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생 치딤마 아뎃쉬나(23)가 오는 10일(현지시간) 미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선발대회 본선에 진출하는 감격에 젖었을 때 그녀의 이름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나이지리아 핏줄이겠거니 짐작한 그들은 인터넷을 뒤져 그녀의 부친이 나이지리아인이며, 모친은 남아공 사람이며, 가족이 이웃 모잠비크에서 이주해왔다는 사실 등 온갖 개인사를 들춰냈다. 이어 미스 남아공 선발대회 출전 자격을 문제 삼는 외국인 공포증(xenophobia)으로 의심되는 온라인 공격이 잇따랐다고 영국 BBC가 3일 보도했다.
한 엑스(X, 옛 트위터) 이용자는 격분해 "남아공을 대표해 우리는 그녀와 그녀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짐을 싸 고국으로 가는 게 낫다”고 적었다.
그런데 아뎃쉬나는 엄연히 남아공 국적이다. 대회 조직위원회도 인정했다. 그녀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요하네스버그 바로 옆 타운십(township) 소웨토 출신이며 케이프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국으로 가라”는 정서에 기반해 더 거친 공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해졌다. TV로 중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는 대회에서 그녀를 몰아내야 한다는 청원에 1만 4000여명이 동의했다. 다만 이 청원은 지금 내려졌다.
게이튼 맥켄지 남아공 문화부 장관도 동조하고 나섰다. 맥켄지 장관은 연립정부에 참여한 애국동맹 당의 지도자로 이민 반대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X에 글을 올려 "우리는 정녕 나이지리아인을 우리 미스 남아공 대회에 출전하게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뎃쉬나는 BBC의 인터뷰 제안을 사양했는데 온라인 매체 소웨탄 라이브에 온라인 혐오 때문에 대회 출전을 재고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난 한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데 내가 대표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든 상황이 "흑-흑 혐오"로 느껴지며, 다른 아프리카인을 낙인 찍는 "아프로포비아"(afrophobia)로 알려진 남아공의 색다른 외국인 공포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또 본선에 진출한 16명 가운데 자신만 다른 나라에서 유래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남아시아와 유럽에 뿌리를 둔 이름의 참가자도 있다는 것이다.
대회 대변인은 아뎃쉬나 사태에 대한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고 그녀의 대회 참가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지난해 참가자 멜리사 나위물리(28)는 아버지가 우간다인이란 점 때문에 비슷한 공격을 받았다. 그녀는 살면서 늘 겪었던 반응을 대회에 참가해서도 받아 놀랍지도 않았다고 BBC에 털어놓았다. 나위물리의 반문이다. “내가 달아나려고만 했던 어떤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단 말이냐?”
그녀는 자라면서부터 늘 남아공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인 소사(Xhosa) 어를 구사했다며 “남아공인다움은 증명된다”고 강조했다.
어릴 적 우간다 혈통이란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인정하는 그녀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아버지 피부색이 더 까맣고, 동아프리카 얼굴이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 아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아버지는 영웅이었는데 밖에서는 적 취급을 당했다."
프리 스테이트 대학 사회학과의 놈불렐로 샹게 박사는 이런 적대감을 남아공의 인종주의 역사와 백인을 선민으로 여겨 엄격한 위계질서의 맨 위에 놓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스템과 연결지었다. "슬픈 아파르트헤이트 정신이 한 나라를 흔들고 있다. 검은 남아공인끼리 깊은 자기혐오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샹게 박사는 남아공인들이 옅은 색조를 나은 것으로 여기는 컬러리즘(colourism)같은 억압적인 인종차별 합리화를 내면화했다고 덧붙였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막을 내린 뒤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부는 오랜 고립을 떨치고 대륙의 재통합을 진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아프리카 이민자와 망명 희망자를 적극 환영했다. 하지만 남아공인들이 재정적으로 힘들어지자 외국인들은 낙담한 이들의 먹잇감이 됐다.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사람들이 남아공인들의 기회를 빼앗고 자원을 탈취한다는 공격이 잇따랐다.
남아공 인종관계 연구소의 마이클 모리스 미디어 국장은 "아웃사이더를 희소한 일자리, 자원, 주거공간, 서비스 경쟁자로 여기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성공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늘어나는 것이 “분노와 폭력에 쉽게 불을 당긴다”고 덧붙였다.
남아공은 2008년 아프리카 외국인들을 겨냥한 최악의 폭력 사태로 60명 넘게 희생되는 일을 겪었다. 모리스는 “대륙의 다른 곳에서 온 아프리카인은 남아공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검은 남아공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나위물리는 아버지가 체포됐을 때 범죄자 취급을 받은 일을 고통스럽게 떠올렸다. 어머니가 수도 프리토리아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경찰은 한 마디 설명도 하지 않고 기소하지도 않은 채 아버지를 구금했다. 아버지는 풀려났는데 가족은 그 일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난해 미스 남아공 선발대회 참가를 계기로 꽁꽁 숨겨왔던 외국인 공포증에 대해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나위물리 가족에겐 일종의 치유가 됐다고 했다.
아뎃쉬나는 나위물리 사례를 어떻게 봤을까? "그녀는 한낱 유행하는 얘깃거리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이다. 그녀는 온라인에서 공격당하는 젊은 여성이다. 이건 잘못됐으며, 상처받고 위험한 일이다."
그녀는 외국인 공포증을 갖고 있는 이는 소수이며 많은 남아공인들은 단결을 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경제 자유 전사들(EFF) 정당의 줄리어스 말레마 당수는 지난주 아뎃쉬나를 두둔하며 “왜 사람들은 그녀가 나이지리아나 모잠비크에서 왔다고 말하고자 하는가? 그녀는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나위물리가 지난해 대회 여정을 마치며 밝힌 메시지를 떠올려보자. 그녀는 대회 마지막 날 혐오에 맞서 아프리카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녀가 “아프리카로서 우리 파워에 발을 들여보자.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자 객석은 열광했다.
그러나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오는 10일 아뎃쉬나가 혐오하는 이들은 아랑곳 않고 무대 중앙에 설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