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의 어제와 오늘
▲ 이문일 논설위원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은 지난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일제가 일으킨 침략 전쟁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낙후하고 취약해 개발 쪽으로 추진할 주거지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몹시 아쉽다고 판단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를 전쟁에 강제 동원한 ‘유산‘이어서 남겨두자는 의미에서일 터이다.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의 경우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三菱, 삼릉)가 인근 무기 제조공장에 강제로 징용된 노동자들의 합숙소로 사용하려고 1939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거기에는 부엌과 쪽방 하나씩 갖춘 10칸의 집이 있었다. 이런 집들이 줄을 지어 있다고 해서 줄사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는 애초 23개동 1000여명의 노동자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4개 동만 남았다. 광복 후에도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주거 공간으로 이용됐다. 이 과정에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어 역사·주거사를 거론할 때 국가등록문화유산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줄사택은 대표적인 강제 동원 기업인 미쓰비시가 우리에게 남긴 100여개 작업장 중 유일한 노동자 강제 징용 ‘유산‘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증언하는 산교육의 장인 셈이다.
미쓰비시는 국내 전역에 걸쳐 광산과 군수공장을 운영하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부평에 존재하던 미쓰비시 계열사 미쓰비시제강은 조선인을 투입해 특수강판·포탄·박격포 등을 생산해 군대에 납품했다. 일본군은 이를 침략전쟁 수행에 활용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 강점기 징용 노동자들의 숙소였는데, 일본 육군 조병창 자리에 6.25 전쟁과 함께 미군 부대인 애스컴 시티가 주둔했다. 아울러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나간 이들의 주거지로 쓰인 곳이다. 부평을 무대로 활동하던 일부 음악인도 살았다고 한다.
부평구가 다음 달 미쓰비시 줄사택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한다. 올해 말까지 마무리할 목표를 세웠다. 구조안전진단을 비롯해 보수정비 공사 등의 작업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구는 애초 대지 1329㎡(토지 34필지)와 건물 1069.6㎡를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건물 노후화와 안정성 등의 문제로 보수가 시급하다는 국가유산청의 의견에 따라 지금은 대지 34필지만 등록됐다. 부평구는 국내 유일의 미쓰비시 노동자 강제 징용 흔적을 보여주고, 다양한 계층의 삶터로 남은 줄사택을 지키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현재 미쓰비시 줄사택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만 등록됐을 뿐이다. 원형을 보존하면서 역사 교육 공간의 기능을 활짝 열어 활용 방안을 세워야 할 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