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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난 친구는 김헌수와 김곽년이 있다. 헌수는 내외경제 신문사에서 만났고, 김곽년은 <아남>에서 만났다.
헌수는 서울신문에서 내외경제로 이직해 온 광고부 요원의 별칭인 '아랫도리 기자'였다. 나는 내외경제신문 수습 제1기 기자였다. 그는 단국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머리가 비상하고 대담했다. 당시 내 월급 5만 원 하던 때 그는 백만 원짜리 광고 한 건 수주하면 리베이트 10만 원 받았다. 차 배정도 100명 넘던 편집국 전체가 다섯 대인데, 헌수는 매일 혼자 차가 배정되었다. 신문사 주 수입원이 광고였기 때문이다.
그 헌수가 내 기자증을 잘 활용했다. 한 번은 '창현아 오늘 삼양팔프 가보자'라고 해서 따라가니, 회사 기획실장이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며 반긴다. 사장실 가니, 회사 전경 사진과 회사 연혁, 사장 이력서 준비해 놓았다. 내가 간단히 취재하자, 헌수가 이 인터뷰 기사가 신문 전 페이지 특집으로 나갈 예정이라 했다. 신문 전 페이지 특집이란 말에 사장은 두툼한 봉투 건네주며, 기획실장 더러 저녁에 손님 잘 모시라고 했다.
며칠 뒤 헌수가 윤전실에서 막 찍은 아직 잉크 냄새 가시지 않은 신문을 보여주었다. 거기 내가 쓴 기사가 신문 한 페이지 전체 특집 기사로 실려있었다. 신문사 올챙이 기자는 1단짜리 기사를 써도 데스크가 간혹 무자비하게 본인 앞에서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그런데 내가 쓴 삼양 펄프 기사가 전면 특집으로 나간 것이다. 까닭을 물어보니, '창현아! 이거 봐라' 헌수가 손가락으로 신문지 위를 가리켰다. 거기 상단에 자그만 글씨로 '전면 광고' 란 글씨가 박혀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수금 끝나자, 헌수는 내 몫 50만 원을 챙겨주었다. 다섯 달치 월급에 해당되는 돈이다.
당시 무교동에 '월드컵'이니 '초원의 집'이니 하는 대형 술집이 많았다. 어느 날 헌수가 술 한 잔 하자며 무교동에 데려갔다. 웨이터 불러 '오늘 매상 최고로 올릴 테니 가장 비싼 술과 안주 챙겨 오라' 했다. 몇 잔 마신 후 '사장 좀 보자'라고 했다. '월드컵' 사장은 무교동과 명동에 대형 술집 두 개 벌려놓고, 캐딜락 타고 다니는 암흑가의 보스다. 그가 보디가드 두 명 대동하고 나타나자, 헌수가 날 소개했고, 나는 문공부 장관 직인 찍힌 기자증을 보여주었다. 기자는 경찰이나, 세무공무원, 술집 주인, 탈세 기업주가 가장 꺼려하는 존재다. 헌수는 '신문사에서 자기가 연락 몇 번 했는데 소식이 없다'라면서 '언론을 피해서 좋을 게 뭐냐'고 따지면서, 내외경제 신문에 실린 '뎃포' 광고와 요금청구서를 사장 앞에 내밀었다. 바로 결제하라고 엄포를 넣자 사장은 낮은 목소리로 사근사근한 말투로 값을 반으로 깍자고만 말했다. 이야기가 그리 정리되자 그날은 현금으로 일부 받고, 나머지는 다음에 받기로 했다. 물론 그날 우리가 마신 술값과 여자 팁은 무료였다.
'한신공영' 건도 아쉬운 건이었다. 한신공영 창업 때는 남산 1호 터널 앞에 책상 서너 개, 전화 한 대 놓고 시작했다. 가보니 사무실에 사장 포함한 직원 서너 명이 있었다. 반포에 무슨 큰 수영장을 만든다고 했다. 사장은 홍보 맡을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점심을 같이 하면서 나에게 그 회사 총무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땐 내가 뭘 몰랐다. 수백 명 경쟁 뚫고 신문사 들어왔는데 겨우 책상 두 개 놓인 회사로 옮기긴 싫었다. 건설업에 불량배가 많던 시절이다. 그러나 훗날 한신은 반포에 엄청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웠고, 고대 나온 사람이 사위가 되어 거기 백화점 오너 되었다. 좌우간 헌수는 항상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어느 날 한신아파트 입주권 20여 개를 가지고 와서 가지라고 했다. 분양권만 돌려도 돈이 된다. 그런데도 그런 일에 먹통인 내가 돈이 없다고 하자 그는 '창현아 이 문디야! 돈은 은행 대출 내가 주선해 주는데?'라고 말했다. 결국 아파트 분양에 대해 너무 모르는 데다 간이 작아 거절하고 말았는데, 지금 한신 아파트 한 채 값만 해도 몇 십억 한다.
헌수는 내외경제신문 광고부장을 너무 일찍 한 게 탈이었다. 국장 되고 이사로 진급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부 포틀랜드란 국경 도시에 살면서 세 번 날 만나러 온 적 있다.
첫 번째는 포틀랜드에서 관광 매점 할 때다. 시내서 먼 화양동 회사로 찾아와 ‘이 사람아 자네 부인은 우리 와이프와 기념품점 같이 운영하면 되네. 옛날 신문사 시절처럼 같이 살자'며 권했지만 그땐 내가 아남 회장 자서전 쓰던 때라 사양했다.
두 번째는 포틀랜드 미 합중국 연방 의원 출마한 오 모씨와 같이 와서 느닺없이 소공동 롯데호텔로 불러냈다. 헌수는 그때 한국일보 포틀랜드 지국장을 하고 있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재야인사였던 김영삼 씨가 포틀랜드 찾아가 대접받은 인연으로 청와대 초청했다고 했다. 그날도 헌수는 날더러 '좋은 글솜씨 썩이지 말고 미국 와서 신문 만들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김영사와 '재미있는 고전 여행'이란 책을 만들던 중이었다.
세 번째는 내가 속초 모 대학 겸임교수로 있을 때다. 헌수는 한인방송을 세운다며 포틀랜드에서 호텔 운영하는 이대 출신 여인 동행했다. 그날 세 사람이 골프 라운딩 끝나고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 먹을 때다. ‘헌수 때문에 또 이런 미인 만나 뵙게 되어 무쌍의 영광입니다’ 라고 내가 인사했더니, 여인이 말의 뉘앙스를 당장 캐치한다. '또 미인 만났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김 사장 바람피운 이야기예요?' 하고 물었다. '옆에 그분은 바람이 록키산맥 토네이도급은 아니지만 동남아 태풍급은 되지요' 하고 내가 설명하자, ‘아이고 이 인간아! 숙녀 앞에서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요?’ 헌수가 질급을 했다.
헌수의 이번 방문 목적은 현지서 일할 여자 아나운서 한 명 뽑는 거였다. KBS 최고참 여성부장에게 신참 여자 아나운서 추천받아, 며칠 후 지망자를 무교동 낙지집에서 인터뷰할 예정이었다. 날더러 '방송국 채리면 더 바쁘니, 이참에 신문 맡아달라'라고 또 부탁했다. 내가 ‘머릿속에 공자 맹자 가득한 이 사람을 미국 데려가서 어디에 써먹나?’ 반대하자, 동행한 여인이 ‘이대 동기 중에 여류작가가 있는데, 내가 지금 압구정동 개네 집에 묵고 있어요. 의사 남편이 타계하면서 병원 건물과 아파트 남겨놓았는데, 과부가 할 일이 없어요. 포틀랜드에서 대형 갈빗집 열려고, 이미 계약은 해놨고요. 개도 작가니까 선생님과 글 쓰는 사람끼리 이야기가 잘 통할 거예요. 미국서 넷이 골프 치면 딱 한 팀이네.' 그러면서 친구 이야기로 미인계를 썼다.
그래 내가 속초도 푸른 파도 보면서 통나무 카페에서 진토닉 한잔 하면 하와이 저리 가라지요. 언제 글 쓴다는 그분도 함께 속초 가십시다' 하면서 딴전을 피우자, 그분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견물생심이란 속담이 생각났다. 곧바로 숙녀 한 분 나타났는데, 압구정동 그분은 부드러운 연초록 바바리코트와 선이 갸름한 얼굴이 잘 어울렸다.
네 사람이 아파트로 자리를 옮기니, 창 밖은 제3한강교 가로등이 진주 목걸이처럼 빤짝이고 있었다. 의사 남편이 남긴 재산으로 포틀랜드 교외에 대형 갈빗집 열겠다는 분 이라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포틀랜드에 대형 갈빗집 매입하셨다니 내가 밥장사 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속초의 우리 건물 20층에 양식, 중식, 한식, 식당 셋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임해 보니 가슴이 철렁하도록 손님이 없어요. 한쪽은 동해, 한쪽은 설악산 보이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지만 그러면 뭐 합니까? 시설비 오십억 든 스페이스가 완전히 물먹는 하마더라고요. 15명 직원 인건비만 월 2천만 원 나갑디다. 남들은 20층 건물 보고, 이 건물 사장이 누군지 부러워하겠지만 점심시간에 식당 올라가면 종업원이 손님 없다고 딴짓하고 놀고 있어요. 서울서 요식업 경험 30년 쌓았다는 부장, 유명 호텔 출신 조리과장 불러 긴급회의란 것도 해봤지만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 싶어 딱 두 달만 내 방식대로 해보고, 안 되면 직원 전부 해고하고 문 닫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아세요? 주방에서 주인 망하라고 막 퍼주는 식당이 오히려 돈 번다는 이야기. 우선 음식 품질 올리고 가격은 내렸어요. 시각적으로 보기 좋으면서 원가는 싼, 상추 배추 같은 야채는 대바구니 가득 담아냈고요, 젓갈은 변산 줄포만 곰소로 사람 시켜 사 오도록 했지요. 새우젓, 황새기젓, 갈치젓, 조개젓 큰 것 네 통이면 몇 달 갑니다. 씹으면 입에 단물 고이는 당귀잎은 양양에서 구해왔고요. 새벽 대포항 가면 꽁치 한 통에 만원 합니다. 무조건 꽁치 한 마리씩 구워서 서비스로 상에 올렸어요. 해물탕은 문어도 중짜로 바꾸고, 게는 알짜배기인데, 이걸 그냥 내놓습니까. 주방에서 반쯤 익혀서 뻘개서 입맛 다시게 해서 내놓았지요. 그리곤 속초 기관장들 불러 사장이 술타령에 빠졌지요. 진로 초창기 판매 전략 아시지요? 직원이 술집 다니면서 ‘진로 한병 주시오’ 하면서 진로 술 사 먹은 그 홍보전략을 썼어요.'
그러자 압구정동 여인이 물었다. '그러다 문 닫으면 전부 실업자 되잖아요?' 그래 내가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기업은 적자 나면 어차피 망합니다. 그러니 모험을 해야지요. 그런데 성공했어요. 내가 초대한 기관장이 음식 먹어보니 싸고 먹음직해요. 그래 ‘김 사장! 해물매운탕 이거 4인분 얼마요?’ 하길래 ‘4만 원입니다’ 하자 ‘김 사장 안 계셔도 이리 나옵니까?’ 묻길래 조리과장 불렀어요. ‘어이 홍 과장 이리 와봐!' 하니 머리에 허연 터번 둘러쓴 조리과장이 옆에 와서 허리를 굽히고, '사장님 안 계시면 더 잘 나옵니다' 하고 장단 맞춥니다. 그 전략이 성공했는데, 기관장들이 처음엔 공짜다 싶어 부하 데려오고, 부하들은 가족 데려와요. 그때부터 바람은 슬슬 부는 동남풍이 되어 한 달 매출이 확 뒤집어져 버렸지요.'
대형 갈비점 준비해 놓은 여인이 심각하게 이야길 들었다. 그래 '내가 이런 수도 써봤어요. 원래 음식 기본은 김치 아닙니까? 하루는 식사하다가 조리과장을 불렀지요. ‘어이! 누가 이 김치 담갔어?’ 화난 듯 일부러 큰소리로 물으니,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들 눈치를 보는데, ‘누구야? 누가 이 김치 담았어?’ 재차 소리를 지르니 과장이 ‘한 아무개 아줌마가 담았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디다. ‘그래? 그럼 그 아줌마 불러와!' 그러고 아줌마가 나타나자, ‘홍 과장! 이 아줌마 오늘부터 월급 5만 원 올려!’ 하고 지시했어요.
그리고 그 달 조회에서 직원에게 연설했어요. '음식은 정성과 솜씨가 원가입니다. 우리 식당 식재료 원가를 생각해 봅시다. 맛있게 만들면 가치가 두배로 올라갑니다. 맛이 나쁘면 가치가 내려갑니다. 오색 그린야드 호텔 아시지요? 거기 음식은 양은 적고 가격은 비쌉니다. 도라지를 예로 들면, 기름에 튀겨서 서너 점 나와요. 그런데 손님이 싫어합니까? 좋아합니까? 재료는 적게 쓰고 값은 비싸게 팔면 어떻게 됩니까? 따따불 이익 생깁니다. 솜씨와 정성이 원가의 중요한 구성 요인입니다. 앞으로 김치처럼 누군가 정성 들여 음식 만들면 그분 월급 당장 5만 원 인상시킵니다.' 하고 선언했지요.
그런데 이 뉴스는 금방 손바닥만 하게 좁은 속초시에 다 퍼졌어요. 그 소식 듣고 방문객이 나타났어요. 그는 전에 우리 주방 책임자였다가 월급 적다고 설악파크호텔 주방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그가 찾아와 하는 말이 '자기 부하였던 그 아줌마보다 2만 원만 더 올려주면 돌아오겠단' 겁니다. 그래 '2만 원 같은 시시한 소리 하네. 5만 원 올려줄 테니 당장 오세요' 그 말에 그분 찍소리 못하고 옮겨왔고, 그 후 우리 식당은 속초 최고가 됐지요.
'창현아! 네가 반해서 사죽 못쓴 그 피아노 치던 아가씨 이야기는 왜 빼먹나?' 헌수가 끼어들었다. '우리 양식당에 피아노 치는 아가씨가 있었어요. 포크와 나이프로 랍스터와 스테이크 자르는 데라서, 무드 잡으라고 그랜드 피아노 갖다 놓고, 생음악으로 피아노 치던 아가씨예요. 그런데 손님은 음악 듣습니까 아가씨 얼굴 봅니까? 그래서 '강원도 학원을 다 뒤져서 무조건 얼굴 이쁜 애를 구해오라'라고 지시했어요. 직원들이 사장이란 사람이 여자 밝히나 싶었을 거예요. 현재 피아노 치는 그 처녀가 음대 나왔다고 그러길래 '시끄럽다! 얼굴 이쁜 애 구해오라' 했어요. 그래 구해온 아가씨 얼굴 보니 위드위스의 시에 나오는 도브의 인적 없는 샘가에 살던 소녀 같아요. 얼마나 이쁜지 면접할 때 나도 노닥거리며 이야기하고 싶더라니깐요. 피아노 위치도 손님들이 아가씨 얼굴 보도록 180도 돌려버렸어요. 그랬더니 속초 한량들이 밤 10시 넘어 커피 마시며 가질 않아요. 양식당 매상 쑥 올라갔고요’.
'대중심리를 잘 파악하셨군요? 선생님 말씀 모두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압구정동 여인이 칭찬하자 미국 친구가 충고했다. '애숙아 애! 티 난다. 순진하게 처음부터 너무 그러지 마라. 다음에 김 선생님을 싸부로 모시든지 말든지 네 맘이지만, 속도 조절 좀 해라' 그랬더니 '아니다 애. 지금 내가 출가한 애들하고 상의하냐? 김 선생님은 백화점 사장 하셨고 배울 점이 너무 많으셔!'. 그때 미국 친구가 씨익 웃으며 '재가 아주 춘향이 이도령한테 그러듯 팍 엎어지는구먼!' 했다.
그리고 그들은 태평양을 건너갔다. 숙녀가 먼저 그런 말 꺼내긴 어려운 법인데, 그날 그분은 날 쳐다보며 미국에 함께 가시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다 20년 전 일이다. 헌수의 한인방송은 잘 되는지, 그 숙녀분 대형 갈빗집은 잘 되는지 궁금하다. 지난 여름 푸른 파도가 추억처럼 잔잔히 밀려온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