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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요란하면 한여름이다.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흐르는 매미소리와 함께
금시 낮잠에 빠진다. 에어컨이 따를 수 없는 시원함이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는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의 휴식처로 느티나무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
가. 《이문집(異聞集)》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 나라 때 순우분(淳于芬)이 어느 날 술이 취해 집 앞 느티나무 밑에서
쉬게 되었다. 괴안국(槐安國)에서 왔다는 사신을 따라 그 나라로 갔다가 국왕의 사위가 되었고 남가군수(南柯郡守)로
임명받아 임지에서 20년을 보냈다. 전지에서 적과 싸워 패하였고 공주마저 죽자 쓸쓸히 돌아오는데 깨어나니 꿈이었다.
느티나무 밑에 텅 빈 개미굴이 있었는데 왕개미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꿈속의 괴안국이란 바로 개미굴이었던 것이다. 시원한 느티나무 밑에 있으면 나른한 졸음이 오고 잠깐 동안이지만 노동
뒤에 오는 피로를 풀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느티나무 하면 쉴 휴(休)자가 생각난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 서 있는 것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정자목으로 느티나무만한 수종이 어디 있을까.
서양에서 월계수 를 신성시하듯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받들어 오고 있다. 때로는 영목(靈木)으로,
귀목(貴木)으로, 또 신목(神木)으로,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우리나라 명목으로는 느티나무가 으뜸에 속한다.
《 산림경제 (山林經經濟)》를 보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중문 안에 심으면 세세부귀를 누린다. 신방(申方) 서남간에
심으면 도적을 막는다.”고 했다.
대개 동구 밖에 한두 그루의 큰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여기에는 금기의 전설도 갖가지다. 옛날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재앙을 입는다고 하여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아름다운 나무 모양과 긴 수명을 유지시킨
비결이 됐다. 전설을 만들어 금기를 역작용으로 나타나게 해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지혜로움이다.
봄에 일제히 싹을 틔우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임을 미리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위쪽에서 먼저 싹이 트면
풍년이 들고 밑쪽에서 싹이 트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
지방에 따라서는 느티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사내 아기를 얻는다는 전설이 많아 아낙네들의 소원목이 되기도 했다. 밤에
나무에서 광채가 나면 동리에 행운이 온다. 밤에 나무에서 우는소리가 나면 동리에 불행이 온다고 믿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노거수 앞에서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무사 안녕을 빌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또 제사를 올려 병마와
액운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 李滉) 선생은 뜰에 심어진 느티나무 줄기가 시드는 것을 보고 앞으로 자신에게 곤란한 일이 닥칠 것을
예감했다. 예감은 적중하여 후에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으나 다행하게도 복직되었다. 느티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앞일을 예견했던 셈이다.
5월에 잎겨드랑이 에서 녹색의 꽃이 피고 좁쌀알 같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모두가 녹색이어서 주의해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느티나무의 매력은 가을의 단풍이다. 보통 노랗게 단풍 드는 것이 많지만 개체에 따라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도 있다. 이런 개체를 잘 선발하여 가꾸면 가로수, 공원용수, 조경수 로 좋을 것이다.
느티나무를 규목(槻木)이라고도 했다. 결이 고와서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더할 수 없이 좋은 목재이다. 옛날에는 불상도
만들었고 부잣집의 기둥?가구 등으로 썼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뿌리로 만든 큰 탁자는 느티나무 줄기와 뿌리가 만나는
부분의 목재로 만든 것이다. 뒤틀린 정교한 나뭇결 을 구름무늬(雲龍紋)라 했다.
성현(成俔)은 《 용재총화 (?齋叢話)》에서 기우(騎牛) 이공(李公)이란 분의 시를 소개하였다.
담장 위의 연초록 느티나무 세 그루
좋을시고 가지에 꾀꼬리 와서 우네.
墻頭嫩綠三槐樹
好箇黃?一兩聲
어느 따사로운 봄날 담장 위로 솟아오른 느티나무 가지에 연초록 잎이 돋아났고 게다가 여름철새인 꾀꼬리마저 와서
운다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유득공(柳得恭) 의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4월 초파일 풍습에 느티떡 을 해 먹는다고 했다. “손님을 초청해 모셔
놓고 음식을 대접한다. 느티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내 놓는다. 이를 두고 부처님 생신날 먹는 맨밥(佛辰茹素)이라
한다.” 고기를 일체 먹지 않기 때문에 느티나무, 느릅나무 , 시무나무 같은 싹을 따다가 쌀가루에 버무려 떡을 쪄 먹었다.
4월 초파일 경이면 느릅나무과 식물의 새싹이 돋아난다.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BC 179~ 123)이 쓴 《회남자(淮南子)》에는 느티나무를 9월의 나무에 넣었다.
계절마다 나무 한 가지를 선정했는데 1월은 버드나무, 2월 살구나무, 3월에 자두( 오얏나무 ), 4월 복사나무 ,
5월 느릅나무, 6월 가래나무 , 7월 소태나무 , 8월 산뽕나무 , 10월 박달나무, 11월 대추나무, 12월은 상수리나무 를 꼽았다.
전주성 주위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는 그의 시 〈전주 남문루(全州南門樓)〉
에서 성을 끼고 선 느티와 버들에 보슬비 내리고,
성 위 높다란 누각으로 제비가 날아든다.
來城槐柳雨微微
城上高樓燕子飛
고 노래했다. 봄철 그 화려했던 꽃들이 떨어지면 신록의 느티나무 밑을 찾게 된다. 한 여름의 그늘은 역시 느티나무
밑이어야 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듣게 되는 매미소리 또한 느티나무라야 운치를 더한다.
자하(紫霞) 신위(申緯)는
머리를 어지럽게 하던 붉고 흰 것(꽃)이 사라지자
느티나무잎 그늘 더욱 짙어져 여름경이 되었네.
언紅嬌白轉頭空 언=諺+嬪
槐葉陰濃夏景中
라고 읊었다. 울긋불긋한 꽃이 눈을 어지럽게 하고 머리까지 혼란스럽게 했던 때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벌써 느티나무 잎
넓은 여름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대부분의 노거수에는 제각기 전설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 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위인의 이야기가 얽혀 있거
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신격화했을 정도로 과장된 것이 사실이다.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13건이 천연 기념물 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은행나무 19건, 소나무 17건에 이어
느티나무는 세 번째이다.
경북 상주시 냉림동 상산초등학교 교정에는 500년생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원주형이어야 할 줄기는 썩어
한쪽만 반 정도 남은 노거수이다. 이 곳은 영남지방 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목이다.
옛 선비들은 이 나무 밑에서 더위를 씻었을 것이고 나무의 신에게 장원급제를 기원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나무에 기도를 올리면 목신이 합격의 영험을 내린다고 믿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입시생을 앞둔 어머니가
이 나무를 찾아가 합격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린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어우러져야 잘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양쪽 다 자라지 못하는 것도 있다. 느티나무
와 머루 덩굴은 궁합이 잘 맞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느티나무에 기어오른 머루 덩굴은 많은 열매가 달리고 세력도 좋다.
머루는 느티나무에 의지하여 사는 대신 다른 덩굴식물 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초제 물질을 뿜어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느티나무와 머루덩굴이 어떤 계약이라도 맺었는지 그 것은 아무도 모른다
느티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요란하면 한여름이다.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흐르는 매미소리와 함께
금시 낮잠에 빠진다. 에어컨이 따를 수 없는 시원함이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는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의 휴식처로 느티나무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문집(異聞集)》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 나라 때 순우분(淳于芬)이 어느 날 술이 취해 집 앞 느티나무 밑에서 쉬게
되었다. 괴안국(槐安國)에서 왔다는 사신을 따라 그 나라로 갔다가 국왕의 사위가 되었고 남가군수(南柯郡守)로 임명받
아 임지에서 20년을 보냈다. 전지에서 적과 싸워 패하였고 공주마저 죽자 쓸쓸히 돌아오는데 깨어나니 꿈이었다. 느티나
무 밑에 텅 빈 개미굴이 있었는데 왕개미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꿈속의 괴안국이란 바로 개미굴이었던 것이다. 시원한 느티나무 밑에 있으면 나른한 졸음이 오고 잠깐 동안이지만 노동
뒤에 오는 피로를 풀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느티나무 하면 쉴 휴(休)자가 생각난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 서 있는 것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정자목으로 느티나무만한 수종이 어디 있을까.
서양에서 월계수 를 신성시하듯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받들어 오고 있다. 때로는 영목(靈木)으로,
귀목(貴木)으로, 또 신목(神木)으로,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우리나라 명목으로는 느티나무가 으뜸에 속한다.
《 산림경제 (山林經經濟)》를 보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중문 안에 심으면 세세부귀를 누린다. 신방(申方) 서남간에
심으면 도적을 막는다.”고 했다.
대개 동구 밖에 한두 그루의 큰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여기에는 금기의 전설도 갖가지다. 옛날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
으면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재앙을 입는다고 하여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아름다운 나무 모양과 긴 수명을 유지시킨
비결이 됐다. 전설을 만들어 금기를 역작용으로 나타나게 해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지혜로움이다.
봄에 일제히 싹을 틔우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임을 미리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위쪽에서 먼저 싹이 트면
풍년이 들고 밑쪽에서 싹이 트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
지방에 따라서는 느티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사내 아기를 얻는다는 전설이 많아 아낙네들의 소원목이 되기도 했다. 밤에
나무에서 광채가 나면 동리에 행운이 온다. 밤에 나무에서 우는소리가 나면 동리에 불행이 온다고 믿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노거수 앞에서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무사 안녕을 빌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또 제사를 올려 병마와
액운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 李滉) 선생은 뜰에 심어진 느티나무 줄기가 시드는 것을 보고 앞으로 자신에게 곤란한 일이 닥칠 것을
예감했다. 예감은 적중하여 후에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으나 다행하게도 복직되었다. 느티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앞일을 예견했던 셈이다.
5월에 잎겨드랑이 에서 녹색의 꽃이 피고 좁쌀알 같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모두가 녹색이어서 주의해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느티나무의 매력은 가을의 단풍이다. 보통 노랗게 단풍 드는 것이 많지만 개체에 따라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도 있다. 이런 개체를 잘 선발하여 가꾸면 가로수, 공원용수, 조경수 로 좋을 것이다.
느티나무를 규목(槻木)이라고도 했다. 결이 고와서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더할 수 없이 좋은 목재이다. 옛날에는 불상도
만들었고 부잣집의 기둥?가구 등으로 썼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뿌리로 만든 큰 탁자는 느티나무 줄기와 뿌리가 만나는
부분의 목재로 만든 것이다. 뒤틀린 정교한 나뭇결 을 구름무늬(雲龍紋)라 했다.
성현(成俔)은 《 용재총화 (?齋叢話)》에서 기우(騎牛) 이공(李公)이란 분의 시를 소개하였다.
담장 위의 연초록 느티나무 세 그루
좋을시고 가지에 꾀꼬리 와서 우네.
墻頭嫩綠三槐樹
好箇黃?一兩聲
어느 따사로운 봄날 담장 위로 솟아오른 느티나무 가지에 연초록 잎이 돋아났고 게다가 여름철새인 꾀꼬리마저 와서
운다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유득공(柳得恭) 의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4월 초파일 풍습에 느티떡 을 해 먹는다고 했다. “손님을 초청해 모셔
놓고 음식을 대접한다. 느티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내 놓는다. 이를 두고 부처님 생신날 먹는 맨밥(佛辰茹素)이라
한다.” 고기를 일체 먹지 않기 때문에 느티나무, 느릅나무 , 시무나무 같은 싹을 따다가 쌀가루에 버무려 떡을 쪄 먹었다.
4월 초파일 경이면 느릅나무과 식물의 새싹이 돋아난다.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BC 179~ 123)이 쓴 《회남자(淮南子)》에는 느티나무를 9월의 나무에 넣었다.
계절마다 나무 한 가지를 선정했는데
1월은 버드나무, 2월 살구나무, 3월에 자두( 오얏나무 ), 4월 복사나무 , 5월 느릅나무, 6월 가래나무 , 7월 소태나무 ,
8월 산뽕나무 , 10월 박달나무, 11월 대추나무, 12월은 상수리나무 를 꼽았다.
전주성 주위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는 그의 시 〈전주 남문루(全州南門樓)〉
에서
성을 끼고 선 느티와 버들에 보슬비 내리고,
성 위 높다란 누각으로 제비가 날아든다.
來城槐柳雨微微
城上高樓燕子飛
고 노래했다. 봄철 그 화려했던 꽃들이 떨어지면 신록의 느티나무 밑을 찾게 된다. 한 여름의 그늘은 역시 느티나무
밑이어야 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듣게 되는 매미소리 또한 느티나무라야 운치를 더한다.
자하(紫霞) 신위(申緯)는
머리를 어지럽게 하던 붉고 흰 것(꽃)이 사라지자
느티나무잎 그늘 더욱 짙어져 여름경이 되었네.
언紅嬌白轉頭空 언=諺+嬪
槐葉陰濃夏景中
라고 읊었다. 울긋불긋한 꽃이 눈을 어지럽게 하고 머리까지 혼란스럽게 했던 때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벌써 느티나무 잎
넓은 여름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대부분의 노거수에는 제각기 전설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 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위인의 이야기가 얽혀
있거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신격화했을 정도로 과장된 것이 사실이다.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13건이 천연 기념물 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은행나무 19건, 소나무 17건에 이어
느티나무는 세 번째이다.
경북 상주시 냉림동 상산초등학교 교정에는 500년생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원주형이어야 할 줄기는 썩어
한쪽만 반 정도 남은 노거수이다. 이 곳은 영남지방 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목이다.
옛 선비들은 이 나무 밑에서 더위를 씻었을 것이고 나무의 신에게 장원급제를 기원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나무에 기도를 올리면 목신이 합격의 영험을 내린다고 믿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입시생을 앞둔
어머니가 이 나무를 찾아가 합격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린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어우러져야 잘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양쪽 다 자라지 못하는 것도 있다.
느티나무와 머루 덩굴은 궁합이 잘 맞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느티나무에 기어오른 머루 덩굴은 많은 열매가 달리고
세력도 좋다. 머루는 느티나무에 의지하여 사는 대신 다른 덩굴식물 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초제 물질을
뿜어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느티나무와 머루덩굴이 어떤 계약이라도 맺었는지 그 것은 아무도 모른다
느티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요란하면 한여름이다.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흐르는 매미소리와 함께
금시 낮잠에 빠진다. 에어컨이 따를 수 없는 시원함이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는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의 휴식처로 느티나무만한 것이 어디 있겠
는가. 《이문집(異聞集)》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 나라 때 순우분(淳于芬)이 어느 날 술이 취해 집 앞 느티나무 밑
에서 쉬게 되었다. 괴안국(槐安國)에서 왔다는 사신을 따라 그 나라로 갔다가 국왕의 사위가 되었고 남가군수(南柯郡守)
로 임명받아 임지에서 20년을 보냈다. 전지에서 적과 싸워 패하였고 공주마저 죽자 쓸쓸히 돌아오는데 깨어나니 꿈이
었다. 느티나무 밑에 텅 빈 개미굴이 있었는데 왕개미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꿈속의 괴안국이란 바로 개미굴이었던 것이다. 시원한 느티나무 밑에 있으면 나른한 졸음이 오고 잠깐 동안이지만
노동 뒤에 오는 피로를 풀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느티나무 하면 쉴 휴(休)자가 생각난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 서 있는 것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정자목으로 느티나무만한 수종이 어디 있을까.
서양에서 월계수 를 신성시하듯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받들어 오고 있다. 때로는 영목(靈木)으로,
귀목(貴木)으로, 또 신목(神木)으로,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우리나라 명목으로는 느티나무가 으뜸에 속한다.
《 산림경제 (山林經經濟)》를 보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중문 안에 심으면 세세부귀를 누린다. 신방(申方) 서남간에
심으면 도적을 막는다.”고 했다.
대개 동구 밖에 한두 그루의 큰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여기에는 금기의 전설도 갖가지다. 옛날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재앙을 입는다고 하여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아름다운 나무 모양과 긴 수명을 유지
시킨 비결이 됐다. 전설을 만들어 금기를 역작용으로 나타나게 해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지혜로움이다.
봄에 일제히 싹을 틔우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임을 미리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위쪽에서 먼저 싹이 트면
풍년이 들고 밑쪽에서 싹이 트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
지방에 따라서는 느티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사내 아기를 얻는다는 전설이 많아 아낙네들의 소원목이 되기도 했다.
밤에 나무에서 광채가 나면 동리에 행운이 온다. 밤에 나무에서 우는소리가 나면 동리에 불행이 온다고 믿어 두려워
하기도 했다.
노거수 앞에서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무사 안녕을 빌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또 제사를 올려 병마와
액운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 李滉) 선생은 뜰에 심어진 느티나무 줄기가 시드는 것을 보고 앞으로 자신에게 곤란한 일이 닥칠 것을
예감했다. 예감은 적중하여 후에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으나 다행하게도 복직되었다. 느티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앞일을 예견했던 셈이다.
5월에 잎겨드랑이 에서 녹색의 꽃이 피고 좁쌀알 같은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모두가 녹색이어서 주의해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느티나무의 매력은 가을의 단풍이다. 보통 노랗게 단풍 드는 것이 많지만 개체에 따라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도 있다. 이런 개체를 잘 선발하여 가꾸면 가로수, 공원용수, 조경수 로 좋을 것이다.
느티나무를 규목(槻木)이라고도 했다. 결이 고와서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더할 수 없이 좋은 목재이다. 옛날에는
불상도 만들었고 부잣집의 기둥?가구 등으로 썼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뿌리로 만든 큰 탁자는 느티나무 줄기와
뿌리가 만나는 부분의 목재로 만든 것이다. 뒤틀린 정교한 나뭇결 을 구름무늬(雲龍紋)라 했다.
성현(成俔)은 《 용재총화 (?齋叢話)》에서 기우(騎牛) 이공(李公)이란 분의 시를 소개하였다.
담장 위의 연초록 느티나무 세 그루
좋을시고 가지에 꾀꼬리 와서 우네.
墻頭嫩綠三槐樹
好箇黃?一兩聲
어느 따사로운 봄날 담장 위로 솟아오른 느티나무 가지에 연초록 잎이 돋아났고 게다가 여름철새인 꾀꼬리마저 와서
운다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유득공(柳得恭) 의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4월 초파일 풍습에 느티떡 을 해 먹는다고 했다. “손님을 초청해 모셔
놓고 음식을 대접한다. 느티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내 놓는다. 이를 두고 부처님 생신날 먹는 맨밥(佛辰茹素)
이라 한다.” 고기를 일체 먹지 않기 때문에 느티나무, 느릅나무 , 시무나무 같은 싹을 따다가 쌀가루에 버무려 떡을 쪄
먹었다. 4월 초파일 경이면 느릅나무과 식물의 새싹이 돋아난다.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BC 179~ 123)이 쓴 《회남자(淮南子)》에는 느티나무를 9월의 나무에 넣었다.
계절마다 나무 한 가지를 선정했는데 1월은 버드나무, 2월 살구나무, 3월에 자두( 오얏나무 ), 4월 복사나무 ,
5월 느릅나무, 6월 가래나무 , 7월 소태나무 , 8월 산뽕나무 , 10월 박달나무, 11월 대추나무, 12월은 상수리나무 를 꼽았다.
전주성 주위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는 그의 시 〈전주 남문루(全州南門樓)〉
에서
성을 끼고 선 느티와 버들에 보슬비 내리고,
성 위 높다란 누각으로 제비가 날아든다.
來城槐柳雨微微
城上高樓燕子飛
고 노래했다. 봄철 그 화려했던 꽃들이 떨어지면 신록의 느티나무 밑을 찾게 된다. 한 여름의 그늘은 역시 느티나무
밑이어야 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듣게 되는 매미소리 또한 느티나무라야 운치를 더한다.
자하(紫霞) 신위(申緯)는
머리를 어지럽게 하던 붉고 흰 것(꽃)이 사라지자
느티나무잎 그늘 더욱 짙어져 여름경이 되었네.
언紅嬌白轉頭空 언=諺+嬪
槐葉陰濃夏景中
라고 읊었다. 울긋불긋한 꽃이 눈을 어지럽게 하고 머리까지 혼란스럽게 했던 때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벌써 느티나무 잎
넓은 여름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대부분의 노거수에는 제각기 전설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 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위인의 이야기가 얽혀
있거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신격화했을 정도로 과장된 것이 사실이다.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13건이 천연 기념물 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은행나무 19건, 소나무 17건에 이어
느티나무는 세 번째이다.
경북 상주시 냉림동 상산초등학교 교정에는 500년생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원주형이어야 할 줄기는 썩어
한쪽만 반 정도 남은 노거수이다. 이 곳은 영남지방 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목이다.
옛 선비들은 이 나무 밑에서 더위를 씻었을 것이고 나무의 신에게 장원급제를 기원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나무에 기도를 올리면 목신이 합격의 영험을 내린다고 믿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입시생을 앞둔
어머니가 이 나무를 찾아가 합격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린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어우러져야 잘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양쪽 다 자라지 못하는 것도 있다.
느티나무와 머루 덩굴은 궁합이 잘 맞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느티나무에 기어오른 머루 덩굴은 많은 열매가
달리고 세력도 좋다. 머루는 느티나무에 의지하여 사는 대신 다른 덩굴식물 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초제 물질을 뿜어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느티나무와 머루덩굴이 어떤 계약이라도 맺었는지 그 것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