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와 천재
양안다
언제부터 당신이 눈치챈 거지.
비우고 비워도 취하지 않을 때?
두 눈을 감아도 미래가 떠오르지 않을 때?
언제부터 당신이 나의 죽음을 예상한 걸까.
“이봐, 친구. 조심하게나.
심장마비로 죽으면 흉측하니까.”
― J.D.제임스
눈 쌓인 들판이야. 들개가 무리 지어 떠돌고
죽은 것들을 물어가는 밤이었다. 횃불의 배회를 유령이라고 부를까.
깊은 밤에.
혹은 짙은 밤에.
연, 네가 천장에 목매달지 않고 폭설 속에서 죽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죽은 너를 보러 갔을 때 흩날리는 흰 조명이 나를 반겼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깊은 밤을 어느 맹인의 사랑이라고 불러줄까.
맹인의 사랑을 짙은 밤의 풍경이라고 불러줄까.
횃불은 한밤의 비밀을 들추는 데에 능숙했다.
“작고 마른 검은 새였어요.
나는 검은 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요.
검은 새는 날 선생이라 여기지만 나는 그의 연인.
꿈속에서 매일 입을 맞춰주었어요.”
나의 보석함에는 빛나는 것이 없고
빛바랜 사진, 네가 거기에서 웃고 있다. 영원히 웃는 표정의 연. 웃는 얼굴로 우울하다고 고백하는 연. 소독약 냄새. 보고 싶어.
환생한다면 눈보라 속을 함께 헤매고 싶습니다.
들개가 죽은 바람을 물어가는 밤.
새끼 들개는 부모에게서 죽은 바람을 잘도 받아먹었다.
교육인가요.
사랑이군요.
사랑의 천재가 되고 싶어.
너를 이해하기 전에 사랑을 모조리 깨닫고 싶어.
온 세상 눈보라가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왜 떠났어.
너 때문에 나는 천재가 되는 데에 실패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내가 지독해요?
사건이 발생한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다.
인간이 열차를 만든다.
인간이 전기를 만든다.
인간이 기계를 만든다.
인간이 인간을 만든다.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나를?
이제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연민인가요.
체념이군요.
들개가 제 새끼를 핥아주듯이.
눈보라가 녹아내리듯이.
깊은 밤.
그리고 짙은 밤.
횃불을 휘두르고 불의 영혼을 바라본다.
이제 두 눈이 사라져도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금방 갈게. 따뜻하게 입고 기다리고 있어.
이것이 천재의 사랑이다.
* 빛바랜 사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20××년 1×월 2×일.
더는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던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제 나에겐 불행할 일만 남았다.”
꿈 일기
끝없는 꽃밭이었다.
나는 어지러운 색채를 사랑했다. 나의 생각은 뒤섞이고 흔들리고 있었다. 두 발은 비틀거렸다. 날이 개었구나.
물웅덩이는 어제의 폭우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의 개야. 이제 그만 좀 뛰거라……
*
밤새 뒤척이다가
꿈을 꾸었었나 생각하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당신을 부르다가
내일 만들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일 만들 호두파이를 당신에게 먹이고 싶다.
내일 만들 노랫말을 당신에게 불러주고 싶다.
전날 밤 꿈속에서 당신에게 먼저.
*
화사한 꽃배에는 아름다운 장식품. 꽃 하나인가. 꽃 둘인가. 잘 지내요? 나는 시든 꽃으로 시간을 셈하고 있어요. 오늘도 당신은 나의 꿈에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꽃잎 조금 따서 차를 끓였고, 술을 조금 섞었고, 당신 생각 조금 했고, 오래 침묵했습니다. 꿈 밖에서 비가 그쳤는지 이곳에도 비가 오지 않고요. 열기가 식지 않은 총구의 형상에서 태양의 테두리를 발견했을 때. 내가 몽상가가 된 걸까요. 나팔 소리 아름답고 하늘 높고
혼잣말도 노래가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도 당신, 어디 갔어? 다음에 만나면 나의 두 눈에 꽃을 심어주겠다고, 총천연색 가득 섞은 액체를 마시자고 했잖아요. 나의 개가 미친 듯이 찾아 헤매고 있어. 나는 꿈의 다음 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물웅덩이에는 아름다운 색깔로 기름이 퍼져 있고요. 환각처럼. 당신 그림자를 보다가. 환청처럼. 당신 목소리를 듣다가. 환후처럼. 당신 체취를 맡다가. 환촉처럼. 당신 손등을 만지다가. 나는 나를 뒤흔드는 색채 속에 빠져 죽고 싶었다. 나의 개야. 이제 그만 기다리자꾸나. 좀만 쉬다 산책을 나가자. 나의 개는 눈이 커다랗고 나의 얼굴이 잘 비친다. 나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니? 환각처럼. 꽃 아니한가.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시인의 사색
나의 마음은 발바닥 오목한 곳에 담겨 있습니다. 내가 괴로움과 외로움을 혼동하고 있다…… 난장판이 된 나의 책상. 쏘지도 않을 이 권총은 뭐지? 곰팡이 핀 식빵은? 밑창 뜯어진 신발을 신고 잘도 걷는구나. 제기랄…… 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입술이 시커멓게 죽어갑니다. 지난밤, 당신은 나를 떠나면서 말했다. “아름다운 영혼이에요. 당신은 정말 착해요.” 모든 게 끝장났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잠에서 깨어나면 밥알을 씹는다. 커피를 연하게 내리고 삼킨다. 온몸 곳곳 살아 있습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의 마음이 아직 살아 있다고! 나는 산 자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거리에 드러누웠다.
빗물이 얼굴 위에서 짓이겨집니다. 뜨거워……
너무 많은 소음. 너무 많은 바다. 너무 많은 축제. 너무 많은 현기증. 너무 많은 벌레. 벌레. 더운 벌레 떼…… 누워 있으면 벌레들이 귓구멍으로 기어 옵니다. 벌레가 춤을 추면
나를 이해하게 되어요? 마음.
갈비뼈가 앙상하고
가지 같다.
부러져?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처럼.
……나의 기쁨과 비명, 들려요?
괴로움은 슬픔의 친구입니까. 과거는 마음을 찌르고 천천히 조각낸다. 누구도 날 한 번에 부수지 못해요. 썰물에 쓸려가는 모래성. 나의 머릿속에는 빗방울로 돌을 깎는 조각가가 있습니다. 더 얇게. 더, 더 얇아질 때까지…… 이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공정원이라고? 아니요. 한 세기의 자연 정원이다. 대못이 아니라 바늘이라고요! 괴로운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