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부모와 30대 싱글 자녀
딸아, 보아라
지금 식탁엔
네가 아침에 손도 안 대고 간
밥과 찌개가 식어가고 있구나.
이거 차리려고
내가 몇 시에 일어났는지 알기는 하니?
내가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것도,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며
“한입만 먹고 가라”며 애원하는 것도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
그땐 내가 마흔 중반이었지.
허리도 무릎도 아직 괜찮을 때였어.
네가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그리고 결혼만 하면
이것도 다 끝이라 생각하고
널 위해
기꺼이 밥, 청소, 빨래를 했다.
그날이 오면
은퇴한 네 아빠랑
유유자적 놀러나 다닐 줄 알았지.
그리고
20년이 지났구나.
넌 서른여덟이고,
난 환갑을 넘겼다.
난 아직도 네 방을 청소하고,
네가 먹을 밥상을 차리고,
네 속옷을 빨고 있구나.
어젠
네 방을 쓸고 닦고 나니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나는 이제 할머니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문득
죽는 날까지 이러고 사는 게 아닌지
겁이 덜컥 나는구나.
네가 생활비로 건네는 용돈, 필요 없다.
네가 몇 시에 들어올지,
아침은 챙겨줘야 하는지 걱정하는 것도
이제 안 하련다.
네 나이 때 나는
집 걱정, 남편 걱정, 자식 걱정 하면서 살았다.
너한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마.
제발
네 한몸이라도
건사하며 사는 어른이 되거라.
부디 3개월 안에
방 얻어서 나가주길 바란다.
※추신:
이번 주 회식 무슨 요일이라고 했지?
해장국 언제 끓여야 하나 궁금해서.
어머니 전상서
대학만 들어가면 진짜 어른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 등록금에 교재비, 커피 값까지
제가 아르바이트해 돈을 벌어도
영 감당이 안 되더군요.
취직만 하면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TV나 영화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나만의 아늑한 방을 갖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생활하는 걸 꿈꿨지요.
취업한 지 2년 만에
‘독립’ 얘기를 꺼냈더니
엄마는
“결혼도 안 했는데 왜 나가 사냐.
보기 안 좋다”고 하셨죠.
그래서
진짜 어른은
결혼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결혼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연애할 땐
여전히 절 고등학생 취급하는
아빠, 엄마 눈치 보느라
집에 늦게도 못 들어왔어요.
언제든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통에
남자친구와
맘 놓고 전화통화도 못했지요.
남자친구랑 여행 한번 갈라치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했고요.
엄마가
제 빨래며, 청소며, 밥이며
다 해주시는 게 눈치 보여서
10년간
용돈까지 꼬박꼬박 드리지 않았던가요?
서른다섯 됐을 때 독립하려고 했어요.
한데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고 보니
제가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더군요.
아빠, 엄마 용돈 드리지 말고,
그것까지
모았어야 했나 후회가 듭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독립 자금 좀 보태주시면 안 될까요?
※추신:
내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있으니,
블라우스 꼭 다려놓으세요!
-이쁜딸 올림
◈30대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법
⊙동거 규정을
정한다 한 사람이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모여서 합의한다.
서로의 불만이나
요구사항 등을 이야기하면서 조율한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할 것인지 미리 알려주기라던가,
일주일에 두번은
12시 이후에 귀가가 가능하다거나,
아침에 화장실은
출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쓴다거나 하는
규정을 정하는 것이다.
⊙가사를
분담한다 동거 규정을 정할 때 넣어야 할 조항이다.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와 살면서
가장 무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꼭 1/n로 가사를 분담할 필요는 없다.
주말 설거지를 한다거나
분리 수거하는 것을
자식의 역할로 정해놓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예의를 보여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 편하면
자녀의 독립 의지는 점점 줄어든다.
⊙생활비를
받는다 아무리 독립 자금,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해도,
부모 집에 살면서
생활비를 아예 안낼 수는 없다.
집세에 상응하는
돈까지는 못내더라도
집에 살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생필품 비용, 식비,
전기세, 수도세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은퇴한 부모 역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돈의 액수는
부모와 자식의 경제 사정에 따라 조율한다.
⊙취업 전부터 독립을 위한
계획을 함께 세운다 대학교 2~3학년 때
진로, 취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독립 계획도 염두에 둔다.
사회생활을 하면
독립을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다.
독립 시기·방법을
부모와 미리 상의 해놓으면 좋다.
⊙부모·자식 역할을 소홀히
해라 부모는
이제 양육의 부담을 덜어내야 할 때다.
이미 성인이 된 지
10년도 더 지난 자녀의 식사·건강에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
대신
자신의 취미나 노후 대비에 신경을 쓰면 된다.
⊙서로의 사생활에
무관심하자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30대 자녀의
연애나 결혼이 궁금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가 관심을 갖는다고,
닦달을 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갈등만 부추긴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모르면 안 궁금한 척이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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