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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비운의 왕 고려 23대 고종[1213~1259] 홍릉 [강화에 묻히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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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 洪陵[강화 홍릉] 비운의 왕 高宗[고종]이 고려산 기슭에 쓸쓸하게 잠들어 있다. 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강화도 홍릉의
주인공 高宗[고종]이 살았었던 그 시대로 돌아가 보려 한다. 高麗[고려]는 918년 부터 1392년 까지 474여 년간 한반도에
있었던 한국의 불교를 국교로 삼은 전제군주정 국가였다. 한때 찬란했던 신라는 그 영광을 잃어가고, 새로운 힘, 왕건에 의
해 세워진 고려가 부상하게 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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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왕건이 자신의 주군이었던 태봉의 국왕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면서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했기 때문
이다. 이렇게 후백제, 신라로 나뉘어 대치하던 후삼국시대는 936년에 끝나고, 이후 약 456년 동안 총 34명의 군주가 고려
를 통치했다. 그리고 고려는 1392년 34대 공양왕을 끝으로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의해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
함경북도의 상당수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을 지배했었던 국가였다. 오늘 유랑자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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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겐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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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고종의 능은 고려 제23대 왕이자 강종의 맏아들로 이름은 ‘철’, 자는 ‘대명’ 또는 ‘천우’이다. 22대 강
종 사후 왕위에 올랐으나 안으로는 무신정권의 명목상 왕 노릇을 해야 했으며 밖으로는 거란과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도읍
을 강화도로 옮겨 오랜 항쟁을 버텨 내야만 했다. 전쟁은 태자가 화친의 표문을 가지고 몽골에 入朝[입조] 하고 나서야 終
焉[종언] 되었고, 이후 고려는 몽골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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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한때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로 KBS2 주말 대하드라마 32부작 [고려 거란전쟁] 의 역사적 내용에
대한 드라마를 열심히 본 적이 있었다. 23.11.11.~24.03.10. 김동준, 최수종, 지승현 출연으로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
의 영웅들] 저자 강원도 춘천 출신 길 승수의 소설을 극화한 대하드라마로 제작한 것으로, 넷플릭스와 독점 계약으로 아시
아와 태평양, 유럽, 아메리카 등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동시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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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반까지 30여 년에 걸쳐 진행된 고려와 거란[요나라] 간의 세 차례에 걸친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원한 고려의 현종[김동준]과 뛰어난 지략 과 불굴의
의지로 거란군을 물리친 명장 강감찬[최수종]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어진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를 잊
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장엄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생생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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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은 1차 993년[6대 성종 12년 10월], 2차 1010년[8대 현종 1년 11월], 3차 1018년[헌종 8년 12월] 에 고려
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아무튼 이 드라마 때문에 유랑자는 충청북도 제천 여행 때 제천과 충주시 사이
에 위치한 박달재를 가 보게 되었다. 이 박달재에는 1217년[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
취려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유명하여 일부러 가 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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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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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연천 고려 왕과 충신들의 사당인 숭의전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숭의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초기에
고려 종묘를 헐고 조선의 종묘를 건립하며 고려 왕족들을 탄압했지만 고려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숭의전을 지은 것이다. 조
선 태조가 사당을 지은 후 1399년[정종1]에 고려 태조를 비롯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 8 왕 위패를 봉안하였다. 물론 이후 강화도 여행에서 당연히 고려궁지도 둘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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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 거란전쟁을 되돌아보면 당시 왕건의 꿈! 그리고 그의 북진정책 아래, 고구려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
고자 한다. 그러나 북쪽의 거대한 제국 거란은 계속 세력을 불려 나가면서 만리장성을 넘어 ‘연은 16주’라는 지금의 중국 북
경을 포함하는 지역을 차지하고 제국으로 성장한다. 당시 고려와 거란 사이에 팽팽한 전운이 감돌던 중 993년, 성종[6대]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하는데 이것이 ‘거란의 1차 침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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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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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선봉대가 거란군에 패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지만, 서희의 활약으로 거란군을 막아내고 협상을 통해 압록강 남쪽
의 땅인 ‘강동 6주’를 개척한다. 그로부터 17년 후 벌어지는 ‘거란의 2차 침공[1010, 현종 8대]을 다룬 것이 바로 소설 [고
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 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康兆[강조]가 고려 왕 穆宗[목종. 제7대] 을 폐위하고 顯宗[현종, 제8대]
을 옹립했는데, 거란 황제 야율융서는 이를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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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나 고려 현종이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항전을 결심하고, 서북면 도순검사 양 규, 구
주별장 김 숙흥, 통 군녹사 조원, 애수 진장 강민첨 등의 활약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거란의 2차 침공 시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서북면 도순검사 양 규이다. 그가 없었다면 고려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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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46년의 재위 동안 최씨(崔氏)의 무단 정치로 실권을 잡지 못하였다. 1219년(고종 9) 최충헌(崔忠獻)의 죽음 이
후에도 고종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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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陵 홍릉, 심도 기행 華南(화남) 高在亨(고재형 18946~1916)
麗朝如夢鳥空啼(려조여몽조공제)~고려 시대 꿈 같은데 새만 부질없이 울어대고
春雨洪陵草色齊(춘우홍릉초색제)~봄비 젖은 홍릉은 풀빛이 가지런하네.
北望雲中松岳樹(북망운중송악수)~북쪽의 구름 속에 송악산 숲이 있고
猶自靑靑漢水西(유자청청한수서)~절로 푸른 한강 물은 서쪽으로 흘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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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 규와 김 숙흥이 고작 2천여 명의 병력으로 40만의 거란군을 상대하는 모습이라든지, 양 규가 7백 명의 결사대로
이루어낸 곽주 탈환 작전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양 규를 비롯한 용장들의 분전으로 거란군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압
록강을 건너 퇴각할 때 말과 낙타, 무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빈 몸으로 돌아간다. 사실상 패전과 다름없었다. 그렇다.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면 양 규는 고려 시대에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 모두에게 기억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잊혀진 영웅이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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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담 다시 그 榮辱[영욕]의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혹시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던 임금이 누구인지 아
시나요? 아마도 조선의 영조[51년 7개월] 다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왕에 군림했던 왕이 고려 高宗[고종: 45년 10개월]이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도 조선 숙종[45년 10개월]과 재위 기간이 똑같다. 아무튼 국화리에 잠들어 있는 고종! 그는 바로 46
년간이나 왕좌에 있었던 고려 제23대 왕인 高宗[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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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의 문인석과 문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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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 洪陵(강화 홍릉)~사적 제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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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글씨가 高麗高宗洪陵[고려고종홍릉]이라 보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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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그 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權力[권력]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비운의 왕이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의 재위 기간이 고려 역사상 가장 큰 국난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고종[본명 왕 철]의 아버지는 당시 태자였던
강종이었고, 할아버지는 명종이었다. 평범한 시대였다면 왕손으로서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을 운명이었지만 그러나 고
종이 살았던 시대는 武臣政權[무신정권]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혼란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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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은 고려 시대 중기 무신들에 의해 나라가 통치되던 시기와 그 당시 집권한 정권을 의미한다. 1170년[18대, 의종 24년]
6월 보현원에서 일어난 무신정변을 시작으로, 1270년[24대, 원종 11년] 5월 임 유무의 숙청을 끝으로 100년 동안 유지되
었던 정권이었다. 당시 고종이 겨우 다섯 살이던 1197년, 그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崔忠獻[최충헌, (우봉최씨)]
이라는 무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할아버지 명종[19대]을 폐위 시켜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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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高宗洪陵[고려고종홍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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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아들 최우(崔瑀)가 정방(政房)을 통해 백관의 인사를 마음대로 결정하였다. 1258년(고종 45)에 최의(崔竩)가
살해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짐으로써 표면상으로 왕권이 복구되었으나, 여전히 실권은 김준(金俊) 등 무인 정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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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순간 어린 고종과 그의 부모는 강화도로 유배를 당했고, 한순간에, 왕손에서 죄인 가족으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이후
고종은 무려 16년 동안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언제 다시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도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1210년, 고종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왕이었던 희종[21대]이 최충헌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화가 난 최충헌은 희종을 가차 없이 폐위 시켜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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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운 왕으로 강화도에 유배 중이던 고종의 아버지 강종[22대]을 불러들여 왕으로 삼았지만, 강종은 즉위할 당시
이미 환갑이 넘은 고령이었다. 결국 강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고종[23대]이 2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16년간의 유배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왕이 되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왕관이 아니라 황금
족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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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민란과 거란 · 몽골의 침입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1216년(고종 3)부터 3년간 계속된 거란의 침입과 뒤이은
몽골의 장기적인 침입으로, 고종의 재위 기간은 고려 최대의 국난을 겪은 시기였다. 1231년(고종 18) 몽골의 침입이 시작
되자 이듬해 1232년(고종 19)에 강도(江都)로 도읍지를 옮겨 장기적인 항전을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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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즉위 했을 때 고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사람은 무신 최충헌이었기 때문이다. 1219년 최충헌이 고종에게
받은 궤장과 왕씨 성을 반납하고 죽자, 그의 아들 崔瑀[최우]가 실권을 잡고 정방을 통하여 백관의 인사를 좌지우지 했으
므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아무튼 한국사를 통틀어 개인으로서는 연개소문과 더불어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
던 權臣[권신]이라고 평가되며, 後裔[후예]까지 모두 합한 가문 단위[100년]로는 최씨 가문이 그 연씨 가문을 한참 능가하
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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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無所不爲[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다가 1219년 9월,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충헌
은 從心[종심] 을 넘어 天壽[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그는 죽을 때 정적들을 귀양지에서 풀어 주는 등 선심을 베풀고 죽
을 때는 저택에서 하루 종일 풍악을 울리게 하고는 노래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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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 최항(崔沆), 최의 3대의 최씨 정권과 김준의 무인 정권을 아래에서 고종은 무인 집정자의 정책 결정이나 의견에
맞서지 않는다는 철저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강화천도(江華遷都)는 고종은 원하지 않았으나 최우의 정치적 결정과 압박
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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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무려 46여 년간 왕위에 있었지만, 그 기간 내내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최씨 정권의 그늘
아래 있어야만 했다. 왕이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1258년 만년에 이르러 최충헌의 증손자 崔竩[최의]가 대사성 柳璥[유경]과 별장 金仁俊[김인준(김준)] 등에 의해 제거된
후 왕권이 복구되었으나, 실권은 여전히 김 인준과 임 연 부자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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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종의 재위 기간 중 가장 큰 시련은 몽골의 침입이었다. 당시 고종 때는 북방 민족의 興亡[흥망]이 빈번했고 또한 이
로 인한 타격도 컸다. 1231년부터 시작된 무려 30여 년간에 걸쳐 몽골의 침략이 자주 일어나자 1232년 급기야 開京[개경
(송도)]을 포기하고 江都[강도,(강화도)]로 도읍을 옮겨가며 28년간 抗爭[항쟁]했으나,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막대한 인
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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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으로 오르는 입구 우측으로 학생 야영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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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고종 46)에 몽골에 강화를 청하기 위해 태자 왕전(王倎)을 몽골에 보냈으며, 무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화도
의 내성과 외성을 헐게 하였다. 태자의 친조(親朝)와 성곽의 철거는 몽골에 대한 복속을 뜻하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몽골
의 국왕 입조(入朝) 및 환도(還都) 요구에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태자 입조로 타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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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은 지나가는 곳마다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였으며,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황룡사와 9층 목탑도 이때 불태워졌다.
아무튼 당시 강화도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비참했다고 전하고 있다.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어 진흙탕이 정강이까지 찼고,
고위 관리들과 귀족 부녀자들조차, 많은 짐을 지고 걸어서 그 먼 거리를 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때 의지할 곳 없는 노인
들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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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강화도에서 대몽항쟁 28년 동안 무려 9차례나 항전하면서 많은 고통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전쟁을 끝내기 위
해 사랑하는 아들 王淐[왕창,(안경공)]을 볼모로, 몽골로 보내고 고종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고종은 아들 생
각만 나면 산 능선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당시 강화도 사람들은 그 산을 '見[볼 견]', '子[아들 자]' 를 써서 見子山
[견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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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전란과 천도, 무인 정권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고종은 46년간 재위하였는데 그것은 고려의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오랜 재위 기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가장 정치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가장 비정치적인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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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버지로서의 고종의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왕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아무것도 제대로 지킬 수 없
었던 그의 비참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실권도 없고 아들도 잃은 고종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뿐이었
다. 고종은 수많은 세월을 보내는 동안 불공을 드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1236년부터는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팔만
대장경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고종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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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이마저 실제 비용은 집권자 최우가 댔다고 한다. 왕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대장경이지만, 정작 왕은 돈도 낼 수 없
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던 1258년, 고종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마지막 최씨 집권자인 최의가 유경과 김준 등에 의
해 제거된 것이다. 최충헌에서 시작되어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진 4대 60년간의 최씨 정권이 마침내 무너진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종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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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고려 역대 제왕 중 가장 긴 재위 기간인 46년을 보냈다. 1259년 7월 28일 [음력 고종 46년 6월 30일] 향년 67
세 사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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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된 권력을 가져보지 못했던 그에게는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권력은 또 다른 무신인 김준에게 넘어갔고 고종의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그렇게 평
생 허수아비 노릇만 하던 왕 고종은, 1259년 6월 30일, 68세의 나이로 恨[한] 많은 세상을 떠난 悲運[비운]의 왕이었다.
그의 긴 재위 기간 중 마지막 해에 이르러서야 몽골과의 화친이 성사되었고, 강화도의 성곽을 허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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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강화도에 고려궁지 터만 남아있는 이유이다. 당시 태자였던 원종은 몽골에 가 있었기 때문에, 태손인 왕 심이 임시
로 국정을 돌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마지막 유언은 검소한 장례를 치르라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46년간 왕위에 있었지만, 끝까지 권력다운 권
력을 누려보지 못했던 그다운 마지막이었다. 당시 무신정권 시대에 고려 왕들의 삶을 보면 전부 悲慘[비참]하고 또한 힘들
었을 것 같다. 사실 언제 자신이 폐위되어 죽거나 流配[유배] 될지 모르는 상황을 계속 견뎌야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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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애초에 고종 자체가 우봉 최씨 정권의 초대 권력자인 최충헌이 아니었다면 왕위에 오르지 못할 인물이었다. 결
국 즉위 초부터 권력 기반이 전무 했기에 4대 62년간 이어진 최씨 정권의 만행을 막을 수 없었던 점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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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도 유배를 갔다가 허수아비 왕이 되었고, 몽골을 피해 강화도로 도망치며 온갖 受侮[수모]와 屈辱[굴욕]을 당했으니
정말 기구한 運命[운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고종은 이 恨[한] 많은 땅 江都[강도,(강화도)] 고려산 기슭에 쓸쓸
히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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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오늘날 한국의 외국 이름인 'Korea'의 어원을 제공한 나라요 왕건이 건국한 한반도 역사의 한 축이었던 고려사를
왜 우리는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名色[명색]이 474여 년간 한반도를 지배했었던 만큼 이젠 고려사를 재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高麗[고려] 사 속 비운의 34대 왕이었던 高宗[고종: 45년 10개월 집권] 의 이야
기는 이쯤 해서 끝 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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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 후반으로 가면서 왕들의 재위 기간동안 일어난 권력의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9대: 명종 (재위 1170~1197) 무신정권이 본격적으로 집권한 시기이며 정권의 실제 주도 세력이 군사 세력으로 이동했다.
왕은 형식적 존재로 전락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이로부터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까지 약 100년간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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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신종 (재위 1197~1204)
최충헌이 등장하며 정치 실권을 행사한 시기이다. 왕권은 더욱 약화 되고 권문세족과 무신의 권력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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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희종 (재위 1204~1211)
최씨 무신정권을 견제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왕권이 더욱 축소된 상태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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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강종 (재위 1211~1213)
허수아비 왕으로 평가되며 군사·정치권력이 왕이 아닌 무신과 귀족에 집중되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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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고종 (재위 1213~1259)
몽골의 침입과 지속된 전쟁으로 왕조가 위기를 맞은 시기이다. 1232년에는 開城[개성]에서 江都[강도(강화)]로 천도가
이루어졌고, 이후 몽골의 압박 아래에서 왕권이 큰 외부 영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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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원종 (재위 1259~1274)
몽골(원나라)과의 강화 체결로 ‘附馬國化[부마국화]’ 체제가 시작된 시기이다. 왕권보다 외세의 영향이 커지면서 고려 왕
조의 자율성이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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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충렬왕 (재위 1274~1308)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권문세족이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한 대표적 왕이다. 왕권은 명목에 머물렀고 군사·정치적으로 부
패가 심화하였다. 이후~ 26대 충 선- 27대 충 숙- 28대 충 혜- 29대 충 목- 30대 충 정~까지 고려는 支離滅裂[지리멸렬] 이
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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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공민왕부터~ 34대 공양왕(재위 1389~1392) 까지 (개혁과 멸망기): 34대 공양왕이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며 이
성계 일파에 의해 옹립된 뒤 결국 조선(1392년)으로 왕조가 변경되며 고려는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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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180
-문 의: 032-930-3897
-홈: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2240000,23&pageNo=1_1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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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학생교육원 국화리 학생 야영장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282번길 48
-문 의: 032-627-6790
-국화리 학생 야영장 홈: https://www.ise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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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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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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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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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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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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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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