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 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신경림,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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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된 셈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순례의 여정에 들어서면서 훈훈한 마음을 안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며 감사의 축제를 벌이고 받은 은총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년 추수감사절이 되면 우리 교회는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올해엔 공무원들이 추천해준 4가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두 장애인, 한부모, 알콜릭 등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가정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심한 알콜중독으로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가족마저 곁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아들을 결국 병원에 입원시키고 홀로 남아 힘겹게 살아가시는 한 할머니의 사연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갖고 사셨는지 할머니는 저를 보시자마자 하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도 아들이거니와 동네 이웃들마저 자신을 왕따시킨다며 분통을 터뜨리셨습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키는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습니다.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어드리고는 그저 힘내시라고, 종종 들러 이야기 나누자고 말씀드리고는 다음 집으로 향했지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전해드리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이 되어서야 추수감사 사랑나눔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지난 금요일 지난 주일에 뵈었던 할머니는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손엔 상자 하나를 담은 손수레를 끌고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주일날 고마웠노라고,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집에서 정성껏 말린 곶감을 가져왔으니 맛있게 드시라며 상자를 건네주셨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먼 길을 걸어와 건네주신 곶감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번 주일 온 교우들은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긴 곶감을 맛보게 되겠지요. 참 감사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힘겨움과 고단함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돈이 있어 나누는 게 아니라 결국 마음이, 진심이 진정한 나눔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는 마음을 할머니에게서 배웁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작은 호의마저 고마움으로 받아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다하여 전해줄 때 우리 안에 있는 어둡고 질척한 삶은 밝고 훈훈하게 바뀌어 갈 것입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니 신경림 시인의 <햇살>이 떠오릅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분을, 그러한 삶을 기대하며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이겠지요. <202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