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리 라이츠 서점에 점원이 많아진 사연
문보영
폴 어스터의 책
굶기의 예술을
사기 위해
프레리 라이츠
서점에 갔다
“We don’t carry that book”
서점은 폴 어스터의 책이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이해하지만
점원이
두 손으로 책을 받들고
한 발로 선 채
흔들거리는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한 팔에
흰 천을 두르고
대기하는
서버처럼
모든 책을 들기 위해서는
책의 수에 해당하는
점원이 필요할 거야
당신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만
상상한다
손님들은 점원의
두 손 위에
놓인
책을
살펴보겠지
그리고 마음에 들면 책을
손에서
가져갈 거야
-그런데 왜 한 발로 서 있어야 해? 홍학도 아닌데
이야기의 침입자가 묻는다
-그래야 책이 흔들리니까
-책이 왜 흔들려야 하는데?
-그래야 오래 사니까
프레리 라이츠 서점은
다음 달에 점원을 추가로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불면
누워서 나는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 옆의 새벽 2시는 회색 담요를 말고 먼저 잠들었다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내 발이
다른 이의 발이었으면 좋겠다
애인은 내 죽음 앞에서도 참 건강했는데
나는 내 옆얼굴에 기대서 잠을 청한다
옆얼굴을 베고 잠을 잔다 꿈속에서도 수년에 걸쳐 감기에 걸렸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발바닥 위에 서 있었다 발바닥을 꾹 누르며
그만큼의 바닥 위에서 가로등처럼 휘어지며
이불을 덮어도 집요하게 밝아오는 아침이 있어서
잠이 오면
부탄가스를 흡입하듯
옆모습이 누군가의 옆모습을 빨아들이다가
여전히
누군가 죽었다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정갈하게
빨래하기
누군가 떠난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버퍼링이 존재한다. 그건 빨래 같은 거야.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한 번의 빨래를 끝내는 데 평균 일주일이 걸린다. 어떻게 빨래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려? 친구가 물었다. “우선, 빨래를 하려면 팬티가 동이 나야 해. 더 이상 입을 팬티가 없어야 빨래를 하게 되거든. 그제야 빨래 바구니를 세탁실로 가져가. 세탁기를 돌려. 그리고 일단 까먹어. 알람이 울려도 무시해. 그러다가, 이제 건조기에 옮겨야지, 하고 생각해. 생각만 해. 그리고 그 생각조차 미뤄. 세 시간 정도 묵혔다가, 아! 이젠 옮겨야지, 안 그러면 세탁물에서 냄새가 날 거야, 하고 걱정하며 슬금슬금 세탁실로 가. 아 지친다. 누가 세탁기를 발명한 걸까. 투덜거리면서 건조기에 세탁물을 옮겨.”
사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한 빨래다. 여기까지 하면 빨래를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다음, 빨래를 개고 옷장과 서랍에 넣기까지는 또 며칠이 걸린다. 다음날에도 당연히 빨래는 건조기에 있다. 건조기에서 그날 입을 팬티 한 장을 찾아 꺼낸다. 다음 날에도 건조기에서 팬티를 찾아 꺼낸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세탁실을 오가면서 팬티를 가져온다. 그 정도 되면 빨래 더미에서 팬티가 사라져서 팬티를 찾는 게 일이 되는데, 그제야 건조기에서 빨래 더미를 꺼내 거실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냥 방치한다. 허리를 숙여 세탁 바구니에서 팬티를 찾아서 입고, 나중에는 팬티를 찾기가 어려워서 세탁물을 바닥에 쏟는다. 아, 이제 좀 팬티를 찾기 수월해졌다. 이제 티셔츠나 스웨터, 양말 같은 것도 좀 더 편하게 찾게 된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집이 좀 난장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는 않는다.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건 간 단계마다 마음을 먹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기까지의 마음의 준비,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기까지의 마음의 준비, 빨래를 갤 마음의 준비. 마음을 먹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외면을 한다. 사실은 빨래를 개야 하는 마땅한 이유를 모르겠다. 만약 팬티가 천 장, 만 장 있어서 팬티를 빨 이유가 없다면 빨래도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팬티 말고 빨아서 입어야 하는 옷이 있나. 사실은 옷이란 건 안 빨아도 되지 않나. 인형을 굳이 빨아서 더 닳게 만드는 것처럼… 빨래란 건 긁어 부스럼이 아닌가. 낡아가는 옷을 보면서 이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빨래라는 것을 하는 건 아닐까? 빨래를 외면하는 것처럼 나는 마음을 먹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기에 떠난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을 미룬다. 그래도 언젠가 사라진 사람에 대해 생각이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먹으려고 마음의 준비란 걸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