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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江都八鏡[강도팔경]중 8경에 올라와 있는 積石落照[적석낙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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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江都八鏡[강도팔경]중 8경에 올라와 있는 積石落照[적석낙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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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서 1~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애칭을 가진 강화도는 바다, 산, 전통문화, 역사, 그리고
힐링이 조화를 이루는 섬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큰 섬! 사실 섬이란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 이기도 하지
만…. 1970년 8월 19일에 왕복 4차로[폭 19.5m]인 강화 대교[길이 780m]가 개통되면서 이젠 섬이란 이름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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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최근 여행자들에게 주목받는 곳이 바로 강화도 ‘積石寺[적석사]’와 ‘낙조대’가 아닌가
싶다. 아는 사람들만 아름아름 찾아간다는 적석사! 절집!, 낙조대!. 도심의 번잡함을 떠나 조용한 자연 속에서 명상과 평화,
그리고 古色蒼然[고색창연]한 사찰의 고요함과 서해의 황홀한 석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강화도의 숨은 명소 적석사! 이
를테면 일상 중 조용한 곳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그리고 수도권에서 하루의 여행 코스로 전혀 손색이 없는 최
고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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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약 130m에 위치한 낙조대는 북쪽으로는 예성강과 한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고, 서쪽으로는 석모
도, 교동도 등 크고 작은 섬들 너머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북한 땅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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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여행이란 일종의 마약 같은 마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돌아서면 또다시 떠나고 싶은 곳. 여전히 여행은 내 삶에 풍족
함을 주기에 주저 없이 유랑자는 길을 떠나는 게 아닌가 싶다. 본시 ‘적석[적련]사’는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고려산 자락에
있는 청련사, 백련사, 황련사, 흑련사와 더불어 고려산 서쪽에 있는 전통 사찰들이다, 전등사 본·말사지 등의 기록에 의하
면 적련[적석] 사는 고구려 장수왕[416년] 때 창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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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에 이어 장수왕까지 연이어 한강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장수왕 4년쯤, 이런 얘기가
전해진다. 불교가 처음 시작된 곳이자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하고 깨달음을 얻은 곳인 천축국[인도]에서 온 天竺祖師[천축
조사]가 어느 날 강화도를 건너와 절터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염불을 외다. 잠이 살짝 들었는데 꿈속에 하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천축조사’ 에게 산 정상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천축’이 그 노인의 말대로 산 정상에 오르니 산 위에 연
못 '오련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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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는 강화도에서 손꼽히는 일몰 명소다. 아침에는 일출과 푸른 바다와 하늘을 감상할 수 있어 낮에도 방문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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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연못에는 다섯 빛깔의 연꽃이 피어있었다. 사실 그곳은 불가에서는 연꽃은 극락을 뜻하니 연꽃이 발견됐다는
五蓮池[오련지]는 極樂淨土[극락정토]를 상징한 셈이다. 불가의 ’극락정토‘란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아주 깨끗한 세상을
말한다. 이는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말한다. 천축조사는 연못에 피어있는 5가지 색상의
연꽃을 따서 불심으로 허공에 날려 연꽃이 떨어진 장소에 다섯 개의 사찰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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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백색 연꽃이 떨어진 곳에 白蓮寺[백련사], 흑색 연꽃은 黑蓮寺[흑련사], 적색은 赤蓮寺[적련사], 황색은 黃蓮寺[황
련사], 청색은 靑蓮寺[청련사]라 명명했다. 이 중 재미있는 것은 五蓮寺[오련사] 중 청련사는 조사가 원하는 데에 청색 꽃이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라는 절을 지어 현재 3개의 사찰과 암자가 일천 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오늘날 100대 명산 속에 들어있는 고려산의 옛 이름은, 이 다섯 절이 있어 산 이름을 五蓮山[오련산]이라 불렀으며 고구려
연개소문의 출생지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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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제8경 積石寺[적석사] 半山[반산] 韓相哲[한상철] 한시를 소개해 본다.
고인돌 비껴가니 낙조대 지척인데
샘물에 비친 적련(赤蓮) 천축 스님 미소 짓나!
서해로 지는 은빛 놀 뺏긴 애인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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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개의 사찰을 묶어 五蓮寺[오련사]라고 불렀다.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436년]하면서 五蓮山[오련산]에서
개성의 고려산을 본떠 高麗山[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화도 가운데 우뚝 솟은 高麗山[고려산]은 지
금도 봄이면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데 정상 조금 아래쪽에 설화에 나오는 그 五蓮池[오련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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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오늘날 현재는 백[白], 청[靑], 적[赤]련사 3개의 사찰만 남아 있으나 근래 기록에 의하면 혈구산에 있던 穴口
寺[혈구사]를 1962년 들어 黃蓮寺[황령사]로 이름을 바꾸어 4개는 존재하고 다만 黑蓮寺[흑련사]는 없어진 지 오래전이다.
아무튼 당시 그 赤蓮寺[적련사], 가 오늘날 이 ‘積石寺[적석사]’의 전신이다. 오늘 유랑자가 방문할 적석사의 포토 포인트
는 역시 적석사의 낙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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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石落照(적석낙조) :적석사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화남 고재형) 시문이다.
赤蓮寺在碧山南[적련사재벽산남] 적련사는 푸르른 고려산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네!
積石奇形手欲探[적석기형수욕탐] 돌 쌓은 것이 기이한 모습이어서 손으로 더듬고 싶어지네!
夕照倘沈西海否[석조당심서해부] 저녁 햇빛이 돌연히 서해바다에 잠기어 버릴지는 아닌지
先將此理問瞿曇[선장차리문구담] 나아가 무릇 이러한 이치를 석가모니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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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적석사 뒤편 산 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積石落照[적석낙조]는 ‘江都八鏡
[강도 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늘 유랑자는 이 赤蓮寺[적련사]의 후신인 ‘積石寺[적석사]를 찾
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왜 절집 이름이 ’적련사’에서 적석사로 바뀌었을까? 모든 게 궁금했다. 가보면 알겠지, 아무튼 적석
사를 오르는 길은 숨돌릴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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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서울에서 05:30분에 출발 1시간 40여 분 만에 ‘적석사’에 도착하였다. 초행길이고 아직은 12월 끝자락 겨울 인
지라 동트기 전 꺼무슥하게 어둠이 살짝 깔린 급경사 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산 중턱의 적석사
로 가는 길. 이 길은 겨울임에도 운치가 넘칠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 차를 몰고 산중으로 드는 길이 제법 청량하기까지 하다.
이윽고 입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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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山 積石寺之碑[고려산 적석사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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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이런 급경사 진 곳에 절집을 지었다니 천축조사의 불심이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마치 허공에 선 듯 발밑으로 꿈
틀거리는 건너편 산세가 눈앞에 펼쳐지고, 뒤돌아보면 지평선인 듯한 저 멀리 총총히 박힌 섬들이 어둠을 뚫고 보석처럼
빛난다. 마치 새벽밥 짓는 집 굴뚝마다 쏟아져 나와 드러누웠던 연기가 젖어 드는 듯한 夢幻的[몽환적]인 풍광이 먼 길 떠
나는 바쁜 길손의 걸음을 재촉하는 듯 새벽 계곡을 감싼 채 적석사 추녀 끝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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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 자리에 빨강 꽃이 떨어졌을까?, 그야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은 장쾌한 전망이다. 하물며 낙조 전
망대의 프리미엄급 眺望權[조망권]은 또 어떨까? 못내 궁금해진다. 유랑자는 우선 조금 걸어 내려가 비석부터 살펴보았다.
먼저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가 눈에 들왔기 때문이다. 이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 94cm이고 비신의 높이 3 m4 cm, 너비 6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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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蓮[오련]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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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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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 모양의 加檐石[가첨석]이 올려져 있고 碑身[비신]의 상부에 ‘高麗山 積石寺之碑[고려
산 적석사지비]’라는 비의 제목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 ·중수 상황과 고려시대 몽골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올 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이 비의 내용으로 보아 적석사는 천년고찰
적석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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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유랑자가 처음부터 궁금해했었던 이유 중 하나였던 赤蓮寺[적련사]에서 ‘積石寺[적석사]로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부득이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 오련산과 적련사에 불이 자주 난 데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불을 연상시키는 '붉
을 赤[적]' 자를 지우고 '쌓을 積[적]' 자를 써서 積石寺[적석사]로 바꿔 부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적석사란 이름에 걸맞게
절집은 엄청난 돌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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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有一古井 平時 淸洌可愛
將有災殄則 或枯渴 或溷濁 不可飮
적석사에는 예로부터 우물이 하나 있는데
평시에는 맑고 깨끗해서 즐겨 마시지만
장차 재앙이 있을 때는 고갈되고 혼탁하여 마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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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정(甘露井)과 불유각(佛乳閣) 약수를 ‘불유‘로 비유한 것이 이채롭다,
"佛乳(불유)의 맑은 샘 마음을 적시고 乳味(유미)의 단맛은 갈증을 풀어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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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대웅전(大雄殿)과 관음굴(觀音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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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장마철 비라도 오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한 형태의 3중으로 된 축대!. 그 또한 신기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저것이
인간의 무모함일까? 아님. 불심의 힘일까? 못해도 축대 높이가 아파트 4~5층 높이는 족히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바뀌었다고 하나 그래도 적석사는 백련사, 청련사와는 하나의 인연으로 묶여 있다. 다섯 색깔의 연꽃 이름이 그랬던
것처럼 적석사는 여전히 붉은 연꽃처럼 매일 새벽과 저녁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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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유를 오늘 유랑자가 밝히고자 하는 이유 중 두 번째였다. 그러나 지금은 낙조가 아니라 일출을 보아야 할 시간대이다.
그러나 일출은 고사하고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히 새벽 출발할 땐 일
기 예보상 강화엔 비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슬비가 내린다. 믿지 못할 강화의 날씨 본시 바닷가 날
씨는 變化無雙[변화무쌍]하여 변수가 많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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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大雄殿): 적석사 대웅전 주련(柱聯).. 서산대사 작품이다
見聞覺知無障碍(견문각지무장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데 장애가 없고
聲香味觸常三昧(성향미촉상삼매) 소리, 향, 맛, 촉감이 언제나 그대로 삼매로다
如鳥飛空只麽飛(여조비공지마비)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그냥 날아갈 뿐
無取無捨無憎愛(무취무사무증애) 취함도 버림도 없고 미움과 사랑도 없어라
若會應處本無心(약회응처본무심) 만약 대하는곳마다 본래 무심임을 안다면
方得名爲觀自在(방득명위관자재) 비로소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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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목조 삼존불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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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유랑자는 절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겨울 이라서일까? 휑하니 황량하다는 느낌이랄까. 아쉽게도 적석사는 오래된
사찰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함은 있으나 '묵은김치를 올린 얼큰한 갈비찜' 같이 깊은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그렇다.
절집 건물들은 현재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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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홍수가 사찰을 덮치면서 大雄殿[대웅전] 절반이 무너졌고, 香爐殿[향로전]과 寮舍[요사]채 까지 매몰된 탓이다.
본시 대웅전이란 절에서 중심이 되는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을 가리킨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부처로
서 大[큰 대] 雄[영웅]이라 하여 大雄殿[대웅전]이라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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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굴(觀音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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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굴(觀音窟) 대웅전 밑에는 관음굴이 있는데 그곳에는 42수 관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그 돌의 무게가 5톤이고, 그
밑을 받치는 돌의 무게가 5톤인데, 미리 지어놓은 관음굴의 문은 그 돌이 들어갈 수 있는 폭과 길이의 차가 10cm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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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굴(觀音窟) : 42수 관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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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절집이 앉은 자리가 빼어나서인지 새로 지은 법당들이 제법 웅장하고 힘차다. 사실 지금은 적석사
의 社勢[사세]가 시들해졌지만, 한때는 대단했다. 사적비에 적힌 기록대로 고려 몽골 침입 때는 임금이 거처하기도 했고 선
원사에서 판각된 대장경 장경판이 적석사에 옮겨져 보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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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화도 전 지역에 적석사의 田畓[전답]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는 지금의 초라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
했다. 화려했던 사세가 위축된 것은 조선 왕조 말기. 일본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育英 學校[육영 학교,(현재 보
창 학교의 전신)]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적석사의 재산을 몰수해 가면서부터다. 참고로 오늘날 보창 학교는 1905년 강화도
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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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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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향적전(香積殿) - 적석사를 관장하는 종무소가 있다.
▶적석사 부부목(積石寺 夫婦木) 적석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두 그루의 큰 나무가 서있다. 외관상 보기에도 좀 기이하다.
오른쪽 나무를 보면 돌로 사람머리를 만들어 놓고 염주를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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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절집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만이 그 영욕의 세월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저 느티나무는 수백 년
榮辱[영욕]의 세월을 거치며 ‘積石寺[적석사]의 興亡盛衰[흥망성쇠]를 지켜보았으리라. 그런데 세 번째 포인트 부부의 나
무를 가만히 살펴보니 생김새가 특이하다. 하나는 임신한 아낙을 닮았고, 또 한 그루는 남정네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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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는 夫婦木[부부목]이라 씌어 있다. 유랑자는 이제 종각을 지나 낙조대를 향해 오른다. 오르다 뒤 돌아 발아래 적
석사를 내려다본다. 적석사라는 이름은 ‘돌을쌓아 만든 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사실 절집의 風貌[풍모]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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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부부목(積石寺 夫婦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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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부부목(積石寺 夫婦木) 내용
그들은 함께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는 거다. 처녀는 아내로되 어머니가 되
고 총각은 남편이로되 아버지가 되었다. 인연 따라 돋은 새살들이 어머니의 모습이며 아버지의 모습이며 그 틈새 태중 아
이의 모습이다. 이를 일러 부부목이라 이름하니 이곳 스치는 인연이여! 그대 곁 나여서 한없이 미안하고 내 곁 그대여서 한
없이 고마워하며 적석사 법당 앞 수백 년 지켜온 부부목 닮아 부디부디 행복하게 해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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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것이 건물들은 죄다 최근에 복원된 것이라 어쩐지 凄然[처연]하고 썰렁한 느낌이다. 계절 탓일까? 낙엽 진 산사
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적석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沈默[침묵]의 소리를 느끼는 것이 걸맞은 절집인지도 모
르겠다. 그렇다, 적석사의 침묵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一望無際[일망무제] 黃昏[황혼]의 眞景[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
히 幻想[환상]적인 落照 展望臺[낙조 전망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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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낙조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강화도 8경 중 으뜸으로 꼽겠는가. 특히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우리나라 3
대 해넘이 명소로 꼽힌다. 적석사 落照台[낙조대]는 주변을 둘러싼 여덟 산의 능선도 가히 압도적이다. 마니, 진강, 혈구,
고려, 봉천, 별립, 화개, 해명산이 그것이다. 마치 연화의 8개 꽃잎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참고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적석사 주변 8개 산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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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종각에서 낙조봉으로 가는 길: 적석사에서 삼성각을 지나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 장소
로 불리는 낙조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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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三聖閣)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 등 삼신(三神)을 모신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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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본시 摩尼山[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높이 472.1 m인 대한민국 100대 명산이다. 인천 전체
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높이나 규모는 특별한 게 없다. 지리보다는 한국사와 참성단에서 성화 채화로 유명하다. 摩利山
[마리산]·마루산·頭嶽山[두악산]이라고도 하는데, 강화도 지역 주민들은 마리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리산 초등학교
(1999년 폐교) 도 있었고, 교가에서도 마리산이라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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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강산,: 鎭江山[진강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양도면 능내리 · 도장리 · 삼흥리 ·하일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
441m]. 조선 시대 진강현의 진산(鎭山[진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 정상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진강산 기슭에는
고려 희종의 능인 석릉을 비롯해, 곤릉, 가릉 등이 있다. 강화 나들길 3코스와 4코스, 서해랑길 101코스가 산기슭을 지나
고 있다. 마니산·혈구산[고려산 포함]·진강산. 강화의 3대 명산이다. [해명산은 강화 4대 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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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련산과 적련사에 불이 자주 난 데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赤蓮寺[적련사], 불을 연상시키는 '붉을 赤[적]'자를 지우고
'쌓을 積[적]'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積石寺[적석사]로 바꿔 부른 것이다. 즉 '돌을 쌓아 올린 절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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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산,: 이름의 유래는 穴口[혈구]란 고구려 시대 강화를 부르던 옛 지명이다. 즉 한강을 내륙으로 들어가는 구멍으로 간
주하여 그 입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강화군의 옛 이름[고구려 장수왕 때 穴口郡(혈구군)]에서 나왔거나, 문헌상에 혈
구진으로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성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설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 혈전이 벌어졌다
는 설화에서 이름 유래. '血[피 혈]', '口[입 구]' 자를 써서 혈구산이라 불린다는 설도 있다.
고려산 북쪽 시루미산에서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산이란 뜻인 戴雲山[대운산]이기도
하다. 강화도 중앙부에 있는 산으로, 높이에 비해 산세가 힘차며 험준하다. 또한 백두산 정상까지 499km, 한라산 정상까
지 486km로 한반도 중심이라고 하여 혈 구진이라고도 하고 혈구산이라고 불렸다는 유래이기도 하다, “여신의 산"이란 별
칭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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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고려산[436m]의 옛 명칭은 오련산이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에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 색의 연꽃
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는데 적, 백, 청, 황, 흑색의 다
섯 색깔의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적련사[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려산은 그
인근에 130여 기의 고인돌을 품고 있으며 고려산 북편 시루미산은 연개소문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고려산‘은 월간 산과 블랙야크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이다. 원래 이름은 五蓮山[오련산]으로 고려왕조가 몽골의 침공 때
강화도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며 고려의 왕인 고종의 왕릉도 이 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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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산,: 봉천산[291m] 하음봉씨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고려 중엽 하음봉씨의 시조 봉우의 5대손인 봉 천우가 하점면에
조상을 구해준 은혜를 찬양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을 쌓았다고 한다. 또한 강화 봉천대는 하늘에 나라의 태
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빌었던 곳으로 인천광역시 기념물[제18호], 국가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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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립산,:별립산은 높이 416m 산이다. 강화 6대 명산(마니산, 진강산, 고려산, 혈구산, 해명산, 별립산)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유래는 강화도에 있는 산의 능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별립산은 별도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으로 불린
다. 산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준호 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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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타전 해수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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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보타전 해수관음상 - 적석사의 불전에 해당하지만 적석사와 다소 떨어진 낙조봉 정상의 낙조대에 있다. 부처님
은 1년 365일 사시사철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면서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그 또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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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화개산[259m]은 예로부터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선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고려
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주로 유배지로 이용된 섬으로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 등 두 명의 왕과 안평대군, 임해군, 능
광대군 등도 교동도로 유배당해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연산군 유배지가 문화유적지로 남아 있다. 화개산은 조망이 무척
뛰어난 곳으로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황해도 땅과 함께 예성강 하구, 개성의 송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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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산,: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명산[327m]은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받으며 산과 바다의 정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듬뿍 받으며 산행을 할 수 있는 해명산의 정상에 서면 낙가산과 상
봉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 바다에는 이름 모를 섬들이 아른거린다. 정상을 떠나 주변 바다를 보면서 군데군데
피어있는 진달래 능선을 따라 낙가산으로 갈 때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해명산이 있는 삼산면이란 명칭은 석
모도에 있는 명산인 해명산[327m]·상봉산[316m]·상주산[264m] 등의 봉우리가 한자의 山字[산 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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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낙조대: 국내 3대 낙조 명소 적석사 낙조대
한반도 정서향으로 앉은 적석사는 낙조의 풍경이 가장 화려한 곳이다. 한겨울일수록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일몰의 경관
이 더욱 수려하다. 강화 8경 중 하나인 적석사는 붉은 연꽃잎이 떨어져 적련사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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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낙조 전망대는 적석사 옆 샛길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전망대이다. 낙조대는 正東
津[정동진]과 일직선에 위치한 正西津[정서진]이다. 굳이 해 질 무렵이 아니라도 落照台[낙조대]의 풍경은 경쾌하다. 이
낙조대에 서면 마치 남해 한려수도처럼 강화도의 서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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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 같은 아스라한 섬들과 하늘 금과 땅! 그리고 발아래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과 해무 속에 살짝 가려진 수평선
끝자락 서해 바다가 발밑에 즈려 밟힌다, 가까이는 숙종때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인해 바둑판 처럼 잘 정리된 강화의 너른
벌판과 올막졸막한 산군들이 엎드려 조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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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바다라 아주 단조로울 줄 알았는데, 남해 금산에서 바라보는 남해 앞바다와 진도 세방낙조에서 보는 남해보다
더 많은 섬들이 서해 바다를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음이 뜻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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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의 일몰: 한반도 정서향으로 앉은 적석사는 낙조의 풍경이 가장 화려한 곳이다. 한겨울일수록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일몰의 경관이 더욱 수려하다. 카메라의 색온도 설정을 조정해 붉은빛을 더하여 찍어보자. 붉은 연꽃보다 더 붉은
일몰 사진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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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를 몇 번이나 왔으면서도 그렇게 강화도가 아름다운 곳인 줄은 적석사 낙조봉에 오르기까지는 정말 몰랐다.
좌대에 앉아 있는 낙조대의 海水觀音 普薩[해수관음 보살] 은 아마도 이들 산을 꽃잎 삼아 자리한 듯싶다. 해 질 무렵 자취
를 감추기 직전의 햇빛이 하늘과 산, 바다를 모두 赤蓮寺[적련사] 의 불타는 연꽃처럼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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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낙조를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려 2026년 丙午年[병오년] 우리 가족들의 無事 安寧[무사 안녕]을 기원해 본다.
유랑자의 염원이 담긴 시선 아래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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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절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181
구(지번) 내가면 고천리 210-3
전 화: 032-932-6191
정보
-주차 가능, 와이파이 불가
-애완동물 동반 가능
-간식과 식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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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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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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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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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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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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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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