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1. 예수 그리스도의 호칭에 대한 설명
첫 번째로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여호수아(예호슈아)’이다. 우리의 구속주요 중보자이신 그분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예수의 직명인 ‘그리스도(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삼상 24:6). 구약에서 메시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에 의해 특별한 직무와 능력을 부여받아 선별된 자들이다. 이렇게 선별된 직분으로는 왕, 제사장, 선지자 등이 있다.
세 번째,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하나님이신 구주”(벧후 1:1)라고 하며 ‘하나님(떼오스)’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예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칭하고, 20장 28절에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요한일서 5장 20절에서는 “참 하나님”으로 예수를 칭하였다.
넷째, ‘주(아도나이, 큐리오스)’라는 호칭이 있다. 이 호칭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 그물을 내려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사용하였으며(눅 5:8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제자중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 나의하나님”(요 20:28)이라고 했다. ‘주’라는 호칭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그래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에서는 ‘여호와’라는 호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이다. 예수님도 스스로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을 ‘주’라고 증거하셨다(막 12:35-37).
다섯째, ‘구주’ 곧 ‘구원자’라는 호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다(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로다 - 출 15:2).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천사들이 전한 기쁜 소식에서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고 선포되었다.
여섯째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 1:23).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여 주셨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주실 때 이스라엘의 정황은 매우 암울했다. 당시 유다의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람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앗수르의 군대를 끌어들엿다. 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싫어했다. 이때 하나님이 친히 주신 징조와 예언이 바로 ‘임마누엘’이었다.
일곱째, ‘인자’라는 호칭은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사용하기를 즐기셨다. 이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은 선지자와 같이 구별된 사람을 가리키는가 하면(겔 2:1) 일반 사람을 두고 쓰기도 했다(사 8:4). 그러나 단순히 여자에게서 난 자를 가리키기보다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시 8:5)를 함축하고 있으며, 특별히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 ‘인자’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히 2:9), 곧 만물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시다(히 2:10).
여덟째, ‘임금’이라는 호칭은 헬라어로 “아르케고스”인데 신약에 4회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3장 15절에서 이 단어는 “생명의 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생명의 창시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했으나 사망에 매여 있을 수가 없어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우리 생명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 그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 죄와 사단에 대해 결정적으로 승리하셨을 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서 장차 최종적으로 승리하심으로써 그의 역사를 완성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같은 결정적 승리를 즐거워할 뿐 아니라 최종적 승리를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종말은 현재적으로 이미(already)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으로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미래에 최종적으로 심판과 함께 임할 것이기 때문에 아직 임하지 않은 것이다(not yet). 전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요, 후자는 하나님의 권능의 나라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은혜의 죄용서를 통해서 죄와 사단을 이기는, 현재의 하나님 나라요, 후자는 권능과 심판을 통해서 죄와 사단을 이기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유를 가르치시던 가운데,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다”(마 13:11)고 말씀하셨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이미 천국이 임했다고 하셨을 뿐 아니라(막 1:15),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들 가운데 천국이 있다고 하셨고(눅 17:21), 천국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셨다(롬 14;17)
2. 믿음과 회개는 무엇이며(지, 정, 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칭의(인격적 칭의와 행위적 칭의)와 성화(확정적+점진적)는 무엇인가?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편이며, 성령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사 곧 선물이다(엡 2:8).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어 있다(행 13:48).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의 루아디라의 경우처럼 성령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행 16:14-15). 다시 말해 예수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낮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에 순종하여 사셨으며,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셨으며,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주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을 마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복음의 말씀을 믿을 수 있으려면 성령이 그 마음을 감동해 주셔야 하지만(행 17:4, 12),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일과 성례에 참여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회개는 자기 죄의 위험함과 추하고 가증함을 보고 느끼며,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써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피조세계와 새로운 사귐의 관계를 회복하는 경험이다. 그러므로 죄는 중대한 방향 전환이요 관계회복이다.
믿음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성령의 회심사역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인데 비해,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감한 뒤, 마귀와의 관계를 단절하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전향하여 우리의 소욕을 죽이며, 일평생 죄와 싸우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지만(참조, 롬 8:31-32), 하나님께서는 그가 부르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그들을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 즉, 마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대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의롭다 하심(justification)을 한자어로 ‘칭의’라고 한다.
‘칭의’는 예수 믿는 자를 의로운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어 형벌과 심판을 단번에 면케 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해 줌으로써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롬 3;24; 8:30).
이 칭의는 믿는 순간에 선언되는 것이므로 순간적인 신분의 변화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기 때문에, 이 칭의는 일평생 유효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백되는 믿음을 보시고 자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칭의는 신분의 변화면에서는 과거적이요(처음 믿을 때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 관계적 인격적인 면에서는 현재적이며(지금도 믿음의 경주와 싸움을 하는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있으므로 우리가 의인이다), 종말론적인 면에서는 미래적이다(심판의 날에 의인들이 의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예비된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린다. 참고, 딤후 4:8; 마 25:34,46)
칭의는 흔히 죄인의 더러운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에 비유된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아 예수로 옷을 입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되고 신분(state)상의 변화가 있게 되면, 그의 내면적 인격적 상태(state)도 변화하게 된다. 신분과 관계의 변화인 칭의는 상태의 변화인 성화와 사실상 동시적으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법정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신분이 변화되어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회복되면(칭의), 즉각 도덕적으로 내면적인 상태(인격)가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삷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확정적 성화).
또, 성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믿음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죄를 씻음 받아 깨끗하여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점차적으로 회복되어 범사에 하나님을 감사 찬미하고 순종하며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점진적 성화). 그러므로 회개와 성화없이 죄용서와 칭의만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자는 의와 거룩함과 지식에 있어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3. 예수님이 성취하신 구원이 어떤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인가?
하나님은 죄와 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이자 구속주요 중보자로 보내셨다. 그래서 그는 죄인들을 위한 복음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 동료간의 식어버린 사랑의 관계가 화해되며, 탐욕적인 인간들이 개인주의적인 삶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통일되기 때문이다.
복음의 말씀은, 오직 우리의 진실한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신앙을 요구한다(롬 10:6-1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기에 예수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누린다.
그런데 이 복음의 진리는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요 14:26).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해야 한다. 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중요한 일은 믿음과 회개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예수님이 성취해 놓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복음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이 점에서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다(롬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