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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정미조(67) 가수·화가 ‘개여울’ ‘귀로’ - 2016.3.12. 중앙 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721 16.03.13 21:1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온 느낌,바로 이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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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조가 노래를 부르며 살짝 눈을 감았다. 바람에 날린 스카프가 꽃잎이 됐다. 그렇게 노래꽃이 다시 피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개여울)라고 노래했다. 말이 씨가 됐다. 그는 ‘아주 가지 않았다’. 37년 만에 더욱 깊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팬들도 기다렸다. ‘잊지 말라는 부탁’에 화답했다. 37년의 공백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의 담금질에 더 단단해진 가수의 귀환을 축하했다. 그를 모르던 젊은이도 박수를 쳤다. 적우·왁스 등 후배 가수가 리메이크했던 노래의 ‘주인’을 알게 됐다. 노래의 품격에도 눈을 떴다.


[박정호의 사람 풍경] 37년 만에 다시 마이크 잡은 가수 정미조


최고 스타에서 그림으로 인생 2막
더욱 깊어진 목소리’ 즐거운 3막
새 앨범 내고 내달 첫 단독 콘서트



가수 정미조(67) 얘기다. 1979년 인기 절정의 순간에 불쑥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던 그다. 마이크 대신 붓을 들었던 정씨. “노래는 실컷 불렀다”며 캔버스에 집중했던 정씨가 새 앨범 ‘37년’을 들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개여울’과 히트곡 ‘휘파람을 부세요’를 뺀 나머지 11곡은 모두 신곡이다.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닌 완전한 ‘리버스(rebirth)’다. 목소리엔 지난 세월이 켜켜이 쌓였고, 노래엔 다가올 새날에 대한 설렘이 넘친다. 기사의 소제목은 신곡 가사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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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한창 인기가 높았던 시절의 정미조.


◆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 정씨는 72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데뷔곡 ‘개여울’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대형가수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1m70㎝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목소리, 이화여대(서양화과) 졸업생이란 프리미엄이 붙으며 7년 동안 환하게 타올랐다. 옛 TBC(현재 JTBC) ‘쇼쇼쇼’로 시작해 역시 ‘쇼쇼쇼’로 마감한 그의 ‘인생 1막’을 기념하듯 TBC(현재 중앙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예전엔 주변에 큰 건물이 없었는데…. 라디오 녹음을 마치고 냉면 한 그릇 먹은 게 어제 같아요. TV는 주로 운현동 스튜디오에서 녹화했죠.”
 
질의 :안 돌아올 듯 노래를 접었는데.
응답 :지난해 미대(수원대) 교수 23년 생활을 끝냈어요. 3년 전 점심 자리에서 최백호씨가 복귀를 권유했습니다. 다시 원점에 선 느낌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 망신은 당하지 않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컸어요.”
질의 :‘대형가수’ ‘디바’로 불렸습니다.
응답 :대형은 무슨 대형? 소형 아닌가요.(웃음) 지금은 단화를 신지만 예전에는 굽이 10㎝ 넘는 하이힐을 신었죠. 그러니 커 보일 수밖에요.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고요. ‘쇼쇼쇼’ 첫 무대에서 ‘마이 웨이(My Way)’를 불렀지요.”
질의 :가수·화가·교수, 여러 길을 걸었습니다.
응답 :파리 유학 생활만 13년입니다. 그림에만 몰두했죠. 정말 고독했어요. 교수가 되려고 붓을 잡았던 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원래 화가를 꿈꿔 미대에 들어갔잖아요. 인생 2막, 그림이 본업이었죠. 가수는 ‘달콤한 외도’였고요.”
질의 :3막은 또다시 노래입니다.
응답 :정년 퇴임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죠. 여행하고, 맛있는 것 먹고…. 가족·친척들도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반대했죠. 그런데 기회가 기적처럼 왔잖아요. 요즘은 너무 행복해요. 제자들도 ‘교수님, 멋져요’ 하고요.”
질의 :타이틀곡이 ‘귀로’, 안성맞춤이네요.
응답 :뭐랄까, 저 멀리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즐거운 귀향’이죠.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온 느낌이랄까요. 그동안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잖아요.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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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정미조가 파리 유학 중 그린 ‘자화상’. 1986년 귀국 작품전 때 선보였다.


◆ 지금은 우리가 행복해야 할 시간 = 정씨는 인터뷰 내내 행복을 되뇌었다. 설익은 3층밥을 짓고 쓰디쓴 김치를 담그면서도 파리의 예쁜 야경 덕분에 외로운 유학 시절을 버텼고, 젊은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예순이 넘은 나이를 잊는 ‘착각’에 빠졌고,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늘 달라진 자신을 보여왔는데 이번에 다시 노래를 하게 됐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며 크게 웃었다.

 
질의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겠죠.
응답 :자동차도 오랫동안 방치하면 뻑뻑해집니다. 윤활유를 쳐야 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때도 닦아내야 했어요. 44년 전 데뷔 때보다 힘은 떨어졌지만 그간 몸에 쌓인 시간이, 경험이 터져 나온 것 같아요.”
질의 :세월·연륜이 그런 것 아닐까요.
응답 :칼 소리만 들어도 요리사의 경력을 알 수 있다고 하죠. 젊은 요리사는 칼을 힘 있게 부리지만, 대가들은 그만의 리듬을 유지합니다. 노래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질의 :음악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응답 :“맞아요. 제겐 첫 CD 앨범입니다. LP만 13장 냈었지요. 릴 테이프로 녹음했던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불러야 했어요. 초긴장 상태, 몸살이 났죠. 녹음 채널도 노래·반주 두 개밖에 없었고. 지금은 수십 개나 되죠. 덕분에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질의 :노래란 당신에게 어떤 걸까요.
응답 :“노래든 그림이든 수행이자 고행입니다. 인생에 그냥 주어지는 건 없어요. 반복에 반복, 그것만이 답이죠. 새로운 예술도 반복에서 나옵니다. 신곡 중에 ‘낙타’가 있어요. 무거운 짐을 지고 모래사막을 걷는 낙타, 목이 말라도 참아내는 낙타,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이번 앨범도 고단한 시대에 지친 이들의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기를 바랍니다.”
질의 :탱고·보사노바풍 노래도 있습니다.
응답 :요즘 활동하는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해 너무 좋았어요. 반도네온(아코디언 비슷한 남미 악기) 연주로 유명한 고상지가 남자인 줄 알았다면 말 다했죠.(웃음) 앞으로 홍대 클럽에도 자주 서고 싶어요.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습니다.”

◆ 다시 타오를 수 있을까 = 정씨는 다음달 10일 서울 LG아트센터에 선다. 생애 첫 단독 콘서트다. 그의 복귀를 권했던 최백호도 얼굴을 비친다. “예전 방송사 공개 무대와 수준이 달라요. 신곡은 물론 팝송·샹송 등 저의 모든 걸 보여줄 작정입니다. 장르를 넘나들었던 지난 시간을 총결산하는 자리”라고 했다.
 
질의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응답 :제가 듣기에 ‘아니다’ 싶으면 등도 돌리지 않고 바로 그만둘 겁니다. 그게 팬들에 대한 예의죠. 8년 전쯤인가, 제가 좋아했던 나나 무스쿠리가 방한했는데 듣기에 얼마나 거북하고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실망이 컸죠. 시간 앞에 장사는 없지만요.”
질의 :‘개여울’만 한 노래도 드뭅니다.
응답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불렀는데 부를 때마다 새롭습니다.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싫증이 나지 않아요. 김소월의 시어가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겠죠. 이번엔 보다 담백하게, 웬만한 악기는 다 빼고 피아노 반주 위주로 불렀습니다. 기름기를 뺐다고 할까요.”
질의 :노래와 그림을 비교한다면요.
응답 :자기표현이란 측면에선 똑같아요. 노래로는 대중을 바로 만날 수 있는 반면 그림은 시간이 더 걸릴 뿐이죠. 그리는 시간, 전시할 공간이 필요하죠. 음색, 노래에도 색이 있다고 하잖아요. 본질의 차이는 없어요.”
 
질의 :탄탄대로를 걸어오지 않았나요.
응답 :콤플렉스도 있어요. 아버지가 김포 최고 부자였는데, 어릴 때 조금 철이 없었던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어요. 키가 커서 ‘껑다리(꺽다리)’로도 불렸고요. 또 요즘 눈이 많이 불편해졌어요. 앞이 뿌옇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질의 :음악의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응답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영원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죠. 집안 모두 기독교를 믿습니다. 저도 최근 교회에 다니고 있고요.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입니다. 그럴수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죠. 제가 노래를 다시 한다고 스타가 되겠습니까, 돈을 더 벌겠습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 뿐입니다. 저 사막의 낙타처럼.”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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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라 스트라이샌드(左), 렘브란트(右)

[S BOX] 팝 가수 스트라이샌드, 화가 렘브란트 좋아해       

정미조는 고전적이다. 성량이 풍부하고 음정이 정확하다. 이번 앨범에서도 음 보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노래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정씨가 좋아하는 가수도 그의 노래를 닮았다. 시원시원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정씨는 팝 가수 가운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가수 초창기 때 스트라이샌드의 ‘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ere)’ ‘우먼 인 러브(Woman in Love)’를 따라 불렀다고 했다. 헨델의 오페라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를 부른 스트라이샌드의 카리스마에 매료됐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하얀 손수건’ ‘오버 앤드 오버(Over and Over)’의 나나 무스쿠리도 ‘나의 가수’로 들었다. 한국 아이돌 가수 중에서는 에일리와 틴탑이 눈에 띈다고 했다.

존경하는 화가도 물었다. 정씨는 “너무 많아서”라며 대답을 아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를 꼽았다. “400년 전에 활동했지만 지금 여느 작가 못지않게 현대적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구상과 추상이 다 들어 있어요. 표현력이 완벽합니다”고 평했다. 뼈대만 남은 인간의 육체를 드러낸 오스트리아 작가 에곤 실레, 제2차 세계대전 때 다리를 잃은 프랑스 추상주의 작가 한스 아르퉁도 추천했다. 한국 화가로는 1985년 타계한 박생광을 각별하게 추억했다. 민화·불화의 강렬한 색채를 구사했던 작가다. “좀 더 오래 사셨어야 했어요. 돌아가시기 1~2년 전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70년대 디바' 정미조, 37년 만에 컴백 / YTN

게시일: 2016. 2. 25.

■ 정미조, 가수·화가

[앵커]
1970년대 가요계의 신데렐라. 다시 돌아온 정미조 씨를 오늘 저희가 초대했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인터뷰]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앵커]
굉장히 젊으신데요?

[인터뷰]
그래요? 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앵커]
항상 마음을 젊게 사셔서 그런가요?

[인터뷰]
한 20년 이상을 젊은 학생들과 늘 같이 지내다 보니까 아마 그래서 그런지 저도 나이를 잊고 살았거든요.

[앵커]
최근 퇴임을 하셨다고요?

[인터뷰]
네, 정년퇴임했어요.

[앵커]
미대에서 학생들 가르치시고 미술도들을 가르치시다가 최근에 은퇴를 하셨고 이제 노래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노래가 그동안 계속 그리우셨습니까. 아니면 잊고 사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잊고 살았다고 해야겠죠. 계속 그리웠으면 벌써 나왔을 텐데 37년이라면 거의 4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에 제가 안 했다는 것은 늘 그리움은 있었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노래를 많이 했지,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다른 곳에, 다른 자리에 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앵커]
그래도 노래를 워낙 잘하시는데 이걸 썩히기 아깝다고 저 같으면 들 것 같기도 하고 또 사랑하셨던 거니까, 노래를. 그립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

[인터뷰]
제가 그것을 그만두고 정말 무 자르듯이 단칼에 그냥 그만두고 79년도에 파리에 갈 때만 해도 저는 몰랐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에 제가 개요를 기타로 치고 우리 아리랑도 부르면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그 라디오에서 그러는 거예요. 제 목소리를 듣더니 깜짝 놀라면서 왜 여기에 와 있냐고, 한국에서 노래를 해야 될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서 그림만 공부하러 올 수가 있느냐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앵커]
그림을 보여주시기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또 이해를 했을 텐데. 그림도 굉장히 좋던데요.

[인터뷰]
그래요? 감사합니다.

[앵커]
노래도 그렇게 잘하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그리고 원래 자라신 환경도 유복하셨다고 하고 미인이시고 공부도 잘하셔서 좋은 대학 나오셨고. 요즘 말로 하면 엄친딸 아닙니까. 공주병 같은 게 있을 법도 한 그런 조건이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제 아버... (중략)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6_201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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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7.31 21:19

    첫댓글 정미조-엄마의 봄 A Mom's spring(feat. Lee Hyori)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8dJ1/2365
    202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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