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 양해 바랍니다.
칼 말론은 이제 더 이상 팀 덩컨과 비교되지 않는다.
*일부 내용은 영어를 잘 못해서 번역을 못했는데, 내용전개에 큰 지장을 줄 내용이 아닌 부분은 번역을 못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닉스 팬들은 그들이 패트릭 유잉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안간힘을 쓰려 한다.
모두는 유잉이 진화형 빌 러셀일 거라고 믿었다. 파괴적인 수비력으로 리그를 장악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단지 일어나지 않았을뿐, 그렇지 않았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단지 그것은 헛된 망상이었고,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몇몇 점에서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걸 깨달았다. 유잉에 대한 과대망상증을 가지고 있는 몇몇 닉스 팬들을 제외하고선
당신은 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남성 캐릭터가 병원 침실에서 죽고 그의 부인은 그를 붙들고 그는 죽지 않았다고 울부짖고 그 병원안에 있는 이들은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그들은 마침내 말한다 "이봐요 그는 황천길로 갔어요"그리고 그녀를 떼어내려 한다. 떼어내려 하자 그녀는 "아니에요, 그는 살아있어요! 곧 일어날거에요! 그리고 그녀는 붕괴되고 눈물이 발작되었다. 그것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모든 닉스 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킴이 94년 파이널에서 유잉을 불고기로 만들었을때, 유잉은 "이 사나이는 언젠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거야"라는 명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닉스팬들은 여전히 병원침대에서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유잉의 경력은 좌절스럽거나(컵이 반만 꽉찬) 혹은 경이적으로 실망스러운(컵의 반은 덜찬) 것으로
그의 최절정기는 90년도였다. 평균적으로 29-11-4(블락)에 근사하고 55프로의 슈팅을 때리며 닉스를 45승으로 이끌던 시기, 그는 보스톤으로부터 반드시 승리해야 할 경기인 4차전에서 44-13을 기록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게 하였고, 5차전에서 31득점으로 쇼킹한 업셋을 이루어냈다.
내가 가든에서 유잉이 불가능해보이는 3점슛을 성공시켰을때 나는 그때의 생각을 기억해낼수 있다. "그는 최대치를 해낸거야.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어"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유잉과 닉스를 쉽게 2라운드에서 무너뜨렸고 유잉은 다신 셀틱스와의 시리즈에서처럼의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고? 그의 무릎 때문이다.
대학생 유잉은 페인트존에소 호랑이같았고, 모든 슛을 블락하려고 점프해댔다. 그 결과 그는 NBA에서 점프할때마다 무릎을 구부리며 한박자 느린 점프타이밍을 보였고, 그리고 위대한 리바운더나 패서가 되지도 못하였으며 로 포스트 공격의 교과서로 보이지도 못했다. 이미묘한 운동능력의 균열은 그가 좋은 엘리트 센터지만 위대한 센터는 아니라는 것에 다름 아님으로 판명나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약간 슬픈 얘기다.
뭔가가 2% 부족한 유잉은 MSG의 환호 아래 그의 강렬한 인상을 완벽히 유지하려고 하였고, 결정적인 활약 이후 그의 가슴을 치고 "나는 전사야"라고 인터뷰나 어설픈 노력 후에 강렬해 보이는 척 하려고 애써 노력했다.
모든 종류의 헛된 노력들.. 그러나 그것들은 거짓이었다. 세련되고 고상한 닉스 팬들은 그를 바라보며 그의 장점에 대해 토론하고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똑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오랫동안 유잉은 우리팀의 최고 선수지만, 우리는 아마 우승 못할거야
팻 라일리는 거의 유잉에게 슈퍼스타의 구세주처럼 보이게 했고, 닉스를 배드보이스2기화시켰고, 폭력수비전술을 사용함으로써 라일리는 유잉을 비밀스러운 센터화하였다.
그들은 조든의 농구 안식년 기간동안 때를 잡아 시카고를 잡고 컨파 7차전에서 유잉의 몬스터스러운 활약과 함께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2-20-7-5를 기록하며 인디애나를 격파하면서.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진을 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실망스러운 파이널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다음연도 레지 밀러를 위시한 인디애나 팀은 그들의 강렬함을 동부 2라운드에서 뿜어내었고, 유잉이 7차전 2점차상황에서 6피트짜리 레이업을 미스하면서 그들은 컨파에 2년연속 진출하였다. 그리고 유잉의 창문은 닫혔다. 비록 사람들이 창문이 닫혔다는데를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결렸지만. 2001년이 되기 전 닉스는 마침내 유잉의 만기 딜을 이용해 많은 충격적인 딜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15년간 집안의 어려운 일을 해왔고 마침내 병들어 욕조에서 자려고 하는 백내장 걸린 개를 유잉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몇가지 이유로 고통을 감내해내지 못하였다. 유잉의 부족한 카리스마는 아마도 모제스 말론 이래로 가장 포스트게임 인터뷰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몇가지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손감각이 끔찍히 나빴고, 클러치 타임에서 쫄았고, 좋다고 할 수 없는 리바운더였고, 더블팀시 킥아웃 능력이 형편없었고, 팀메이트의 능력을 업글시키는데 젬병이었다. 그리고 그는 팬과 친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잉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인 94년 파이널에서, 그것은 열차추돌사고로 판명나고 말았다. 유잉은 18.9점에 36.25%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했다. 하킴이 27점 9리바운드에 3.86블락에 근사한 활약과 50%의 야투율을 기록하는동안. 그 격차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격차다. 유잉의 랭킹 39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전성기때 컨텐더급 팀을 만드는데 존 스탁스가 아닌 글렌 라이스, 미치 리치몬드, 레지 밀러 또는 다른 슈가들이었다면 94년 파이널에서 우승했을 것이다. 드림팀 동료들인 드렉슬러, 로빈슨, 말론처럼 우리는 유잉이 조연인데도 주연인척 가장하는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닉스 팬들은 그 시기동안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음에도. 유잉 이론의 기원은 말론 설명할수 없었던 현상-조지타운 호야스와 뉴욕 닉스가 유잉이 없을때 더 좋은 플레이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데이브 키릴리는 나와 함께 유잉 이론을 만들어낸 동료였다. 데이브와 나는 몇주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마침내 두가지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결론을 도출시키게 되었다. 유잉의 지위는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슈퍼스타 선수가 지나친 미디어의 관심과 팬의 관심으로 인해 그의 팀이 그로 인해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부상이든, 트레이드든, 은퇴든, 자유계약선수로 나가는 순간 미디어와 팬들은 그 팀에 대해 관심을 끊어버린다. 유잉이 99년 컨파 2차전에서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리즈가 아웃되었을때 페이서스의 시리즈 승리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보였다. 시리즈 승리는 오직 유잉과 함께일때만 가능한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이 순간 유잉 이론에 대한 시험이었다. 3차전이 되었을때 데이브는 삼출성의 자신감과 예언으로 특정 조건에서의 용어를 확립하게 되었다. 유잉의 부상은 닉스가 승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닉스가 3차전에서 승리하였을때, 데이브와 나는 닉스가 파이널에 진출할 것으로 확신하였고, 믿을수 없게도 닉스는 4경기중 3경기를 승리하며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었고, 유잉 이론은 나의 웹사이트에 등재되었다.
유잉 vs 라이벌 센터들(+하워드)
CATEGORY |
DREAM |
SHAQ |
ADMIRAL |
DH12 |
EWING |
GAMES |
145 |
216 |
123 |
61 |
139 |
WIN-LOSS |
76-69 |
129-87 |
70-53 |
29-32 |
72-67 |
W-L PERCENTAGE |
0.5241 |
0.5972 |
0.5691 |
0.4754 |
0.5180 |
MINUTES |
5749 |
8098 |
4221 |
2372 |
5207 |
POINTS |
3755 |
5250 |
2221 |
1201 |
2813 |
OFFENSIVE REBOUNDS |
471 |
866 |
367 |
250 |
337 |
DEFENSIVE REBOUNDS |
1150 |
1642 |
934 |
611 |
1098 |
REBOUNDS |
1621 |
2508 |
1301 |
861 |
1435 |
ASSISTS |
458 |
582 |
280 |
85 |
275 |
STEALS |
245 |
117 |
151 |
47 |
122 |
BLOCKS |
472 |
459 |
312 |
166 |
303 |
TURNOVERS |
424 |
649 |
280 |
216 |
345 |
PERSONAL FOULS |
562 |
769 |
423 |
254 |
522 |
FIELD GOALS |
1504 |
2041 |
768 |
419 |
1104 |
FIELD GOAL ATTEMPTS |
2847 |
3627 |
1604 |
697 |
2353 |
3-POINT FIELD GOALS |
4 |
0 |
1 |
0 |
8 |
3-POINT FG ATTEMPTS |
18 |
0 |
10 |
3 |
23 |
FREE THROWS |
743 |
1168 |
684 |
363 |
597 |
FREE THROW ATTEMPTS |
1034 |
2317 |
966 |
626 |
831 |
DOUBLE-DOUBLES |
100 |
142 |
69 |
47 |
79 |
TRIPLE-DOUBLES |
1 |
0 |
1 |
0 |
0 |
MINUTES PER GAME |
39.65 |
37.49 |
34.32 |
38.89 |
37.46 |
POINTS PER GAME |
25.90 |
24.31 |
18.06 |
19.69 |
20.24 |
OFFENSIVE REBOUNDS PER GAME |
3.25 |
4.01 |
2.98 |
4.10 |
2.42 |
DEFENSIVE REBOUNDS PER GAME |
7.93 |
7.60 |
7.59 |
10.02 |
7.90 |
REBOUNDS PER GAME |
11.18 |
11.61 |
10.58 |
14.11 |
10.32 |
ASSISTS PER GAME |
3.16 |
2.69 |
2.28 |
1.39 |
1.98 |
STEALS PER GAME |
1.69 |
0.54 |
1.23 |
0.77 |
0.88 |
BLOCKS PER GAME |
3.26 |
2.125 |
2.54 |
2.72 |
2.18 |
TURNOVERS PER GAME |
2.93 |
3.00 |
2.28 |
3.54 |
2.48 |
PERSONAL FOULS PER GAME |
3.88 |
3.56 |
3.44 |
4.16 |
3.76 |
FIELD GOAL PCT% |
0.5283 |
0.5627 |
0.4788 |
0.6011 |
0.4692 |
3-POINT PCT% |
0.2222 |
|
0.1000 |
0.0000 |
0.3478 |
FREE THROW PCT% |
0.7186 |
0.5041 |
0.7081 |
0.5798 |
0.7184 |
TRUE SHOOTING PCT% |
0.5686 |
0.5649 |
0.5473 |
0.6175 |
0.5174 |
PLAYER EFFICIENCY RATING |
25.69 |
26.13 |
23.02 |
23.40 |
19.63 |
WIN SHARES |
22.60 |
31.08 |
17.52 |
9.32 |
14.06 |
WIN SHARES PER 48 MINUTES |
0.1887 |
0.1842 |
0.1992 |
0.1886 |
0.1296 |
CHAMPIONSHIP RING |
2(1RU) |
4(2RU) |
2 |
0(1RU) |
0(2RU) |
FINALS MVP |
2 |
3 |
0 |
0 |
0 |
ESPN에서 뽑은 플레이오프 퍼포먼스 50-78년 이후부터 선발
샼 4회(00, 01, 02, 04), 드림 3회(86, 94, 95), 제독 1회(99), 하워드 1회(09), 유잉 0회
-준우승자, 나아가 컨파에서 떨어진 선수도 일부 뽑혔는데 유잉만 혼자 없음. 앨런 아이버슨은 리스트엔 없지만 새가슴소리 듣는선수는 아니니 제외하고, 공교롭게도, 같은 무관의 제왕 라인 칼 말론도 파이널까지 진출했고 준우승했음에도(바클리와 노비가 준우승시절에 있는데) 없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플레이오프 활약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빌 시몬스의 말-"케빈 가넷은 08년 우승을 통해 칼 말론, 크리스 웨버, 엘빈 헤이스, 패트릭 유잉과 같이 클러치와 거리가 먼 사나이들 대열로부터 완전히 탈피하게 되었다"을 강렬하게 뒷받침해주는 게 아닐까? 이 수치를 보고도 하워드가 유잉 만나면 퍼스트팀 다 상납할 선수로 보이는가? 하워드와 유잉의 공격력차이? 그래봤자 그 둘의 공격력 차이는 압둘자바와 유잉의 공격력 차이만큼은 아닐거다. 유잉이 아무리 하워드보다 공격력이 뛰어나도 하워드를 상대로 40-9라는 극단적인 차이로 이길 수는 없다는걸 우리는 안다(카림이 89년 유잉 상대로 이긴 수치, 카림은 6년후 닥터J를 상대로 41-23을 기록).
그리고 99파이널 당시 상대팀 선수이자 90년대 센터포지션에서 각축전을 벌였던 데이빗 로빈슨의 패트릭 유잉에 대한 멘트도 한번 살펴보자.
-이 부분은 알럽의 패밀리 가이님의 데이빗 로빈슨 기고문에서 인용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팀과 나는, 패트릭 유잉이 아킬레스 건 부상 때문에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뉴욕닉스는 스몰 라인업 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코트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5차전의 마지막 플레이가 전체 시리즈를 잘 요약해준다. 경기 종료 2.1초 남은 상황에서 닉스가 78 - 77로 뒤지고 있었고, 라트렐 스프리웰에게 인바운드 패스가 들어갔다. 스프리웰 입장에서는 다른 팀들이라면 레이업을 하거나 돌파로 파울을 얻어낼 수 있었겠지만, 덩컨과 내가 버티고 있는 앞에서 제대로 된 슛을 날릴 수는 없었다. 시리즈 전반을 통틀어 우리가 갖고 있던 사이즈 상의 우위는, 닉스가 잡을 수 있었던 승리의 기회를 너무도 많이 놓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뉴욕 닉스는 우리가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그 어느 팀보다도 강하고 터프했다.
결국에는 패배했지만, 그들은 정말 용감히 싸웠다. 사람들은 유잉 없는 뉴욕 닉스는 우리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유잉이 있었다고 해도 닉스가 더 훌륭히 플레이 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유잉이 없었으므로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을 더욱 위력적으로 하는 트랜지션 게임을 이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유잉이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슛은 자제하고 리바운드와 수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크리스 더들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된다) 닉스의 승리에 다소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그러는 대신 슛 쏘게 공 달라고 계속 그랬다면 닉스는 전혀 다른 팀이 되었을 것이다. 즉 별로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패트릭 유잉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첫 번째 우승을 위한 파이널 무대에서 뛰지 못하고 단지 벤치에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유잉이 닉스 팀원들에게, 자신을 위해 꼭 반지를 얻으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의 팀이 당신 없이도 우승했다면 그 기분은 과연 어떨까? 차라리 당신이 없을 때 그 팀이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반지가 선수 궁극의 목표인 건 알지만, 만약 그런 경우라면 우승을 한다고 해도 결코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다.-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없는 것만도 못한 우승은 무의미함을 뜻하는게 아닐까? 자 그렇다면 없는 것만도 못한 우승을 한 슈퍼스타들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는가? 아예 가비지용 선수 말고, 그렇지, 엘빈 헤이스와 타이니 아치발드가 그 대표격이다. 타이니 아치발드는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플레이오프 성적표가 어떤지 궁금한가? 47경기에서 1642분동안 PER 12.71 WS/48 0.071 TS 0.505밖에 안된다. 이건 완전히 롤플레이어 수치 아닌가? 그는 5년의 플레이오프동안 단 한시즌도 PER이 15가 된적도(심지어 전성기적에도) WS/48이 0.100이 된 적이 없다. 그리고 유일한 우승인 파이널에서 33.8분동안 10.3점 1.2리바 5.5어시 0.7스틸 2.7턴오버 36.4%의 야투와 87.5%의 자유투성공률이 전부였다. 세드릭 맥스웰과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꼽사리껴서 우승해서 지금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득점왕과 어시왕을 공식적으로 한번에 달성한 유일한 선수라는 칭호뿐이지, 우승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엘빈 헤이스는 어떤가? 내가 그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하자 허슬 플레이어님께서는 그를 몇차례 변호했고, 나는 그것에 대해 내가 그에대해 비판하기 전에 얼마나 그의 누적스탯에 대해 칭찬했는가에 대해서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래서 "매니아 데이터가 날아간(알럽에는 존재) 2012년 11월 17일 엘빈 헤이스의 67세 생일날" 나는 그에게 생일축하한다며 글까지 썼고 오해를 풀었다. 위에서 케빈 가넷의 우승에 대한 인용문에 있는 구절중 클러치와 거리가 멈에도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했기에 이자리에서 내가 아는 사실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에 대한 평판은 되도록 자제하고 우승시즌의 실패와 우승하기까지의 3년간만 이야기해보겠다. 75년 파이널에서 엄청난 대파란이 일어났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릭 배리의 원맨쇼에 힘입어 언셀드와 헤이스를 위시한 그시즌 최강팀 워싱턴을 4-0으로 무너뜨렸다. 이것은 97-98시즌 분데스리가에서 2부리그에서 승격한 카이저슬라우테른이 작년도 우승팀 바이에른 뮌헨을 2위로 밀어내고 우승을 차지한 것보다 훨씬 더 쇼킹한 일이었다. 엘빈 헤이스는 준우승한 다음 시즌 그의 커리어에서 특이한 이력을 남기게 되었다. 시즌 2경기 결장. 통산 9경기 결장했고, 많아야 1경기 결장하던 그가 정신적 문제와 우울증으로 인해 2경기나 결장했던 것이다. 데이브 빙이 말년에 우승찾아 삼만리식으로 워싱턴에 가세했지만, 그들은 2라운드에서 올해의 감독상 빌 피치가 이끄는 클리블랜드에게 7차전에서 2점차로 패하면서 또다시 실패를 맛본다. K.C 존스는 그길로 해고되고, 딕 모타가 새로 부임한다. 그는 선수들 앞에서 "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엘빈 헤이스는 "당신처럼 우승은 고사하고 결승도 못가본 감독밑에서 뛰느니 차라리 은퇴나 하겠소"하며 분위기를 흐렸고, 모타는 "그래 좋아, 난 우승은 고사하고 결승전도 못가봤지,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우리 팀이 우승을 하면 말이야 난 자네가 어떤 실수를 하든 용인해줄 자신이 있네, 대신 우승후에는 자네도 나의 지시는 이행해야되"고 하였고, 모타 부임 첫해 모제스 말론과 캘빈 머피를 위시해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에게 또다시 아깝게 패한 후 데이브 빙은 셀틱스로 떠나고 첫 파이널에서 패한지 3년이 흘렀다. 그들은 팀 구성원들의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절한 타이밍의 운이 따라주면서 결승에 진출한다. 엘빈 헤이스의 2번째 파이널 기록은 빌 시몬스의 북오브 바스켓볼의 내용을 빌려보면 엘빈 헤이스는 6차전까지 133점을 득점했지만 4쿼터에는 19점만을 득점했다면서 그의 클러치 퍼포먼스를 비판하는 어조의 글을 남겼고, 원정 7차전에서 승리했을때 그는 8분을 남기고 퇴장당했다. 그 퇴장당한 시간동안 워싱턴은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그 경기에서 그는 12점 8리바운드에 그쳤지만. 시몬스의 이론을 대입하면 그는 시리즈에서 두경기를 퇴장당했고 그 두경기는 모두 원정경기였고, 모두 승리했다. 그가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1/5의 야투와 종료 직전 2점차 상황에서 자유투를 미스하고 칼 말론처럼 한탄하면서 상대팀의 승리를 바라봐야 했을거라고 이야기한다. 파이널과 플레이오프에서 1옵션이었지만, 78년 파이널 우승은 웨스 언셀드, 미치 컵책, 밥 댄드리지, 케빈 그레비등의 이야기는 많지만 엘빈 헤이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2경기에서 25점 이상의 고득점을 기록했다는 것과 퇴장당한 2경기에서 원정경기임에도 승리했다는 것 외에는- 엘빈 헤이스에게 있어 없는것만도 못한 우승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데이빗 로빈슨의 말은 패트릭 유잉이 타이니 아치발드나 엘빈 헤이스같은 우승으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78년 엘빈 헤이스는 94년 패트릭 유잉보다 더 잘한 선수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6경기 133점을 기록했지만 야투율은 56/117로 패트릭 유잉이 6차전동안 기록한 51/143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씬 좋은 수치 아닌가? 야투율이 47.9%에 22.2점에 클러치 타임 4쿼터에 3.2점에 그쳤다고 하더라고 그 점수만큼 유잉이 했다면 6차전내에 게임이 끝나고 우승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계산이 나온다. 패트릭 유잉은 그 시즌에 24.5점에 5할대의 야투를 기록한 선수이다. 그런 기록을 세운 선수에게 저정도 활약을 요구하는게 그렇게 무리수일까? 그것도 못하면서 스탁스가 3점 다날리고 어쩌고 주변환경이 저쩌고.. 칼 말론이 팀 덩컨과 비교시에 마이클 조든이 없어서 우승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그의 클러치타임에서의 형편없는 실책들로 인해 그의 현재 평가는 "정규시즌떄 잘하긴 했는데 존 스탁튼이란 클러치가 뛰어난 가드와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경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 만한 선수는 아니었어"라고 모두가 합의한 상태다. 패트릭 유잉은 '플레이오프 새가슴의 대명사' 칼 말론보다 플레이오프 스탯이 더 형편없기 떄문에 더이상 시대를 잘못 만나서 우승 못한 불운아란 이야기는 하지 말자.
위에서 엘빈 헤이스에 대해 내가 그리 비판적 어조를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ESPN에서 뽑은 78년 이후 위대한 개인 활약상에 그의 활약이 있었다. 그나마 그 차이가 유잉과 헤이스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첫댓글 정말 잘 봤고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어조는 좀 그렇지만 공감하네요..
일부 공감은가지만, 시즌29-11-4를 기록하고, 44-13을 기록하면서 컨파7차전을 승리로 이끌던 선수에게 위대하지않다 라고 말할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물론 당시 센터들중 no1이라고 할수는 없고, 대학시절의 기대치에비해서는 많이부족했다는 면은 공감합니다.
전 반대로 무릎부상으로 운동능력의 대부분을ㅇ잃은상태에서도 일류센터로인정받는 커리어를 남겼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것같아요...
너무 부정적인 내용 일변도로 나간 건아닌지요? 예전부터 "유잉이 다른 4대 센터나 하워드보다 아래다"라는 주장을 하시는데, 한 선수를 이렇게까지 깍아내리려고 하는 의도가 궁금합니다. 손감각이 끔찍히 나빴고, 클러치 타임에서 쫄았고, 좋다고 할 수 없는 리바운더였고, 더블팀시 킥아웃 능력이 형편없었고, 팀메이트의 능력을 업글시키는데 젬병이었다. 그리고 그는 팬과 친밀하지 않았다.-->본문과 다른 여론의 평가는- 슛터치가 좋고, 무수히 많은 클러치샷을 성공했으며, 일류 디펜시브 리바운더였고, 개인적으로 킥아웃 능력은 4대 센터 중에도 최고급이고, 오클리나 스탁스가 유잉없이 그만큼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 부분은 빌 시몬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킥아웃 능력이 4대 센터중 최고급인데 어시스트 수치는 제일 아래죠(하워드 제외하고). 이건 모순 아닐까요? 그리고 유잉이 일류 리바운더라기엔 오펜스 리바운드가 너무 적은데다가 시간당 리바수치도 적고 1000리바운드 잡아본적도 없고 커리어 평균수치도 나머지 3센터나 하워드 제외하고 혼자만 10개 미만이죠. 커리어 초반 4시즌동안 10리바운드 잡기도 버거워시 낑낑댔구요.
엘빈헤이즈가 언급될 때는 "없는것만도 못한 우승이다"라는 일부 부정적 비평가들의 의견을 일반화하고, 유잉은 우승도 못했으므로 그것보다 못한 존재다? 인용한 글은 어조도 문제가 있고 논리는 언급하기가 민망할 정도네요.
예 엘빈 헤이스의 우승이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파이널 스탯은 유잉보다는 좋았고, 그가 슈퍼스타라면, 팬들은 시즌평균 24.5점에 50%의 야투를 찍은 사람이라면 19.2점에 35.6%의 야투를 22.2점에 47.9%정도만이라도 기록하길 바라는게 무리는 아니죠.
엘빈헤이스의 우승에 대해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허슬플레이어님이나 닥터J님은 파엠 못받은게 아쉽기는 하다고 하고요. 그렇게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헤이스는 우승당시 플레이오프 WS 1위였고 역대 50대 퍼포먼스에 이름이 있죠. 하지만 유잉은 그것마저도 못했음을 지칭한다고 보시면 될겁니다. 빌 시몬스는 69년생으로 유잉의 대학시절부터 본 사
람이고 데이빗 로빈슨 역시 패트릭 유잉을 비판내지 안좋은 어조로 이야기한건 사실이죠. 그리고 전 패트릭 유잉이나 엘빈 헤이스에 대해 별로 안좋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빌 시몬스의 말이 더 와닿는지도 모르죠.
킥아웃능력=어시스트 수치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4대 센터 중)실제로 포스트에서부터 팀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가장 잘했던 선수는 유잉과 하킴이라고 봅니다. 샤크는 그 깡패같은 공격력 때문에 어시스트의 기회도 많이 생겼지만, 패스 능력 만으로 떼어놓고 보면 센터 중에 일류는 아닙니다. 리바운드도 언급하셨는데 이 중에서 유잉의 리바운드 능력이 가장 아래라는데 공감합니다. 컨디션이 좋고 그러한 역할이 주어졌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여기서 가정은 할 필요가 없죠.하지만 첫 4시즌 후의 9시즌 동안 평균 11개 리바운드를 잡은 것만 빼서 얘기하신다면 불공평하겠죠.초일류는 아니여도
일류라고 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덧붙여 저는 유잉의 팬이지만, 유잉이론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예전 축ㄱ아스날에서 앙리가 빠지고나서 파브레가스 로시츠키 같은 신성들이 재능을 만개했던 것도 유잉이론과 같은 경우였죠. 하지만 앙리가 필요없는 선수였습니까? 그는 그래도 클래스를 달리하는 최고 선수 였습니다. 유잉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그의 폼이 많이 떨어지고 게다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닐 때에 시즌아웃을 당해 버렸으니, 정말 없는 편이 나은 존재가 되어 버렸죠. 99파이널 순간만큼은 스프리웰, 휴스턴이 유잉보다 위협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MVP급의 플레이어로 분류된 적이 없습니다.
4대센터라 불리는 4명의 위대한 센터들 중 현역시절 가장 응원하던 선수는 유잉이었습니다. 본문에 공감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네요.
90 유잉은 진정 대단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