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밑의 tkeken님의 글에 제가 답변삼아 달아놓은 글입니다.
저도 2차대전사를 나름 좋아해서 그 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저기 읽고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1. 병참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문제
(1) 북아프리카 전선은 트리폴리에서 엘-알라메인까지의 전선인데
전선 길이가 독일이 진격했던 폴란드 국경부터 모스크바까지 보다 훨씬 깁니다. -_-;;; 대략 2배 정도지요.
병참선의 압박이 장난 아니지요.
(2)북아프리카는 사막이라 군대가 전진하다가 주변에서 취할 물건이 거의 없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 식량 사정이 정말 급박할 경우에는 주변의 농가, 민가 다 조져서 감당해야 하는데 여긴 그 게 아니지요.
(3) 북아프리카 전선은 해안에서 내륙까지 5-6마일(정확히는 기억이 가물마물합니다.) 이내의 거리에서만 작전이 가능했던
이른바 '선의 전쟁'입니다. '발비아가도'라고 하지요. 그 안쪽의 광활한 사하라 사막까지 들어가서는 군대의 생존이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에....ㅎㄷㄷ
그렇기 때문에 우회기동이라...... 글쎄요. 소규모적으로는 어느 정도 되겠지만 무슨 '낫질작전'이나 '바그라티온'작전같은 정도는, 좀 아닌걸로 압니다.
결론 : 북아프리카 전선은 엄청난 병참상의 압박으로 공격해 들어간 쪽이 더 불리해지는 지역이었습니다. -_-;;;
롬멜이 파견될 당시 리비아의 트리폴리항구부터 시르테까지만 철도가 놓여져있었고 거기까지는 보급상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롬멜의 임무는 애초에 여기서 수비적인 자세로 작전에 임하라였고요.
1941년 : 당시 영국군은 그리스 원조목적으로 군대를 전부 돌리고 있었거든요. 애초에 영국도 더 들어갈 생각도 없어서요.
영국역시 이태리군 깨고나서 그만한 군대를 사막 한가운데까지 끌고 왔으니 병참이 힘들었다는 것을 유념해주시기를...
롬멜이 공세를 시작했을 때 영국군 전력은 고작 호주군 1개 사단하고 기갑사단 1개 였습니다. 충분히 방어가능하지요.
2. 롬멜이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공세를 해서 영국군과 이집트에서 대치한 상황에서는
(1) 보급선
아시다시피 보급선이 늘어지게 되었고. 추측군이 롬멜의 군대에 필요한 물자를 하역할 만한 항구는 '트리폴리'였고 그 이후부터 시르테까지는 철도로, 그 다음부터는 탱크, 트럭 모두 '직접'와야했다는 거죠. 당연히 비전투손실 증가했고요. 사막이라 주변의 모래먼지가 더더욱 마모율을 부추켰습니다.
말씀하신 '몰타섬' 문제는 1941년 중반의 몰타섬 항공 전력은 극악으로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압니다. 알베르크 케셀링이 직접 지원도 해줬고요. (1941년의 롬멜은 여기저기서 꽤 지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태리역시 트리폴리로 무지 퍼날라준 걸로 기억합니다. -_-;;;
그럼 전방의 롬멜은 왜 보급이 적었냐?? -> 롬멜이 이겨서 병참선이 길어져서요. 트리폴리에는 물자가 계속 쌓여있고 롬멜이 진출한 곳까지 보낼 수단이 차량으로 '직접' 가는 것 뿐인지라. 필요할 때 제 때 도착하지 못하는 거죠. -_-;;;
그만한 물자를 신속하게 제때제때 보낼 수단은 육상에서는 '철도'뿐이었습니다. ( 처음에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지적하고 공세에 반대했는데 고고씽한 사람은 롬멜입니다.)
(2) 정세
롬멜이 영국군을 쳐발라서 처칠이 북아프리카에 관심을 그렇게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_-;;
처칠도 군인이 아니고 정치가라 작전의 성공가능성 여부로 휘하 장성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대표적으로 1차대전의 갈리폴리에서 처칠의 행적을 보면. -_-;;
1941년 5-6월, 11월 영국군의 단순무식 쪽수로 밀어부치기 공세가 그렇게 해서 나온 것으로 압니다. 지원을 해달라는 싱가폴을 무시하고요. (훗날 싱가폴은 일본군한테 유린됩니다.) 단, 이 때 영국군의 공세는 롬멜의 부대또한 막심하게 소모시켜놓았습니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3. 애초에 롬멜의 후퇴를 히틀러가 불허했다. 1942년 엘-알라메인을 말씀하시는 듯한데요.
1942년 6월말에 토브룩을 간신히 먹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모든 이의 반대를 뿌리치고 수에즈운하로 돌진했습니다.
-> 트리폴리에는 물자가 가득 있는데 전방의 롬멜에게는 물자가 적은 그런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거지요. 이 사실에 대해 제가 읽었던 책의 저자는 롬멜이 어차피 토브룩을 먹고 정지해 있었으면 자살행위였을 것이다라고 하긴 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엘-알라메인에서 연료가 부족해서(롬멜 후방에는 물자가 계속 쌓여있었습니다.) 기갑사단움직이기도 힘이 부쳐 몽고메리에게 패했습니다.
-> 단순히 히틀러가 롬멜의 기동전을 못하게 막아놓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저는 좀 부정적입니다.
4. 그래도 롬멜을 항상 깔 수 없는 부분.
항상 독일군의 전차가 우수한 건 아니었죠. 영국군의 마틸다전차의 방호력은 괜찮았는데... 말씀하신대로 88mm빼고 영국군 탱크 잡을 만한게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근데 그런데도 1941년 5월 배틀액스, 6월 그래비티 공세 때 영국군이 탱크 수도 많았는데 추측군이 이겼죠;;; 이 부분은 진심으로 롬멜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1941년 11월 크루세이더 공세 때에야 겨우 영국이 롬멜이 저지했는데,
솔직히 뒤에 88mm 잔뜩 매복시켜놓고 3호,4호전차로 영국군 전차부대 유인하고 뒤의 88mm와 함께 협공해서 잡는다. 이 것에 계속 당한 게 영국이거든요. ㅡ.ㅡ;;
독프전에서 프랑스가 독일에게 승리를 바쳤다면, 1941년의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이 롬멜에게 승리를 바쳤다고밖에.
그리고 그만큼 당시 독일군 장성들을 칭찬할 수 밖에요.
5. 개인적으로
(1) 애시당초 1941년 롬멜이 공세를 해서 영국을 쳐발르지 않았다면 영국이 1941년-1943년에 북아프리카에 집착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1941년 초반의 병력상황을 보면 영국이 리비아땅에 집착한 것같지 않아서요. => 한 번 더 말씀드리면 그 때 사막의 영국군은 소수였습니다. 1941년 초반기.
(2)롬멜이 워낙 공세적으로 나가니까 "어, 이 거 잘못하다가는 수에즈 운하 털리는 거 아냐?"했던 영국이 북아프리카 전선에 집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1941년 5월-6월 영국군 공세, 1941년 11월 영국군 공세를 생각해 주세요.
(3) 만약 롬멜이 보급 상황만 좋았어도 중동지역에 진출할 수 있었다!?
-> 무리가 아닐까싶네요
롬멜은 보급선의 길이와 지역특성에 따른 어려움때문에 보급에 늘 힘들어했고요. 그는 그때문에 늘 다른 이와 싸웠습니다. 그런 것은 제외하더라도 롬멜의 그 소규모 군단 하나가 수에즈운하를 뚫고 페르시아만의 유전지대까지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 (실제 롬멜의 주변 대다수가 롬멜이 1942년 토브룩 먹고나서 공세를 할 때 반대했습니다.)
(4)결국 이 것 저 것 다 살펴보면 전. 롬멜이 북아프리카에서 전쟁을 확대하는데 지대한 공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전술적 역량은 당시 영국군 장성을 압도했다 생각하지만요.
전술적으로는 위대하지만 전략차원까지 생각하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었던. 단순히 사단장급 장성이라면 별 문제가 안 됐을지 모르지만. => 프랑스 전역의 롬멜.
주요 참고 : 마틴 반 크레펠트 '보급전의 역사' 6장 시르테에서 엘알라메인까지.
폴 콜리어 '사상 최악의 전쟁' 3부 지중해 전선.
잘못된 부분이나 반론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지리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첫댓글 일단 로얄네이비의 무시무시한 HMS횽들이 지중해 위에 동동 떠다니는 한 북아프리콰에서 무리하게 공세를 펼치고 있는 롬멜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무장공비// 음... 그 부분은 이태리 해군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했던 부분같긴합니다. 롬멜 탓이 아니겠지요.
트럭이 짐칸에 휘발류를 꽉채워 싣고가도 중간에 휘발류가 바닥날 정도의 거리였다죠...
일단 트리폴리와 엘알라메인은 진짜 길더군요. 방금 확인해 보니 이건 뭐. ㅡ_ㅡ;;; 하지만 41년이 지나고 이후에 케셀링이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군에게 어떤 사기를 쳤는지 잊으셨나 보군요;;; 공군에서 자체적인 보급이 가능하다고 구라를 사정없이 갈겨주시는 한편 공군지원이 더 확충될거라는 희망도 심어주셨죠.(하지만 결과는 ㅡ_ㅡ;;;) 사실 토부룩을 함락시킨후 롬멜 역시 후퇴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걸 막아주신게 케셀링과 히틀러;; 케셀링은 앞에 말한 걸로 막아주셨고, 히틀러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막았죠. 가만히 있으면 죽을 상황이고. 에라 모르겠다. 찔러나보자. 거의 이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파나마 공략은;;;
그리고 중동지역까지 점령은 어떻게 하든 무립니다;;; 독일군의 역량 자체가 불가능하죠. 하지만 파나마 운하를 폭파시키는 것 까지는 어떻게 가능하지 않았을 까요? 그것만 해도 영국군은 피를 토해야 되는 상황이 되거든요. 솔까말 히틀러가 크레타섬에서 공수부대 저승길로 안보냈으면 몰타섬은 점령할 수 있었을텐데, 귓등으로도 안듣죠;;
파나마 운하는 아메리카 -_-
어차피 u보트로 깽판 피는 판국에 그런거 신경쓸 필요있나요. 그냥 까는거지 ㅡ_ㅡ;;;
마지막으로 북아프리카 전선 자체 확대는... 글쎄요? 어차피 처칠이 그리스에서 손을 때게 되면 눈돌릴 만한 곳은 몇 곳 안됩니다. 게다가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어요;;; 북아프리카가 연합국 손에 들어가면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가 직접적으로 위험해지니 늦든 빠르든 북아프리카 전선은 생길 수 밖에 없는 곳이라고 봅니다. 다만 롬멜의 공세로 인해서 영국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부정할 수 없네요. 하지만 몽고메리도 사실 미국아니었으면 롬멜 못이겼다능. 무한 물량의 천조국이 아니었다면 과연 몽고메리가 영국군의 역량만으로 그런게 가능할 것 같냐능.
제말은 그게 아니라 몽고메리가 지휘하던 제 8군을 이루는 물적자원 구성을 말하는 겁니다. 영국군인데 셔먼밖에 없어 ㅡ_ㅡ;;
론슨라이터를 능가하는 전차를 영국이 만들어 내는건 그당시 영국의 역량상 불가능 하지는 않았겠지만 영국 수뇌부들이 관심이 없었죠 ㅡ_ㅡ;;; 셔먼을 자체적으로 개조해서 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영국이 미국처럼 몇만대씩 찍어냈을 수 있을까를 말하는 겁니다. 전차라고는 이태리꺼까지 합쳐 400대도 안되는 롬멜을 잡으려 무려 제8군에 셔먼이 1000대 가까이 배치되니까요. 이런 물량을 어떻게 영국이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름도 다 못 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