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연 자리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다. 강연 중 시인은 느닷없이 모자를 벗어 “이게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당연히 모자였지만, 시인은 다른 대답을 원하는 듯했다. 모자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이란 답이 나왔고, 대부분 침묵했다. 다시 가방에서 향수 3개를 꺼낸 시인은 모자와 함께 향기를 맡아보라 했다. 차례가 왔을 때 들고 있던 연필로 모자를 돌렸다. 모자에 밴 향수를 맞혀보라는 거지만 시인이 다른 대답을 원한다 지레짐작했다.
이 시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과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다.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밟고 올라서자” 이유도 모른 채 화부터 낸다.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것이냐는 호통은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발자국을 밟았는데 “무릎을 함부로 밟”았다 하고, “그것이 정강이뼈인 줄 몰랐다” 서로 엉뚱한 말을 한다. 해명도 듣지 않은 채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 모든 건 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현실은 더 지독하다. 관계의 단절은 상처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