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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로 바위 치기라도 던져야 흔적이…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세계 무대 도전기
[위클리 리포트]
좌절 거듭해도 일어나는 선수들
《한국 여자야구, 세계무대 도전기
한국은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 1, 2위를 다투는 나라지만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생’(현실 생활)을 살면서도 야구라는 꿈을 놓지 않은 이들이 세계 여자야구 무대에 계속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양상문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6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 아시안컵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하늘로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한국은 2017년 초대 대회 이후 두 번째 동메달을 따는 데 성공하면서 8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출전권까지 따냈다. 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한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맏언니’ 신누리(37)가 야구 선수가 된 건 롯데 자이언츠 때문이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다가 ‘내가 뛰어도 저것보다는 잘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던 것.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신누리는 “그때만 해도 내가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그 시절 여자 선수들은 공부, 취업 등 앞가림을 다 마치고 서른을 한참 넘겨서야 야구를 시작했다”면서 “요즘 리틀야구에서 뛰다가 사회인리그에 오는 친구들을 보면 여자 야구가 더 발전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리틀야구는 9∼12세 선수가 뛰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국에서도 남자 선수는 이 규정을 따르지만 여자 선수는 중3 때까지 리틀야구에서 뛸 수 있다. 초중고교에 ‘엘리트 팀’이 없는 사정을 고려해 생긴 소위 ‘김라경 룰’이다. 한국리틀야구 1호 여자 선수인 김라경(23) 때문에 이 규칙이 생겨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맏언니 신누리(중견수). 7년간 대표팀에 몸담았던 신누리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야구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고교 진학 이후에도 야구를 계속하고 싶은 여자 야구 선수는 바로 사회인리그 문을 두드려야 한다. 남자 초등학생들과 함께 뛰다가 하루아침에 ‘이모뻘 언니들’과 함께 야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그 대신 고교 입학 후에는 여자 야구 선수에게 새로운 길이 하나 더 생긴다. 만 16세가 되면 국가대표 트라이아웃(선수 공개 평가)에 참가할 수 있다. 국가대표팀은 한국 성인 여자 야구 선수가 ‘엘리트 선수’로 뛸 수 있는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 야구 하는 여자애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에이스’ 박민성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야구 월드컵 A조 예선 홍콩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 ‘에이스’ 박민성(20)은 초등학생 시절 가방과 모자 등 눈에 띄는 모든 곳에 “내 꿈은 국가대표”라고 적었다. 부산이 고향인 박민성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세 살 터울 오빠를 따라 ‘동네 야구’를 하러 갔다가 야구에 빠지게 됐다. 마침 박민성이 다니던 초등학교(대연초)에 야구부가 있어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갔지만 “여자는 안 된다”란 답변만 들었다.
아쉬운 대로 리틀야구단 취미반에서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수반’ 입단 제의를 받자 박민성은 영어, 수학, 미술학원을 모두 끊고 야구에 ‘올인’했다. 박민성은 “남자애들처럼 프로 선수를 꿈꿀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막연히 알고 있었다”면서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민성은 부산 리틀리그에 딱 한 명 있는 ‘야구 하는 여자애’가 됐다. 경기에 나서면 어김없이 ‘여자한테 삼진을 먹었다’ ‘여자보다 못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박민성은 “다 내가 잘 던지니 나올 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야구 경기를 하며 모진 말도 많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 체력까지 뒤처지면 ‘여자라서’라는 말이 나올까 봐 더 몸을 던졌다”고 회상했다.
2019년 고등학생이 되면서 박민성은 드디어 꿈을 이룰 기회를 잡았다. 국가대표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과외’(개인 레슨)까지 받아 가면서 준비했지만 현장에서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박민성은 “떨어지면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붙었다는 소식에 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말했다.
한 번 국가대표팀에 뽑혔다고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년 초에 트라이아웃을 통과해야 태극마크를 유지할 수 있다. 트라이아웃에 지원하려면 물론 ‘야구 실력’이 제일 필요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시간’이다.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야구 소녀
한국여자야구연맹은 △국제대회 참가 가능한 자 △상비군 선발전 참석 가능한 자 △상비군 훈련일 75% 및 대표팀 훈련 80% 이상 참석 가능한 자만 국가대표 선발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대표로 뽑혀도 선수들이 훈련, 경기 일정을 소화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맹에 따르면 한국에서 직접 야구를 하는 여자 선수는 약 1000명이다. 그중 리틀야구에서 뛰는 20명 안팎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본업이 따로 있는 ‘사회인리거’다. 올해 국가대표 20명 중에서도 박민성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배운 선수는 5명밖에 없었다. 박민성은 “내년에 국가대표에 합류할 수 있는 후배 가운데도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많다. 우리가 잘해야 여자 야구에 길이 열릴 테니 더 잘하고픈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 후배 중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인 손가은(17)도 있다. 손가은 역시 고교 입학과 함께 리틀야구를 떠나 사회인리그에 합류했다. 그러다 고교 클럽팀인 화성동탄베이스볼에서 연락을 받아 이 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손가은은 이달 19일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린 은평구BC와의 봉황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을 통해 고교야구 데뷔전을 치렀다. 여자 야구 선수가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건 1999년 대통령배에서 선발 투수로 나섰던 안향미(42·당시 덕수정보고) 이후 24년 만의 일이었다.
모든 여자 야구 선수가 꿈을 이룬 건 아니다. 박민서(19)는 별명부터 ‘천재 야구 소녀’였던 선수다. 박민서는 국제대회에서 남자 선수가 던진 공을 받아 쳐 홈런을 때릴 만큼 장타력이 좋았고, 투수와 포수를 비롯해 9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수비력도 빼어났다. 여자 야구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일본에서도 주목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박민서는 야구 방망이가 아니라 골프 클럽을 쥐고 훈련하고 있다. 시간이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게 제일 큰 이유였다. 고교 진학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길이 막혔던 것. 결국 박민서는 타격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골프로 종목을 바꿨다.
● 왜 하냐건 웃지요
국가대표 외야수 주은정(28)은 야구로 종목을 바꾼 케이스다. 주은정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3년간 소프트볼 선수로 뛰었다. 야구 국가대표가 되기 전에 이미 소프트볼 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경험도 있다.
주은정이 야구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는 올해 6월 홍콩에서 열린 2023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 아시안컵이었다. 주은정은 한국이 동메달을 따낸 이 대회를 앞두고 훈련하느라 동생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화가 난 부모님은 한 달 넘게 주은정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국 전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아 부모님은 주은정이 홍콩에 간 것도, 메달을 딴 것도 몰랐다.
소프트볼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인 데다 실업팀까지 있어 돈을 ‘받으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주은정도 실업 선수로 뛰었지만 3년 전 ‘번아웃’이 찾아오면서 스물다섯에 유니폼을 벗었다. 주은정은 “다 내려놓고 싶어 소프트볼을 떠났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돈을 ‘쓰면서’ 해야 하는 야구가 주은정의 마음에 새 불을 지펴줬다.
주은정은 “프로는 돈을 받지만 이건(여자 야구) 정말 열정 하나로 움직인다. 나도 같은 선수지만 대표팀 선수들이 고생하는 걸 보면 ‘야구가 이 정도로 좋은가’ 하고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만약 (소프트볼) 엘리트 선수 시절 이 선수들을 봤다면 무시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직접 뛰어 보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게 된다. 그냥 그만큼 좋아하니까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 야구의 ‘슈퍼스타’ 김라경도 마찬가지다. 김라경은 “여자가 야구를 한다면 ‘소프트볼이 낫지 않겠냐’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야구와 소프트볼은 완전히 다른 스포츠다. 투구야말로 두 운동의 꽃인데 소프트볼은 ‘밑으로’ 던진다”면서 “야구를 하면서 ‘여자가 야구를 해도 되는 거였어?’라고 묻는 후배들을 많이 만났다. 당연히 해도 된다. 야구를 이렇게 좋아하는 우리를 제발 그냥 야구 선수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김라경은 대학교에서 남자 선수들과 뛰고 싶어서 재수 끝에 대학 리그 출전이 가능한 서울대에 입학했다. 김라경은 지난해 일본 실업팀에 입단했지만 팔꿈치 수술을 받아 현재는 재활 중이다. 김라경은 팔꿈치가 낫는 대로 다시 일본 실업리그 진출에 도전할 계획이다.
● 달걀로 바위를 쳐도…
한국은 아시안컵 동메달로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 야구 월드컵 조별 예선 출전권도 따냈다. 예산 부족으로 새 유니폼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아무리 빨아도 얼룩이 다 지워지지 않는다”면서 홍콩에서 입었던 유니폼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달 9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린 이 대회에 출전하느라 직장인 선수들은 연차를 ‘탈탈’ 털어야 했다.
박소연(22)은 비행기에 새 유니폼을 들고 탔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빠를 따라 리틀야구를 했던 박소연도 중학교에 가서는 소프트볼 선수가 됐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된 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운동을 아예 그만뒀다. 하지만 가슴속으로는 불가능한 꿈을 계속 꿨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자마자 사회인야구에 등록해 다시 방망이를 잡은 박소연은 대학 시절 내내 야구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된 박소연은 해군 파일럿 지원을 앞두고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 때문에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아시안컵에 출전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 진출이 확정된 뒤 코칭스태프는 그간 박소연이 대표팀에서 펼쳤던 기량을 인정해 교체 선수로 발탁했다.
6개월의 공백 끝에 대표팀 합류를 준비하면서 박소연은 소프트볼 선수 시절 은사님의 도움을 받아 주 7일 동안 야구 연습을 했다. 박소연은 “대회를 한 달 남기고 나를 믿고 뽑아주셨다. TV에서만 보던 코칭스태프께서 도움도 지원도 많이 해주셨는데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국 여자 야구가 이 정도였어?’라고 세상을 놀라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출국길에 올랐지만 결과는 5전 전패였다. 이 대회에 출전한 나라 중 5전 전패를 당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그러나 박민성은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이유가 아니러니하다. “너무 높은 벽을 마주했다고 느껴서요.”
박민성은 왼쪽 팔목에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age quod agis)’라고 라틴어로 문신을 새겼다. 박민성을 비롯한 한국 여자 야구 대표팀이 ‘지금 하는 일’을 누군가는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할지 모른다. 실제로 달걀은 보란 듯 깨졌다. 그러나 아무도 달걀을 던지지 않았다면 달걀이 깨진 흔적조차 바위에 남지 않았을 일이다.
임보미 기자
“불평 한 번 없어…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애들 프로에도 없다”
[위클리 리포트]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세계 무대 도전기
양상문 감독이 ‘남 일’ 여자야구에 두 팔 걷고 나선 까닭
양상문
지난해 12월 3일 중부지방 전역에 새벽눈이 내렸다. 양상문 SPOTV 해설위원(62)은 롱패딩과 털모자로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한국여자야구연맹에서 마련한 ‘여자 야구 클리닉’ 행사에 참석하러 경기 고양시 NH인재원 야구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자야구에 큰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평생 야구를 하며 살았지만 그 역시 한국에 여자야구팀이 있다는 사실은 프로야구 LG 감독 시절(2014∼2017년) 처음 알았다. LG그룹이 후원한 여자야구대회가 이천 LG챔피언스필드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여자야구는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이번 클리닉도 애초에 이틀이면 끝나는 단발성 행사였다. 하지만 이 이틀은 양 위원을 여자야구 국가대표 감독에 자원하게 만들었다. “눈도 와서 야구장의 눈을 쓸고 클리닉을 했는데 선수들이 ‘춥다’는 소리 한 번을 안 하더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던 모습이 눈에 밟혔다.”
클리닉을 마친 양 위원은 이 행사에 강사로 함께 참여했던 이동현 SBS스포츠 해설위원(40)에게 말했다. “동현아,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야구하는 애들이 있었냐? 우리가 좀 도와주자.” 양 위원은 이 위원에게 투수코치를, 국가대표 2루수 출신 정근우(41)에게 타격 겸 수비코치를, 롯데와 SK에서 포수로 뛴 허일상(44)에게 배터리 코치를 부탁했다.
이동현
그렇다고 ‘수고비’를 챙겨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국가대표팀 훈련지인 경기 화성드림파크를 오가는 ‘기름값’ 정도만 겨우 챙겨줄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상 재능 기부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대충대충’은 없었다. 선수 시절 ‘로켓맨’으로 통했던 이 코치는 2019년 은퇴 후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 전력 투구를 하며 대표팀 타자들의 ‘빠른 공’ 대응 능력을 키워주기도 했다.
대표팀 ‘맏언니’ 신누리(37)는 “사회인 야구는 다 아리랑볼이라 우리가 쭉쭉 들어오는 볼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며 “또 정근우 코치님은 타격 때 손목 쓰는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허 코치도 본업인 배터리 코치는 물론이고 외야 코치까지 맡아 1인 2역을 해냈다.
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