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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벼룩시장은 처음 지난 IMF 이후 청계천 7가에서 8가 사이 태생된 소위 무점포 길바닥 벼룩시장이다. 그 이후 청계천 재개발 때 길거리 정비로 일부 동대문 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황학동 벼룩시장은 사라졌다. 그 대신 청계천 반대 쪽 즉 영도 교에서 동묘 지하철 역 사이를 깃 점으로 다시 길거리 벼룩시장이 형성되고 점점 벼룩시장이 커지면서 동묘 앞 골목(청계천과 종로 중간지점의 골목)에서 동쪽으로 신설동 고가 다리를 지나서 용두동 초입까지 벼룩시장이 급격하게 커져서 2년 전 부터는 그도 모자라 다시 비우당교 다리까지 길거리 벼룩시장이 매 주말 이루어지는데 아직 그 이름조차 확정되지 않은 신흥 벼룩시장이다. 2년 전 부터 급격히 발달하여 세계최대? 벼룩시장으로 발전한 동묘 벼룩시장을 서너차례 돌아다니면서 조사를 했는데 벼룩시장에 실제로 장사를 하는 분들이 무려 300여명이 넘을 정도로 크고 유동인구도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어림잡아 3만 명이 넘고 실제 거래금액도 일일 억 단위가 넘는 곳으로 이만하면 세계서 가장 큰 벼룩시장이라 하여도 큰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래품목 또한 무엇이든지 잘 만들기로 열심인 우리 민족에 걸맞게 다양하다. 전화기, 시계, 칼, 낚시 대, 재봉틀, 각종 공구,가죽잠바,양복,털옷,밍크코트,가방,신발, 오디오, 비디오,tv,발전기, 군용 텐트, 밥통, 본대, 버너,lp판,나막신,도자기,의료기기,컴프터,노트북,오토바이,콤프레샤,절삭공구,크랭크,영사기,확대경,현미경,떡판,난로,풍로,타작기계,성냥,촛대,놋그릇,단지,팔찌,스노우보드.스키,골프채,안마기,술, 담배, 엿, 적게는 500원짜리 아답터 jack에서부터 크게는 3-400만원하는 야시경 까지 거래되는데 물건 년대 또한 한 궁핍한 시절에 사용하던 생활 용품 물지게에서부터 디지털 시대의 LCD 제품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 낸 오만 물건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다. 신설동 동묘 벼룩시장에가면 인간이 왜 물건을 만드는지, 무슨 물건을 만드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 해 볼 수 있는 소위 만물상이다. 실제 벼룩시장에서 각종 물건을 들고 나와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5060 세대들이다. 신세대는 눈 닦고 보아도 아니 보이고 다 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고객의 주 손님들이다. 모두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던 아날로그 사람들인데 IMF를 맞아 직장에서 쫓겨난 5060세대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헌 옷가지 및 각종 생활필수품들이 고물상을 통하여 1차 수거되고 그 고물상에서 다시 고철 파 세기로 이동되기 전에 쓸 만한 물건들은 중간 상인들을 통하여 수거되어 다시 동묘 벼룩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동묘 벼룩시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불필요해진 물건이 대문 밖으로 나오고 또 그런 아날로그 물건에 대한 추억 층이 교차하는 곳이다. 벼룩시장이란 원래 19세기 초에 유럽의 귀족몰락과 알뜰살림 욕구가 팽배한 서민층과 맞물려 잉태 된 일종의 길거리 난전 시장이다. 그런 시장을 벼룩시장이라고 부르는데 벼룩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는 프랑스어는 Le march.e aux puces" 라고 하는데 퓍쉬 즉 puces 라는 단어 뜻은 벼룩 혹은 갈색이라는 뜻이다. 귀족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마쉬프(참나무) 가구들이 대체로 갈색을 뛰는데 그 갈색가구들이 노천시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양도 된다는 뜻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혹은 벼룩처럼 이사람저사람 옮겨 다닌다는 것에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그곳에 가면 벼룩이 간 빼고는 다 있다!" 그런 익살스런 말이 있는데 하여튼 벼룩시장은 아무튼 있는 자와 없는 자, 시간과 공간, 향수와 구경, 오래된 물건과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 막 버림과 알뜰살림이... 교차하는 시장인데 생활의 삶에서 분출되는 인간의 물건욕구를 적당한 가격으로 해소해주는 상당히 매력적이 벼룩시장기도하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다 존재한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자기가 사용하던 물건을 타인에게 파는 미국의 거라지 세일이나 프랑스의 비드 그리니에(Vide grier/다락비우기) 혹은 브로강트(Brocante) 영국의 풀리마겟 (flea market) ) 혹은 카부츠세일 (car booots/ 쓰던 물건을 자기 드렁크에 싣고 와서 그 드렁크를 열어놓고 그냥 난전에서 파는 행위) 이 모두가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그런 허름한 벼룩시장에서 수억씩 하는 명품들이 발견되고 오래된 물건들이 차츰 귀하게 되자 자연히 그런 물건만 모아서 파는 안틱그(예술품) 기존시장이 들어섰다. 그 대표적인 거리가 프랑스의 몽트루이,끄리낭끄루,보드르 드繹?영국 환락가인 소호지구 같은 곳이다. 그와 비슷한 시장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바로 청계천 황학동이다. 그런데 사실 이쯤해서 청계천 황학동에 형성 돤 벼룩시장과 2년 전 부터 그 건너편 동묘 역 주변에 급속히 번창하는 벼룩시장과는 엄연히 구분을 해야 하는 벼룩시장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점포가 있는 상설 벼룩시장이라고 본다면 새로이 동묘 역 주변으로 형성되는 벼룩시장은 말 그 대로 순수 길거리 난전 벼룩시장이다.
2호선 동묘역에 내리면 바로 벼룩시장이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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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쓰던 돋보기도 있고 멋을 부렸을 선그라스도 존재한다.
김치독이 노래방기기를 이고 있다.
가죽신들이 저마다 새로운 발주인을 기다리며 햇살에 반짝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만원선에서 팔려서 한장한장 그 값을 다하고...이제 다시 천원이라는 몸값으로 새로운 글손님을 기다리는 것들이다.
풀미칸에서 쇠담글질을 도와주던 石 물통도 보인다.
어릴적 사랑방에 늘상 존재했던 화로와 호랑꼭다리 그리고 안방에서 똑딱거리던 발래 방망이다.
추운 겨울철 마땅한 놀이가 없던 아이들이 호랑꼭다리에 매달려 불장난을 하다가
'이놈아 불장난하면 오늘 밤에 오줌싼다!" 할아버지 고함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바다를 건너 왔을 듯한 은 맥기 그릇이다.
홍도야 울지마라
섬마을 선생님도 있고 ...가슴아프게도 있다.
그런 오랜 우리 가용 판 옆에는
갑순이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느티나무 아래서 두두리던 통기타도 가로등을 기대고 서있다.
해마다 정월이면 기왓장을 으개어 그 가루를 볏짚에 묻혀서 싹싹닥아내던 놑 숱가락이 보였다.
불고기가 익던 석쇠 옆에 따쿵 소총이 누워있다.
야전침대와 미군들....
이태리제 콤프레샤다.
참 멀리도 온 물건이다.
토지를 구분측정하는 기계다...그리고 캄캄한 밤에도 적이 보인다는 야시경 일부다.
상방에서 가마니를 짜던 바디가 지친 육신을 소죽통에 기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마굿칸에서 김나는 소죽을 먹고져 황소 한마리가 머그래를 벗는듯 하다.
한 때 부자 사모님들이 걸치던 푯대이다.
JBL,BOSS, 알택 스피커 앞에 쪼무래기 라디오들이 서 있다.
팔등신 망사 미녀도 부끄럼없이 엉덩이를 내밀고 벼룩남정네들에게 요염을 팔고 있엇다.
미제 타워와 발전기 사이 쟁기가 보였다.
東西의 한자리다.
.......... 한참을 보니
소치는 아희야 재넘어 사레 긴 밭을 언제 갈려하느냐?...갑자기 하늘에서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한 때 잘 깨지던 박바가지를 밀어내고 동네 우물가에서 아낙들 손에 놀던 신식 물두레박이다.
낮선 동네를 지나갈 때 목이 말라도 당체 심이 깊으니 마실 수가 없고
두레박이 정지칸 안에 있어 나므이 집에 기웃거리다가.
" 저기요...두레박 쫌 비려주이소!"
우드 하나에 수십만원 하던 골프채들이 이제 몇 만원짜리로 전락하여 길 바닥에 누워 한 때 싱싱하게 날아다니던 푸른 골프장을 꿈꾸는 듯 하다.
손재봉틀다.
골무, 헌겁, 실패구리의 대나무 통을 갖고살던 마을에 이 재봉틀 하나 들어오는 날은 동네 아지매들이
다들 놀라서 모여들었던 것들이다.
서너시간 아나로그에 빠져서 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니다가 고개를 들어 求쳄?처다보니
청계천 건너 편에도 디지탈 건물이 치솟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수평으로 하니 벼룩시장 인파들이 눈 앞에서 바글바글이다.
문득 나도
"인간 벼룩시장" 한 품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정도 값으로 인간 벼룩 시장에 얼마를 더 돌아다녀야 할까?
청계천 겨울 하늘로 벼룩이가 뛰어 올랐다.
긑.
구름아 그름아 하는 넘이 2007년 정초부터 이 글을 만들기 위해 동묘 벼룩시장을 얼찐거렸다.
시대적으로 그 나라 사회가 양극화가 심각해지면 벼룩시장도 활발해지는 법이다.
2년사이 엄청나게 큰 벼룩시장으로 발돋음했지만 아직 상인들조차 마땅한 벼룩시장 이름을
몰랐다.
과거 황학동 벼룩시장 혹은 청계8가 벼룩 시장은..사라지고 새로이 동묘 주변으로 벼룩시장이 이동되었으니
벼룩시장 이름도 동묘벼룩시장이라고 호칭함이 별 무리가 없어보여 "동묘벼룩시장" 이라고 처음으로 사용했다.
글씨체가 도중에 다른것은 아래 한글 창가 조선닷컴 두곳에서 틈나는되로 글을 썼더니 틀림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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