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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렌트 이창훈씨가 호텔에서 본 신명(神明)
1995년 늦은 봄,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국내 연기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할 때다. 당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창훈씨는 유독 많은 대사를 외우기 위해 현지에서 독방을 썼다. 도착 이틀째 되던 날, 낮잠을 자던 이창훈씨는 이상한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얘길 나누는 두 소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한 이창훈씨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지갑 속의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돈을 셀 때마다 한 장씩 없어지는가 하면, 놀라서 지갑을 떨어뜨리자, 지갑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소녀들은 잠겨진 방문을 열지도 않고서 그냥 통과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밤이면 밤마다 소녀들의 혼령은 어김없이 출몰하여 이창훈씨를 괴롭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서 목덜미에 불어대는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만으로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던 차에, 로비에 모인 연기자들도 귀신얘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탤런트 '전현'씨도 낮잠을 자다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 잠을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자신의 목을 마구 조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호텔 주인장에 따르면, 앞서 이 호텔 3층에서 웬 아버지와 딸이 묵었다가 어느 날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들 혼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중에서
[공포ssul화] 배우들의 귀신 목격담?! 드라마 촬영 중 일어난 일!|#공포ssul화 MBC961108방송 - YouTube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과거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올렸던 구명시식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한 유력 가문 며느리가 죽은 남편 영가를 천도하는 자리였다. 남편 영가가 오셨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 영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내가 시아버지에게 얼마나 괄시를 받았는지 알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그렇게 일찍 가면 어떡해?"
그러자 남편영가는 기가 차다는 듯 "아니,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구명시식 3일 전에 다른 남자와 자고 와?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몸가짐을 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잖아." 참 전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영가의 요청대로 그대로 적어서 부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 몰래 바람 많이 피웠잖아? 나는 당신 죽은 다음이고, 당신은 나 살아있을 때 바람 폈으니까, 쌤쌤으로 칩시다." 나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들어줄 수 없어 그냥 웃고 말았는데.구명시식에서 얻는 웃음의 힘. 이런 일이 있기에 아마도 구명시식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가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숙한 자리라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어떤 때는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돌아가신 영가님을 초혼하는 자리라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의식이 구명시식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시부모님 영가 구명시식을 올리는데, 의식이 시작되자마자 다짜고짜 며느리가 시부모님 영가에게 따졌다.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희한테 재산 한 푼 남겨주신 것도 없으시잖아요! 시부모님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구요. 아세요?"
아마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경제적으로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약속 위반이었다. 애초에 시부모 영가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린다고 해놓고 속사포처럼 영가님들을 공격하다니. 며느리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시부모 영가의 안색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부른다기에 힘들게 구명시식 자리까지 왔건만 오자마자 망신을 준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영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며느리는 계속해서 인신공격을 했다. "입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자식들을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해놓고 어쩌실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영단에서 큼지막한 사과 하나가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며느리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겁했다. 멀쩡한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며느리 이마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것, 어디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집안이 잘 될 리가 없지!" 참다못한 시부모 영가가 집어 던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입 다물고 죄송하다며 바닥에 엎드렸을 텐데 이 며느리는 한술 더 떴다. "뭘 잘했다고 저를 때리세요? 아예 저기 있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시죠?"
다른 참관자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라고 난리를 치고, 또 화가 난 시부모 영가는 다른 영가들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구명시식을 정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말은 옳다. 서리는 물론 눈이 펑펑 내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여인의 한이다. 한 만큼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업 만큼 큰 것도 없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한 맺히게 만들 경우, 그 업보가 자신 또는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져 무고한 후손이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사자(후손)는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사인 Y씨가 바로 그랬다.
약대 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약국을 운영해온 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그에게 선도 숱하게 들어왔지만 마음이 끌리는 자리가 없었다. 이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맞선자리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Y씨는 ‘인연이 조금 늦게 나타나려나보다’고 마음을 느긋이 먹은 터였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을 분이었다. 교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얼굴을 익힌 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무려 2억원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한 채 끙끙 앓던 그는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필자의 책을 잃게 됐고 자기 집안에 자살, 사고사, 비명횡사한 친척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한 것이다. 구명시식 현장에서 Y씨 집안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갑부로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다. 풍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던 할아버지는 삼례 근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됐고 그녀와 함께 춤과 노래와 사랑에 취해 몇 달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삼례 여인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녀를 문전 박대했다.
피눈물을 흘리고 돌아선 그녀는 거리를 떠돌다 할아버지 집안을 저주하면서 굶어 죽었다. 물론 9개월 된 태아도 함께 죽었다. 바로 그 삼례 여인이 원혼이 돼, 할아버지 집안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집안의 마지막 남은 남자인 Y씨까지도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애증의 한이 모두 밝혀질 즈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구명시식 제단 위의 촛불이 꺼졌다. 몇 대를 거쳐 한을 뿌린 여인이 구명시식 영단에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몇 명을 죽음으로 이끌고 몇 억원을 사기 당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안의 대마저 끊으려 드는 여인의 무서운 집념.
그러나 후손 Y씨의 지극정성 천도제는 그녀의 한을 녹일 수 있었다. 후손의 정성이 선대의 악업을 푼 것이다. Y씨는 일생을 모은 거액을 떼었지만 밝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안 악연이 고리를 매듭지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세조에게 내린 현덕왕후의 저주
문종의 비(妃)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1418∼1441)는 1541년 단종을 출생하고 사흘만에 죽는다. 세조 즉위 후 단종의 생모라는 이유로 종묘에서 신주가 철폐되고 능은 파헤쳐져 물가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한다. 그후 1513년(중종8년)에 복위되어 현릉 동쪽 언덕에 천장되고 신주가 종묘에 봉안된다. 이렇듯 현덕왕후는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기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457년(세조12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세조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현덕왕후는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고 세조를 향하여 꾸짖었다. “너는 참으로 악독하고 표독하구나. 내 아들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도 그래도 부족하여 벽지인 영월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구나.
네가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심하기에 이처럼 악착스러우냐. 이제 내가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세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한참 만에야 겨우 현덕왕후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지독한 놈! 그래도 살고는 싶은 게로구나!” 그러면서 현덕왕후는 세조의 몸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세조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 뒤였다. 세조는 반정 이후에 밤마다 꿈자리가 좋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이런 꿈을 꾸고서 마음이 섬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 후 동궁 내시가 달려와서 황급히 아뢰었다. “전하, 동궁의 최내관이옵니다.
방금 전에 세자 마마께서 잠을 주무시다가 가위에 눌리셔서 매우 위중하시나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세조가 급히 동궁에 행차해 보니 이미 세자는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실로 약 한 첩 써볼 겨를도 없는 급변이었다. 세조는 맏아들의 죽음이 형수인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기고, 관리를 보내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평민의 무덤(墓)으로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세조의 명을 받은 신하가 현덕왕후의 능을 파고 관을 꺼내려 했지만 웬일인지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 능에서 꺼내진 관은 34일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당했다가 물가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한편, 그 이후 세조에게는 또 하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현덕왕후가 뱉은 침을 맞은 곳에서 흉칙한 종기가 돋기 시작한 것이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
세조는 전국 방방곡곡의 명의를 불러모아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신통치 않았고, 그 어떤 신약을 써 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려보기도 하지만 효험이 없었고, 결국 죽는 날까지 이 악성 피부병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와 둘째아들 예종은 발이 썩는 질병으로 각각 20세에 요절한다(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급사하고,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 세조의 손자인 성종 역시 소갈증을 심하게 앓다가 38세로 붕어한다.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1438∼1457)는 단종이 붕어하기 한달 전인 1457년 9월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혼령의 살(殺)을 맞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횡사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죽기 전에 늘 현덕왕후의 혼령에 시달렸으며, 그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공작재(孔雀齋)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水氣가 순환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그런데 무형인 정신은 ‘망형망재(忘形忘在)’가 된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명(光明)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간혹 수행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斜 같은 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조상에서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해서 보복하려는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수 년 전,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한 5일쯤 돼서 초통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닫아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첫댓글 어릴때부터 귀신이 보인다는 크리스쳔
https://www.youtube.com/watch?v=j-rZqBXHI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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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본다면 영성인이겠지요
깨여난분 영계도 볼수있으니 채널링도 가능하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한때는 텔런트를 하다 지금은 무당이 된 정호근씨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자신이 모시는 신명(귀신)에게 물어볼때는 방울을 흔드는 모습이 나옵니다.
무당들은 다 자기가 모시는 천지신명(귀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 이땅에 다녀간 선조들의 말씀에서는 천지가 귀신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늘은 신(神), 땅은 귀(鬼)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도 사람이 죽게 되면 내 영혼(혼魂)은 하늘로 가고,
내 몸(백魄)은 땅속으로 들어가 흩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내 몸, 육체라는 껍질을 벗고,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도가 높은 스님들은 자기 몸, 육체에서 유체(영혼)가 빠져나와 유체이탈하여 다른 곳을 여행했다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3n1VGop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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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하늘 흔히 전기를 생각하면 에디슨을 생각하게 되는데
발전을 하고 송전을 해서 우리 가정에 들어오는 전기는 테슬라(1856-1943)의 작품입니다.
테슬라는 700개가 넘는 발명을 하였음에도 노벨상을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이유는 돈과 개인의 명예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테슬라가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은 따지고 보면 10개는 넘는다고 합니다.
테슬라의 업적으로 오늘날 지구주위를 돌고 있는 인공 위성은 테슬라의 꿈이 공상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명상을 하면서 다양한 영적인 체험을 했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누군가로 부터 영감을 얻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 했던 인물입니다.
다음은 보통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되는 테슬라의 기록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이상한 병으로 고생 했다. 그 때 꿈에서 가끔 내 몸에 이상한 빛이 나를 감싸는 영상을 보았다. 빛에서 벗어 나려고 노력하면 시간이 경과해서 나는 꿈속에서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는 방법들을 배웠고 내 마음속에 있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하늘 내가 17살이 되었을 때 꿈속에서 발명하는 것에 집중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그리고 나중에는 꿈속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았던 물건을 어떤 형태로 나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 놀라워 했다.(1919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게 세상의 외형적인 모습들만 추구한다. 사람들 내면속의 영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망각하고 있다.
문제들에 매달려서 작업을 하는 것도 나에겐 일종의 신에 대한 맹세에 속한다. 나의 의식의 내면 깊은 곳에서 답이 존재했고 나는 그걸 찾아야만 했다. 모든 사람들은 엄청난 어떤 위대한 힘이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새벽하늘
하버드 대학 물리학 교수로 실험물리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과학자인 호로비츠 교수는
나는 꿈을 자주 꾼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꿈들은 다른 꿈들과는 달랐다. 나는 관찰자일 뿐이다.
그러한 꿈들은 무척 명확하다.
다른 꿈들처럼 기괴하지 않다. 이런 꿈에서는 늘 소리내어 문제를 설명해 주는 해설자가 등장한다.
바로 그 목소리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한 남자가 기계 장치 앞에서 작업 중이었다.
광학 렌즈를 조립하거나 회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러한 꿈들을 기록해 두기 위해 침대 곁에 늘 종이와 연필을 두고 잔다.
나는 기록한 것들을 가지고 가 동료들에게 말한다.
“꿈에서 해결책을 찾았어. 정말이야.”
그들은 내가 꿈에서 찾은 대로 일을 진행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다.
레이저 망원경과 관련하여 호로비츠는 광학 렌즈를 조립하는 꿈은 세 차례 이상,
회로를 설치하는 꿈은 두 차례 이상 꾸었다고 했다.
그는 전파망원경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그와 비슷한 꿈을 연속으로 꾸었다.
잠든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즉 한밤중에 그런 꿈들을 꾸었던 것이다.
@새벽하늘 그 꿈들은 깨어있을 때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명확하고 논리 정연했다. 출처: 『꿈은 알고 있다』, 디어더 배럿, 나무와 숲, 2003
케쿨레는 1990년 독일 화학회에서 강연의 요지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런던에 있을 때, 나는 주로 클레팜가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어요.
그날도 그 친구 집에 갔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적 없는 도시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잠시 몽상에 빠진 듯했는데, 글쎄 내 눈앞으로 원자들이 튀어 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작은 두 원자가 어떻게 서로 한 쌍으로 결합되는지,
더 큰 원자가 작은 원자를 어떻게 둘러싸는지, 훨씬 큰 원자들이
작은 원자들을 어떻게 세 개, 혹은 네 개까지 둘러싸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나의 옛 스승 코프가 나타나 멋진 설명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차장이 “클레팜가”라고 외치는 소리에 그만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보았던 그 형태들을 밑그림으로라도 그려 놓으려고 밤잠을 설치며 매달렸습니다.
케쿨레는 “이것이 바로 ‘화학 구조 이론’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하면서, 탄소가 다른 원자들과 결합되는 방식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새벽하늘 이는 현대 유기화학의 기초가 되었다.
[벤젠]의 구조는 기존의 화학기호 체계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독일 화학학회 강연에서, 케쿨레는 그 문제 해결과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거나 아니면 졸고 있는 상태에서 원자를 직접 눈으로 본 경험이 많았다고 했다.
에두아르드 파베르는 1996년 케쿨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꿈이나 환영을 하찮은 것으로 비웃어 넘기지 말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이는 현대 화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벽하늘 ※ 멘델레예프 : 1869년에 발표한 논문에 실린 유명한 원소주기율표 전체를 꿈을 통해서 완성하였다.
※ 닐스 보어 : 그는 꿈에서 진기한 태양계의 모습을 보고 이를 본 딴 원자구조이론이 현대 원자물리학의 기초가 되었다.
※ 오토로위 :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꿈을 통해 신경의 신호전달이 화학물질로 이루어 진다는 이론을 완성하였다.
※ 모차르트 : 자신이 작곡한 작품들은 모두 꿈에서 온 것이라고 얘기하였다.
※ 아인슈타인 : 그는 꿈에서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면 기록하려고 머리 곁에 늘 펜과 노트를 두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 헤르만 힐프레히트 : 바빌로니아 학자인 그는 1893년 꿈에 키가 호리호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제사장이 방문하여 평소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깨어진 이름이 새겨진 조각 퍼즐을 정확하게 배열하여 보여 주었다.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등은 그곳(지상)에서는 천재로 간주되지만 이곳에서는 물리학에 소질을 지닌 아주 진보한 영혼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상에서 육체 상태로 있을 때 이곳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기적처럼 보이는 일을 성취했다.” 출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220쪽
@새벽하늘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천지신명(귀신)의 합작품입니다.
신명들이 인간의 꿈이나 사색의 영역으로 찾아와서 열어주는 알음귀, 영감력 덕택에,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류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벽하늘 과거 우리 대한민국의 선조들이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해 말씀한 내용들입니다.
♣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새벽하늘
♣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 명부에서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
@새벽하늘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器局)에 따라서 그 임무를 감당할 만한 신명이 호위하여 있나니
만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여 제 일에 게으른 마음을 품으면 신명들이 그에게로 옮겨 가느니라.
못났다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보호신도 떠나느니라.
♣ 제삿상 찬수는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요, 그 놓여 있는 위치로 인하여 귀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신(神)은 사람 먹는 데 따라서 흠향(歆饗)하느니라
♣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출처: 도의 원전, 도전道典
@새벽하늘 “사람들은 여기서 보이는 하늘이 전부인 줄 알아도 그것은 중간하늘일 뿐이니라.
... 천상사람이 있고 땅속에도 사는 사람이 또 있느니라.”道典 4:66)
“하늘도 수수천 리이고, 수많은 나라가 있어. 이런 평지에서 사는 것하고 똑같다.” 하시니라.道典 5:280)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道典 4:14)
“진묵이 봉곡에게 죽음을 당하고 동방의 도통신(道統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 문명을 열었나니
이제 다시 진묵을 동토로 불러와서 선경을 건설하는 데 역사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세상에 진묵의 소임이 막중하니 장차 천하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리라.” 道典 6:103)
@새벽하늘
진묵대사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
@새벽하늘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새벽하늘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道典 4:138)
@새벽하늘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새벽하늘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새벽하늘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道典 2:30)
네 자세한 영계의세계와 이세계에 대해 도움이 많이 되는 자료 고맙습니다
좀더 시간을 갖고 이해하도록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은 촛불 집회가려고 준비중이라 ㅎ.
네, 그러시군요.
사망자중 거의 반수가 저승 못가고 이승에서 가족들 주변을...!
암 등 중병사망자, 사고사, 자살자, 타살자 등은 저승 안갔다고 봐야합니다.
저승사자는 정상적으로 임종될때 며칠전 이승으로 파견되어 저승으로 데려가러 오게됩니다.
저승사자(옥사장)를 타라 가지 않는경우도 있답니다. 강제구 망인하지 않는다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