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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해가 진다. 붉게 물든 소나무 숲 사이를 한 사나이가 걷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 소리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그곳에 노을이 붉게 물결친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을 때, 소나무에는 목매어 죽은 시체가 걸려있다. 한 그루에 하나씩, 마치 도롱이벌레가 번데기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시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왼쪽으로 늘어뜨리고 해 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는 눈을 감고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다시 한 번 바다 냄새가 들리는 바람이 불어온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소나무 숲에는 단지 시체를 닮은 바람만이 아스라이 휘몰아친다. 황혼의 사수, 그는 이 세계에 예비 된 세 명의 황혼의 사수 중 마지막 사수였다. 지는 해를 쏘아 떨어뜨릴 수 있는 자, 노을의 마법에서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있는 자. 그의 등에는 묵직한 묵빛의 커다란 총이 걸려 있다. 첫 번째 사수는 소나무 숲에서 시체를 보고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그의 시체는 새들이 수습했다. 두 번째 사수는 소나무 숲을 벗어나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화약 냄새가 밴 두개골에는 새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그녀의 시체는 바람이 수습했다. 세 번째 사수는, 자신이 결코 두 명의 사수처럼 허무하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가 소나무 숲을 벗어났을 때, 하늘 끝에서 아련히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귀를 막고 기도했다. 귀에서 손을 떼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사수의 백골이 발아래에서 부서졌지만, 그는 애써 보지 못했다. 그런 그의 눈앞에 바다가 - 온통 붉은 빛으로 넘실거려 어느 곳이 하늘이고 어느 곳이 바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 펼쳐졌다. 그 붉은 빛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으며 다만 그 시간을 붉게 물들이는 그런 빛이었다. 문득 그는, 자신이 결코 두 명의 사수보다 잘 해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총에 손을 대면 방아쇠는 저 해를 향해서가 아닌 자신의 눈을 향해서 당겨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그래서 그는 총을 잡았다. 묵직한 금속제의 차가움이 피부 아래로 스며들자 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수도 없이 쏘았던 과녁 중 하나였다. 총을 풀고, 정확하게 조준을 한 뒤, 방아쇠를 당기면 끝나는, 마치 밥을 떠서 입에 넣는 것과 같은 허무하고도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가 밥을 떠먹는 것처럼 저 해를 쏴서 떨어뜨린다면 그는 앞으로 평생 자신의 손으로 밥을 떠먹지 않아도 될 만큼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총을 풀고, 정확하게 조준을 했다. 이미 수평선과 닿아 붉은 혀를 내민 태양은 다소곳한 과녁이었다. 그는 천천히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조준열 끝과 태양의 중심을 일치시키고 서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나에 숨을 들이쉬고, 둘에 숨을 내뱉고, 셋에 숨을 멈추고, 넷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련의 작업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정리되었다. 하나에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둘에 숨을 길게 내뱉었다. 셋에 숨을 고요히 멈추었다. 서서히 그의 시선이 조준열과 태양에 집중되자 주변의 사물들이 빨려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하늘하늘 흩날리던 풍경에서 하나씩 발갛게 물든 아기의 손들이 돋아난 것은 그가 넷을 세면서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기겁을 한 그는 평정심을 잃고 수면에 뜬 태양에 총을 발사했다. 수면에 뜬 태양의 가운데, 총알이 파고들어간 흔적에서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그 파문을 중심으로 하나씩, 아까의 아기 손과는 다른 길고 아름다운 여인의 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넷, 여덟, 열여섯, 서른 둘, 예순 넷... 동심원을 그리며 피어난 손은 바람에 흩날리듯 작게 흔들리고 있다. 온 바다가 그런 손으로 채워지는 데는 해가 물속으로 절반정도 가라앉을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무섭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앞에 돋아난 손을 꺾었다. 그의 손 안에서 손은 여전히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문득 뒤를 되돌아봤다. 소나무 숲에는 온통 시체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인 채로. 바닷가에는 죽어버린 두 번째 사수의 백골이 붉은 바람의 의자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 속에는 붉은 노을을 바른 채로. 다시 뒤를 돌아보자 온 바다는 손으로 뒤덮여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는 꽃을 한 송이씩 든 채로. 천천히, 그가 손을 들어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그가 손으로 손을 움직여 목을 감싸 쥐도록 만들었다. 그가 손에 힘을 가해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 힘은 그의 힘도 아니었고, 손의 힘도 아니었다. 소나무에 매달린 시체의 힘도 아니었고, 바람의 의자에 앉은 백골의 힘도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힘이 아닌 힘에 목이 졸린 그는, 서서히 동공이 넓어졌다. 그의 넓어진 동공 속에는 소나무와, 백골과, 온통 붉은 바다만이 가득했다. 더 이상 그의 손에 담긴 손도 존재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그의 목을 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숨이 막혔다. 그렇게, 황혼의 사수가 쏘아 떨어뜨리지 못한 해는 서서히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해가 마지막 빛을 뿌림과 동시에 그의 목숨도 끝이 났다. 마지막 황혼의 사수가 사라진 그 세계는 더 이상 노을의 마법에서 풀려날 수 없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도 바닷가 노을 아래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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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틀 5.0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근데 좀 짧네요. 아, 더 읽고 싶은데...아쉬워요ㅠ
이거 정말 그냥 끄적거린거 맞아요? 왠지 본업작가로 활동하셔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