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국과 한배에 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眞珠灣攻襲, The Attack on Pearl Harbor)은 미국을 충격(衝擊)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제3자라 할 수 있는 영국에게도 엄청난 위기(危機)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영국 남부 상공(南部上空)에서 벌어진 역사상 최대(歷史上最大)의 항공전(航空戰)에서 극적(劇敵)으로 승리(勝利)를 거두기는 했으나 여전히 독일의 간헐적(間歇的)인 폭격(爆擊)을 받고 있었고 북(北)아프리카 전선(戰線)에서는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11.15~1944.10.14)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軍團)에게 쫓겨 다니고 있을 만큼 전략적(戰略的)으로는 수세(守勢)였습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영국 식민지군
이처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바쁜 와중(渦中)에 진주만 급습을 신호탄(信號彈)으로 일본의 남방 작전(南方作戰)이 시작되면서 동(東)아시아에 산재(散在)한 영국의 식민지(植民地)들이 위협(威脅)받았습니다.
Z기동함대(機動艦隊)가 긴급히 출동했으나 남(南)지나해에서 일본군의 공습(空襲)을 받고 치욕적(恥辱的)으로 수장(水葬)당하며 홍콩(Hong Kong, 香港), 말라야(Malaya), 싱가포르(Singapore)가 속절(俗節)없이 함락(陷落)되었습니다.
곧이어 싱가포르 서(西)쪽의 인도(India),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가 일본의 위협(威脅)에 노출(露出)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