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충돌
이 종옥 著 김영사 刊
한국고대사를 비판적으로 쓴 책이다 작가의 생각이지만 주장을 들어 볼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는 민족을 만들기 위한 틀에서(일본의 작전으로)
1145년에나 겨우 쓴 삼국사기 이전의 신화나 구전 등 이야기를 무너트린단 는 것이다.
중국의 삼국지 晉나라 陳壽가 지은 동이전 서문은
“마침내 諸國을 두로 보아 그 법속과 대소 구별을 가리고 각 이름에 따라 모두 기록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 “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가 삼국사기 초기의 기록이 허구라고 비판하면서
일본 민족의 우수성을 만기기 위해 걸고 넘어온다.
왜가 한국의 남부를 통치하는 임나일본부설이 역사성과 객관성 과학화를 위해 식민지 조선이
역사 사료 삼국사기에 최초로 비판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와세다 대학의 교수로 그의 제자가 이병도 1919년 와세다 역사전공 졸업, 손진태 1927년 동 대학 졸업생이다.
“ 쓰다 소우키치”의 설을 존경하는 학자들이다.
이병도 씨는 1946년부터 서울대에서 제자를 양성한다. 54년 학술원 회원 60년 문교장관 학술원회장등을 역임한다.
따라서 쓰다 소우키치의 주장이 이병도를 통해 우리 역사에 반영 된 것이 틀림은 없을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BC2333년 이고 고구려는 BC37년 백제BC18년 신라는 BC57년 가락국은 AD42년이다.
멸망은 고구려 668년 백제 660년이다.
신라의 왕족은 박, 석, 김 6부촌 장은 이, 정, 최, 손, 설, 배씨다.
신라 29대 무열왕은 당 군을 끌고 와 삼한을 통일하나 당은 평양성 이북을 가져간다.
이에 당과 9년 전쟁을 한다.30대 문무왕까지, 31대 신문왕-35대 경덕왕 (765-780)까지 약 120년이 통일신라의 태평시대고
이후는 왕위를 가지고 계승 전을 벌리기 시작한다.
아래 부분은 작가의 글이 아닌 나의 자료를 쓴 것이다.
35대 경덕왕은 형으로부터 받고 아들 혜공왕에 넘어가나 37대 선덕왕은 17대 내물왕의 10세손이 오른다.
5년 재위 후 내물왕 11세손 경신에 빼앗긴다. 내물왕을 좀 알아보자.
내물왕은 재위가 무려 46년으로 신라 최장 혁거세 60년에 이은 동공2위다 奈勿왕 한자는 어찌 아니 (하랴)?, 이니
왕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이두문자 인지 모르겠다만, 그는 13대 미추왕의 동생이다.
미추왕 사후 76년이 지난 뒤 동생이 왕이 된 것인데 그의 아버지는 도대체 몇 살에 낳은 아이인지 모르겠다.
여하든 왕 욕심이 많은 DNA의 소유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이가 38대 원성왕으로 14년 재위하나,
39대 소성왕은 원성왕의 손자로 1년 재위 후, 죽자 장자
40대 애장왕이 즉위 9년 만에 41대 헌덕왕인 삼촌 언승에 타살된다.
이후 45대 신무왕까지 힘 있는 종형제들의 싸움이 계속된다.
여기서 조선의 문종과 단종 세조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태종을 원성왕으로 세종은 세자로 죽고,
문종을 소성왕으로 단종을 애장왕으로 그리고 세조를 헌덕왕으로 보면 쉽게 이해된다.
어린 단종처럼 어린 애장왕이 위에 오른 뒤 삼촌이 보필한다고 위장하다 9년 만에 타살 하니 서기808년이다.
이후 신라는 멸망의 길을 간 뒤 935년 멸망하니 127년 지난 뒤다.
사육신의 박팽년 선생이 애장왕 고사를 인용하여 단종 복위 동지를 모은다.
조선 때도 신라사를 인용한 것인데
나의 선대와 관련이 있어서 내가 자료를 가지고 있다.
신라의 좌승상 차승색은 애장왕의 아들을 옹립하고 부왕의 억울한 죽음에 원수를 갚고 정의를 세우고자
동지를 규합한다.
그러나 동지 김생은 좌고우면하다 밀고를 하여 거사가 틀통난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민가도 군대처럼 항상 지출순위를 가지고 있다가, 유사시 1순위만 가지고 도피하여 연명하는 지혜다.
D-데이에 약속장소 다리에는 관군의 횃불과 군마 소리만...
아뿔사 선왕의 아들 옹립 주도자 차승색은 단기 필마에 큰 아들 차공숙과 둘이 금덩이만 가지고
야밤에 그길로 도주한다. 뒤 체포조가 닥친 것이다.
그래서 선조의 지혜로 나도 아직 이 세상을 구경한 듯하다
기록으로 이를 남기여야 할 의무도 있는 것 아닌가!
이때도 신라의 왕권은 황해도 유주 구월산에 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차승색의 어머니 楊씨와 유사한 柳가로 개명하여
류 색 으로 아들은 류 숙으로 위장하나, 작은 아들 공도는 홀로 강남으로 도피하여 (차 씨의 舊姓이 왕 씨다 )
구성을 이어서 왕 씨로 변성명한다. 이가 강남 왕 씨 왕건의 4대조다.
류 색의 5대손 장자는 우리 시조인 류 차달이 된다.
류 색의 5대손 작은 아들이 윤 신달이다. 파평 윤 씨의 시조다.
윤 씨 족보에 근거한 것이고 혹은 신숭겸의 동생이라 기록도 있다.
왕건은 왕이고 신숭겸은 1등 공신 류 차달, 윤 신달은 2등 공신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10촌 즉 사종종형제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역사를 크게 좌우한 성씨의 탄생이야기인 셈인데 다시 신라 왕 얘기로 가자
.민가에 5대가 흐르는 동안 신라왕은 16명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왕권을 바로세우고자 하던 , 신라의 좌승상 차승색의 바른 뜻은 그의 5대손 중에서
후 삼국을 통일한, 왕 왕건을 낳고 대성 씨 류, 윤, 차, 왕, (신)씨 등 4-5가지로 퍼진 것이다.
다시 작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822년 38대 원성왕계 종족 싸움으로 김헌창의 난을 8장군이 동원되어 진압한다. 46대 문성왕 -56대 경순왕까지는
왕국으로 위엄은 없고 경주 근방의 좁은 땅을 가진 종이호랑이가 된다.
후백제가 892년 개국 -936년 멸망
태봉 궁예가 901년 나라를 각각 세우니
견훤은 51대 진성왕시대의 사람이다.
건국신화는 초기국가 연구에 끌고 들여야 한다. 고조선 단국신화 부여 동명 신화 고구려 주몽신화 ,백제 온조
신화, 가야 수로 신화 등이다.
첫째 건국신화 공간은 둘로 나뉜다. 원래 살던 공간 새 이주 공간
둘째 과학적으로 진위를 파악할 수 없다
셋째 신화적 특성을 주목해야 한다. BC2333년 의 고조선 형성시기도 단정하기 어렵다.
단군은 누구였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나?
1945년 이전 日 역사가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한국의 건국신화를 허구라 발명한다.
단군의 자손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로써 민족의 형성하는 것을 막았다.
위만은 조선인이 아닌 燕인이다.
사기열전 조선 편에 위만이 연인이라 분명히 기록이 있다.
한 고조 유방이 봉하였다는 노관이 흉노로 망명할 때 조선으로 망명한 연나라 사람이다.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도 한국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것을 참지 목하여 조선인으로 둔갑시킬 수는 없다.
미끼치기 한 역사 삼한 론으로 왜곡된 역사 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삼한은 1945년 이전
일본의 연구자들이 발명해 낸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