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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살펴보면서 수많은 증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담의 아들 아벨에서부터 시작하여 에녹과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에서부터 믿음의 족장들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사들과 왕들과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의 허다한 증언들을 듣고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 12:1]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경주를 하는 자들은 몸을 가볍게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옷을 가볍게 입습니까! 그래서 바람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고 가장 가볍게 달릴 수 있도록 합니다. 이와같이 이 땅의 죄에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가장 가벼운 복장으로 오직 앞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62]
. 쟁기를 잡은 자가 뒤를 돌아보면 밭고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앞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첫째]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여기서 ‘믿음의 주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수 많은 증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 믿음의 진정한 주가 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요’라고 한 헬라어는 ‘아르케고스’입니다. 이 말은 ‘창시자’라는 말이 됩니다. 믿음의 창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예수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선구자’라는 뜻도 됩니다. 믿음의 선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믿음에 대해서 선구자가 되십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 남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철학은 오직 믿음입니다. 아멘
우리 주님은 믿음의 주인이 되십니다. 주님을 빼고 믿음 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껍데기이며 생명이 아닙니다. 믿음에 있어서 생명이 되시며 근본이 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적어도 믿음을 말하려고 하면 예수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멘
그 주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시각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열심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우선입니다. 방향이 맞지 않은데 열심히 달려가면 간 만큼 다시 와야 합니다. 그래서 방향이 중요합니다. 빨리 달리던 천천히 달리던 일단은 방향이 바로 맞아야 골인 지점으로 갑니다. 아멘 그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주님이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그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그 기쁨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주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권세를 회복하는 것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정한 기쁨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입니다. 이 땅 백성들이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심판에 놓이게 되었을 때 우리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죄에서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위하여 그것이 기쁨이 되어 그 희망을 위하여 주님은 모든 부끄러움을 참았습니다. 아멘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등은 채찍으로 갈라지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즉 해골의 언덕에서 양발과 양손에 대못으로 박혀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참으로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보다 더한 것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본체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비참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죄인의 괴수처럼 처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였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백성들 마저 고개를 돌리고 조롱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주를 위해 헌신해야 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저주하고 이방인의 손에 고발하여 넘겨서 처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네가 메시야이면 너 자신부터 구원하라!
우리 주님은 힘이 없어서 죽으신 것도 아닙니다. 천군천사들이 없어서 체포되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 6시간이나 십자가에 살이 찢어져서 메달려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주님이 그 부끄러움을 다 참으시사 고통받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니 우리가 주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주님이 다 참으신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에 시각을 두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관점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 얻는 믿음이 못 됩니다.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멘
그리고 그 주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지막 때에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아멘 주님은 권능을 회복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아멘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2:3]
그 주님은 우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피곤하여 낙심하다는 말은 힘이 빠져서 쓰러진다는 의미입니다. 병들어 약해지다는 의미도 됩니다. 믿음이 없어져서 낙심하고 좌절하며 쓰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없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참으신 것은 우리의 회복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이 그렇게 자신을 거역하고 불의하고 참람한 것을 끝까지 다 참으신 것은 우리의 회복을 위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인내가 없었다면 우리는 소망이 사라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인내해주셨음으로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통하여 회복할 수 있는 소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어떠한 상황이든지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회복이 일어납니다. 주 안에서는 새롭게 일어납니다. 아멘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주님이 없었다면 당연히 우리는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알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주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은혜로 회복되고 일어나고 역사를 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둘째]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말은 ‘텔레이오텐’인데 이 뜻은 ‘완전케 하는 자, 완성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실 때에 ‘텔레테스타이’라고 외치며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은 ‘값을 다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이 죄값을 다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는 말은 죄에서 회복시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에 빠져서 심판에 놓이게 되었을 때 온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죄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으므로 우리가 주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담 때 파괴되었던 우리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우리는 완전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으로 우리 인간이 타락하여 그 온전함을 상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범죄가 끊임이 없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인과 분쟁하고 분노와 타락과 부패함이 한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뉴스에 보면 살인자들이 왜 죽었는지 목적도 없이 그냥 죽여봤다고 뉴스에 나옵니다. 묻지마 살해도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해도 있습니다. 미국에는 총기난사 때문에 고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모습으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새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처음에 우리를 하나님이 만드실 때의 모습으로 온전해지며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멘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서 12:4]
히브리인들에게 주는 이 성경 말씀이 아직도 당시 히브리인들 성도들이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모습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악한 공중권세 잡은 이들에 대한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육체적인 전쟁이 아니라 악한 영들, 사탄의 세력에 대한 것들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 인간이 죄로 타락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함을 상실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승리합니다. 아멘 그리하여 온전함을 다시 회복하여야 합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12:5~6]
때로는 주님이 우리를 징계로 연단시켜서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다 연단을 받습니다. 저절로 거룩한 성도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군인들이 철저히 훈련을 받아 정예군사가 되듯이 주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그 중에 혹독한 훈련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께 합당하지 못할 때는 채찍질해서라도 제대로 된 성도를 만드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징계도 하지 않습니다.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7~8]
육신의 부모도 자신의 아들을 징계합니다. 그러나 남의 자식은 징계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9]
이 땅의 육신의 아버지가 채찍으로 징계를 해도 공경하고 순종합니다. 하물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연단하시는데 참고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10]
육신의 아버지도 징계할 때 이유가 있는데 하물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아멘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11]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즐겁지 않습니다.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연단 후에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의로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됩니다. 우리는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평안으로 안전하게 되어집니다. 아멘 연단의 결과입니다.
예화) 배영호 전도사
북한 함경도 어랑 출신인데 바닷가에 성장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다가 북한 법에 의해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9살 때 새어머니에게 맞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며 꽃제비가 되어 소매치기를 하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조금 다니다가 늘 밖으로 다니니 고아원에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절이 되어 고아원의 아이들이 수없이 굶어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쳐서 꽃제비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보니 결국 아버지도 이혼하고 죽게 되고 어머니는 데려온 여동생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셋째 여동생도 길을 떠나 결국 소식도 없고 막내 동생은 굶어서 장티푸스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에 돈을 벌려고 강을 건넜습니다. 중국 농촌에서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한국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중국 땅굴을 파고 탈북자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성경을 배웠습니다. 3년 성경통독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대원 공부를 하여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초등학교 밖에 안다닌 그가 한국에서 와서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까지 공부를 하여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설명이 안 됩니다.
그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살아왔지만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셔서 그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고 이렇게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고 은혜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연단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가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주를 위해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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