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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 제가 첫번째 글로 불을 댕긴것 같습니다.제레미린 정도는 하지 않았겠느냐?라는 취지로 첨 글을 썼었지요.
의도치않게 굉장히 길고 폭넓은 논쟁이 있었는데, 몇가지 조건들이 누락된채로 비교가 되면서 제대로 된 비교나 논쟁이 이루어지지않는것같아 그 부분을 좀 지적하고자 합니다.
1.한국에서 허재가 보여준 모습이 그의 Best였을까?
저는 허재가 한국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나 업적이 그의 MAXIMUM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는 강동희라는 당대최고의 PG와 함께 뛰었습니다.
NBA의 특급슈팅가드들을 보면 대부분 그의 포인트가드파트너는 볼소유 별로 하지않는, 슈팅좋은 스팟업슈터타입의 포인트가드와 함께 뛸때 가장 궁합이 맞았습니다. 마이클조던은 존팩슨,BJ암스트롱,스티브커,론하퍼등과 함께 뛰었고, 코비는 데릭 피셔와 론하퍼와(볼소유가 필요한 수년간 레이커스의 주전포가롤을 맡던 닉밴액셀이 결국 이때문에 트레이드됐죠), 티맥은 대럴 암스트롱이나 래퍼 알스턴, 아이버슨은 에릭 스노우, 드웨인 웨이드는 마리오 찰머스....
이유는 하나입니다. 공은 하나고 가드들은 공을 잡고 플레이해야 위력을 발휘하기때문입니다. 레지 밀러나 립 해밀턴같은 슈가는 소수입니다. 그리고 허재는 밀러나 해밀턴같은 슈터타입 슈가가 아니라 강동희가 중앙대에 들어오기전까진 슈가가 아닌 포가를 봤던 선수입니다. 심지어 국대에서도 포가를 봤었습니다.
물론 강동희가 허재를 위해 희생한 측면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허재는 강동희때문에 아예 포지션자체를 바꾸어야했습니다. 허재의 진정한 재능이 포가로서 꽃피웠을지 슈가로서 꽃피웠을지는 모릅니다만, 중앙대 초년시절의 포가 허재, 그리고 나래블루버드에서 스코어링2번용병과 뛰던 말년의 포가 허재 모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국내에선 슈가로 활약한 허재지만 NBA로 갔다면 신체조건때문에 포가로 활약해야했을텐데 만약 강동희의 존재가 없어서 계속 포가로 활약했다면 어땠을까요?
둘째, 기아입단이후 기아는 허재없이도 최강팀이었습니다.
5연패인가 6연패인가, 하여튼 농구대잔치를 기아가 그냥 씹어먹었었지요. 이는 서장훈이 입단한 연세대가 출몰할때까지 계속 됩니다. 한기범-김유택-허재-강동희, 현대와 맞짱뜨던 중앙대멤버에 유재학-정덕화등 연대멤버들끼리 가세한 기아에 대적할 실업팀,대학팀은 몇년간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히 동기부여가 안되는 상황이죠. 이때부터 허재의 마인드가 많이 해이해집니다. 독점의 폐해죠. 본인이 열심히 안해도 팀이 우승따윈 우습게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될리 없지요. 특히 허재처럼 승부욕에 불타올라야 제기량이 발휘되는 타입은 말입니다. 오죽하면 마이클 조던이 3연패를 이뤄놓고서 농구선수로서의 최절정기에 은퇴까지 했겠습니까? 물론 부친의 죽음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허재를 하이라이트나 믹스,또는 스탯등으로 보신 분들말고 저처럼 허재를 당대의 시대에 라이브로 본 분들은 알거라 생각합니다. 허재는 클러치나 위기에 몰릴때 진정한 힘이 나오는 괴물이라는걸요. NBA로 치면 페니 하더웨이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페니 하더웨이...전성기적 스탯만 봐도 21득점,5리바,7어시...어찌 보면 평범합니다. 오늘날의 러셀 웨스트브룩이나 데릭 로즈등과 비교하면 스탯적으로도 많이 딸리지요. 그런데 페니를 직접 본 올드팬들이 페니를 절대 못 잊는건 페니가 시즌평균스탯만으로 판단하기 힘든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뭔가 그 스탯은 페니의 진짜 가치와 포텐셜을 대변할수 없는거같은 느낌...예를 들어 오닐이 빠진 매직을 이끌고 72승 불스를 상대로 조던을 20점대로 묶으며 자신은 30점이상을 올리며 승리를 거둘때..오닐이 빠진 매직이 초반 부진할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평균 30점,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닐이 빠진 공백을 완벽하게 메꾸는 모습...그리고 96~97시즌 오닐이 빠진 매직을 이끌고 당대 최강의 수비팀중 하나였던 팻라이리의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3,4차전 연속 40득점이상을 기록하며 2-0으로 뒤지던 시리즈를 2-2타이로 만들던 페니..(아마 팻라일리의 팀을 상대로 2게임연속 40득점이상 기록한게 조던을 제외하고 페니가 유일했지않나 싶습니다)
허재는 이런 느낌을 당대의 팬들에게 주던 선수였습니다. 주전들이 노쇠화에 접어들고(한기범-김유택은 이미 전성기를 훌쩍 지난 상황이었죠) 벤치가 약한 기아를 이끌고 당시 최전성기에 달한 연세대(서장훈-김훈-우지원-문경은-이상민-김재훈)를 맞아 정규시즌에서 결국 승리로 이끈 허재..(제 기억상 그런데 연대가 이겼을수도 있습니다.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정규시즌에서는 기아가 이겼고 어이없게 플레이오프에서 후배들인 중앙대에게 기아가 탈락했던걸로 기억하네요.그래서 당시 농구대잔치결승은 연세대VS정재근-김상식-오성식중심의 상무였던걸로...)
KBL출범후 첫 2시즌이 허재에게 있어서 참 드라마틱한 시즌이었습니다. KBL첫시즌에 기아는 역시 최강이었습니다. 클리프 리드라는 최고급용병과 새로 가세한 김영만, 그리고 MVP시즌을 보낸 강동희...최인선감독은 허재를 거의 출장시키지않고도 기아는 우승을 차지했지요. 대한민국 농구대통령 허재가 순식간에 잉여로 전락한 시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시즌 최고용병 맥도웰과 상무에서 제대한 이상민,그리고 조성원,추승균이 가세한 현대가 객관적전력으로 기아를 앞서게되고 결국 결승전에서 기아와 현대가 맞붙게되는데...이때 기아의 용병 한 명이 제대로 노릇을 못해서(팀이탈인지 부상인지 아님 원체 함량미달인 용병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상 용병2:용병1 핸디캡매치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한국나이로 35,만으로 33세인 허재가 파이널시리즈를 씹어먹기시작합니다. 그것도 한쪽손은 부러지고,어깨부상에 눈위는 찢어져서 피를 철철 흘리며 말이죠.. 비록 7차전에서 패배해서 챔피언은 현대가 먹었지만 NBA에서 제리 웨스트가 그랬듯 우승팀이 아닌 준우승팀에서 파이널 MVP가 탄생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집니다. 97~98시즌이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건 NBA에서는 조던이 더샷으로 2번째 은퇴를 했고 한국에서는 허재가 기아에서의 마지막투혼을 불사르며 파이널MVP로서 그의 전성기를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2가지 이유때문에 저는 우리가 봐왔던 허재가 그의 최대치를 대한민국에서 발휘하지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80~90년대의 스포츠계정서가 허재같은 야생마같은 캐릭터를 용인하기 힘든 바탕이었고, 허재는 국내최고의 포인트가드와 함께 뛰었으며(조던과 아이재이아토마스 또는 존 스탁턴이 함께 뛰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또한 그가 속한 실업팀은 수년간 허재없이도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수있었던 도미넌트한 팀이었습니다.그리고 허재가 그런 동기부여가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위기나 클러치의 상황에 몰렸을때, 허재는 언제나 비범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허재가 강동희라는 당대최고의 포가와 뛰지않았다면? 또는 기아라는 도미넌트한 팀에서 뛰면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썩히지 않았다면? 르브론과 함께 뛰기시작하면서 급격하게 기량과 롤이 하락하기 시작한 드웨인 웨이드의 사정보다 허재의 사정이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2.국제대회에서의 허재
일단 국제대회에서의 한국팀을 타국대팀들은 '허재의 원맨팀'비슷하게 인식했다는것은 인정해야할듯 합니다. 원맨팀은 그 '원맨'에게 있어서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죠. 자신말고는 공격을 풀어줄 선수가 없기에 공소유를 오래 가지고갈수있는 반면에, 자신을 써포트해줄 보조유닛이 약해서 체력과 공격효율성이 떨어지게됩니다. 이럴 경우 대표적으로 야투율이 떨어지게 되지요. 실제 자신의 역량보다 더 많은 슛기회를 가지게 되기때문에 터프샷을 많이 날리게되고 이로 인해 체력이 떨어지면서 또한 슛정확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94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예로 들면서 허재의 야투율보다 문경은의 그것이 훨씬 높다며 국제대회에서의 허재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을 다는 분들은 당시 대회를 라이브로 보지못하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문경은의 슛들의 대부분은 허재가 다 만들어준겁니다. 대부분 와이드오픈상황에서 던진 슛들이죠. 반면에 허재가 던진 야투들은 대부분 허재가 2중,3중의 수비를 뚫고 던진 슛입니다. 혹은 공격제한시간이 다 되어 마지못해 던진 터프샷들이지요. 당시 국대에서 터프샷을 던질 능력이 있는 선수가 허재밖에 없었으니까요. 문경은이 국내에서야 수비수달고 점프3점슛을 날릴 신체조건과 신체능력이 됩니다만 국대나가면 그냥 느리고 키작고 점프력낮고 수비력헬인 스팟업3점슈터 3번에 불과합니다.(국대에서의 문경은을 폄하하는건 아닙니다.그래도 그라도 있었기에 허재나 강동희가 만들어준 슛찬스를 메이드시킬수있었죠.)
사실 국제대회에서 슈가 허재보다 더 무서운건 포가 허재였다고 생각합니다. 허재의 대표적활약상으로 기억되는 88년 유고와의 대결...그 경기에서 허재가 날라다닐수있었던 이유는 바로 슛능력이 문경은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충희-김현준이라는 두 슈터의 존재와,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피지컬이 약점이 되지않는 포가로서 플레이할수있었던 허재의 포지션적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재가 국내에서는 2번으로써 경쟁력있는 신체조건이지만 국제대회에 나가면 2M에 달하는 2번들과 매치업해야합니다. 당장 중국의 라이벌2번인 후웨이동도 김유택과 비슷한 신장이었구요. 유고등 유럽의 2번들이야 뭐 말할 필요야 없겠지요.(크로아티아를 예로 들면 2번 드라제 패트로비치가 201,3번 토니 쿠코치가 211)
그런데 1번으로 허재가 출장하면 신발벗고 187,신발신으면 190에 달하는 허재가 피지컬에서 상대팀 1번에게 밀릴 일이 없거든요. 또한 허재의 장점이 외곽슈팅이라기보단 테크닉과 패스웤이라고 볼때 국제무대에 있어서의 허재의 최적의 포지션은 결코 2번이 아닌 1번이라고 봅니다.그런데 한국의 인적자원이 허재이후 1번과 3번에는 강동희-이상민, 문경은-김영만-우지원등 괜찮은 자원이 많았던데 비해 2번자리에는 이충희-김현준 이후로 제대로 된 자원이 없었죠(오성식,김상식,김병철,조성원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허재나 이충희와는 비교하기 힘든 존재들이죠) 그래서 국대에서 계속 허재는 2번을 볼수밖에 없었죠.물론 강동희와 함께 뛰면서 플레이스탈도 2번으로 굳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결론은, 국제대회에서 2번 허재도 상대팀에게 있어선 한국에서 유일하게 경계할만한 타겟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충희와 김현준에게 패스를 뿌려주던 1번 허재는 2번 허재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는 겁니다.
이를 볼때 저는 국대에서의 허재는 원맨팀의 원맨으로서의 이점보다는 불이익을 더 받았던 케이스라 생각합니다. 국내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무대에서도 허재는 자신의 맥시멈을 보여줄 여건이나 상황이 아니었던거죠.
3.허재의 NBA진출 활약논란은 결국 허재가 언제 NBA,또는 미국에 진출했느냐에 따라 확 달라질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허재가 이미 노쇠하고 플레이스타일이 굳어진 20대후반이나 30대초반쯤에 NBA에 갔다면 저는 가비지멤버조차도 되지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때당시의 허재는 국내에서는 지존일지 모르나 NBA에서는 듀얼가드도,트위너도 아닌 제대로 된 롤을 받기조차 힘든 그런 선수였겠죠.
그런데 강동희를 만나기전, 포가를 보던 중앙대1,2학년 시절에 갔다면, 또는 고등학교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체계적으로 미국농구와 피지컬훈련을 배우고 받았다면, 저는 허재가 지금의 제레미 린,또는 고란 드라기치, 아니면 제이슨 테리나 예전 새크라멘토의 바비 잭슨정도의 레벨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허재의 포텐셜은 허재가 대한민국에서 보여준것보다 훨씬 광대했습니다. 또한 허재에게는, 조던이나 코비같은, '독종의 마인드'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적할 상대가 없었기에 나태에 빠졌던 허재가, 미국에서 수많은 그 엄청난 도전에 맞부딪혔다면, 틀림없이 한국에서 우물안개구리로 있었던 허재보다 훨씬 더 성장했을거라고 보거든요. 제레미 린과 비교한다면, 피지컬과 운동능력은 린에게 딸릴지모르나, 슈팅력과 테크닉은 린보다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던게 허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관건은 20대후반-30대초반에 도달해 이미 성장이 멈춘 허재가 가느냐, 20대초반,10대후반의 포텐셜덩어리 허재가 미국에 가느냐에 따라 이 가정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허재논쟁이 접점을 찾지못하고 평행선을 긋는건 과대평가하는 쪽, 과소평가하는 쪽 모두 허재와 한국농구간의 특수한 관계와 상황을 좀 간과하고있는데서 기인하지않나 싶습니다.
첫댓글 88올림픽은 다시보기로 본 사람들이 많죠... 허재가 잘한거와는 별개로 포가자리에서 뛰기만 할뿐 사살상 이충희 허재 김현준의 집단리딩인게 그냥 돌아가면서 공격합니다... 88때도 나이먹은 이충희 김현준보다 3점비중이 높은데 nba에가서는 뭘 할수 있을까요... 이천원도 가솔형제에 이바카가 뛰는 스페인상대로 30 10 한적도 있습니다
1번은 공감하기 힘드네요. 보여준게 맥시멈이죠. 허재가 기아라는 팀에서 재능을 썩혔다는건 좀 많이 외람된 표현인 것 같네요.
1,2,3 모두 공감이 안가네요. 제레미 린, 고란 드라기치라니...
주장에 근거보다는 가정이 너무 많아요.
허재의 성공이유로 독종 마인드를 드셨는데 동기부여가 안되서 전성기를 맞이할때 도리어 성장세 등이 꺾여버렸다는건 조던이나 코비와는 많이 다른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허재의 주변인 중에 어떤 감독이 이런 말을 했죠... 허재가 진짜 제실력이 나오는건 1년에 한번 정도라고... 평소엔 반에 반도 안보여준다고.. 뭐,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저도 허재의 독한근성과 기본기로 포인트가드로써 느바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동양인이라는 편견 등 여러 벽에 부딪혔겠지만요
'독종마인드'를 자꾸 거론하시는데, NBA 에 입성한 운동밖에 할줄모르는, 할수밖에 없었던 흑인아이들의 '독종마인드'가 적어도 허재 정도 되지않을까요?
허재가 조던이나 코비 같은 정말 독종이라면 국내는 일찍 평정하고 해외진출 노렸을겁니다 술마시고 경기하고 그런게 독종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요즘같은 시절이 아니었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시절도 아니구요. 군대문제와 정치적인 문제, 계약문제 때문에 해외진출이 무산되는 선수는 요즘도 많습니다. 하물며 허재가 뛰던 시절이라면...
조금 핀트가 안 맞는 얘기일수도 있지만, 조던도 선수시절에 경기전날 골프치고 도박하고 뛴 일화들이 있습니다.
그 분도 그 리그에서는 독보적이다 못해 넘치는 분이시라..
글쎄요.. 허재는 강동희의 존재와 상관없이 이미 자신의 맥시멈을 보여줬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와같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겠죠. 설사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정해진 기본 기량을 바꿀만큼의 크기는 아니었을듯 하네요.
사실 가정에 가정이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죠.. 강동희 김유택이 없었다면 더 잘했을수도 있지만 당연히 더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당시 실업팀인 기업은행같은 팀에서 허재가 뛰어서 우승 못시키고 계속 언저리에서 놀았다면 허재가 지금처럼 부각되었을까요? 선수 하나가 아무리 날고기는 재주가 있어도 나머지 네명의 수준이 못미치면 어쩔 수 없는게 농구자나요.. 아니 난 또 무슨 가정을 하는거야 ㅎㅎㅎㅎ 전 허재가 NBA에서 뛰는 모습을 내평생에 한번이라도 보기를 엄청 바랬던 사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간사해서 몸이 엄청나게 힘들면 자기 편한 것을 찾고자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체력좋기로 유명한 선수들도 원정백투백은 힘들다고 하고 잠깐 시즌초에 반짝하다가 후반부로 가면 지쳐서 못버티는 선수들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경기 숫자가 6개월 남짓 동안 82경기를 합니다. 또한 독종이라고 하기에는 자기관리를 지나치게 못합니다. 경기내에서의 승부근성을 독종이라고 표현하신다면 곤란하죠. 80년대 후반에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선수를 구단에서 뛰게 했을 것 같은가요? 지금보다 구단수도 적고, 파울도 격한데다가 영어도 못하죠. 마냥 허재라고 해서 될 것 같았다라고 하기에는 모든 지표가 허재에게 불리합니다.
함부로 린이니, 드라가치니, 바비 잭슨이니 이야기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삼으실 게 아닙니다.
10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출전도 못했고, 09,10 파이널 둘다 못뛴 아담 모리슨은 대학때 날아다니던 슈퍼맨이었지만, 결국 대학교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우승 이후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습니다. 설마 허재의 젊은 시절이 아담 모리슨 대학시절보다 더 잘 했을 거라고 하고 싶진 않으시겠죠.
매번 부상으로 신음해 자신의 주가를 깍아먹던 알 제퍼슨은 고교 시절 42점 15리바운드를 평균으로 기록하던 선수입니다.
가드 포지션으로 가볼까요, 조던 파마는 키 체격 무시하고 이름 그대로 조던 놀이하던 선수입니다. 근데 지금 누가 알아주나요?
시대적 상황이나 허재의 나이대를 생각하기에는 이미 지나치게 당시 NBA의 벽이 높습니다. 국제 경기에서 몇점을 넣었고 어쩌고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는거 이미 드러날만큼 드러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