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 날이 서늘하다. 마음도 차분해 진다. 오늘은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들을 떠 올려 본다. 주위에서 퇴직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니 나도 자극이 되는 것 같다. 73년 3월에 이름만 듣던 당진 당산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에서 4년을 근무하면서 어설픈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다. 동기 4명에 1년 선배 6명 모두 총각처녀들이었지. 보고 싶다. 이어서 합덕읍내에 있는 합덕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생각하면 나도 참 배짱도 좋았지. 같이 근무하던 강경희가 아산으로 발령받아 가니 너무 싫어, 교육청에 찾아가 나도 우리집 가기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 울며 떼를 썼어. 그랬더니 3월 21일에 합덕초에 마침 자리가 난다면서 기다리래. 그렇게 해서 합덕으로 갔는데 우리 동기가 (임성찬 임규찬 이경희 윤성태 김정숙 박한양 또 있던가? 모르겠다. 하도 오래되어서.....) 많이 있었어. 여기서 결혼을 하고 2년 후 경기도로 올라왔지. 안성에 있는 양성초등학교 였어. 여기서 큰애 둘째 모두 낳고 3년 있다 수원으로 들어왔어.
역사 깊은 지동학교, 신설학교 동수원 학교에 근무하면서 중견교사로 발돋움 했어. 집장만한 것도 이 때이고 동료교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것도 이 시기야. 여럿이 떼 지어 다니며 운전면허도 따고 방송통신대도 마쳤지. 동료교사들과 할랑할랑 다니며 옷 사 입고 맛있는 것 먹고 차-암 세월 좋았어. 수원 만기 10년을 채우고 화성군 동탄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수원에서 통근했어. 큰 아이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서울 삼성동으로 이사를 왔어.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릴 필요가 있었어. 아이들 모두 서울로 전학 시키고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서 동탄 까지 출근을 했단다. 할 수 없이 자기용을 사서 직접 운전했어. 겁도 없이 초보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렸으니 참 대단해. 그렇게 1년 반을 다니니 분당에 신설학교가 많이 생겨 9월에 내정초등학교로 이동했어. 운이 좋았지.
그때까지 승진생각은 꿈에도 안하고 평범한 교사로 지냈지. 그런데 거기서 연구학교 연구부장일을 맡게 될 줄이야! 생활영어 활용이었어. 영어가 교과활동으로 들어오기 전 초창기 영어 시대였어. 여기저기 연수를 다니고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영어 강사로 뛰고 캐나다 장기연수도 가게 되고 승진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지. 내정 바로 옆 수내초등학교 연구부장으로 가게 되면서 승진할 마음을 더욱 굳혔어. 나도 한 번 해 보자. 대학원도 가고 연구도 계속하고 연구부장 교무부장하면서 관리자로서 나아가보자 생각했지. 고민도 많아지더라. 왜?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윗 분 모신다는 게 그리 쉬우냐구요! 부족한 점수 보충하러 농촌점수 있는 남양주로 옮겼지. 이 때가 제일 내 자신이 싫어. 왜냐구? 점수를 위해 나랑 비슷한 사람이랑 경쟁을 하느라 극성스러웠거든. 지가 잘난 줄 알고 말이야. 걸스카웃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자전거 연습 무리하게 하다가 발목이 부러졌지. 생전 처음 두 달 병가내고 집에서 쉬면서 이것 저것 생각했어.
마침 남편이 광주로 교감발령이 나서 나도 따라 광주 도곡으로 이동했어. 교장선생님이 안 반기시더라. 왜? 점수 따서 승진하러 오는 사람 안 반갑대.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데 까지 해 봐야지? 하지만 나는 승진할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날 교무부장 자리 내 놓고 승진 포기했다. 울적하고 심란할 때 동창들이 손짓했어. 친구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고 따뜻한 친구들 마음에 내 마음도 편해졌단다. 이렇게 카페에 내 글도 올리고 친구들 이야기도 듣고 ... 너무 좋다. 남편이 다시 덕소 교장으로 승진하여 나도 따라와서 지금 예봉에 이르렀지. 나는 여기서 교직생활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사진 맨 위부터 당진 당산, 합덕, 안성 양성, 수원지동, 동수원, 분당내정, 수내, 남양주 풍양, 광주 도곡. 남양주 예봉) 이력서 쓰는 것 같다.
첫댓글 현재의 당산초는 당진에서 명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2011년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심재진 교장께서 열정을 바쳐 통폐합 대상교를 서로 전학오고 싶은 학교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기회가 디시다면 한번 방문해보세요. 적극 추천합니다
정말요? 꼭 한 번 가봐야겠네요 당시엔 벽지 수준이었는는데요. 반가운 소식 고마워요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는구나.
행복이란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이구. 부자란 내가 더 이상 돈이 필요없다라고 생각하면 부자란다. 고로 나는 행복하고 나는 부자다
73년 3월 발령이 눈에 선한데 39년 4개월의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른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도 무사히 마치고 영광스런 정년 퇴직과 남은 삶에 대해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지?
다 모으면 커다란 학원가를 이룰 것 같네요.......수고가많았어요............
나는 한개 밖에 없는디... 왜케 많아?
몇 학교 돌아다니니 60이 넘었네용
나는 서울로 발령 받아 도봉,화계,창동,경수,구룡,흑석,남사,남성,대청,돈암,대진초등학교에서 마지막 교직을 마쳐야 되네. 정년을 할까? 명퇴를 하나?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어. 승진하려고 애쓰지 않아서 마음 졸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러 다녔지.태권도,붓글씨,자전거, 노래,댄스스포츠,외발자전거.............또 뭐를 하려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내 인생이랄까?
수련아 반갑다. 수련이의 교단일기를 보니 우리가 교사 직업을 가진 것이 무척 자랑스럽구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교사 제자 학부형),이동 사건 너무 많은 추억을 쌓았던 것 같다. 추억은 아름다워.
미국엔 언제 출발한겨? 한 달 있다 온다는게 사실인겨? 미동부도 좋았지만 서부의 자연이 참 좋았었어. 멋진 추억 많이 만들고 와
의지의 한국인 께고함 : 4년전 2년 선배 여선생님 께서 명퇴 신청을 하신다기에 두손 꼬옥잡고 말씀드렸지!! 선배님 같은 분께서 교단을 떠나시면 누가 지키나요! 후배들은 어린아이들은?? 건강도 좋은신데 왜??? 며칠 후 다시뵙게되었지. 맴을 바꾸시더라고..... 그 후 정년 퇴임식때 두고 두고 말씀하시더라고 감사했노라도....
금방 떠나가니? 언제고 떠나가고 싶다는 사람 부추긴다.
2015년 8월 떠난다네
수련아! 그 당산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이 사랑하는 네 제자(김향곤 사장)이다.
스승의 날 즈음에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대전으로 날 찾아오는 친구들 중 하나란다.
외람되지만 결혼식 주례도 내가 섰지. 내가 중등으로 가서 처음으로 담임하고 가르쳤는데
2년 뒤 그 동생도 담임했으니 참 갚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번에 만났을 때 학교에 강당 짓는 염원을 갖고 백방으로 뛰고 있더군.
(어련하겠지만 선생님들 잘 모시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어. 언제 가려면 연락해라.
김 위원장에게 연락해서 영접하라고 할게.)
그럼, 안녕. 수련!
그러면 건영씨가 송산면 중등학교에서 근무했나요? 내겐 그 때 제자들 한 두명 연락이 닿고 있을 뿐이죠. 6학년을 담임하지 않으니 제자들이 없어요. 주례까지 서 주고 스승, 멘토 역할 확실히 하고 계시네요. 언제 한 번 당산학교 방문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