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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종 / 황유원
스스로 우는 이 시계는
어쩐지 자명하다
자명한 이치처럼 자명해서
그 울림이 맑고 깊어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자명한 일이라지만
생각만으로도 벌써
이제 막 빛이 번지기 시작한 어느 호수
언저리처럼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한 일이어서
나는 오늘도 이 자명종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놓고
일을 하거나 잠시 기지개를 펴기도 하며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자명종을 맞춰놓으면
갑자기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그
시간까지 하나의 긴
문장이 적히기 시작하는 것 같고
나는 이제부터 그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 문장에 형광색 밑줄을 천천히 긋기
시작하는 것 같아
자명종
미리 정해놓은 시각이 되면 저절로
소리가 울리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현대의 종아
커다란 종도 좋겠지만
커다란 종이 있는 종탑이 있는 성당을
가질 수 있어도 좋겠지만
나는 너 하나로 만족하련다
자명종
자명한 나의
사랑 같은 종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2023)
지식의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철학 및 과학 이론 정리
지식의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는 철학과 과학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데카르트에서 현대 양자역학과 수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이르기까지, 이론들은 확실성을 증명하거나, 반대로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다음은 주요 이론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Ⅰ. 고전 철학에서 지식의 확실성 논의
1.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 명석판명한 지식
데카르트는 《방법서설》(1637)과 《성찰》(1641)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통해 절대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지식을 구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Methodic Doubt)를 사용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주체" 자체는 의심할 수 없기에, 명석판명한(clear and distinct) 인식이 참된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수학과 같은 논리적 명제들이 확실성을 보장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신의 존재와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논증했다.
2. 흄 (David Hume, 1711-1776) - 경험론과 지식의 불확실성
흄은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달리 **경험론(empiricism)**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인과 법칙(causality)**조차도 경험적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해가 매일 뜬다"는 것을 믿지만, 내일도 해가 뜬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귀납의 문제).
흄은 결국 모든 지식은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3.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 지식의 성립 가능성
흄의 회의론을 비판하며,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인간이 지식을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는 선험적 종합 판단(a priori synthetic judgment) 개념을 제시했다.
감각 경험(후험적, a posteriori)만으로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고,
인간의 인식 능력(선험적, a priori)이 경험을 통해 지식을 구성한다는 것.
예: "공간"과 "시간"은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선천적 형식이며, 수학과 뉴턴의 물리학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칸트는 데카르트처럼 완전한 확실성을 주장하지 않지만, 지식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흄의 회의론을 극복했다.
Ⅱ. 현대 과학에서 불확실성의 문제
4.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1927)
하이젠베르크(Heisenberg)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제시했다.
이는 물리학에서 완전한 확실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뉴턴 역학의 결정론을 깨뜨렸다.
전통적으로 물리학은 인과율(결정론)을 따랐으나, 양자역학은 확률론적 기술을 필요로 했다.
즉, 미시 세계에서는 "지식"이 불확실하며, 특정 확률로만 사건이 예측될 수 있다.
5. 수학 -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1931)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s)**를 통해,
수학 내에서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즉, 어떤 수학 체계에서도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인식"조차도 절대적으로 증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수학이 절대적 확실성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무너뜨린 중요한 결과였다.
Ⅲ. 현대 철학 및 과학에서 지식의 불확실성 문제
6. 카를 포퍼 (Karl Popper, 1902-1994) - 반증 가능성 (Falsifiability)
포퍼는 "완전한 확실한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적 지식은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수천 번 검증되었더라도,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 반증된다.
따라서 과학 이론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반증될 수 있는 가설이다.
7. 현대 인공지능 및 정보 이론 - 불확실성의 문제
베이즈 확률론: 현대 통계학과 인공지능(AI)은 불확실한 데이터를 다루며, 베이즈 정리를 통해 확률적으로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양자 정보이론: 양자역학의 확률적 본성을 이용해 정보의 본질을 탐구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쳐, 완전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Ⅳ. 결론: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변증법적 관계
1.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을 구축하려 했지만,
2. 흄은 경험적 지식이 불확실하다고 주장했고,
3. 칸트는 지식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탐구했다.
4. 양자역학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과학과 수학에서도 절대적인 확실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5. 포퍼는 과학 이론이 반증될 수 있어야 하며,
6. 현대 AI와 카오스 이론은 불확실성을 확률적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즉, 지식의 역사는 절대적 확실성을 향한 탐구와 불확실성의 인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해 왔다. 현대 과학과 철학은 완전한 확실성을 포기하고, 확률적·경험적 지식의 유효성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 분석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황유원의 「자명종」 분석
과학에서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논의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수학의 불완전성 정리, 카오스 이론 및 AI의 확률적 인식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명종」을 분석하면, 시간과 미래의 예측 가능성, 인간이 확실성을 부여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것이 가진 불완전성이 부각된다.
1. 제목의 의미: 「자명종」
자명(自鳴)종: 스스로 울리는 시계라는 뜻.
양자역학적 관점: 자명종이 "특정한 시각"에 울리는 것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특정한 시점에 입자의 상태가 정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기다림"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카오스 이론적 관점: 단순한 알람 설정이지만, 미세한 차이가 인간의 행동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자명(自明): ‘명백하고 확실한’이라는 뜻도 있음.
그러나 시 전체는 오히려 확실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불완전성 정리와 유사하게, 어떤 체계 안에서는 모든 참을 증명할 수 없다는 과학적 원리와 맞닿는다.
2. 주제
인간이 미래를 확정하려는 시도와 그것의 불가능성을 탐구한다.
자명종을 맞추는 행위는 시간과 인과의 예측 가능성을 믿으려는 태도이지만,
실제로는 예측한 미래를 기다리는 동안 현재는 계속 변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이는 **결정론(고전 물리학)**과 확률론(양자역학, 카오스 이론)의 충돌을 반영한다.
3. 상징 분석
자명종: 인간이 미래를 계획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기계적인 도구.
그러나 과연 자명종이 울릴 시간에 우리는 기대한 상태일까?
시간은 자명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리의 존재는 불확실하다.
시간의 본질(물자체)는 알 수 없고 인간이 척도(측정도구)를 갖다대어 들어맞으면 확률적인 지식을 얻는 정도이다.
시간과 문장: "시간이 지나면서 문장이 써진다"는 표현은 지식과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칸트의 인식론과 유사하게, 시간 속에서 경험을 통해 인식이 형성된다.
형광색 밑줄:
특정한 순간을 강조하고 기록하려는 시도의 은유.
하지만 형광펜이 밑줄을 긋는 순간에도 종이는 변하며, 밑줄이 긋기 전과 후는 다르다.
이는 양자역학의 측정 문제(측정하는 순간 상태가 변함)와 유사하다.
4. 문장별 분석
"스스로 우는 이 시계는 / 어쩐지 자명하다"
자명종은 정해진 시간에 울리기에, 그것이 울리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어쩐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그 확실성이 흔들린다.
과연 우리가 설정한 시간에 알람이 울리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가, 아니면 단지 인간이 정해놓은 가상의 질서인가?
포퍼의 반증 가능성을 고려하면, 자명하다는 것 역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자명한 이치처럼 자명해서 / 그 울림이 맑고 깊어"
**이치(理致)**는 과학적 법칙처럼 보이지만, "울림"이란 감각적 경험과 결합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법칙"이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입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측정하는 순간 특정 상태로 고정되는 것처럼.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 달라지지 않는 것도 / 자명한 일이라지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연상케 한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지만, 사고만으로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물리학에서 양자역학과 뉴턴 역학의 차이를 반영할 수도 있다.
뉴턴 역학에서는 "미래는 현재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미래는 측정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명한 일이라지만"이라는 말은, 우리가 믿는 인과율이 사실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포함한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 이제 막 빛이 번지기 시작한 어느 호수 / 언저리처럼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 자명한 일이어서"
"생각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입자는 측정되기 전까지 확정된 상태가 아니며, 관찰하는 순간 상태가 결정된다.
"빛이 번지는 호수"는 변화의 시작을 나타내며, 이는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
"나는 오늘도 이 자명종을 내가 / 원하는 시간에 맞춰놓고 / 일을 하거나 잠시 기지개를 펴기도 하며 / 그때가 오기를 /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이 핵심이다. 우리는 정해진 미래를 기다리지만, 그 미래는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일까?
자명종이 울릴 때까지 인간은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
미래를 설정하는 순간 현재의 변화를 간과하게 된다.
"원하는 시간에 자명종을 맞춰놓으면 / 갑자기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그 / 시간까지 하나의 긴 / 문장이 적히기 시작하는 것 같고"
미래의 예측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을 의식하게 된다.
"긴 문장"은 우리의 삶과 경험이 시간 속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시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처럼, 이 문장은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그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가 / 그 문장에 형광색 밑줄을 천천히 긋기 / 시작하는 것 같아"
"형광색 밑줄"을 긋는 순간, 그 문장은 기존과 달라진다.
이는 물리학에서 측정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자명종 / 미리 정해놓은 시각이 되면 저절로 / 소리가 울리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 현대의 종아"
자명종은 "자연적 질서"가 아닌, 인간이 만든 "장치"임을 명확히 한다.
이는 우리가 믿는 법칙들이 사실 인위적 구성물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커다란 종도 좋겠지만 / 커다란 종이 있는 종탑이 있는 성당을 / 가질 수 있어도 좋겠지만"
종탑과 성당은 거대한 보편적 질서를 상징한다.
뉴턴 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처럼, 우주가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며 예측 가능한 세계를 형성한다는 신념과 연결된다.
종탑은 신의 질서처럼, 인간이 따를 수밖에 없는 거대한 구조이지만, 시적 화자는 그것을 반드시 소유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나는 너 하나로 만족하련다 / 자명종"
반면, 자명종은 개인적인 시간을 설정하는 작은 도구이다.
이는 양자역학적 세계관에서, 개별적인 입자가 특정한 상태로 결정되지 않고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불확실성의 세계를 반영한다.
즉,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개인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결정론에서 확률론으로 이동하는 현대 물리학적 변화를 암시한다.
"자명한 나의 / 사랑 같은 종아"
‘자명한’이라는 표현은 확실성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변할 수도 있는 감정이지만, 화자는 이를 자명한 것으로 선언한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측정 전까지 입자의 상태가 확정되지 않은 것처럼, 자명종이 울리기 전까지 우리는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그 불확실성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론
종탑(거대한 종교적·사회적 질서)은 마치 완전한 체계처럼 보이지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따르면 어떤 체계도 스스로를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는 절대적인 질서를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작은 체계를 설정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이는 거대하고 완전한 이론보다, 개별적이고 제한된 체계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현대 과학적 태도와 유사하다.
마지막 연은 거대한 확실성(결정론, 종탑) vs. 개인적 확실성(자명종, 확률론)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살 수 있지만, 결국 우리가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개인적 질서뿐임을 시사한다.
이는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등 현대 과학의 핵심 개념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작은 확실성을 만들어가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