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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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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TKO의 현장 |
79년 11월 30일 라스베가스 시저스팰리스 호텔 특설링. 완숙기에 이른 무패의 두 복싱천재가 충돌했다. 복싱신동으로 불리우며 17세의 나이로 당대 주니어웰터급의 최강 안토니오 세르반테스를 꺾고 세계 최연소 세계챔피언에 등극한(아직도 이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까라스끼야가 홍수환을 이겼다면 깨졌을 수도 있었는데...) 이후 웰터급으로 월장해 터프가이 카를로스 팔로미노를 15회 판정으로 제압하고 2체급 제패에 성공한 윌프레도 베니테스는 레너드와 마찬가지로 동물적인 복싱감각을 타고난 희대의 천재였다.
해글러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날 같은 링에서 해글러는 비토 안투오페르모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분루를 삼켰지만 레너드는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시합을 벌인 끝에 후반 연습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진 베니테스에 15라운드 종료 10여 초를 남기고 극적인 TKO승을 거두고 감격적인 대관식을 치르게 된다(카를로스 파디야 주심의 레퍼리 스톱이 조금 이른 감이 없진 않았지만 어차피 판정으로 갔더라도 3라운드 다운을 뺏기도 했고 링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레너드의 손이 올라갔을 것이다).
절정의 테크닉과 테크닉이 맞선 이 시합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밀도 높은 레너드의 초기 골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경기 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두 선수의 눈싸움은 지금 봐도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고(베니테스가 이 짓거리를 잘한다. 헌스와의 대결에서도 이런 눈싸움을 벌이는데 헌스 편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두 천재가 보여준 동물적인 복싱센스와 화려한 테크닉은 기술복싱의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무방할 만큼 초절정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합을 통해 현대 복싱기술이 완성단계를 넘어 거의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 선수들 중 로이 존스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기량의 완성도 면에서 이 시합에서의 보여준 두 선수의 레벨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필자는 감히 단언한다.
승리가 선언되자 펄쩍펄쩍 뛰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레너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천재 중의 천재라는 레너드 역시 베니테스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니테스는 타고난 재능에 비해 운동량이 부족하기로 유명했다. 어떤 선수와 경기를 하더라도 2주 이상 연습한 적이 없었던 베니테스는 레너드를 맞이해서도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면서 겨우 1주일 남짓 운동하고 체중만 맞춰서 올라왔다고 한다(이런 류의 외신을 모두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러고서도 레너드와 대등한 시합을 펼쳤으니 그의 천재성이 어떠한 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4라운드가 끝나고 코너로 돌아온 베니테스에게 세컨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뺨을 때린 일화는 유명하다. 역사에 가정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만약 충분한 연습량이 수반되었더라면 아마도 80년대 4인방의 역사는 베니테스를 중심으로 다시 씌어졌을지도 모른다.
(초반부 눈싸움하는 부분은 현지 중계본인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아 경기 장면은 몇 달 전 모 스포츠채널에서 방송한 부분에서 따왔다.)
첫 방어전은 80년 3월 31일 메릴랜드에서 벌어졌으며 도전자는 영국의 러싱파이터 데이브 그린이었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테네시 녹스빌에선 마이크 위버와 존테이트의 WBA 헤비급 타이틀전이 벌어졌는데 14라운드까지 원사이드하게 밀리고 있던 위버가 15라운드 들어 그림 같은 원펀치 역전 KO승을 거두기도 했다. 시합 필름을 보면 캐스터가 이 경기에 대해 언급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그린과의 대결은 애와 어른의 싸움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량차이를 보여준다. 시종 압도적인 스피드의 우위를 살려 주도권을 장악하던 레너드는 4라운드 들어 우좌-우좌로 이어지는 예술적인 더블 투원 콤비블로우를 그린의 턱에 작렬시키고 깔끔한 KO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1차 방어를 치르게 된다.
첫 패배를 맛보다!
2차 방어전의 도전자는 그 유명한 파나마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이었다. 레너드는 라이트급에서 올라온 두란의 치고 붙는 족쇄전법에 휘말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Clear한 판정패로 타이틀을 날리게 된다. 생애 최초의 패배였다.
1차전 직전 같이 맞받아쳐도 이긴다고 호언했던 레너드는 작전 미스를 인정하며 절치부심 4개월 25일만에 뉴올리안즈에서 숙명의 재대결을 펼치게 된다. 철저히 두란을 연구하고 시합에 임한 레너드는 화려한 좌우 스텝과 현란한 스피드로 완벽히 자신의 페이스로 경기를 이끌며 이윽고 8회 들어 두란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뒷맛이 개운치는 못했지만 화려한 부활이었다.
2체급을 제패하다!
다시 찾은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래리 본즈를 맞아 가지고 놀다 10라운드 TKO로 가볍게 마친 레너드는 81년 6월 25일 휴스턴에서 한 체급 위의 챔피언 아유브 칼루에와 맞서게 된다. 같은 날 먼저 링에 오른 라이벌 토머스 헌스는 파블로 바예스를 맞아 4회 KO로 누른 후 가진 이너뷰에서 레너드와의 통합전을 원한다고 발표해 더욱 부담이 가는 시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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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레이 레너드 vs 아유브 칼루에 |
우간다 출신의 챔피언 칼루에는 그리 잘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36승(17KO) 무패의 전적을 보유한 일급 테크니션으로 절묘한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자칫 레너드의 연승행진에 상처를 줄 수 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대였다.
역시 칼루에는 만만치 않았다. 시종일관 창과 창이 맞부딪치는 금속음이 공진(共振)을 일으키는 가운데 팽팽히 전개된 이 시합은 흡사 2년 전 베니테스전을 연상케 할 만큼 수준 높은 경기였다. 그러나 역시 레너드는 레너드였다. 7, 8회 칼루에의 맹렬한 반격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9회 접어들어 폭죽 같은 연타세례를 퍼부으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한 번 찬스를 포착하면 한치 오차도 없이 냉혹하게 상대의 숨통을 따버리는 레너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녹화중계로 국내에 중계되기도 했던 이 시합을 통해 필자는 최초로 풀라운드 레너드의 시합을 감상할 수 있었다.
All about Boxing - 토머스 헌스 1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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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루에전을 통해 성능점검을 마친 레너드는 오래 전부터 대전설이 오가던 라이벌 토머스 헌스와 세기의 대결에 합의하게 된다. 대전 일자는 81년 9월 16일. 장소는 라스베가스 시저스팰리스 호텔. 흥행수익을 제외한 순수대전료만도 레너드 800만 달러, 헌스 500만 달러였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워즈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경기 전 도박사들의 예상은 7 : 5 레너드의 우세. 경기 일자가 촉박해지면서 6 : 5 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전문가들도 두란과의 2차전을 승리로 이끈 레너드가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 하에 근소한 레너드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해외에서의 레너드 우세론과는 달리 국내 전문가들은 대부분 헌스의 우세를 예상했다. 당시 필자 역시 헌스가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경기 전 레너드는 "헌스는 초인인 체 하지만 그는 초인이 아니다. 그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영원히 KO승만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깨우쳐주겠다"라고 강력한 자신감을 피력했고 헌스 역시 레너드 역시 자신의 KO승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승리를 예견했다.
전 세계 스포츠팬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세기의 대결은 우리나라 시각으로 대낮에 MBC 생중계로 방송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필자는 수업 사이 쉬는 시간 도중 몰래 빠져나와 동네 다방에 가서 결과를 물어보았다. 경기를 보러 모여있던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러주었다. 지고 있던 레너드의 14회 역전 TKO승. 그 순간의 허탈감이란...
하교 후 그 날 밤에 MBC에서 녹화중계를 해주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시합은 난생 처음이었다. 가히 초범입성의 경지에 이른 두 선수의 절정 초식과 변화무쌍한 신공은 어린 필자에게 실로 눈이 돌아갈 정도의 환상적인 것이었다. 같이 중계를 보시던 필자의 아버지께서도 정말 대단한 시합이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경기 초반은 헌스의 페이스였다. 레너드는 예상대로 헌스의 좌우로 돌며 경쾌한 아웃복싱을 펼쳤고 헌스는 예의 왼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플리커 잽을 뻗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라운드 종반 헌스는 로프에 기댄 레너드에게 콤비블로우를 터뜨리며 기선을 잡았고 2라운드 역시 비슷한 양상. 세 명의 부심 모두 1, 2라운드를 10 : 9 헌스 우세로 채점.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레너드 vs 헌스 1차전 동영상 버전이 두가지인데(현지 중계본, SBS 스포츠채널 녹화분) 첫 1~2라운드를 현지 중계본으로 편집했더니 화면이 너무 어두워 3~4라운드부터 SBS 스포츠채널 녹화분으로 올리겠다. 초반부를 못보시는 게 다소 아쉽겠지만 이해해주시라.
그럼 넘어가서 3라운드. 2분 경 레너드의 라이트가 작렬하며 헌스를 로프로 몰아 게임흐름을 유리하게 바꾼다. 그러나 4라운드 들어 레너드의 미스블로우를 놓치지 않고 헌스의 안면 더블펀치가 성공하며 다시 전세를 자기 쪽으로 바꾼다.
레너드가 부지런히 외곽을 돌며 찬스를 노리고 헌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서는 모습은 5라운드까지 이어진다. 헌스의 레프트잽에 밀려 레너드는 쉽사리 실마리를 풀지 못한다. 5라운드 역시 헌스의 근소차 우세. 그러나 6라운드 접어들면서 팽팽하던 경기 양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왼손카운터를 성공시킨 레너드는 연타세례를 퍼붓고 헌스는 그로기까지 몰리는 위험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 때부터 자세는 역전되어 헌스가 아웃복싱을 펼치고 레너드가 쫓아가는 형국으로 전개되기 시작.
7라운드 역시 레너드의 페이스. 복부공격으로 시작한 레너드의 연타에 헌스의 턱이 돌아간다. 라운드 종료 공이 울리자 비틀거리며 자기 코너로 돌아가는 헌스.
8라운드 역시 레너드의 공세가 눈에 띄는 라운드였으나 채점에 큰 영향을 줄만한 히트는 없었다. 9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헌스는 철저히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6, 7라운드에 입었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착실히 포인트를 쌓아간다.
헌스는 라이트 가드를 굳히고 레프트 잽만 찌르며 레너드에게 거리를 주지 않는 철저한 아웃복싱을 구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연의 헌스의 복싱이 아니었다. 헌스는 라이트를 넣은 후 몸이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6라운드에 된통 당했기 때문이다. 라이트가 나간 후 거리가 좁혀지고 레너드의 라이트훅이 날아드는 것이 두려워 좌우스텝과 레프트만 이용해 경기를 풀어갔다. 아마 세컨에서 판정까지 가자는 주문이 나온 것 같은데 이는 결국 레너드에게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레너드 역시 초조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9라운드 이후 레너드는 헌스의 잽을 헤드슬립으로 피하고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발을 사용해 도망가는 헌스를 계속 일직선으로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몸을 흔들면서 들어가거나 지그재그로 쫓아갔다면 좀 더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헌스가 워낙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탓도 있겠지만 경기 후 레너드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눈이 부은 것이 마음에 걸려 과감히 러쉬하지 못했다는 심적 요인도 작용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12라운드까지 세 부심의 채점은 116 : 112, 117 : 111, 117 : 112 헌스의 우세였다. 요즘처럼 12라운드 경기였다면 심판 전원 일치 헌스의 판정승이 선언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부심들보다 헌스에게 조금 박하게 매겼는데 12라운드까지 무승부. 부심들이 헌스 우세로 채점한 라운드 중 1, 3, 9, 10라운드는 1점차로 매기기에 다소 애매했다고 본다. 4, 11라운드 헌스 우세로 6, 7라운드 레너드 우세로 동점.
대부분 복싱팬들이 헌스가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다 역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물론 부심들의 스코어카드 역시 그렇고) 필자 생각은 조금 다르다. 12라운드까지 백중세. 13라운드부터 균열이 일어나 14라운드에 최종 마무리. 조금 의아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단지 필자 생각일 뿐이므로 너무 개의치 말기 바란다.
운명의 13라운드. 라운드 초반 헌스가 미끄러지며 슬립다운을 당한다. 불길한 징조였을까. 라운드 중반 레너드의 원투에 이은 불꽃연타가 불을 뿜는다. 실로 전율이 일만큼 가공할 핸드스피드. 헌스는 로프 뒤로 밀렸으나 슬립으로 간주. 라운드 종료 직전 폭죽 같은 레너드의 연타세례에 로프 밖으로 밀려나가는 헌스. 첫 다운이었다. 세 부심의 채점은 124 : 122, 125 : 121, 125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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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운임돠! 다운!! |
14라운드. 시작되자마자 레너드의 맹렬한 대쉬가 이어진다. 13라운드의 충격으로 인해 바디밸런스가 무너진 헌스는 클린치에 급급. 이윽고 라운드 중반 레너드의 라이트 롱훅이 헌스의 턱에 작렬한다. 기우뚱거리며 로프로 밀리는 헌스.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앞으로 달려드는 레너드. 오른손을 흔들며 주심을 부른다. "어이 심판 이리와 봐. 지금부터 내가 이 녀석을 끝장낼테니 잘 보라고"라는 무언의 시위처럼 보인다. 곧이어 복싱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예술연타세례가 이어진다.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킨다. 환호하는 2만 5천 관중들. 14라운드 1분 45초였다.
아쉬운 역전 KO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텐데 필자는 엄연한 기량 차에 의한 패배라고 생각한다. 당시 헌스의 기량과 체력은 레너드를 상대하기에는 2%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족한 2%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첫째, 크롱크짐 선수들이 으레 그러하듯 헌스는 왼손을 내리는 스타일인데(당시 챔피언이던 헌스, 켄티 등) 그에 비해 상대의 라이트훅을 피하는 요령이 미숙했다. 왼쪽 어깨와 상체의 쓰임이 부드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슈거 레이 로빈슨 역시 왼손이 많이 처지는 편이었지만 숄더 블록이나 스웨이백이 매우 부드러워 상대의 라이트훅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둘째, 헌스는 장신인데 비해서는 클린치 기술이 서툴렀다. 클린치를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면 레너드의 접근전에서의 공격을 좀 더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아웃복싱을 구사할 때 무릎과 허리가 뜬다. 9-12라운드까지 포인트를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체중을 실어 때리지 못했고 상대 펀치에 대한 흡수력도 낮아 결국 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넷째, 왼손을 내린 스타일로 라이트를 뻗은 후 연결타로 레프트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라이트(특히 스트레이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13라운드에 레너드의 원투를 맞고 역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다섯째, 밸런스의 차이다. 스모킹 조는 이 경기가 열리기 전 레너드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펀치를 맞을 때, 피할 때에 레너드는 밸런스를 잃지 않는다. 곧 반격타를 낼 수 있는 자세와 거리를 만들면서 방어한다. 공격력만 따지자면 헌스가 우위에 있겠지만 상대의 공격을 죽이는 능력은 레너드가 한 수 높다. 그것이 승부를 가를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웨이백으로 상대의 첫 번째 펀치를 미스시킨 뒤의 밸런스이다. 레너드는 헌스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몸을 젖혀 피한 뒤 두 번째 펀치인 레프트훅까지도 스웨이백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상체가 부드럽기 때문에 가능한 동작이고 곧바로 반격할 수 있는 자세로 돌아온다. 그러나 헌스는 그렇지 못했다. 두 번째 펀치를 피하는 동작이 커서 곧바로 반격할 수 있는 밸런스를 만들지 못했다. 경기 후반 레너드의 집중타를 얻어맞은 것도 이 밸런스의 차이 때문이었다.
공수연결의 밸런스 이외에도 펀치를 내고 나서의 밸런스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레너드는 펀치를 내고 나서 다시 가드로 돌아오는 당김이 좋았다. 그러나 헌스는 후반으로 갈수록 주먹의 당김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릎의 탄력과 쓰임이 레너드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도 헌스는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9-12라운드에선 다소간의 소심함과 헌스의 아웃복싱에 말려 제대로 카운터를 날리지 못하고 포인트를 잃었다. 초조했을 것이다. 이는 헌스의 프리커잽에 대한 공략이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레너드는 이따금 헌스의 레프트잽을 머리 위로 흘리고 몸을 숙이면서 레프트를 날려 재미를 보곤 했다. 이런 전술이외에도 헌스의 레프트잽을 쇼빙으로 누르고 곧바로 레프트훅 반격타를 날렸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레너드 vs 헌스 2차전
경기가 끝난 후 헌스는 "나는 오늘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레너드가 한 수 위였다. 그는 훌륭한 선수다"라며 패배를 시인했고 레너드 역시 "헌스는 최고의 게임을 보여주었다. 기술과 공격자세를 가다듬으면 내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레너드다. 큰 알리든 작은 알리든 알리가 아니다"고 포효했다. 그리고 두 선수의 매니저인 안젤로 던디와 엠마누엘 스튜어트 역시 상대 선수를 칭찬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입장권 수입만도 650만 달러로 알리 VS 홈즈 전의 600만 달러의 기록을 경신한 이 시합은 81년 <링>지 'Fight of the year'로 선정되었으며 80년대를 대표하는 수퍼파이트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합이기도 하다.
누군가 필자에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복싱시합 중 가장 멋진 시합 단 1경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시합을 꼽을 것이다. 특히 13, 14라운드에 터진 레너드의 환상 연타는 왜 레너드의 복싱이 예술복싱의 클라이막스라고 불리우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일본의 복싱평론가 조 고이즈미는 너무 좋은 경기라 보고 나서 한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는 특이한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14라운드에 레너드가 라이트훅을 적중시킨 후 두 팔을 치켜들며 달려드는 장면은 오랫동안 KBS 스포츠9의 오프닝 시그널로 사용되었던 기억도 난다.
은퇴와 복귀
최대 라이벌 헌스를 격파하고 통합 왕좌에 오른 레너드는 브루스 핀치를 맞아 통합타이틀 1차 방어에 나서 2라운드에 두 번 다운을 뺏은 후 3라운드 강력한 원투 콤비블로우를 성공시키며 손쉽게 TKO승을 거둔다. 그러나 이 시합의 후유증으로 망막박리수술을 받게 되고 82년 11월 9일 은퇴를 표명하게 된다. 은퇴식이 거행된 곳은 데뷔전을 치렀던 볼티모어 시민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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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레이 로빈슨과 함께 |
레너드의 은퇴식에는 수많은 전현직 세계챔피언들이 올라와 링을 떠나는 레너드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으며 해글러는 레너드의 은퇴가 매우 아쉬우며 진실한 세기의 대결은 바로 자신과의 대결이라며 링 복귀를 종용하는 멘트를 날린다. 이에 레너드는 분명 복싱 사상 최고의 대결이 될 것은 자명하지만 링으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은퇴의사를 분명히 한다.
은퇴 후 해설자로 활약하며 계속 복싱계에 몸담고 있던 레너드는 왼쪽 눈의 수술 경과가 좋아지자 링 복귀를 결심하게 된다. 복귀전 상대는 한 수 아래의 케빈 하워드. 84년 5월 11일 레너드의 링 복귀전이 열린다.
비록 9회 레퍼리스탑 TKO승을 거두긴 했지만 레너드는 예전의 화려한 모습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4회 들어 프로 데뷔 이후 최초의 다운을 당하는 등 한 수 아래의 케빈 하워드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경기 후 곧바로 레너드는 해글러와의 일전을 뒤로 한 채 다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너드 생애 최고의 업적 - 해글러를 잡다.
""나는 링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 해글러와 붙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해글러를 볼 때마다 싸우고 싶어 좀이 쑤신다. 눈만 뜨면 해글러가 창문가에 서서 손짓하고 있는 것 같다. 해글러를 이기고 진정한 Greatist가 되고 싶은 욕망뿐이다"
2차 은퇴선언 이후 레너드는 해글러와 무가비전이 열린 두 달 후인 86년 5월 해글러와의 대결을 위한 조건부 컴백을 선언한다. 레너드의 아내 주니아타는 해글러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남편의 링 복귀를 결사반대하고 나섰지만 레너드의 결심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
해글러는 무가비전 이후 카리브해로 휴가를 떠났다가 레너드의 복귀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해글러는 몇 주간 침묵을 지킨다. 해글러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안달이 난 건 매니저나 프로모터들이었다. 레너드가 도전장을 낸 두 달 후 해글러는 브록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디어 말문을 연다.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해글러는 레너드는 랭킹에도 들어있지 않아서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링을 떠날 것을 선포한다. 일부 언론에선 파이트머니를 올리기 위한 술책이 아니냐는 힐난이 뒤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팬들의 예측대로 해글러는 인터뷰가 있은 6주 후인 8월 18일 대변인을 통해 톱랭크사가 프로모터를 담당하고 1천만 달러 이상의 파이트머니가 보장된다면 레너드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다.
"후세에 비겁한 챔피언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 레너드의 도전을 수락한다"
해글러의 자신에 찬 사자후였다(후에 흥행수입을 제외한 순수 파이트머니만으로 해글러는 1200만 달러를 레너드는 1100만 달러를 챙기게 된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87년 4월 6일 시저스팰리스 호텔. 당시 우리나라는 일요일이었고 MBC 생중계였다. 필자는 당시 고삐리였고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경기 전 예상은 이전 해글러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5 : 2 해글러의 우세였다. 미국 복싱전문가 26명 중 21명이 해글러의 우세를 점쳤고 국내 복싱전문가들도 해글러의 우세를, 단지 컴퓨터 가상대결 결과만이 레너드의 3 : 1 우세를 점치고 있을 뿐이었다.
시합이 거행되기 몇 달 전부터 양 선수의 불꽃튀는 입씨름이 벌어졌는데 몇 개만 모아보자.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영광을 레너드에게 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길 수밖에 없다" (해글러)
"나는 2년 반 동안 해글러만 연구해왔다. 해글러는 링에서 마지막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나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늙었다”(레너드)
"레너드가 무얼 믿고 나와 싸우려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해글러)
"해글러가 나를 이기려면 13, 14R여야 하는데 12R 밖에 없으니 나의 승리다"(레너드)
"해글러의 장점은 머리, 단점도 머리. 나는 해글러를 보잘것없는 대머리로 만들고 말 것이다"(레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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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는 헌스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자신은 헌스와 달리 해글러의 공격 리듬을 죽이고 단계적으로 포인트 위주의 공격을 펼칠 수 있으므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고 어쩌면 KO승도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실제 시합에 임해서도 해글러의 주먹을 최대한 흘리면서 포인트를 쌓아 판정승을 거두며 생애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기실 경기가 벌어지기 한 달 전 레너드의 캠프에선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조트레이너인 J 브라운이 해글러의 캠프에 잠입해서 가져온 보고서에 의하면 해글러와 4인의 스파링파트너와의 훈련 모습과 해글러의 레너드 전 대비 전술과 작전구상 및 훈련일정까지 빽빽이 체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첩보전을 지시했던 것은 레너드의 변호사이자 재정자문인 마이크였고 보조 트레이너인 J 브라운은 한 치 오차 없이 해글러의 훈련 모습을 담아오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던디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해글러 전을 대비해 몇 가지 작전을 세웠다. 레너드가 유리한 것은 오로지 스피드, 첫째, 머리, 몸통, 다리 등 온몸을 해글러가 예측하지 못하게 좌우로 움직이며 깊고 날카로운 잽을 꽂는다. 둘째, 해글러가 파고들면 잽싸게 껴안고 떨어질 때는 거칠게 주먹을 뻗는다. 해글러는 거친 선수와 싸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셋째, 가능한 오른쪽으로 돌지 않는다. 그리고 페인팅 위주의 변칙 공격을 펼친다.
결국 레너드는 완벽한 작전수행능력을 보여주며 해글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공격루트를 개척하는데 성공한다. 천하의 레너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글러 VS 레너드 전은 비록 화끈한 KO신은 없지만 복싱이 다다를 수 있는 기량의 최정점에 오른 최고의 시합이다. 경기 초반 레너드의 출발이 산뜻했다. 부지런히 해글러의 좌우를 돌며 시각적 효과가 높은 펀치를 여러차례 적중시킨다. 1라운드의 원투에 이은 레프트훅, 2라운드 보디에 이은 원투를 깨끗하게 성공시킨다. 라운드 막판 잠깐 스파크가 일기도 한다.
3라운드는 대등한 흐름. 4라운드는 유효타를 많이 터뜨린 레너드의 우세. 초반 4라운드까지 2점 정도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세 명의 부심 중 두 명은 초반 4라운드 전부 레너드 우세로 한 명은 동점으로 채점). 5라운드부터 슬로우스타터인 해글러의 프레싱이 빛을 발하기 시작. 라운드 막판 좌우 어커펏을 깨끗하게 성공시키며 최초로 자신이 앞선 라운드로 만든다.
6라운드. 레너드는 계속 사이드스텝을 밟으면서 원투를 날리고 해글러의 공격이 들어오면 곧바로 클린치해버리는 영악한 전술로 해글러의 전진을 교묘하게 봉쇄한다. 이런 양상은 경기 내내 이어졌으며 해글러는 레너드의 스피드와 교묘한 클린치 전술 때문에 레너드의 인사이드를 점하지 못해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레너드의 원투에 이은 클린치에 맞서 해글러는 롱훅을 자주 휘둘러보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세 부심 모두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
7라운드는 세 부심 모두 다른 채점을 매겼다. 필자는 해글러의 우세로 보았는데 레너드는 주먹숫자는 많았으나 공매가 많아 시각적 효과에 그치고 말았고 실속 있는 주먹은 해글러가 더 많았다고 본다. 해글러 우세. 8라운드는 부지런히 내외곽을 파고들면서 유효타를 터뜨린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
9라운드는 이 경기의 백미. 후에 레너드는 두란 전(3차전)을 앞두고 해글러 전은 생애 최고의 경기였으며 특히 9라운드는 눈에 선하다는 인터뷰를 남긴 적이 있을 만큼 최고의 라운드. 눈을 뗄 수 없는 불꽃튀는 타격전이 펼쳐지는데 양질의 펀치를 더 많이 히트시킨 해글러의 우세. 10라운드는 소강상태로 흘러간다.
11라운드는 세 부심 모두 레너드 우세로 채점했지만 필자로선 별다른 공방이 눈에 띄지 않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라운드. 마지막 12라운드는 해글러의 우세.
판정결과는 115 : 113(해글러), 118 : 110(레너드), 115 : 113(레너드) 2 : 1 스플릿 디시전으로 레너드는 해글러를 잡고 프로복싱 사상 10번째 3체급 석권과 더불어 생애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필자가 매긴 채점으로는 117 : 116 해글러의 우세. 1, 6, 11라운드를 레너드의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이 시합은 무승부 또는 1~2점차 정도의 아주 미세한 승부라고 보이며 118 : 110은 어이없는 채점이라 생각된다.
5체급 석권에 성공하다!
해글러와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레너드는 또다시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해글러와의 재 대결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의 링 복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레너드가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재기의 가능성을 비추었고 이윽고 WB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캐나다의 골든보이 도니 라론데와 신설되는 WBC 수퍼미들급과 기존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하게 된다.
한 경기에 두 체급의 타이틀을 놓고 벌인 조금은 모양새가 우스꽝스런 시합이었다. 라론데는 라이트헤비급 선수인지라 골격부터 레너드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라론데의 힘에 밀리던 레너드는 경기 초반 한차례 다운을 뺏기기도 하는 등 좀체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으나 9라운드 들어 전매특허랄 수 있는 폭풍 같은 연타 세례를 라론데의 안면에 퍼부어 두 체급 위의 챔피언을 반쯤 기절시켜 버린다. 꿈의 5체급 석권이었다.
경기 후 곧바로 라이트헤비급 타이트을 반납한 레너드는 WBC, WBO 수퍼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헌스와 숙명의 재대결을 벌이게 된다. 'THE WAR'라는 슬로건이 붙었던 두 선수의 재대결에서 레너드는 다소 불리한 시합을 펼치고도 무승부판정을 받아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다(헌스가 이긴 경기라고 생각하므로 헌스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험난한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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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스 vs 케빈 하워드 |
헌스와의 재대결 이후 두란과 3차전을 치르지만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끝나버렸고 두란 전에서 입은 눈부상때문에 또다시 링을 떠났던 레너드는 91년 2월 링에 복귀하여 당시 떠오르던 신성 테리 노리스와 WBC 수퍼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하지만 이미 예전의 레너드가 아니었다.
레너드는 두 차례의 다운을 당하면서 치욕적인 판정패를 경험하고 다시 링을 떠난다. 경기 후 노리스는 "나는 레너드를 KO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 대쉬하는 순간 그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도저히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레너드를 KO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내게 패하긴 했지만 그는 영원한 나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이너뷰를 남긴다.
노리스전 이후 완전히 링과 결별한 것처럼 보이던 레너드는 97년 나이 마흔이 넘어 뜽금없이 링에 올라 헥토르 카마초와 노인정 매치를 벌여 5회 TKO패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별로 이 경기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경기를 가지고 레너드를 폄하하는 복싱팬도 없을 테니 말이다.
예술 복싱의 완성판
화려한 테크닉, 현란한 스피드, 탁월한 쇼맨쉽과 언론 플레이 등. 레너드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기틀을 다진 현대 아웃복싱의 전형은 알리를 거쳐 레너드에 이르러 완성단계에 도달한다. 레너드의 매력은 단지 테크닉과 스피드에 의존한 포인트 위주의 복싱이 아니라 매우 공격적인 아웃복싱을 펼쳤다는 데 있다. 특히 찬스 포착시 레너드가 보여준 그 냉혹함과 폭발적인 결정력은 레너드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레너드만의 독문절기였다.
휘태커, 카마초, 호야, 모슬리, 로이 존스 등 9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아웃복서들이 모험을 거는데 인색하고 포인트 위주의 안전운행을 펼쳐 갈수록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레너드의 복싱은 진퇴가 분명해 매 경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비록 4인방 중 필자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선수이긴 했지만 레너드가 보여준 달콤하고도 매혹적인 고감도복싱은 필자의 가슴에 평생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레너드는 어떤 시대든 웰터급 챔피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테디 브래너)
"레너드는 과거 4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로빈슨을 제외한 어느 누구와 싸우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보우 잭)
"그는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전대미문의 선수" (돈 차진)
"레너드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가장 훌륭한 선수들을 모두 이긴 위대한 챔피언이다. 그는 철저하게 성실했고 자신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선수였다" (래리 홈즈)
"지난 20년에 걸쳐서 최고의 승부사" (제이크 라모타)
"레너드는 위대한 선수라기보다는 위대한 전술가" (행크 캐플란)
"레너드는 복싱의 이미지 자체를 바꿔놓았다. 나는 그가 표현하는 복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플로이드 패터슨)
"레너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의 지성" (에밀 그리피스)
'그는 기어를 바꿔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제대로 파악했고 서서히 상대를 제압해나갔다" (조지 추발로)
첫댓글 토마스 헌즈와의 시합에서 나온 13~14라운드 펀치 세례는 정말ㅎㄷㄷㄷ!! 제가 복싱 장면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안나오네요ㅡㅡ
레너드 헌즈 2차전..당시 재수생이던 우리 막내삼촌이 입시학원에서 보고온다는 기억이..어렸을때 전 레너드팬이라 레너드가 더 잘한거 같던데 헌즈가 이긴경기라고 하더군요,,ㅋ
헌즈 레너드 2차전은 솔직히 헌즈 손이 올라갔어야 하는 경기죠...레너드는 2번이나 다운을 당했고 경기 내용도 레너드가 그다지 나은것도 없는 경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