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아주 조용하게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좀더 자고 싶었다.
“얘들아 밥먹자!” 갑자기 큰 소리가 자명종 시계마냥 귓가를 때렸다.
응? 무슨 소리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조반을 먹으라고? 그러나 이 얼마나 정겨운 소리인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들어보는 “얘들아 밥 먹자?” 너무 듣기 좋은 소리여서 입속으로 다시 되 내어 보며 벌떡 일어났다. 내 room mate는 아직도 쿨쿨.
1박한 이곳은 경기도 고양시 상암리에 있는 친구 (여고 기도회 회장) 집 (별장)이다.
지난 달 평일 오전 10:00에 서울 출발, 교통체증이 전혀 없었으므로 우리는 예상대로
정오에 도착했다. 주변의 여름 경치는 언제나 보기 좋았고, 도착즉시 친구 (회장) 는 우리 일행에게 영양식을 해 준다며 준비 해온 찹쌀과 잡곡 혼식을 전기 밥솥에 넣고 곧바로 코드를 꽂았다.
그 사이 우리는 별장 구석 구석을 구경하며 푸짐한 시골 밥상 차리기에 바빴다.
점심: 중국식 해물 탕, 오징어 볶음, 멸치볶음, 제주산 고사리 무침, 오이 김치 등등. 한 친구는 벌써 텃밭에서 상추와 오이를 따다가 즉석 salad를 만들었고, 곧 화려한 식탁에 우리 6명이 둘러앉았다. 이어지는 웃음과 준비해온 반찬 품평회. 모두 100점 만점. 그 흔한 멸치 볶음이 어찌나 맛 있었던지 금방 동이 나버렸다.
주방에서 점심을 먹으며 눈을 들어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하늘 밑 푸른 산, 녹색 정원의 푸른 소나무들, 초록잔디, 화려한 색색의 꽃들과 새끼를 등에 업은 거북이 조각상 (실은 명품 바위인데 여러 번 옮기다 이 집 정원에정착), 책 읽고 있는 소녀상 (친구 조카 수상작품이며 정원입구에 있음), 아름다운 정원 lamp들 그리고, BBQ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목 table과 grill 등등…내가 그려낼 수 있는 이 집 정원 풍경이었다.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에 내 영혼이 잔잔한 호수같이 이 아름다운 자연과 친구되어 행복감에 빠져버렸다. 도란도란 담소하며 마시는 깊은 coffee 향.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리를 항상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 할 뿐이다.
식후: 등산객 한 명 조차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시골 등산길? 서울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노랑나비, 호랑 나비들이 우리를 반겼다. 만개한 무수한 밤나무들의 연겨자색 꽃들이 길 양편에 서서 우리한테 인사한다. 644m의 태화산 (삼림보호구역, 서울대에서 관리)은 그리 높지도 않아 식후의 산책으로는 너무도 좋았다. 다른 한 친구 (회계 담당자)는 식물학에 관한 자격증이 6개나 된다고 했다. 길가의 풀과 나무들에 대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첫 날 1시간 가량의 가벼운 산책을 즐겁게 마쳤다. 시원한 산 바람, 길가의 짓 푸른 큰나무들 너무 좋았다. 피톤치드 100% 흡입.
저녁: 그 집 정원 텃밭에는 많은 상추, 오이, 가지, 도마도, 고추, 부추 등등이 심겨져 있었고, 회계 친구는 벌써 저녁 준비를 하려고 텃밭으로 갔다. 우리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채소류들 그리고 얘들을 따는 이 즐거움. 정원 한 켠에서는 숯 불을 지피고, 한우갈비 구울 준비가 한창이었다. 돌 담장 한 면에 쪽문이 보여 열어보니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돈암동 큰댁에 가면 담장 한 켠에 쪽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계곡의 시원한 물은 없었지만 옥수수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었는데, 이곳과 많이 비슷했다. 이층 다락방에 누워 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 부르다 깜박 잠들었었는데, 깨고 나니, 어머, 내 자리가 축축해…얼마나 창피했었는지… 그래도 큰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옥수수에 감자를 쪄 갖고 오셨던 생각이 떠 올랐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진돗개 한마리…나는 이 개를 얼마나 무서워 했었는지.
친구 집 별채엔 3명이 앉을 수 있는 그네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랑 둘이 앉아 멀리 서있는 산 자락과 정원의 푸른 잔디들을 다시 바라보니 갑자기 나의 유년 시절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 올랐다. 앞만 보고 달려 온 나의 삶, 내일이면 벌써 70이다. 초등교 3학년 시절 내가 좋아했던 김 00는 어데서 무얼하고 있을까? 아직도 미국 어디 에서 살고 있을가? 정릉으로 소풍가서 여흥시간에 한복입고 고전무용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미소 지으며 보고 있었던 그 선한 아이. 어느날 갑자기 “문자야, 나 내일 미국 가”. 그 옛날 옛적에 흰 Y shirts, 검정 양복 쫙 뽑아입고 내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었는데….
나 그대 앞에 서~면 왜 이리 초라해 보일까?.....많이 보고 싶었다.
숯불이 빨갛게 익어 올수록 Grill 위의 고기굽는 냄새는 우리들의 코를 진동시켰다. 된장에, 풋고추, 오이 등등 친구들은 알아서 무슨 일이든 척척 잘 해 낸다. 회계 친구는 우리가 주방 근처에 얼신도 못하게 하며 우리의 매 끼니를 책임 지겠단다. 너무 고마운 친구다.
내일 아침메뉴는 들깨수제비란다. 벌써 군침이 돈다. 이 친구는 밀가루 반죽을 밤에 다 만들어 냉장고에 고이 모셔 놓고 홀로 밤 늦게 잠들었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들리는 큰 소리가 “얘들아, 밥먹자!” 였다. 오전 6시. 퇴직 후 이런 조식은 처음이다. 더욱이 친정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얘들아 밥 먹자?”. 우리 나이에 누가 우리를 위해 이렇게 이른 조반상을 차려 준담? 들깨 수제비 맛. 양쪽 엄지를 하늘로 향해 그 친구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6:30 분 기막힌 coffee를…산은 여전히 푸르렀고, 잔디는 파랗고, 아침 이른 신선한 공기는 보약처럼 우리에게 너무 다정했다.
마침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들, 딸은 출근 했는데, 즐겁게 잘 지내고 있냐고…
“나는 지금 coffee 마시고 있는중…“ “나도 마시고 싶은데….” “미안 합니~당~”
조식 후 준비해 간 간식 (수박, 참외, 바나나, 빵 등등) 으로 입안을 즐겁게 한 후,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이름 모를 푸른 나무들과 밤나무들이 빽빽히 산 주위를 병풍 치고 있는 어제와 다른 방향의 태화산 산책을 가기로 했다.
나무와 풀에 대한 홍보대사 덕분에 산책은 즐거웠고, 친구들과의 오랜 우정은 더욱 깊어졌고, 따라서 피곤함 전혀 없이 3시간 족히 걸었던 것이 이번 여행의 최고의 기쁨이었다. 별장에 다시 도착하니 벌써 점심 시간.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고기를 구워야 했고 주방담당 친구는 어느새 텃밭에 가서 부추를 따다가 뚝닥 부치게를 해서 식탁 위에…또 연한상추로 salad를 이 친구 덕에 일행 모두가 많이 호강했고, 주인 친구는 상추를 뜯어 가라고... 우리 집에와서 먹는 상추는 많은 친구들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어 정말 맛이 최고였다.
즐거운 1박 여행. 가을에 밤 따러 다시 오자고 모두 약속 후 우리는 즐겁게 헤어졌다.
늘 집까지 태워다 주는 “이웃 친구야! 항상 고맙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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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 생각에!꿈꾸는것 같읍니다. 잘 읽었읍니다!
태화산이면 어디쯤인가요? 옛날 어렸을때 첫사랑도 한번 떠올려 보면서 친구들과 수다떠는것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상상이 감니다.
와아, 재밌었겠다. 친구들과의 수다 만으로도 즐거웠을텐데, 맛있는 먹거리까지.
제일 탐나는 건 밭에서 금장 따온 상추하고 고추, 된장에 찍어 한 입 베물면, 그 맛이.....꿀이 따로 없지?
맞아. 그런데 내겐 "얘들아 밥 먹자" 이 소리가 수십년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소리라서 그 말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몇 자 적었지. 여러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회 모임이 약 60명이라 들었는데 ..몇명이 참석했시우. 대단한 모임이라 익히 알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서강 파우어가 세다지요?
현 기도회장과 임원단 모두 6명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얘들아 밥 먹자" 이 소리를 그리워하며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