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이란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 4,20-25; 루카 12,13-21 /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2023.10.22.;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인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믿음은 의로움이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로마 4,20). 군사력으로 지중해 일대의 모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그 국가들로부터 빼앗은 재화와 노동력으로 지탱하던 로마 제국, 문화적으로는 변변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 그리스의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종교마저도 그리스 신들을 흉내내어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낸 우상숭배의 제국, 게다가 그 우상숭배에서 나오는 오만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짐승처럼 죽이던 야만의 제국. 이렇듯 문명 아닌 야만의 분위기 속에서 극소수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서 복음을 전하여 신자들이 생겨났지만 아직 참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사도 바오로는 편지로써 본격적인 교리교육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설파한 대로 믿음이 의로움인 이유는 믿음의 대상이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뜻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곧이 곧대로 실천하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생명을 얻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 무상의 자비에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정신적 태도가 믿음이요 그것이 도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써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비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그분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무상으로 자비를 베풂으로써 행동으로 나타내보이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차 믿는 이들은 물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닮도록,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세상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베푸신 자비는 생명만이 아닙니다. 이 생명을 유지하며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재화도 무상으로 베푸셨습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재화의 주인은 본디 하느님이십니다. 땅에 묻혀 있건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 가려져 있건 간에, 인간의 재능과 노력으로 개발하고 계발해서 이룩해 놓은 결과가 물질문명(Civilization)이요 또한 정신문화(Culture)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아서 우리도 서로 자리를 베풀라고 주어진, 그것도 거저 주어진 은총입니다. 이를 깨닫는 일이 믿음이요 그래서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하느님을 모르고 재화를 우상처럼 섬깁니다. 재능이 있어서라거나 운이 좋아서 얻은 재화를 쌓아 놓고 행복을 보장받은 것처럼 착각합니다. 나누는 지혜는 퇴보한 반면 가로채는 기술은 발달했습니다. 현대 문명과 정신문화의 현주소가 그렇습니다. 경제학과 기업가들은 수익을 창출하고 투자를 다변화하는 기술은 발달시켰지만 분배로 수요를 창출하는 경제 윤리에는 무능합니다. 정치학과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를 긁어모으는 데는 민감하지만 공동선을 수호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정치 윤리에는 무능합니다. 자연과학과 기술자들은 자연현상을 탐구해서 돈벌이가 되는 연구와 기술에는 창조적이지만 그 속에 창조주 하느님의 섭리가 숨어 있음을 알아채는 눈은 멀었습니다. 그래도 문학과 역사학과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과 이에 종사하는 문인들, 역사가, 철학자들, 그리고 예술과 예술인들은 시대의 고통과 부조리를 알리는 데에 본능적인 감각을 가지고 동시대인들에게 호소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글과 예술품 속에도 하느님의 진리와 아름다움이 담겨있어야 함을 느끼는 데에는 2% 부족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통해서 창조주를 보고, 재화를 통해서 나눔을 생각하며, 재능을 통해서 배려를 느끼고, 업적을 통해서 경탄할 줄 아는 사색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의로움이요, 의로움은 아름다움인 동시에 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을 신(信)’과 ‘옳을 의(義)’는 ‘아름다울 미(美)’와 ‘참 진(眞)’의 바탕입니다. 여기서 의(義)라는 한자는 위에는 양(羊)이라는 자를 쓴 다음 아래에는 아(我)라는 자를 붙여서 쓰는데, 또 ‘나 아(我)자’는 손으로 자신을 지키는 창을 뜻하는 손 수(手)변에 창과(戈)부를 붙여서 씁니다. 뜻글자의 원리대로 이를 풀어보면, 내가 창으로 양을 잡아서 하느님께 바쳐서 감사의 예를 올리는 것이 의로움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인간의 도리를 이렇게 표시해 온 것이지요. 요컨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며 이는 또한 아름답고 참되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내신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인생의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