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3: 5.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3: 6. 세례
마 3: 5.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
많은 사람이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사람들의 회개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에 달려 있다.
1] 이때에
'이때에'는 세례자가 '회개'와 '천국' 선포 사역을 시작한 때(1절)를 가리킨다.
실로 400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적 기갈의 암울한 시대의 절망 속에 살아가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이야말로 그들의 영적 가뭄을 해갈시켜줄 단비로 여겼으며 그중에서도 어떤 이는 그를 예언된 메시야로 기대하며 그에게 모여들었을 것이다.
* 눅 3: 15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 이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 요 1: 20 -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 예루살렘과
여기에 나오는 지명(地名)들은2: 3과 마찬가지로 장소를 의인화시킨 것으로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회개자로서 제일 먼저 광야로 향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3] 온 유대와
'온'이라는 말은 그 당시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환대(歡待)를 암시한다.
4]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요단 강 사방'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이두매, 베레아, 사마리아 등의 이른바 종교적으로 소외된 지역 전반을 가리킨다.
또 요한 사역의 본거지가 요단강인 것과 사역의 내용이 '회개 촉구'와 '세례 베푸는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마 3: 6. 세례 -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
자기의 죄를 본인 스스로 자복하여야 한다.
1]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자기들이 범한 죄를 조목조목 고백했음을 가리킨다.
요세푸스(Josephus)는 '그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율법에 대한 죄를 고하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죄의 고백은 율법에 규정된 의무로서 당사자의 책임이자 제사장의 의무였다.
* 레 5: 5 -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 레 16: 21 -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 레 26: 40 -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이스라엘이 영적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는 이러한 고백이 순조롭게 이뤄졌으나 영적 기갈 상태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마태는 세례의 선행 조건으로 '죄의 고백'을 언급했을 뿐 '죄 사함'은 예수가 죽을 때까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 느 9: 2-3 –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 시 32: 5 -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 마 26: 28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의 세례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개인적인 '죄의 자복'이 이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된 적이 없었다.
바야흐로 메시야 도래의 기운이 전국적으로 고조되고 있었다.
2] 요단 강에서
히브리어 '야라드'(*, 내려가다)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빨리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이 강은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바다를 경유한 다음 사해에 달한다. 요단의 수원에서 사해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217km인데, 전장(全長)은 강의 굴곡과 경사 때문에 400km 이상이 된다.
요단은 팔레스틴 최대의 강이며, 이스라엘 산업의 젖줄이 되는 중요한 강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와도 필연적인 깊은 관계가 있다.
(1)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
* 창 13: 10 –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2) 야곱의 밧단아람의 피신
* 창 32: 10 -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3) 여호수아의 가나안 입성
* 신 3: 26-29 –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4) 사사시대의 에홋
* 삿 3: 26-30 – 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5) 기드온
* 삿 7: 24-25 – 24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6) 입다의 전장(戰場)
* 삿 12: 5-6 –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 엘리야의 승천
* 왕하 2: 6-11 –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8) 엘리사의 나아만 문둥병 치유
* 왕하 5: 1-14 –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곳에서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것은 의미 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요단강은 물살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그 중 한 여울에 자리 잡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을 것이다.
3]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카이 에밥티존토)
할례(circumcision)가 아브라함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계약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세례 행위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세례가 죄에 대한 고백과 씻음,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부가된 것은 요한에게서 유래한다.
요세푸스(Josephus)는 증언하기를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예비 행위로서 의로운 행위, 곧 죄 고백을 요구했다고 한다.
따라서 요한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자고 강력히 촉구한 점으로 보아 공개적으로 죄와 인연을 끊는 것이 세례의 전제 조건이었다.
쿰란(Qumran) 종파는 제의적 부정(祭衣的 不淨)을 제거키 위해 정결례(淨潔禮)를 행했다고 한다. 당시 랍비들은 유대인이 아닌 한도 내에서 개종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요한의 세례가 온몸을 물에 잠기게 하는 침례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세례 의식이 침수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상징하는 '회개와 사죄', 그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새 생명'이 중요하다. 요한은 계시 수준의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께서는 완성된 사역의 세례를 베푸셨다.
* 마 26: 28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요한의 세례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고 유대 민족을 새 생명의 길로 불러내고 있었다(Robertson).
각 처의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설교에 대한 반응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주의 종들의 손에 붙이실 때 부흥은 일어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그는 옥에 갇히고 목 베임을 당하였으나, 그의 사역은 성공이었다.
개인과 교회의 신앙적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듯이, 신앙의 부흥도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그가 긍휼히 여기실 때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교회의 부흥을 경험치 못할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예레미야 선지자로 그는 약 41년간 사역했으나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한 것 같다. 예루살렘 거리에는 한 명의 의인이 없어서 마침내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과 칼날에 의해 피로 물들었고 황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성실하게 선포하고 가르친다면 그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쓸 것이 없다.
세우시는 자도 하나님이시요, 허무시는 자도 하나님이시며, 모으시는 자도 그 분이시요, 흩으시는 자도 그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 그의 말씀을 성실히 전달하는가?’에 있다. 숫자에 관심을 둘 때 거짓과 불신앙이 포용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부흥을 주시든지 않든지 상관치 말고 하나님 앞에 충실한 교회, 충실한 목사, 충실한 직분자, 충실한 교인이 되자.
4] 세례의 의미와 구속 사역의 완성 ( 마 3: 5-6 )
(1) 불세례의 의미
① 침수(물) 세례
세례 요한은 자기 죄를 자복하는 자들에게 요단 강에서 세례를 주었다. 세례라는 헬라어 ' '(밥티스마)는 '물에 가라앉히다', '물에 잠그다'라는 뜻이다.
요한이 요단 강에서 베푼 세례는 요단 강 물에 잠기게 했다가 나오게 하는 침수 세례였다. 그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 벧전 3: 21 -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 요한은 그것을 회개를 위한 세례라 했다.
* 마 3: 11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베드로는 그의 오순절 설교에서 '죄 사함을 얻는 세례'라고 했다.
* 행 2: 38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바울은 이 침수 세례의 의식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관시켰다.
* 롬 6: 3-11 –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거기에서 우리는 침수 세례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다.
②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으로의 탄생
물 세례에 있어서 물속에 잠기는 것은 나의 옛사람, 즉 죄악 속에서 살던 나의 옛 사람을 물속에 장사지내는 것을 상징하고, 물 위로 다시 나오는 것은 새사람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으로의 탄생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관되어 구원의 체험으로 승화되었다.
* 벧전 3: 21 -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즉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옛 사람은 장사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탄생하는 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침수 의식을 통하여 상징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신앙고백이 없는 사람에게 세례 의식을 집행한다는 것을 무의미한 것이며, 그것은 위선이다.
(2) 세례와 구속 사역의 완성
① 할례
세례가 인간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영적 체험과정이라고 할 때에 구속사적인 안목에서 그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여금 구속 사역을 담당할 언약의 민족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이들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남자는 출생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했다.
* 창 17: 10-14 –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것이 히브리 민족과 이방인과 구별하는 증거가 되었다. 즉 할례는 육체에 새긴 히브리 민족의 표증으로서 히브리 민족을 이방인 가운데서 '분리'시키는 의식이 되었다. '하나님 편으로의 분리','성별', 그것이 할례의 의미다.
하나님의 이 분리 작업, 즉 구속 사역은 구약에서는 육체적인 것이다. 율법은 행함에 있으며, 그것은 육체적 행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 사역을 인간의 육체로부터 시작하셨다.
② 물 세례
육체의 세례가 할례였다고 하면, 물 세례는 마음의 세례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 21)고 했다.
즉 물세례는 세상의 죄악으로 향해 있던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성별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약시대가 시작되는 때 하나님은 세례 요한으로 하여금 요단 강에서 마음의 세례를 베풀게 하신 것이다.
육체의 세례였던 할례가 히브리인들,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국한되었던 것에 반하여 마음의 세례인 물 세례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이방인까지도) 물 세례를 받는 자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다.
* 마 3: 9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 갈 3: 29 -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③ 성령 세례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그 뒤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언했다.
* 마 3: 11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에 위임하심으로써 성취되었다. 성령 세례를 통하여 거듭나는 것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별개의 체험이다.
거듭나는 것은 중생을 의미하고,
* 요 3: 3-8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는 것은 권능의 부여를 의미한다.
* 행 1: 5, 8 –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권능은 증인이 되는 능력이며, 순교 신앙의 능력을 말한다. 이 성령 충만의 역사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성취되었다.
* 행 1: 5, 8 -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행 2: 4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세례는 단회적 체험이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 체험이다. 하나님은 물 세례를 통하여 나타내는 신앙고백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 벧전 3: 21 -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인간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육체(몸), 혼(마음), 영은 인간의 구성요소다. 할례(육체의 세례), 물 세례(마음의 세례), 성령 세례(영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 사역을 완성 시키셨다. 물 세례, 성령 세례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전 인류에게 보편화되었다.
* 행 2: 1-4 –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