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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실록 7편*
효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효자의 조건 예나 지금이나 변비는 모든 이의 고통이다.
오죽하면 안 나오면 쳐들어가겠다는 광고까지 나올까.
그런데 쳐들어갈 요구르트도 없던 조선시대에는 변비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변비 치료 덕분에 효자문 까지 얻게 된 사연,
아니 효자문을 위해 변비를 치료한 사연을 살펴보자.
사또! 정읍현의 원국이란 자가 아버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단지(斷指)를 했다 하옵니다.
뭐,뭐야.그래서.그의 아버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정읍 현감은 조정에 원국을 효자로 상신했으며,
이에 조정에서 효자문을 지어준다는 최종 결과가.
이런 된장 옆 동네는 허구한 날 효자에 열녀야.
우리 고을에는 왜 이런 놈이 하나도 없냐 어이, 이방. 무슨 대책을 내놔봐.
그, 그것이 효자라는 게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닌지라.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심이.
뭐 가뜩이나 근평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열녀는커녕 그 흔한 효자 한 명 안 나오니까 내가 계속 정읍 현감한테 밀리는 거 아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효자 한 명 데려와 봐.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관찰사한테 밉보인다니까.
당시 조선은 유교식 모범 사례를 전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효자와 열녀의 발굴·표창 및 홍보였다.
나라의 기본 이념을 유교로 잡은 이상, 이를 확대·전파시키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기본 틀을 완성시키는 첩경이었던 것이다.
해서 각 고을의 수령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효자와 열녀 발굴에 앞장섰다.
그것이 자신의 ‘근태 기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어.어이,이방.당장 부모님 모시고 있는 16세 이상의 애들을 무조건 소집해.
아니, 걔들은 데려와 뭐하시게요.
이놈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이리하여 이방은 부지런히 고을 안에 있는 16세 이상의 성인 남녀들을 모아온다.
사또,효자,아니 효자 후보들을 모두 모아왔습니다.
그래 알았다.어디 한번 가보자구.
사또는 보무도 당당히 동헌으로 향했다. 동헌에는 고을의 선남선녀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에 또,공사다망 한데, 이렇게 너희들을 부른 것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퇴폐 풍조를 일신하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이고 진자리 마른자리가 그러니께 부모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에서다.
그게 뭔 소리래유,사또.한마디로 너희를 효자 효녀로 만들기 위한 ‘효자 만들기 프로젝트’다 이거지.
쉬운 말로 하면 효자 집체 교육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거다.
에이, 지들두 효자가 뭔지는 다 알고 있구먼유.
집에서 부모님한테 잘 허는디,
뭔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리 바쁜 사람을 불러모은 거예유 지들이 다 알아서 잘 뫼시고 있응께 사또 어른은 걱정 안 하셔도 되는구먼유.
그럼유, 지들이 알아서 잘 뫼시고 있구먼유.
잘 모시면 뭐하냐고! 성과가 없잖아, 성과가! 포인트를 받는 게 더 중요한 거야.
성과가 뭔디유.
뭐 이를테면 국가에서 정문(旌門-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의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세우던 붉은 문. 홍문(紅門) 이라고도 했다)을 내렸다든가,
아니면 복호(復戶-일종의 세금 면제로 전세와 요역을 제외한 모든 세금을 면제 받는다.)를받았다든가 하는.
내말은 눈에 띄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꼭 정문을 받고 복호를 받아야지만 효잔가유 그냥 지성으로 부모님을 섬기면 그게 곧 효자지 뭐가 효자겠슈.
지는 이런 교육 안 받어두 되니께 얼른 집에 보내주세유.
가서 김도 매야 허고 정신없구먼유.
이런, 촌놈들 효자문 하나 생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아.
그건 고을의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이야.
자손들이 대대손손 네 이름을 기억해주고, 국가 차원의 실록에도 이름이 올라가는 거야.
그리고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세금 한 푼 안내는 게 어디냐.
사또의 한마디에 동헌에 모여 있던 효자 효녀 후보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또, 그럼 지들이 워째야 허는디유 워떻게 허믄 지들도 효자가 되는 거여유.
흐흐.내 이럴 줄 알고 차트를 준비했지. 어이 이방 차트 앞으로.
차트 앞으로.
사또가 힘차게 지시봉을 꺼내들고 펄럭이는 차트 앞에 섰다.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정문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요건부터 말해주겠다.
일단 효자가 되려면 부모님이 아파야 해. 그것도 고뿔이나 신경통 같은 거 말고, 숨이 넘어가기 바로 직전의 상태여야 하거든.
너희 중에서 지금 부모님 아픈 사람.없는디유.
이런! 좋아, 없으면 차차 만들면 되는 거고, 일단 설명을 계속해보겠다
에 또, 우리 조선에서 효자로 간주하는 3대 효행이란 게 있는데, 일단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단지야.
손가락 뚝 자르는 거.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두 눈 질끈 감고 손가락을 잘라 그걸 태워서 재를 만든 다음에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게 하면 곧바로 몸이 낫는다.
뭐 그런 건데, 생각 있냐.
동헌에 있던 예비 효자 효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자식들. 소심하기는. 손가락 한두 개가 뭐 아깝다고 그래 어이, 병칠이 너는 육손이잖아.
남들보다 손가락 하나 더 많은 데,
하나 자를 생각 없어.
지, 지는 부모님이 건강허신디유.
이 자식, 말대꾸하는 거 봐라.
건강은 건강할 때 미리미리 챙기는 거야! 이참에 하나 자르지 그래.
지는 그냥 이대루 살 거구만유.
하, 자식들 소심해가지고.손가락 하나면 인생역전 이라니까.
내가 보고서 잘 써줄게.
사또, 딴 건 없남유.
알았어. 에 또, 3대 효행의 두 번째가.
이거 좋다. 할고(割股)라는 건데,
이거 하려면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야 해.
할고를 해석하면 나눌 할(割)에 넓적다리 고(股)라고.말 그대로 ‘넓적다리를 나눈다‘는 뜻이 되겠다.
다시 말해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배고픈 무보님을 위해 넓적다리 살을 잘라서 구워드린다는 거야.
차라리 돼지고기나 두어 근 끊어다가 드릴래유.
뭐 먹을 게 있다고 허벅지 살을 도려내 준대유.
맞어유! 쎄빠지게 일허다 보면 삼겹살 이나 목살 정도는 봉양할 수 있을 것인디, 뭐땜시 허벅지를 베어낸대유.
사또, 좀 현실적인 효자는 없는 거여유.
이게 효자 만들자는 건지, 사람 병신 만들려는 건지 지는 도통 감이 안 오는구먼유.
맞아유 두 번 효자 됐다간 아예 병신되겄슈.
알았다, 알았어. 그럼 병신 안 되고 효자 되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을 얼려줄 테니까 잘 들어.
사또는 효자를 배출해서 성과포인트 점수를 올려보려고 기를 썼고, 예비 효자 효녀들은 정문이나 복호를 받아볼 요량으로 나름대로 귀를 기울였다.
잘 들어. 3대 효행 가운데 어디 안 다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이건 좀 비위가 강해야 할 수 있는 거야.
전문용어로는 상분(嘗糞)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똥을 찍어 먹는 거지 똥이 달면 죽을병에 걸린 거고, 쓴맛이면 정상이다 뭐 그런 거야.
일종의 건강검진이지.
사또, 너무 변태스럽지 않남유.
이놈아! 손가락도 못 자르겠다,
허벅지 살도 못 자르겠다,
이것도 못하겠다는 거냐.
그럼 어쩌자고.아니, 거시기헌 게.
그리고 그건 부모님이 아파야 허는 게 아닌감유 저희 무보님은 아직 멀쩡하신디유.
솔직히 말해서 똥만 찍어먹는다고 효자문을 받는 건 아니야.
에.상분이란 게 1년 내내 부모님 똥을 찍어먹고 건강을 체크한다면 대충 효자문을 줄 명분이 되겠지만,1년에 한두 번 찍어먹는 걸로는 효자 되기가 어렵지.
그래서 나온 게 ‘안나오면 쳐들어간다.코스야. 너희 무보님 가운데 변비 있는 사람 있냐.
어, 울 아부지가 변비신디유.
울 어무이는 아침마다 죽을라 해유.
좋아, 바로 그거야! 너희가 부모님 변비도 해결해주고 효자문도 받으면 좋지 않겠냐.
그런 게 있어유.당근이지! 이게 지난달에 조정에서 미담 사례로 내려온 공문인데.
내용인 즉슨 어머니의 곡도(穀道-항문)
가 막혀서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효자가 입에 기름을 잔뜩 머금고는 빨대를 어머니의 곡도에 대고 힘차게 불었다는 거야.
그랬더니 어머니의 곡도가 확 열리면서 3박4일 동안이나 변이 쏟아져 나왔다는 거야.
어때, 한번 해볼 생각 있어.
기름은 멀루 쓰남유.
미끄러지기만 하면 되니까 참기름이든 들기름이든 상관없어.
요새 중국산이 싸게 들어오잖아.
어때, 해볼 생각 있어.
이거 허면 참말루 효자가 되는 거예유.
내가 확실히 밀어줄게! 잘만 포장하면 효자문에 세금 면제까지 한꺼번에 해결된다니까!
나도 좀 살자 응.
까짓 거 부모님도 좋구 지도 좋은 거라는디 한번 해볼께유.
역시 효자라니까! 좋아, 가는 거야! 빨대랑 기름은 내가 대줄게.
이리하여 사또는 직접 참기름 두 되와 대나무로 깎아 만든 대롱 한 묶음을 예비 효자에게 건넸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 변비는 꽤 심각한 병으로 분류되었다.
부모님의 변비도 치료하고 덤으로 효자문도 받는 것이 단지나 할고 같은 무식한 효도보다 한결 쉬웠으며 정부의 지원도 차이가 없던 까닭에 조선시대 내내 효자문을 받은 효자 가운데 상당수가 ‘변비 치료’를 통해서 탄생한 것이다.
열녀를 포상하라.
경국대전 예를 장권(獎勸)조에 이런 기록이 있다.
효도,우애,절의 등의 선행을 한 자를 해마다 연말에 예조에서 정기적으로 선정하여 국왕에게 보고하여 장권(獎勸-권면하여 칭찬하다.
즉 포상을 한다는 뜻)한다.조선 초기에는 재혼, 삼혼 흔해.건국 초기에 유교적 가치관을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애쓴 조선 정부에서 가장 신경을 쓴 이들이 열녀였다.
효자는 본능이 어느 정도 좌우한다. 하지만, 열녀의 경우는 ‘선택’의 문제이지 않은가.
조선 초기에 양반집 여성이 두세 번 혼인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충·효 예를 말하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하듯 아내도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는 법이라며 절개를 권장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당근과 채찍 전략이었다.
재혼하면 자식은 벼슬 금지.
당근은 앞에서도 언급한 정문이나 복호 같은 것이었으며, 채찍은 재가녀 자손금고법이었다.
경국대전.제과(制科)조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관리로 영구히 임용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자,
장리(贓吏-뇌물을 받은 관리)의 아들, 재가한 자,
실행한(간음한) 부녀의 아들과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 생원, 진사시에 응시할 수 없다.
나도나도 열녀.다시 말해서 재혼을 할 경우 그 자식의 출사 자체를 금지시킨다.
이 법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가를 하려던 여성들은 일단 자식 때문에 한번 움츠러들게 되고, 움츠러든 마음을 추스르고 재혼을 결심한다 해도 가문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를 지상의 과제로 삼은 당시 양반 들에게 ‘재가녀 자손금고법’은 가문의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과부들이 재가를 하지 않게 된다.
즉 열녀가 폭증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조선 정부는 폭증한 열녀를 모두 포상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후보들을 다시 한 번 검증하게 되었다.
*엽기조선왕조실록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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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천후 그린벨트.해수욕장 옆 소나무 숲의 비밀.
조선시대에도 그린벨트가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선시대 그린벨트를 찾아가 보자.
황제 폐하,아무래도 우리 고려에도(조선건국전)그린벨트란 걸 채워야 할 거 같은데요.
벨트는 또 왜 사게.
그냥 대충 새끼줄 꼬아서 바지만 안 내려가게 하면 될 걸 또 어디서 수입해오려고 그래.
거 멜라민하고 관계없는 거냐.
아니, 그 벨트가 아니라요.
벨트면 다 벨트지 허리띠랑 벨트가 뭐가 달라?
이 자식이 어디서 꼬부랑말 몇 자 들고 와서 감히 황제를 능멸하려고 하네.
이 자식이 황제 알기를 띄엄띄엄 알고 있어.
폐하, 그런 게 아니라, 이게 다 쿠테타를 막아보자는 뜻으로.쿠테타를 막겠다면 수방사령관 똘똘한 놈으로 뽑아놓고, 특전사 애들 꼼짝 못하게 하면 되잖아!
넌 5공화국도 안 봤어.
폐하,계속 말 끊으면 안할 겁니다.
안 하면 누가 아쉬운데.
쳇.하,자식, 소심하기는.
알았으니까 계속해봐.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한반도 지도를 잘 살펴보면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 무슨 결함 축적을 잘못 계산했어 아니면 등고선 색칠을 잘 못했나뭔데.
도표를 보시겠습니다.
여기와 여기 뒷동네 수박산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인데,이 산들이 주산(主山) 을 등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심을 품고 있는 동네지요. 이런 동네에서 꼭 반역자가 나온다니까요.
그래 그럼 이참에 그 동네를 확 밀어버릴까.폐하, 수박산 같은지형이 고려 땅에만.조선건국전 3,500개나 됩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십니까.
그럼 어쩌라고.이런 지역에는 절을 짓거나 불상을 세워 반란의 기운을 다스려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지맥이 흐르는 혈을 다스리고, 이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죠.
야,그거 좋은데.그러자면 이 지역을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죠.
알았어, 알았으니까 당장 시행해.
이렇게 해서 우리 민족은 고려시대부터 그린벨트 제도를 시행했다
반란을 막기 위해 전국 3,500곳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선언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근 500년을 버텨왔다.
그러나 이런 개발제한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는 그 한계를 드러냈으니,그것이 바로 이성계의 (조선건국)출현이었다.
전하, 감축 또 감축드리옵니다.
그러니까 최영 장군 한 놈만 없애 버리면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래, 군만 장악하면 나머지는 다 끝이야.
후후후.그런데 전하, 이참에 그린벨트를 좀.왜 자네 땅이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
이런, 우리 혁명동지가 그런 곤란한 상황이 있었다니, 내가 이참에 다 풀어줄게.
어디야 몇 필지나 되는데 그까이꺼 내가 그냥 다 풀어줄게.
그런 게 아니라 그린벨트를 좀더 확대 지정해야 한다는 주청을 드리려고.
조선 개국과 동시에 터져 나온 때아닌 그린벨트 확대 논쟁의 진의는 무엇일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정권 초기라
안 그래도 백성들 민심이 흉흉한데 말야.
이럴 때 국풍도 한번 열고 프로 야구도 만들어서 분위기 좀 띄워줘도 될까 말까인데, 갑자기 웬 헛소리야.
전하, 그런 게 아니라요.
좀 들어보시면.
시끄러워! 어제까지 내 땅이었는데 쿠테타 일으켜서 왕 된 놈이 오늘 갑자기 그 땅을 전부 그린벨트로 만들었다고 치자.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전하, 지금 당장 그린벨트를 실시해야 하는 건 말 그대로 개발을 제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하, 5층짜리 단독주택 하나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소나무지.
불땔 때 제일 잘 타는 건요.
관솔이지.
다 아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뭐가.우리가 당장 경복궁을 지어야 하잖습니까.
경복궁만 짓습니까.
조금 지나면 창덕궁에, 창경궁에, 덕수궁에 궁궐만 몇 개나 지어야 하는데요.
게다가 육조에서는 거적 깔고 일합니까. 종합청사도 지어야죠.
아.당장 필요한 소나무가 얼맙니까.
거기다가 해군은 종이배 접어서 싸웁니까.
배를 만들려면 또 소나무가 필요하잖습니까
나라에서 쓸 소나무도 부족해서 죽겠는데, 민간인 들이 소나무 잘라서 집 짓고 불 때는 데 다 쓰면 우린 어디서 소나무를 가져옵니까.
그렇구나.일단 급한 대로 도성 근처 산에 대한 금산령을 내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조는 취임과 동시에 금산법(禁山法)을 선포한다.
법을 만든다는 건 처벌 조항도 같이 올린다는 뜻이다.
경제육전 을 살펴보면 송목금벌(松木禁伐)’이라는 규정을 두어서 도성 주위에 소나무 벌채와 석재 채취를 금지시켰다.
만약 이를 어기면 곤장 90대를 치도록 했다.
게다가 벌금형도 추가되어서 잘라낸 양만큼 그 자리에 나무를 심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까 좀 볼만하군.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태조가 금산법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는 그 순간에도 백성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 직전까지 팽창했다.
노총각 최모씨 아니, 산에서 나무를 못 하면 밥은 뭘로 지으라는 거야.
첨부터 과부 김모씨:그 비싼 숯을 어떻게 다 사라고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
海海스님 원래 절은 인적이 드문 산에 지어야 제 맛입니다.
그러기 위해선.나무가 필요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개발업자: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으면 살 대책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도 이전 때문에 개성 집값이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까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당장 한양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나무를 베지 말라뇨!
그냥 지금처럼 천막 치고 살라는 겁니까.
기타 등등(시간상,머리상 이하생략)
건축 자재와 연료, 각종 생활용품, 조명용품의 역할을 하는 나무를 베지 말라니 당연히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굶주린 백성들이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면서 금산법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산을 지키기 위해 금산법을 만들 정도라면, 그만큼 나무를 자르겠다고 덤벼드는 백성들이 많았다는 소리 아닌가.
처음에는 단순히 집을 짓기 위해서였지만, 조금 더 지나자 땔감이 필요해서, 나중에는 나무가 아니라 ‘땅’이 필요해서 산을 갈아엎고 나무를 베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라의 기틀이 점점 잡혀갈수록 정부에서는 소나무와 산림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전하, 소나무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사옵니다.
왜 또 그래 그린벨트를 지정한 게 언젠데 또 그린벨트를 지정하라고.
왜놈들이 출몰하는 통에 해군력을 증강해야 하옵니다.
당장 왜놈들과 싸우려면 배가 필요한데,배 재료가.
전하! 왜놈들을 막기 위해선 소나무 숲도 필요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나무 까지는 알겠는데,
숲은 또 왜 필요한데.
전하! 왜놈들의 상륙 지점으로 활용되는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허허 벌판인 모래사장을 메워야 하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하, 혹시 란 영화를 보셨는지요
거기 보면 밀러 대위와 특공대가 오마하 해변으로 진격하는데, 독일군 해안수비대에 걸려 도륙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그게 다 엄폐를 잘한 상황에서 숨어서 공격을 해 그렇게 된 겁니다.
그게 어째서.그러니까 우리도 해안에 소나무 숲을 조성 해서 엄폐물로 삼자는 것이지요.
일단 왜놈들이 떴다 하면 소나무 숲에 숨어 있다가 화살을 날려서 해안에서 싹 쓸어버리는 것이지요.
설령 그곳이 뚫린다 하더라도 소나무 숲의 나무를 잘라서 전함을 만들면 꿩먹고 알먹기가 아니겠 습니까.
야, 끝내주는데.좋아, 접수했어!
앞으로 해안에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공익요원하고 해당 공무원을 뽑아서 숲을 관리, 보전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조선 후기에는 해안을 중심으로 금산 지역이 늘어나 전국적으로 600여 곳이나 되었다
해안에 조성된 소나무 숲 덕택에 전투용 배나 세곡 운반선을 비롯해 민수용 배를 만들기 위한 자재를 조달할 수 있었고, 덤으로 해안 방어용 목책으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웬만한 해수욕장에 다 있는 소나무 숲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하! 무지몽매한 화전민들 때문에 산이 완전히 홀라당 벗겨지게 생겼습니다.
그놈들도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건데,
웬만하면 넘어가지.
법이란 게 너무 빡빡하게 적용하면.
화전민들이 땅을 개간한답시고 나무를 남벌하는 통에 우물이 다 말라붙었사옵니다.
나무란 것이 본래 홍수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라, 물을 흡수하고 있다가 적당량을 내려 보내면서 물의 흐름을 조절했는데,나무를 다 베어버리니 민가의 우물이 다 말라붙어 생활 자체가 힘들어졌다 하옵니다.
전하, 조선은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이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유엔 그놈들은 우리나라 건설업자한테 돈 먹었나, 왜 물가지고 지랄이야.
조선 후기가 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금산법은 더욱더 엄격하게 적용되었고, 금산 지역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영조 시절이 되면 ‘송금사목(松禁事目)’이라 하여 금산법을 능가하는 소나무 보호 정책까지 나온다.
당시 조선 정부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이를 어길까 봐 송금사목의 ‘한글판’까지 만들어 백성들에게 돌릴 정도였다.
목적은 달랐어도 1,000년 가까이 그린벨트 제도를 시행한 한민족,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일일이 조사하고,만약 나무가 죽으면 책임 소재를 끝까지 밝혀내 책임자를 처벌한 조선시대의 엄격함 지금이 조선시대보다도 나무가 더 많을까?
아님, 임야면적이 더 많을까.자연을 훼손하는 인간만 소나무 덕분에 이긴 임진왜란 다 알다시피 임진왜란 당시 왜의 기본 전술은 수륙병진책으로,
육군이 부산을 거쳐 서울로 치고 올라가는 사이 해군이 남해를 돌아 서해를 넘어 물자와 병력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물자와 병력의 보급이 없으면 싸울 수 없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왜군을 물리쳤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은 단병접전은 피하고, 원거리 포격전으로 왜군들을 격파시켰다.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군들은 왜 배에 포를 달아 조선 수군과 함포전을 할 생각을 안했을까.
사실 왜군은 함포전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조선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을 비롯한 모든 함선들은 소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왜선은 삼나무로 만들어졌다.
소나무는 삼나무에 비해 무겁고 튼튼했기 때문에 함포가 발사될 때의 반동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래서 판옥선 한 척에 20여 문 이상의 함포를 장착해 일제히 발사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삼나무로 만들어진 왜선은 가벼워서 빠른 속도를 낼 순 있었으나 함포의 반동을 이겨낼 만한 내구성은 없었던 것이다.
설사 함포를 장착한다 하더라도 판옥선처럼 수십 문의 함포를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포 몇 문을 장착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엽기조선왕조실록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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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비자금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돈없이 정치를할수있을까.
정치를 하려면 정치자금이 필요하다’며 자신들의 비자금 생성과 사용을 애써 변명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들에게도 비자금이 있었을까.
결론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합법적’으로 말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비자금을 살짝 보러 가자.
에또, 나라도 개국하고 했으니 말인데, 내가 잠저에(潛邸 왕이 되기전에 있었던 곳)있었을때 모은 재산 말이지
그거 어쩌지.
태조 이성계의 물음에 신하들 벌떼 처럼 덤벼든다.
왕이란 직책은 이 나라 모든 것의 주인인데, 어찌 사사로이 재산을 가지시려 하십니까
조선 강토의 모든 물산과 인재가 전하의 것인데 네꺼 내꺼가 어디있습니까.
아니, 뭐. 꼭 그렇다기 보다는.정치를 하다보면 비자금 이란것도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다 쓸일도 있을거 같고,
공식적으로 공개하기엔 좀 껄끄러운 사용처도 있을거 아냐
현실 정치란게 말야 교과서 에서 나오는 것 처럼 그런게 아니란거 네들도 잘 알잖아.
가끔 기름칠도 좀 하고 그래야 굴러가는 게 현실정치잖아.
그리고 그 돈의 원래 주인은 나니까 댓가성뇌물은 아니란 것이지.
결론은 내가 내맘대로 쓸테니까 다들 셧더 마우스 하고 찌그러지세요.
태조이성계는 그렇게 자신이 잠저시절 모았던 재산을 개인 비자금으로 돌리게 된다.
독자들 보시기엔, 개인재산 그까이거 뭐 대충 몇십억 굴렸겠거니 하겠지만,고려말 공신록에 몇 번이나 이름을 올리고, 함경도 지방 토착유지로 이름을 날리던 이성계의 집안은 함경도 땅의 1/3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딸린 노비들까지 합하면 그 재산은 지금의 10대 재벌 저리가라 수준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은 내 돈은 내수사가 관리하라 그러고, 왕실 재산으로 상속하는 걸로 해라.
저.전하 그래도 비자금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씰데없는 소리.
돈이란건 굴려야 돈이지 그냥 묵혀두면 그게 돈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고만 찌그러져 있어.
아니,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비자금을 관리하는 관청을 둔다는 것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양한다는 말도 몰라 자꾸 비자금 비자금 할래 이건 엄현히 정치자금이야 정치자금 솔직히 너 저번달에 나한테 봉투 한 장 받았지.
그게 어디서 나왔는데 국고에서 나왔겠냐 아니면 시전상인들 등쳐서 뇌물 받아서 나왔겠냐.
왕이 가오가 있지 어디서 뒷돈 받아먹겠냐? 정치는 현실이야.
가끔 밑에 애들 기름칠도 해주고, 지름신이 강림하면 한번쯤 질러주고 그게 왕 가오 아니겠어.
이때부터 조선시대 왕들은 합법적으로 비자금을 관리하게 되는데, 명목상으론 정5품 아문이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왕의 돈을 관리하는 것은 내시들이었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왕을 보필하는 존재이기도 하였지만, 원래 달려야 할 것이 안 달려있는 이들이 었기에 그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풀었으니, 바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었다.
요즘 시중 금리가 5.5%정도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은행권에 돈을 넣어봤자 별 이득이 없습니다.
해서 자금의 1/3은 장기 채권으로 돌리고, 1/3은 주식쪽으로 돌렸습니다.
나머지 1/3은 늘 하던대로 제2금융권에 돌려서 사채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강내시. 아니, 강 펀드 매니저 다 좋은데 말야.
그래도 왕이나 돼서 사채놀이 한다는 게 좀 껄적지근 하거든 이게 참 왕 체면이 있지.
걱정 마십시오, 전하. 전하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여타 다른 제2금융권에 비해 이자를 훨씬 싸게 해서 돌리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전하 돈을 못 끌어다 써서 안달입니다.
은행권보다 2%정도 더 붙여서 돌리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 평판도 좋습니다.
오 그런가.
예, 그리고 이번에 충청도 땅에 돌밭 2천 필지를 새로 사 들였는데, 백성들에게 개간시키고 15년 경작권을 허용하는 선에서 분양을 했습니다.
그래.혹시 미분양 이라도 되었나.
아닙니다. 서로 하겠다고 덤벼들어서 청약경쟁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100대1의 경쟁률이라 프리미엄까지 붙고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오, 그런가 이게 다 강내시.
아니 강펀드 매니저의 공이오, 음하하하하.조선시대 내수사 에서 사채놀이를 하고 땅을 개간하면서 왕의 비자금은 점점 그 규모가 커져 나갔다.
백성들도 내수사의 돈은 다른 사채보다 그 이자율이 싸서 서로 쓰겠다며 줄을 섰으니 이런걸 두고 꿩먹고 알먹고라 해야 할까
왕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으로 무얼했을까.
이번에 왕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절을 지으려 하는데, 어떻소이까.
아니되옵니다! 유교국가에서 절이라니 천부당 만부당 이옵니다.
나라가 흉년에 들어 제정이 궁핍하거늘 어찌 지금 절을 지어 분란을 일으키려 하십니까.
드러워서 나라돈 안써! 야 강내시 내수사에 있는 내 돈 좀 뽑아와.
대충 이런 컨셉이었다.
왕실 가족들이나, 집안 경조사,
마음에 드는 신하들 용돈 등등으로 왕의 비자금은 그렇게 쓰여졌던 것이었다.
가끔 나라의 큰 재난이 터지면 왕이 큰맘먹고 내탕금을 돌리기도 하였지만.
이 비자금은 말 그대로 왕 개인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고종때까지 면면히 흘러왔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과 비자금은 떼려야 뗄수 없다는 것.
*엽기조선왕조실록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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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길 전전하던 조선시대 관료들.
사극을 보면 정쟁이나 역모에 연루돼 의금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양반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의금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던 이들은 거의 사약을 받던가 유배를 가게 되는데, 이 유배길의 뒷이야기가 오늘의 주제이다.
전하.호조참의 김도진이 수양대군의 사저를 자주 드나들었다. 하옵니다.
이는 필시 분경(奔競)일 공산이 크오니 엄히 치죄하시옵소서.
무엇이라 당장 김도진을 잡아들여라.
호조참의 김도진은 그길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게 된다.
여기서 분경이라 함은 권력자 옆에 붙어 인사청탁을 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분경금지법까지 만들어 인사청탁을 엄히 금했었다.
김도진이 분경한 것을 순순히 인정하였습니다.
고얀놈 형조판서 이런 경우 어찌 처단하여야 겠소.
에또, 그러니까 이런 경우엔 원지에 유배하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럼 대명률 (大明律)에 의거해 김도진을 도성에서 3000리 밖으로 유배보내라.
자, 문제는 이때부터인데 조선시대에는 형법이 없었다.
경국대전이나 속대전을 보면 민법에 관한건 있어도 형법에 관한건 없는데, 그건 명나라의 대명률을 그대로 가져와 쓰면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그 사이즈 부터가 다르지 않았던가.
아따, 임금님도 너무하시네 3천리 밖이 어디여 3천리 밖이.
아따, 이사람 그럼 어쩌란 말이여? 임금님도 3천리 보내고 싶어 보내는 줄 알어.
대명률에는 그렇게 밖에 안나왔는디 어쩌란 말이여?
자 봐봐, 유배길 종류는 2000리, 2500리, 3000리 딱 3개 밖에 없잖여.
좋네! 귀양길 3종세트.
그러니까 답답하단 소리잖여, 조선땅이 만리가 돼, 2만리가 돼?
중국이나 되니까 3천리 밖으로 보내버리지.
난쟁이 콧구멍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3천리를 찍어.
이 사람이 일단 충청도까지 쭉 내려와 와서 공주찍지 공주찍고 다시 경기도 와서 그길로 평안도로 가.
평안도 평양찍고 그대로 함경도로 내달려 가서 길주 찍으면 대충 3천리 나온다니까.
궁하면 다 통하는 겨.
그래도 임금님 가오가 있지 3천리 보내라는데 나라가 작아서 3천리를 못간다 그러면 월매나 존심 상하시겄어?
우리가 대충 맞춰드리자고.(세종대왕 시절 이 귀양길 3종세트는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0리는 600리로, 2500리는 750리로, 3000리는 900리로 조정하게 된다)
의금부 서리와 나장들이 귀양길 코스를 점검하는 동안 유배길을 떠나게 될 김도진은 조용히 유배길 갈 준비를 하는데,여보 마누라, 이번에 가면 좀 길거 같거든.
나 갈때동안 집안 건사 잘하고 있어.
알겠어요. 그런데 꼭 유배를 가긴 가야해요.
이 사람이 당신은 조폭도 몰라?
조폭들도 클려면 전부 빵에 한번씩 들어갔다 나와야 돼.
지금 조정에 유배 한번 안갔다온 사람이 있는 줄 알아.
내시들 빼고는 다 유배 갔다 왔어.
두고 봐 나도 조만간 클테니까.
아 그리고 속전(贖錢)은 준비했지.
가계경제도 어려운데 그냥 몸으로 때우면 안될까요.
이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곤장 100대를 어떻게 맞아! 잔말말고 속전이나 준비해 둬.
유배형에 장100대를 선고받은 김도진은 장100대는 벌금으로 때우고(이걸 속전이라 한다)홀가분하게 유배길을 떠나는데,
북쪽끝 길주에 도착하게 된 김도진 자신이 거처해야 할 방을 보게 되는데,
그 동안의 유배길이 고단했는지 김도진 대뜸 밥을 요구한다.
어이구,배고파 돌아가시겄다.
여기 밥좀 내와.김도진 앞에 떡하니 차려진 밥상,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조와보리가 섞여있는 밥에 간장 한종지, 백김치와 고사리 나물이 고작이었다.
이 사람들이 나보고 지금 이걸 먹으라고 내놓는거야 나 김도진 이야, 김도진.한양에서 호조참의하던 김도진이라니까! 솔직히 고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게 뭐니 이게 고사리가 남자 정력 죽이는 음식이라는 거 알아 몰라 내 나이 아직 한참인 30대인데 이거 먹고 어쩌라고.
나으리, 낸들 어쩌라는 겁니까?
원님이 이렇게 내주라고 해서.
원님 어딨어 원님!
내 이 녀석을 기껏 길주 땅에서 수령짓이나 하는 주제에 어디서 감히.
아니 저기.나으리는 몸통이 아니라 깃털이라고 대충 밥이나 한술 뜨게 해주면 된다고.
언놈이야 언놈이 나보고 깃털이라고 그랬어 이거 왜이래 나 이래뵈두 한양에서 잘나갔다니까!
누구야, 누가 나보고 깃털이라고 했어! 당장 누군지 안불어.
김도진이 입에 거품을 물고 항의를 했으나 김도진의 처우는 거기서 더 나아지지 않았으니, 당시 귀양을 온 전직 관리들은 그 지역 관리들의 통제와 보살핌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 관리가 다시 서울로 올라갈수 있는 실세일 경우에는 그 대우가 괜찮았지만, 별볼일 없는 깃털이란 판단이 서면 꼭 ‘깃털’대우만 받는 것이었다.
귀양생활에도 몸통과 깃털의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에서도 구치소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인간들이 꼭있는걸로 압니다만.
조선이나 한국이나 나라의 이름만 바뀌었지, 그 돌아가는 꼴은 거기서 거기란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