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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
―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이 선 (시인)
칠 놀이 또는 페인트 통
나는 가끔
페인트 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
페이트 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칠 놀이에 지칠 줄을 모르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들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페인트 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아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 심상운 신작시집 『녹색 전율 중에서
심상운은『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시론집을 통하여 하이퍼 시론을 정립하였다. 이번 신작 시집 『녹색 전율』에 실린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은 그의 신작 시집에 실린 하이퍼 시 중 하나이다.
필자는 위의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적 요소에 <하이퍼시의 겹쳐그리기 기법>이라는 이름을 명명하고자 한다. 이미 다른 논문에서 발표한 바 있다. 각각의 연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1-7행의 각 연들을 분석하여 <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1.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칠 놀이 또는 페인트 통」의 시적소재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페인트칠이 된 벽’이다. 그런데 1-7연의 시행에서 보이는 그림은 각각 다른 패턴의 그림이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시점의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1-7연은 각각 다른 상상력의 조합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필자는 다시점과 다초점의 여러 각각의 다른 그림들의 합을 <겹쳐 그리기 기법>이라고 명명한다. <하이퍼 시의 겹치기 기법>의 구성요소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의 예를 1-7연의 시행을 분석하여 살펴보자.
1연- 나는 가끔/ 페인트 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1연 1-3행)
페인트 통을 들고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시인의 상상력의 공간으로 과거의 아이들을 현재시점으로 초대한다. 시인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벽의 그림에서 듣는다.
그림은 보는 것인데, 본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시각 이미지를 청각이미지로 교환하였다. 단계를 뛰어넘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살린 표현이다.
한 편의 시를 극이라고 가정하여 보자. 시의 도입부부터 현재형으로 극적 현장감을 준다.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시에 집중도를 높여주는 장치다. 과거와 과거완료형을 현재형으로 재생하여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2연- 페인트 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2연 1-2행)
위의 시에서는 그림에서 붉은 해가 끓고 구름이 피어오른다고 하지 않았다. 페인트 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등장한다.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림의 재료인 페인트 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이미 만들어져 펑하고 마술처럼 빠져나온다. 1연과 같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의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시적논리가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위의 표현은 비논리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 단계를 건너뛴 표현이다. 어린이들의 세계는 4세경까지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를 가지고 있다. 물건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시에는 어린이의 물활론적 세계와 비슷한 세계가 있다. 시와 어린이의 정신세계에서는 상상력의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지렁이를 늘려 줄넘기도 하고, 지렁이로 팔찌도 하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어린이들의 고정관념을 깨며 큰 인기를 받았었다. 시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업이다. 여러 색깔로 칠이 된 벽에서, 그 이전의 칠의 단계인 페인트 통으로 상상력이 이동되어 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중 구조적인 상상력의 겹치기 기법이다.
3연- 칠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 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3연 1-3행 전문)
아이들의 놀이에서 어른 놀이로 행동의 주체가 바뀐다. ‘아이들->나’로 상상력의 수평적으로 순간이동 하였다.
4연-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4연 1-2행 전문)
벽의 그림은 정지된 화면이다. 그런데 벽의 그림들에 움직임을 주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림 속의 나뭇잎이 팔랑거리고, 그림 속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그런데 사실 벽의 페인트칠에는 실제로 나뭇잎이나 새가 없을 수도 있다. 순전히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다.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며 행동을 시작한다. 정지된 그림이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하이퍼적 상상력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형의 그림에 미래형 옷을 입혔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5연-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5연1- 3행)
붉은색- ‘타이티 여인의 허리곡선’을 상상하였다. 푸른색- ‘총탄에 맞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상상하였다. 색깔 이미지를 살아있는 인물과 사물로 치환하였다. 사물인 색깔에 행위를 주어 실제성과 현장감을 주었다. 극적 구성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소설과 극에서 사건을 담당하는 주요한 포인트인 여자를 드디어 등장시켰다. 또한 가장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멧돼지를 등장시켜 극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있다. 정물에 행위를 주어 의인화하였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이 현재형으로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6연-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빈 페인트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6연 1-2행)
시적화자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빈 페인트 통을 두드린다.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페인트 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의 상상력의 이동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그림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림의 원재료인 페인트 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 시의 포인트다. 상상력의 이동을 대대적으로 크게 한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라는 2개의 과정을 동시에 이행하고 있다.
7연-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이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7행 1-3행)
7연은 시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효과다. 한정적인 시의 공간인 벽과 그림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지문이나 그림의 배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연이다. 죽은 그림에서 살아있는 그림인 자연으로, 독자의 눈을 공간이동시킨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이파리, 바람, 잎사귀소리’로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벽과 칠’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모두 벗어나버렸다. 아주 다른 공간이다. 아이들과 멧돼지와 여자라는 동물에게서도 벗어났다.
2. 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
위의 시는 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1-7연에서 골고루 상상력의 순간이동과 시간이동, 공간이동이 자유롭게 실현되고 있다. 여러 연들은 각각의 다른 그림을 그린다. 상상력이 겹쳐지고, 중첩 이미지를 만든다. 공감적 이미지가 정서를 환기시킨다. 위의 시 1-7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 시의 <상상력의 수평이동- 상상력의 역행- 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겹쳐 그려지며 반복된다. 이 반복적이고 중의적인 겹쳐 그리기 그림 기법이 하이퍼 시의 특징이다. 필자는 이 기법을 본 장에서 <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이라 명명하였다.
제한적인 ‘페인트칠이 된 벽’에서 얻은 단순한 시인의 아이디어가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시인이 아이들이 낙서를 해 놓은 벽을 보고 시상을 얻었을 것이다. 과거의 벽 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현재의 시점에서 행동을 한다.
여러 이미지들이 재탄생하여 각각 다른 옷을 입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무한대로 이동한다. ‘나-아이들-나뭇잎-새-타히티 여인-멧돼지-눈부신 햇살- 바람- 나뭇잎소리’등 상상력을 현재로 끌고 와서 각각의 사물에게 행동과 행위를 부여하고 있다.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모호하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시가 가지는 특징은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의 겹치기가 계속 반복된다. <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무한대의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무형의 사물인 페인트와 그림에 행위를 제공한다. 그림이 여행을 떠나고, 작가인 시인도 합류하여 함께 페인트칠을 하며 논다. 시에 자유로움을 주어 작가와 독자와 등장인물이 함께 상상력의 세계에서 논다. 재미있게 시원하게 잘 논다. 한정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 시의 특징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지 않다. 상상력의 폭이 무한대다. 그러나 이 시가 횡설수설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하이퍼시의 특징인 각 연들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각 연들의 다른 그림은 서로 링크된다.
각각의 행들은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이야기를 산만하게 하는 것 같지만, 링크되어 한 공간에서 만난다. 링크는 하이퍼 시의 특징이다.
3.결론
위의 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각 연 중에서 한 연을 빼도, 한 연을 더 집어넣어 8연, 9연을 만들어도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이퍼시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위의 시는 <하이퍼 시의 겹쳐 그리기 기법>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1장에서 하이퍼 시의 특징인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하이퍼 시의 특징인 링크, 개별성, 독립성 등 하이퍼 시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하이퍼 시는 답답하지 않다. 상상력의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하여 시를 한정적이지 않게 한다. 독자에게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정서환기를 시키며 시에 재미를 더한다.
하이퍼 시인은 한 공간에서 연줄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아이와 같다. 어린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다. 그러나 실은 허공을 날아가서 꽃과 나무, 언덕을 넘어 하늘 끝까지 날아간다. 어린이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낮달과 숨바꼭질하는 낮별과 은하수계까지 도달할 것이다.
지금 문학사에서 하이퍼시 가 서 있는 위치는 어린아이가 연을 들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줄을 끊지 말고 문학사에 족적을 남기도록 좋은 하이퍼 시가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하이퍼 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심상운의 하이퍼 시 신작 시집 『녹색 전율』이 집중받기를 바란다.
하이퍼텍스트 詩 쓰기에 관한 나의 견해 - 이선 하이퍼텍스트 시론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문덕수는 하이퍼텍스트 소설론을 시론에 도입하여 한국 최초로 하이퍼텍스트 시론이라는 새로운 詩 창작 방법론을 개척하였다. 심상운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구체적인 정의를 규명하고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 방법론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심상운과 오남구, 김규화,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던 하이퍼텍스트 詩 쓰기는 이제 다른 문학지 시인들이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하이퍼텍스트 시는 칭찬과 비평, 공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필자의 詩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문예사조도 처음에는 칭찬과 비난을 받는다. 원래 작품이 먼저 활발하게 생산되고 평론가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새로운 문예사조가 탄생하며 인정받는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는 작품이 먼저 탄생하여 인정받고 문예사조로 등록된 것이 아니다. 컴퓨터의 디지털 전자개념을 시에 도입하여 새로운 시 쓰기 방법론을 모색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론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시 창작론을 만들어가고 연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끈임 없이 새로운 시 쓰기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 창작품이 탄생되고 있다. ‘새로움’은 시의 목표며 예술의 영원한 과제다. 하이퍼텍스트 시인들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많은 눈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더 긴장한다. 또한 비평의 칼날을 받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 관심은 결과로 가는 필수과정이다. 필자는 먼저 매를 맞는 기분으로 필자의 시에 자성의 칼날을 들이대기로 한다. 필자는 하이퍼텍스트 시파에 가담하여 새로운 시 쓰기를 모색하면서 기쁨의 탄성도 질렀고 회한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이퍼텍스트 시가 내용보다는 표현에 치중하다보니 진정성의 결여와 내용의 가벼움이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다. 또한 무의미 단어와 이미지의 나열과 결합이 이름만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다는 작가의 개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로운 시도가 무엇이냐? 는 지적도 받았다. 필자는 「잃어버린 동화 1」에서 각각의 단절된 이미지를 각각의 연에 배치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미 엘리엇이「황무지」에서 보인 방법론을 이름만 하이퍼텍스트라고 붙인다고 하여 새로운 시 쓰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회의에 빠졌다. 엘리엇은 필자보다 먼저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사물시를 쓰며 하이퍼텍스트 시가 주장하는 객관화를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가 당위성을 갖는 것은 엘리엇보다 상상력에서 한 수 위라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무의미를 추구하며 상상력의 무한대를 자랑한다. 독자에게 감각의 새로움과 새로운 미의식, 무한대의 상상과 자유를 제공한다. 모듈이론에 입각한 무의미 단어와 단어의 조합, 리좀 이론에 입각한 단절된 이미지의 병렬배치가 독자의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지정하여 주제로 독자를 이끌어 오지 않고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한다. 그 다음은 독자의 자유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이 무한대의 상상력과 자유, 무의미 단어들의 조합이 닮은꼴 시를 양산하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가 주장하는 최첨단 디지털 시론이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는 전자시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무의미 시는 내용의 빈곤과 진정성의 결여라는 문제를 지적받았다. 이 문제는 문덕수가 장시「우체부」에서 ‘사랑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신화와 한국전쟁까지 거시적 소재를 다루면서 내용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문덕수는 장시「우체부」에서 모든 연약한 인간을 향한 인애하는 마음과 연민을 드러내며 시인이 지양해야 할 시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문덕수는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동서양을 오가며 쪽배를 타고 길을 터 낸다. 어느 집에나 편지는 배달되고 시인은 우체부처럼 사랑을 퍼 나른다. 문덕수는 시인의 역량에 따라 하이퍼텍스트 시가 거시적 주제와 소재를 다룰 수 있음을 장시「우체부」에서 증명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이론인 연과 연의 링크를 통하여 무한대의 새로운 이야기를 삽입하여 짜깁기, 모자이크 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심상운도「검붉은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서 1연 ‘병원 응급실’, 2연 ‘밥’, 3연 ‘이집트 미라 그림’ 각각의 이미지를 병렬배치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시적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실과 사물을 통한 객관화를 실현하며 하이퍼텍스트 시가 현재성과 실제성을 떠난 비실제적이고 가벼운 언어놀음을 한다는 비난을 극복하고 있다. 심상운의「검붉은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병과 죽음, 삶의 문제를 다루며 진정성의 부재라는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과 오명을 극복하고 시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또한 그림에서 모티브를 받아 고대와 현재를 오가며 상상적 공간을 확대하여 시의 스케일을 넓히고 실제적이며 직접적인 실감을 주고 있다. 각각 다른 이미지의 연들을 링크하며 주제폭을 넓혔다. 필자도 하이퍼텍스트 시「詩人을 위하여」와 「잃어버린 동화 1」에서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루었다. 「詩人을 위하여」에서는 동네 할아버지와 운전기사,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12세 소녀 ‘은지’ 를 1연의 중심소재로 하여 사회문제로 부각시켰다.「잃어버린 동화 1」에서는 친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딸이 아버지를 고소하며 중벌을 내려줄 것을 판사에게 건의한 기사를 토대로 근친상간을 사회적 이슈로 문제제기하였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서는 주제는 ‘드러나지 않게’, 시적 표현은 ‘강’하게 써야 한다. 미의식과 상상력을 증폭시킬 것, 주제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둔다. 필자의 졸작 「잃어버린 동화」일부를 소개한다. 로켓을 타고 잃어버린 시간의 간이역에 내리면 30년 전, 울고 있는 계집아이 원초적 본능, 하이에나의 이빨에 머리카락이 잡혀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고 절뚝거리며 빙글빙글 돌다 하늘과 땅이 홑이불처럼 거꾸로 뒤집혀, 그녀 몸을 덮치던 날 빨갛고 초록인 어둠 그 뒤, 아이의 습한 동굴 속에선 아빠의 구불거리는 갈색 음모들이 뒤엉켜 거꾸로 줄기가 치솟는 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아~악,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 줄기가 뻗어 나와 - 이선, 「잃어버린 동화」부분 근친상간과 아동성폭력은 큰 사회문제지만 집중조명을 받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아동성폭력을 다루면서 칙칙하지 않게 어떻게 미의식적 표현을 하면서도 진정성과 주제를 어떻게 부각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아이의 마음에 ‘빨갛고 초록인 어둠’으로 상상적 색채감을 주었다. 또한 ‘아~악, /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 줄기가 뻗어 나와’ 부분에서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상처받은 아이를 필자는 식물로 바라보았다. 식물은 누가 물을 주거나 옮기지 않으면 붙박이로 자기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의 연약하고 수동적인 상황은 식물처럼 슬픔을 안고 자란다. 아이의 몸과 마음, 뿌리가 모두 아빠의 음모로 온통 생각이 집중되어 갖혀 버린 아이를 상상해 보라.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줄기가 뻗어 나와’ 아이의 일생을 지배할 것이다. 온 몸이 아프다고 절규도 목하는 아이. 필자는 온 몸에서 아픔의 줄기가 자라는 식물성 아이를 통하여 아이의 절박함, 절대극한 상황, 사회적 단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세상의 음모에 맞서는 연약한 소녀를 고발함으로써 역으로 세상을 고발한 것이다. 진정성의 결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한 아날로그 시와 똑같은 주제를 어떻게 표현과 상상력을 가미하여 하이퍼텍스트 시를 완성할 것인지가 고민사항이었는데, ‘음모’와 ‘구멍’, ‘초록 줄기’를 링크하며 답을 찾았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앞으로도 많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공격을 환영한다.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많은 공격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이퍼텍스트 문예사조가 탄생하려 하고 있다. 싹을 자르려고 노력하지 말고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지켜보는 믿음도 작가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와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려고 고민하는 시인들도 천편일률적인 언어조합에 머물지 않고 시적 진정성과 표현의 새로움을 찾기 위해 더 고민하여야 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는 동료들에게 어딘가 비슷한 닮은꼴 시들이 양산되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 하이퍼텍스트 시는 예술의 필요조건인, 유일성과 창조성, 철학성을 획득한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한 완성된 하이퍼텍스트 시 작품을 쓰는 것이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는 필자와 모두의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