자 몇 개, 사무용 칼 몇 개, 그리고 책 몇 권, 편지 몇 통이 들어 있었다.
이 택배를 보낸 이는, 나를 오랫동안 홀로 지켜보며 흠모(!)했던, secret admirer였다. 그이는 요사이 나의 어떤 언행에 깊은 불만을 품은 나머지, 나에 대한 마음을 회수하면서, 그간 나를 추적했던 이력들을 모아서 나에게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읽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 책들을 그 역시 따라 읽고 있었고,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일종의 편지글의 형식으로 나에게 써놓았었다. 택배 안에 담겨 있는 책들과 편지들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건축용 자는 내 동선을 몰래 추적하면서 나의 흔적을 그이가 측정한 데 사용한 도구들이었다. 문제는 바로 사무용 칼인데, 이 칼의 정체는 분명치 않았으나, 누가 봐도, 살해협박의 상징이었다.
나는,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당하고, 알수 없는 이유로 일방적인 결별을 당하고, 더욱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위협에 놓인 처지가 된 것이었다.
꿈 속이라지만 참으로 한심하였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꿈길에서 가까스로 벗어낫다.
꿈 밖에서는 쉽게 꿈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어젯밤 읽은 라캉 관련 서적이 꿈을 비집고 나온 것 뿐이었다.
꿈을 비집고 나온 라캉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었으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 택배를 보낸 사람의 정체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라는 생각.
이것은 악몽이다.
나라는 인생.
그것도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