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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호세아4장1~19절
제목 : 무지와 고집, 패망의 이유
호세아 1~3장에서 신부의 백성들의 삶 전체를 먼저보는 조감도라고 한다면, 4장부터는 신부인 백성들의 상태를 더 확대해서 드러냅니다.
4:1-14:9은 모두 9개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4:1-5:4),
(2)인간의 교만을 지적함(5:5-6:3),
(3)인애가 없으므로 망함(6:4-7:7),
(4)세속과 혼합된 죄를 책망함(7:8-8:14),
(5)부패의 죄로 징벌을 받음(9:1-17),
(6)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죄(10:1-15),
(7)인간적인 계책을 책망함(11:1-16),
(8)우상 숭배의 죄악을 다시 책망함(13:1-16),
(9)회복에 대한 약속(14:1-9) 등이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 속에 거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타락의 중심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음란한 영에 미혹되어 바알숭배와 산당제의에 빠진 백성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시고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을 고발하다(1~3절).
오늘 본문 시작인 4:1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신부의 상태를 단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자세히 드러다보면 신랑되신 주님과 소통을 거부하고 사는 삶의 내용을 1~2절에서 9가지 열매로 나타냅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1) 이 땅에는 진실도, 인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합니다(1절)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이 땅 주민'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논쟁하십니다.
'논쟁'(리브)은 다투는 것을 말하는데(2:2주석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을 고소한다는 의미입니다(12:2;미 6:2).
논쟁은 소통이 없을 때에 나타납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 계약을 위반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에메트)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말과 행동의 신실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에 충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인애(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으로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은총과
긍휼을 의미합니다(2:19 참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다아트'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얻게되
는 체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다아트'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 신들을 섬기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았습니다(롬 1:21).
게다가 사랑과 진실을 도외시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것은 심판과 멸망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2)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죄악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2절)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저자는 타락과 죄악의 현실을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주(咀呪)의 '알라'는 원래 '맹세하다'란 단순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남을 저주하는 것과 관련된 거짓 맹세를 의미한다(마 5:34 참조).
속임의 '카하쉬'는 '거짓말하다', '속이다'란 뜻으로 십계명 중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도둑질(가나브)은 훔치는 것으로 절도 행위를 가리키며, 제8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살인(제6계명)과 간음(제 7계명) 역시 이스라엘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 '포악하다'의 '파라츠'는 '찢다', '깨뜨리다'등의 뜻으로 강도와 살인의 목적이 있는 폭력 행위를 의미합니다.
'피'(다밈)는 피 흘리는 행위와 관련되며, '뒤이음'(나가)은 원래 '만지다', '도달하다', '치다'등의 뜻으로 여기서는 피 흘리는 행위에 또 다른 피 흘림이 뒤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이는 폭력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사회의 비극적인 상황을 반영해줍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신부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재의 열매을 맺어야 하는데 그들은 사악한 열매를 맺으므로 괴로움만 남았습니다. 3절입니다.
3) 괴로움만 남았다고 합니다(3절)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이 땅이 슬퍼하며. - '슬퍼하다'의 '아발'은 원래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땅의 황폐한 상태를 비유합니다(사 24:4,7).
즉 자연적인 재앙과 재난으로 인하여 땅이 황무하고 땅의 소산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없어지며, 초목이 시들고 메말라 동물들까지 굶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욜 1:10).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한재, 전염병 등)로 말미암습니다.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 이는 인간의 타락이 자연계의 파멸과 피조물의 멸망을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인간에게 피조물의 지배권을 부여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피조물에게까지 고통과 파멸을 당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죄악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까지도 한재로 인하여 말라버린 물처럼 쇠잔하여집니다(사 50:2).
이처럼 하나님의 계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은 전염병(傳染病)과 기근(饑饉)과 한재(旱災)를 통하여 땅과 그 안에 있는 피조물들을 황폐하게 함으로써 저주를 내리십니다(신 28:23,24,51).
2.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고발하다(4~10절)
1)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4절).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그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비난하지 말라는 뜻과 함께 백성들의 완고함과 불성실함을 지적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1)형벌과 심판이 모든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비롯
되었으므로 서로를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뜻이거나(Lange, Kimchi), (2)아무리 책망해보았자 백성들의 완악함은 그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타락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J.Given).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 본 구절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즉,
(1) 제사장들의 타락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보는 견해(RSV, J.Ward),
(2)제사장들처럼 백성들이 타락했다고 이해하는 견해(G.Smith),
(3)백성들이 제사장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와 같이 악하다고 보는 견해(신 17:12 참조, Keil, Hengstenberg) 등입니다.
이중 어떤 견해를 취하든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법과 행악 가운데 빠져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5절)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여기서 '선지자'(나비)는 탐욕과 자만에 빠져서(사 28:7;렘 6:13;미 3:11)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과 왕을 경배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매우 많았습니다(왕상 22:6-8).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네 어머니'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권이 있는 나라 전체까지도 멸망시키겠다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3)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6절)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당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아트'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1절)이 없어서였습니다.
이 지식은 제사장들에 의해서 율법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신 31:9-13;33:10;말 2:7).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이 바로 율법에 기록되었기 때문에(신 30:15,16) 이스라엘 백성이 지식이 없는 것은 율법을 마땅히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의 책임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불성실함을 문책하고 그 백성들을 파괴하십니다.
율법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망각의 죄악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율법에 무관심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버릴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빼앗아버리십니다.
그런데 제사장 직분은 이스라엘 전체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출 19:6).
때문에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잊어버리는 것'(솨카흐)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이방인과 같게 하시는 것입니다(Keil).
4)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7절)
여기에서 '번성'(라바브)은 이스라엘이 인구의 증가를 포함하여 부와 번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때의 번영은 오히려 이스라엘에 사악함이 충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상 숭배에서 얻어지는 결과로 생각하는 제사장들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화와 명예(카보드)를 빼앗아 수치와 부끄러움(칼론)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5)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8절).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원문에는 '내 백성의 죄'(하타아트 암미)로 되어 있습니다(KJV, NIV, RSV).
여기서 '죄'는 특별히 백성의 제사 의식과 관련되었습니다.
즉, 제사장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희생 제물을 더 많이 바치게 하여,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속죄 제물의 고기를 많이 거두어 들였다는 것입니다(레 6:26;10:17 참조).
이것은 제사장들의 삶의 방식이 탐욕으로 가득 찼음을 보여줍니다.
이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의로운 행위를 가르치기보다는 가증스러운 제물을 바치도록 유도했던 것입니다(8:13).
따라서 백성들의 제사 행위는 제사장들의 죄악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기복주의 만물주의에 빠지게 된것입니다.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 제물에 대한 탐욕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제사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악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제물의 수입이 많아진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의 죄악을 끊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죄 행위를 열망하고 가증시키는 데 마음을 쏟았습니다.
결국 여호와의 제사와 율법을 팔아먹는 제사장들의 사악함은 징계와 파멸을 자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6)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9절).
“[9]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백성이나 제사장이 모두 타락해가고 있는 현재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원함으로써 백성들과 함께 타락하였기에 형벌을 그들 모두에게 철저하게 내려질 것입니다.
7)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합니다(10절).
“[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들이 먹어도. - 이는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탐욕스럽게 먹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8절).
그러나 그들의 탐욕은 기근이나 질병과 같은 하나님의 형벌로 인하여 충족되지 않을 것입니다(레 26:26;미 6:14).
혹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더라도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행음하여도. - 여기서 '행음'(히즈누)은 매춘 행위를 유도하거나 음란을 조장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행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음은 제의적인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아퍼(W.Harper)는 바알 숭배에 있어서 여인들이 자녀의 생산을 위하여 자기들의 몸을 성전에서 음란하게 내어주는 제사 의식에 참여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와 연관된 음행은 종족 번식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생식을 막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맙니다(신 28:18).
3. 이방 제의에 참여함을 고발하다(11~14절)
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11절).
본절은 10절에서 여호와 좇기를 그쳤던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곧 음행과 술 취함에 의해서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구하는 지성, 감정, 의지의 인격을 담고 있는 마음을 음행과 술취함이 몽롱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여호와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여호와를 버리게 되었음을 뜻합니다(신 31:16).
결국 그들의 방종과 도덕적인 타락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에 흠뻑 취한 상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2) 백성들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 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12절).
“[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들은 나무로 새긴 우상에게 신적계시를 묻습니다(렘 10:3;합 2:19).
특히 이것은 드라빔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3:4).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 '막대기'(마켈)는 여기서 우상의 형상을 나무 꼭대기에 새겨서 만든 것이거나, 아니면 막대기가 넘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예언이 응답되는 것으로 믿는 점술적인 도구의 하나로 여겨집니다(J.Given, W.Harper).
나무 우상에게 신탁을 구하고 점복술을 통하여 소원을 얻으려는 이스라엘의 우매함과 가증스러움에 대해 호세아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5:4).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의 감각적인 행음에 빠져서 더 이상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고 언약에서 떠남으로써 멸망의 길을 자초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배후의 세력은 '음란한 영'(루아흐 제누님) 곧 악한 귀신의 능력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기보다는 음란과 우상 숭배를 자극하는 사탄의 권세에 굴복하고 말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이 이교도적인 우상 숭배와 제사 의식을 거행한 사실을 나타냅니다(13절).
“[13]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산꼭대기'는 아마 하늘과 신을 가까이 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선택된 듯하며(신 12:2), '작은 산' 역시 동일한 이유로 분향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 산과 언덕들의 꼭대기뿐만 아니라 푸른 나무가 있는 곳마다 우상 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푸른 나무로 우거진 숲이 태양의 뜨거움을 막아주거나, 또는 방탕한 의식을 거행하기에 적당하도록 은밀한 장소 였기 때문일 것입니다(J.Given).
4) 내가 벌하지 않겠다고 합니다(14절).
“[14]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 이는 딸들과 며느리들의 행음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에서 제외되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의 죄악보다 남자들의 죄악이 더 많고 크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징계함으로써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백성들의 죄악이 극에 달아서 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제멋대로 행하도록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롬 1:24).
이것은 여호와의 임재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났음을 뜻하며, 동시에 그 백성들은 전적인 파멸에 떨어졌음을 시사합니다(P.Butler).
창기와 함께 나가며 - '나가며'의 '파라드'는 창기와 홀로 있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음부와 함께 - '음부'(카데솨)는 아스다롯을 섬기기 위하여 신전에 바쳐진 방탕한 여자를 말합니다.
남자들은 우상 제사에 참여하여 음부들과 함께 부끄럼 없이 음행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 '패망하리라'의 '라바트'는 '밀어 넘
어뜨리다', '내팽개치다' 등의 뜻으로 완전한 멸망을 의미합니다(잠10:8,10).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죄악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에서 제외되어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4. 음행과 완악함을 고발하다(15~19절)
1)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15절)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이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을 유다 백성이 배우지 않도록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이로 볼 때 당시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죄악의 위험 수위가 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과 유다의 이 같은 대조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더욱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행음을 징벌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는 것은 이미 그 백성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길갈 - 이곳은 이스라엘에 위치하였으며, 한때 선지 학교의 자리였으나(왕하 2:1;4:38), 호세아와 아모스 시대에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9:15;12:11;암 4:4;5:5).
벧아웬 - 이곳은 일반적으로 벧엘 남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알려졌으나(수 7:2), 여기서는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웠던 '벧엘'을 다르게 부른 이름입니다.
즉 하나님의 집이었던 벧엘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자 선지자는 이곳을
'벧아웬', 곧 '사악한 집'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10:5).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지어다. - 이는 우상 숭배자들처럼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가증스러움을 배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인하여 맹세하라고 하셨습니다(신 6:13;10:20;렘 4:2).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 신을 섬기면서도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모방하는 망령된 행동을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16절)
“[16]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 '완강하다'의 '사라르'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완악함으로 반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신 21:18).
이스라엘은 멍에에 익숙지 못하여 다루기 힘든 송아지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고 반역하였습니다(렘 31:18).
이제 여호와께서...먹이시겠느냐. - 대부분의 번역본들(NIV, RSV, JB, NEB)과는 달리 맛소라 원문은 의문문이 아닌 평서문으로 되어 있어서 본 구절은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뉘어집니다.
(1)의문문으로 해석하는 경우:이스라엘의 완강함 때문에 이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넓은 초장에서 어린 양을 먹이는 것처럼 먹이시지 않습니다(G.Smith).
이 때에 '넓은 들'(메르하브)은 풍요와 축복의 초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시 18:19;31:8;118:5).
(2)평서문으로 해석하는 경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길 잃은 어린양처럼 넓은 들에 버려두고 돌보지 않습니다(Calvin, Keil, Given).
이 때에 '넓은 들'은 사나운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광야로 이해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을 상기시킵니다.
한편, 본 구절을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넓은 초장의 어린양처럼 유순하게 되어 목자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거나, 아니면 살육을 위한 잠시동안의 포식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M.Henry) 문맥상 거리가 먼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본 구절의 정확한 의미를 가려내기란 그리 쉽지 않으나 이스라엘의 고통과 역경을 암시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3)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17절)
에브라임 - 북왕국의 가장 뛰어난 지파 이름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5:3,5;사 7:2).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 '연합하다'의 '하바르'는 '교제를 나누
다', '동맹 또는 계약을 맺다', '하나가 되다' 등의 뜻으로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비통의 원인은 바로 우상과 연합한 이스라엘의 무지와 완악함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라'(한나흐-로)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훈계와 책망에서 '그들을 놓이게 하라'는 뜻입니다.
즉 우상을 숭배하는 그들의 죄악된 행동을 막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징계의 최종적인 형태입니다(롬 1:24).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우상 숭배에 대한 훈계와 책망이 헛된 것임을 선언하고, 최후적 심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형벌은 그들의 계속되는 죄악과 더불어 높게 쌓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쌓여진 형벌이 이스라엘의 머리 위에 임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4)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합니다(18절).
“[18]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 - 본 구절은 '다하다'에 해당하는 '사르'를 어떤 뜻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사르'는 '수르'에서 파생된 것으로 '떨어지다', '제거하다', '떠나다', '외면하다', '그만두다', '버리다'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서 그 해석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술이 시다'라는 해석이나(KJV), '사르'를 '사드'로 고쳐서 '술주정뱅이 무리들'(A band of drunkards, RSV)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색하다. 보다 가능한 해석은
(1)더 이상 마실 것이 없을 때까지 술을 다 마셨습니다.
(2)저희의 술이 타락하였다(렘 2:21 참고)이다.
이로 볼 때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술취함과 방종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저희의 타락한 현실을 술취함에 비유한다고 보아도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행음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 원문에는 '하즈네 히즈누'로 기록되어서 이스라엘이 매춘 행위를 계속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술취함과 방종은 결국 부도덕한 음행으로 연결되었다.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 - '방백'에 해당하는 '마겐'은 '방어하다'의 '가난'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방패'를 뜻하나, 여기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방백들을 상징합니다(시 47:9;89:18).
'수치'(칼론)는 사회적 또는 국가적 지위가 낮아지는 치욕적인 부끄러움을 뜻합니다(렘 46:12).
그리고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아하부 헤부'는 히브리어 난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하브'(사랑)를 반복하여 강조한 형태로 봅니다(Delitzsch, Pusey, Ewald, Keil).
따라서 본 구절은 저희의 방백들이 수치를 극진히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의미입니다.
RSV는 이를 '그들이 저희의 명예보다 수치를 더 사랑한다'고 번역했습니다.
5)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19절)
“[19]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 '바람'의 '루아흐'는 강한 파괴력을 지닌 '태풍'이나 '폭풍'을 상징합니다(겔 13:11).
'싸다'의 '차라르'는 '묶다', '봉하다' 등의 뜻으로 결국 바람에 날려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사 57:13).
결국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게 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편, 본 구절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희생 제물은 그들에게 복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심판의 정당한 증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이방 나라에게 조롱을 받는 치욕으로 나타납니다(10:6;렘 2:36).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감각적인 우상 숭배에 빠져 희생 제물을 바친 죄악으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으로서 부끄러운 멸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당히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있는 제사장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어는 시대든 지도자의 부조리와 불 순종은 그 사회에 큰 영향을 남기게 됩니다.
지금 제사장의 상태가 어떤지 8절을 통해서 증명해 줍니다.
지도자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잊어버렸습니다.
신부인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에 기대고 있다면 당연히 지도자의 분별력이 작동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메시지를 생략해 버렸습니다.
성도들은 기복을 잡기위해 거기에 올인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면에서는 외형은 번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부흥이 아닙니다.
지도자의 부패(腐敗)와 자기 욕심을 갖춘 자기 왕국의 영향력은 신부인 백성들에게 타락의 길을 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기복주의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기고해야 합니다.
만일 지도자들이 분별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영향은 고스란히 12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14절에서 신부의 상태를 호소합니다.
더 이상 징계가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수위에 처한 것입니다.
징계 하실 때에 한 가닥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고소인이자 재판장이 되셔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문하십니다(1~3절).
그들은 언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진실과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습니다.
오히려 거짓과 힘이 논리가 지배하는 속임과 포악함만 가득합니다.
우리의 영적 안전은 회심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맺는 “열매”에 달려 있습니다.
추수의 계절에 내가 ‘어떤 열매’를 드릴지보다 내가 ‘어떤 나무인지’를 먼저 살펴보십시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도를 넘은 이스라엘의 패역함 때문에 땅과 모든 생물이 신음하며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기근과 흉년)(3절).
“하나님-인간-땅”은 언약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내가 “말씀대로”순종하지 않을 때 온 땅도 신음할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 등 자연의 재앙과 역습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요?
나로 인해 내가 있는 곳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곳이 되고 있습니까?
2) 보기에 좋은 땅을 가증한 땅이 되게 하는 데 제사장들이 앞장섭니다(4~10절).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이 도리어 부와 권력에 눈멀어 죄를 조정합니다.
대낮에도 넘어질 만큼 태만하고 오만했고, 인자와 진실은 없고 사심과 사욕만 가득합니다.
백성의 탐욕을 부추기는 지도자, 지도자의 악행과 독선적 행위를 논감아주는 백성, 이 무서운 공생관계에 하나님은 지금도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다면 지도자의 자리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여호와께 묻고 여호와의 뜻을 따라야 할 이스라엘 백성이 풍요와 번영을 비는 이방 제사에 참여하여 신탁을 구하고 먹고 마십니다(11~19절).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그들은 무지하고 부사안일하고 무감각합니다.
경계심도, 경각심도 없습니다.
진실된 목소리를 듣고서도 완강한 암소처럼 자기 길을 고집합니다.
그러고도 자기 정당화에는 능합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을 수치 가운데 두신 것,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