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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순종하는 성도(고린도후서 1:17~20)
2024년 11월 3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고린도후서 1:17~20)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아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종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정말로 도와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종교적인 것 또 세상적인 것 원치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역사해주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우리에게 재촉하시고 강권하시고 또 책망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영원한 하나님이신 그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과거 사도들의 임무를 이어받아 주를 섬기는 자들로서 오늘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하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는 이미 구원의 주로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가 하시는 일은 온전히 자기를 내어 주고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살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늘의 일이니,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하늘을 더럽힌 배반과 거짓과 무질서를 완전히 정복하고 바르게 놓으시려고, 정리하시고 마무리하시는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과 우주의 완전한 심판을 준비하시고, 깨끗케 하시려 그는 애를 쓰고 계십니다.
그가 우리를 그 일에 부르신 것은 강제로, 아무 의미없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옳게, 진정하게 하는 일에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함께하게 하시고, 그에 따른 보상을 주시려고 하는, 대단한 너그러움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룩한 일을 그가 일부러 주시고 명하셔서 순종하여 의를 이루게 하고, 그 의를 통하여 우리를 복 주시는 근거로 삼으려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정의롭고, 의로우시고, 또 정당하시고 잘못된 것이 없는 온전한 모습을 우리 앞에서 구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이루는 것은 그런 큰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한 부분이고, 또 그 한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들이 맡겨져 있는 우리 각각이 다 거룩한 주의 종들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서비스센터처럼 생각해서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많습니다. 교회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왜곡된 개념들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과거 저는 신앙의 기초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제가 앞으로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많다 보니, 지나온 날들의 조각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우리 교회는 실패하는 교회, 실패하는 신자가 되지 않기 원하고, 저는 우리 교회가 적어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대충 어떻게 되겠지.’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주님을 딱 한번 만나게 되는데, 엄청난 위기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반대편에는 칼을 들고 선 자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리 밑에는 엄청난 물살이 치고 있어 다리에서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칼을 들고 선 자가 자기에게 다가와도 어디 피할 곳이 없는 그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난 격입니다. 우리가 이런 현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을 마음대로 대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고 있는 중에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있으면 더 복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모든 자를 영원토록 한 번 만나 주십니다. 우리 이전에 있던 모든 신앙인들도 한 번씩은 주님을 간접적으로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물론 못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들을 통해 지금과 똑같은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손에 잡아 죽고, 감옥에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신앙은 돌고 도는 것인데,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대로 나타나셔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들에게 그의 순수한 모습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정말 사랑이 많으시고, 진실하시고, 진정 사람들을 살리기 원하시는, 아주 진지하신 분이었습니다. 허드레로 권위 누리려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문둥병자에게 다가가 만져 주셨습니다. 문둥병은 만지면 옮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어루만져주었고, 가던 길을 멈추고 소경을 살려주고, 아픈 자들 돌봐 주시고, 가난한 자들을 보며 눈물 흘리시고, 잘못된 목자를 만나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마음으로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모든 사람에게 내어 주셔서 이미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있을 수억, 수백억, 수천억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신앙생활인데, 너무 세상에 오염이 돼 있는 우리 모습에 대해서 저는 정말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환란을 겪은 것도 우리는 이제 여기서 개선돼야 된다는 것을 크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의 지난 세월을 보면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배웠다고 하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어처구니없는데, 그저 앞으로 그런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동안 다시 나타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보아왔고, 어떤 사람은 우리 가정에 엄청 큰 은혜를 받았는데, 그러고도 도리어 우리 가정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그는 하나님의 천벌을 받지 않으려면은 평생을 두고 이 가정을 사랑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원수로 삼고 있고,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 어려울 때 내가 부담을 지고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고 나는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내가 책임질 게.’ 하고서는 살려준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저를 악하게 대해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많이 오해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싸늘하고 차갑고 사랑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개의치 않던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배웠다. 엄청난 일을 했다.’ 하는데, 엄청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엄청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동안 우리는 신앙생활을 경쟁적으로 해 왔습니다. 약간 신학적으로 ‘영광’, ‘권세’ 이런 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전부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권위에 대한 것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왜 우리가 그런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주님이 육신을 가지고 오셔서 친히 가르쳐 준 내용은 ‘잘난 자가 천국 가는 게 아니야. 밑에 있는 자가 간다. 섬겨 줘야 된다. 니가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높은 자가 되려면 섬겨 줘야 돼. 다 사랑해 줘야 돼. 너를 희생해 줘야 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 가르쳐 줬는데, 그런 것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무슨 조화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마는, 한편으로 저는 제가 세상에 애착이 없는 것이 제게 참 좋은 점이라고 봅니다. 저는 즐거움을 얻지도, 그럴 처지도, 그럴 여유도, 그럴 상황도, 그럴 정신도 이제 아니지만, 저는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이 다행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이 없고, 오래 살아질까 봐 걱정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잘났다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상 오히려 포기하고 사니, 주의 일을 하기에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신앙생활하는 많은 사람이 꼭 자기 위치, 자기의 이익 그 다음에 돈이 들어올 수 있나 없나 하는 데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 지도자를 속여서 자기 유익을 얻으려 하고, 은혜를 저버리고 도리어 독하게 원수로 삼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저는 그가 나를 속인 것이 있어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감사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이렇게 괴롭게 합니다. 아주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롭힙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하나님이 내 마음에 품어주신, 나는 하나님이 내 마음에 심어주신 신앙 외에는, 내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 정말 따뜻한 그 은혜의 권세의 말씀 외에는 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또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의 기업은 성도들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에 와서 효율성을 따질지 모르겠는데, 교회의 효율성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 뜻이 아니라 주의 뜻입니다. 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까이에서 보는 우리 성도들 중에도 참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욕 먹고, 여기 저기서 질타를 받으면서도 참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여기에 심어 놓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라고 봅니다. ‘내가 건드릴 자들이 아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심어준 자다.’ 그런 자들을 볼 때 제가 어떻겠습니까? 힘겨운 인생이라도 견딜만한 용기가 나지 않습니까? 나는 우리 성도들을 다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내 주위에도 그런 성도들이 좀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신은 감독이요? 나도 사회에 뭐 좀 있는 사람이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목자에게 전혀 ‘no’를 안 합니다. 그저 예스(yes)입니다, 예스맨.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어떨까요? ‘아, 내 말 좀 잘 듣는구나.’ 해서 기분이 좋을까요? 나는 그들을 보면 ‘하나님이 저를 굴복시키신다.’ 느끼고, 하나님의 손길 때문에 오히려 두려워합니다. 순종하는 성도들을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그들에게 조심하고, 존중하는 경의를 표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1 5~6)
예수 믿는 것은 예수라는 그리스도,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 마음에 들고 말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나를 속죄를 해 주셨는데, 이후부터는 그가 하시는 것에 대해서 그저 ‘예스(yes)’ 할 뿐입니다. 그가 어느 선에서 나에게 오실 지 모릅니다. 그저 예스입니다.
일생에 태어나서 우리가 교회에서 할 일은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라고 해 주셨습니다. 본래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만, 주님의 말씀 따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평생을 교회에서 사랑을 주고 가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유, 그냥 딱하게 저러다 죽네.”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서운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고 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사랑을 주지 않고 사랑을 빼앗아간, 미움만 주고 간 사람이 되지 않고 사랑해주고 간 사람은 정말 세상적으로는 손해를 많이 봤지만,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 땅에서 천국을 소유하고 간 사람입니다.
세상에 와서는 사랑을 하고 가야 합니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씀하시고 성경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위대한 성락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은 예스입니다. 자기가 훌륭한 지위가 있는 사람이고, 돈이 있고, 재능이 있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그저 주님께 예스맨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감독을 통해서, 주의 종을 통해서, 주의 교회를 통해서 주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주의 시선이 교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큰 축복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을 기도하고 바라면서 교회에 “예스!” 하는 것이 곧 주님께 예스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는 언제든 예스죠. 그런데 교회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에도 예스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자 갑자기 돌변해서 노맨(no man)이 돼서 자기들 속 시원하려고 교회를 괴롭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긍휼을 부어주셔서 우리 교회를 이제는 자유롭게 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젊은 영혼들도 많은데, 조금 컸다고 해서 신앙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회생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긴 사회생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사회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서열이 1등이 꼴등입니다. 여기는 순종하는 자가 높은 자입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따지는 그런 잣대로 서열을 나누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돈 나올 데 있나? 어떻게 지위를 좀 얻을 수 있으려나? 내가 높아질 수 있나?’ 하고, ‘너가 뭔데?’ 하고 사람들에게 까칠합니다. 이런 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기는 사랑을 주고 가는 곳입니다. 여기는 주님께 순종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보통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가 천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예수 믿고 성령을 모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은 ‘너는 내 거다! 너는 내게 순종하라!’ 하고 오신 것이지 않습니까? 성령은 우리를 보호하고, 순종케 하여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순종해야 될 분이 자기 속에 계시는데, 어떻게 가증스럽게 굴 수 있죠? 그런 자는 자기에게 성령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전혀 신앙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스러웠을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는 것은 “예스!” 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물으실 지 모릅니다. 어디서든지 “예스!” 해야 합니다. ‘감독이 이렇다, 저렇다’’ 그걸 따질 것이 아닙니다. 저는 “내가 옳으니 따르시오!” 하고 사람들을 거느리는 일에 관심 없습니다. 난 그저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루어 주시고,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이루실 것을 확신합니다.
나는 주님의 종으로서 순종케 하는 일을 시행하는 사람힙니다. 왜 순종합니까? 영생을 지속할 수 있도록,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순종을 받아내는 사람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하여 진정 순종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으스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많은 세월을 돌아보면,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자기의 위신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세상 고생을 안 해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다 깨지고 완전히 박살나고 아무것도 없을 때 울먹이며 “주님, 나 살려주세요… 다…다… 끝났어! 나, 살려주세요!” 이런 지경으로 왔어야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영적인 상황이었단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처해진 본래의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교회에 와서 무언가 누리려 합니다. 권세를 누리고, 권위를 주장하고, 사회의 재미를 누리고, 사회에서처럼 생존 경쟁을 합니다. 그것은 교회생활이 아닙니다. 여기는 불교나, 이슬람이나 다른 어떤 종교보다 더 많이 주님께 절하고, 그 마음을 주님께 쏟아붓는 곳입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데, 교회라고 해서 다 천국 간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천국 가는 자는 노아의 시대 때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던 그 정도일 거라 봅니다. 자기가 원래 의롭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면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은 그 의를 위해 사는 사람, 의를 위해 사는 사람, 예스맨들을 데려가실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천국에 합당하다.’ 하실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롬 16:17)
세상 교훈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온 자들을 피하라 했습니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이것은 사실 겉으론 근사하게 무슨 정의를 얘기하고 하지마는, 사실은 자기 배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속이고 있는 것이다, 진짜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너희가 이때 정신 차려라. 순종해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너를 들려할 때 마귀에게 선을 딱 그으라는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악한 데 손을 떼고 선한데 지혜롭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롬 16:25~27)
‘복음은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영세전에 나타났다.’ 했습니다. 영세전부터 있던 복음이 이제는 열렸습니다. 이 복음을 왜 주신 것이냐? 순종케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이 계시를 나타낼 때 우리로 순종케 하려고.
인류는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순종할 말씀이 왔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반발하고,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반응하던 것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뒤집어집니다. 역전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교회에 다른 어떤 근사한 일을 절대 원치 않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 옆에 계십니다. 사실 주님은 여러분 심령 속에 계십니다. 계속 말씀하고 하고 계신데 하나님과 사귀지 않으면, ‘성령, 계신가 안 계신가?’ 할 정도로 믿음이 약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세상의 것들을 갖고 와서 교회의 운명을 흔들고, 교회의 분위기를 흔들고 오염시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거룩한 영향력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라는 것은 주님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여 ‘예스! 예스!’ 하시는 자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 앞에 지금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예스맨들이 노맨으로 변해서입니다. 법적 소송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하나님이 만드시는 의로운 사람 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당신의 순종을 보고 하나님께서 ‘너는 외롭다.’ 하시고, 순종을 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유익하지 않은 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서는 예스로 반응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주시고, 부족함이 많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서 뜨겁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격려하시고, 감동하신 것으로 내가 뜨겁게 변화되어서 순종하는 내 심령이 자라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는 예스로, 주님께는 온전히 순종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을 고쳐주시고 바로 세워주시고 우리 교회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주님의 1등 교회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천국 가기에 합당한, 천국 가기에 넉넉한 우리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성도들 다 도와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우리의 생각에 따라, 또 세상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감정에 따라, 또 효율성에 따라, 또 상식에 따라 ‘예’ 혹은 ‘아니요’가 우리의 태도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우리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 주님께는 예스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먹여주시고,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고 보전하시는 우리 주님의 부르시는 모든 음성에 ‘예스’ 하는 자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정말로 세상이 보지 못하는, 세상이 전혀 깨달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우리의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하늘의 음성도 우리가 다 예스로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앞에 효율성은 못 드리더라도, 우리 주님 앞에 세상적 영광은 드리지 못하더라도, 우리 주님께 순종을 드리는 우리 교회, 정말 주님께 무릎 꿇고 사랑을 다하고 또 경의를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우리 교회, 성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어려움이 많고 원수들이 흉악하게 정말 이렇게 뛰놀며 고통을 주고 있지만은, 이 모든 환란을 이제 거두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41103 '예'로 순종하는 성도(고린도후서 1:17~20)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