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자들이 우리가 알고 있던 '표준 우주론'에 정면 도전한다.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이후 우주가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팽창해 어디서나 일정한 밀도를 갖는다는 이론(우주원리)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같은 표준 우주론이 틀렸을 경우 우리가 알고 있던 우주에 대한 상식을 새롭게 다시 써야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LCDM(람다 차가운 암흑물질 이론)이라고 불리는 현대 표준 우주론은 137억년 전 대폭발인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이후 어떻게 우주가 팽창, 진화해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LCDM의 핵심은 빅뱅과 인플레이션(급팽창) 등에 의한 우주의 탄생과 확장, 차가운 암흑물질의 존재, 우주의 크기와 상관없이 밀도가 변하지 않는 우주상수로서 존재하는 암흑에너지, 거시적으로 모든 곳에서 균일하게 물질이 분포한 우주 등이다. 1990~2000년대에 걸쳐 확인된 관측과 발견 등을 종합해 정립된 이론으로, 현대 천문학계에서는 LCDM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가장 성공적으로 기술한 모형이라고 보고 있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를 통해 우주지도를 그려냈다. 지구로부터 최대 110억년 전의 은하와 퀘이사 약 600만개를 관측했다. 연구진은 전체 우주의 팽창 역사를 오차 범위 0.5%로 측정했다. 지금부터 80억~110억년 전 사이의 초기 우주의 역사를 1% 오차 이내로 정확하게 측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ESI의 지난 1년간 관측 데이터 규모는 지금껏 관측한 모든 3차원 분광 지도를 합한 것보다 크다.
이처럼 역대 최대 규모의 3차원 우주 지도도 LCDM에 부합했음에도 천문학자들이 이 표준 이론에 의문을 던지는 이유는 뭘까. 미국 해군천문대 연구진이 우주에 분포된 100만개 이상의 퀘이사를 분석한 결과 하늘의 한쪽 반구가 다른 반구보다 광원이 0.5%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주 어디서나 물질이 균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표준 이론에 어긋나는 관측이 이뤄진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 라이덴데학교 연구진은 우주의 팽창속도를 나타내는 허블 상수가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할 예정이다. 허블 상수는 여전히 천문학계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확장률이 공간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기존의 우주 모델에 균열을 줄 수 있다.
3차원 우주 지도를 그린 DESI 프로젝트 또한 데이터 분석이 LCDM에 부합한다고 판단되긴 했으나, 우주의 약 70% 구성하는 암흑 에너지와 관련해 기존 가설과 어긋나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LCDM은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점점 빠르게 팽창시키는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일정한 고정값인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로 가정해왔다. 하지만 DSEI 연구진이 DESI 관측 자료, 플랑크 위성의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 자료, 제 Ia형 초신성 자료 등을 결합한 결과 암흑에너지가 고정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95% 이상인 것으로 추정됐다.
즉 지금까지 관측·연구된 결과를 총망라한 표준 우주 이론에 반하는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DESI 프로젝트와 영국왕립학회 회의가 별다른 접점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동시에 표준 우주론에 의문을 던졌다. 이번 영국왕립학회 회의의 공동 주최자인 수비르 사카르 옥스포드대학교 교수는 "우리의 우주론은 1922년에 처음 공식화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며 우주론 표준 모델에 대한 너무 뿌리 깊은 믿음이 종교처럼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