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무현 형님 3주기, ㅠㅠ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김 훈'의 <칼의 노래>를 그냥 읽었다.
다시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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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된 지 만 이백 년이 되는해, 1592년.
우리가 선조라고 부르는 조선의 왕이 다스리던 시기.
(선조는 조선임금 중에 대군이 아닌, 그러니까 후궁소생왕자로 옥좌에 오른 첫번째 임금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전 왕들보다 힘이 없었다. 조선의 권력이 신하들에게로 상당수 넘어가는 길목이 선조다.)
왜국을 평정한 오사카의 막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평정된 왜나라 내부를 결속시키고자 조선 정벌군을 조직하여 조선을 침략하였다.
부산으로 밀고들어 온 왜군들은,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던 조선군을 마른 풀잎 날리듯 죽이고 제끼면서 한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했다.
일신의 안위가 걱정된 조선의 왕과 대신들, 그리고 양반들은 종묘사직의 안위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며
개성으로 평양으로, 평양도 불안하자 의주로 부랴부랴 피신했다.
조선의 군대는 변변히 저항하지도 못했고, 도망가는 조정은 전세를 통솔하지도 못했다.
왕이 명나라에 몇 번을 읖소하여 겨우 육군과 수군이 천병이라 불리며 구원병으로 왔으나 그들은 싸우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라를 걱정하며 왜군에 맞서 싸워 작으나마 승리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민간인 의병들이었고,
관직을 가지고 전장에 나가 명실공히 적을 격파한 장수는 이순신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승전을 거듭하여 남해안을 평정하므로써 왜군의 전세를 구부러뜨릴 수 있게 될 즈음,
그리하여 육지에서도 몇몇 성에서 승전을 올리게 될 즈음,
조선의 왕과 정치적으로 이순신의 대척점에 있던 조선의 고관들은 암중 뜻이 맞아
느닷없이 이순신의 관직을 박탈하고 조정으로 압송하여 그를 형틀에 묶었다.
해상에서 승승장구하던 조선의 해군이 이순신이 없는 동안 대패하며 지리멸렬하자
다급한 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복직시키고 전장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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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저자 김훈은 유연하면서도 굵직한 필치로,
형틀에 묶였음으로 온 몸에 새겨진 고통을 끌어안고 이순신이 전라도로 내려가는 그 시기부터,
전쟁 중에 바라보는 이순신의 눈을 통해 그 시대의 괴괴한 모순을 잔잔하면서도 힘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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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조선 최고의 장수였으며 한반도 역사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하나인 그가,
되찾은 한양을 떠나 다시 피란을 떠날까봐 잔뜩 겁먹은 순조로부터 복직 교서를 받고 돌아 왔을 때,
병사들은 전부 지쳐있는데다가 배를 골고 있었고 전함은 가장 작은 배까지 합쳐서 달랑 10척이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이순신만을 의지하며 어거지로 합류해 있는 민간인들이 병사수보다 더 많이 딸려 있었다.
그러나 첩보에 의하면, 새로 병력을 보충받고 전열을 정비한 적은 1개 함대에 대형과 중형 군함을 골고루 합하여 오백척이 넘었다.
그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왜적의 검은 그와 그의 부관들, 그리고 그의 병사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적은 왜군만이 아니었다.
그가 승전의 공을 세워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할 때마다, 그를 시기하는 붕당의 권력자들도 적이었고,
자신과 나라를 구할 영웅장수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 장수가 백성의 인정을 받을 수록
자신의 왕좌를 넘볼까봐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며 그 장수를 경계하고 없애려는 조선의 왕,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쳐 지키고자 하는 조선의 왕도 이순신의 적이었다.
이런 경복궁의 모순과 한양의 모함을 이미 간파한 곽재우는
왕의 부름을 무시하고 벌써 어느 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순신의 눈에 비친 보다 더 괴괴하고 슬프디 슬픈 눈앞의 현실은
자신에 관한 그 괴상한 모순들보다도 더한 모순,
바로 나라의 근간임에도 왕과 위정자들로부터 버려진 백성들의 고초였다.
전쟁 중,
징집된 남자들은 통솔도 제대로 되지 않는 조선군에 배치되자마자 왜군의 칼에 도륙되어
왜군의 전승 증거물로 코가 베어진 채, 들에 버려졌으며
코가 미쳐 베어지지 않은 채 버려진 조선 남자병사들의 시체는
다시 조선군에 의해 조선군의 승전 보고용으로 머리가 베어지는 행위가 정상적인 것처럼 자행되었다.
(왜란 당시 전투 승리의 증거물로 왜군은 조선군의 코를 조선군은 왜군의 수급을 가져다 보고했다.
그런데 두 나라 병사의 외모에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죽은 조선병사의 머리가 왜군의 머리로 둔갑되어 보고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야전 장수들은 그런 거짓 보고를 알면서도 중앙정부의 독촉에 못이겨 그렇게 보고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정부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 정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그런 승전 보고를 독촉했다.)
징집 당하지 않은 늙거나 너무 젊은, 즉 어린 남자들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여 식구들과 함께 굶주리고 있었고
그 중 상당수는 일본군에게 끌려가 일본 군함의 노를 젓는 노꾼으로 사용되다가 죽으면 바다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순신의 수군 곁에는 굶어 죽느니 장군<이순신> 곁에 있겠다는 백성들이 병사들보다도 많았다.
이순신은 그들을 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영을 바꿀 때에도 데리고 이동했다.)
여자들은,
점령군으로 들이닥친 왜군에 의해 성적으로 유린 당하고 있었고,
조선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왔음에도 조선을 위해 싸우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주둔만 하고 있는,
조선조정이 천병이라 명칭하는, 명나라 육군과 수군의 노리개로도 제공되고 있었다.
나아가 이순신은
자기 백성의 고통뿐만 아니라
적군인 왜군을 하나하나의 개별자로 보게 될 때에,
그들의 인생 속에 마찬가지로 스며져 있는 고통을 들여다 본다.
객관적 안목에서 보면 그들도
그들 나라에서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가엷은 백성일 터,
전장에 끌려와 타국에서 죽어가고 스러져가는 모습 역시 슬픈 현실인 것이다.
조선이든 왜국이든
여린 백성들으로서 당하는 그 끔찍한 참상은
이순신의 칼의 울림 속에 그대로 담겨진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들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 -
이런 이순신의 칼!
하지만,
그 민초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 폭력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작은 자들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는 부와 권좌의 악귀들은
세상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마치 실체가 없는 것 처럼
결코 '베어지지 않는 적' 으로 명장 이순신의 칼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그 적들은 세상을 어둠과 고통으로 물들인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거짓과 모략의 더미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베어야 하는데 베어지지 않는 적들.
그 적들 앞에서 이순신은 절망한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그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적군을 벨 수 밖에 없었으며, 베었다.
조선의 백성들을 보살필 수 밖에 없었으며, 거두었다.
그를 죽이려는 왕과 그 왕의 왕조를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오사카의 영화여, 꿈 속의 꿈이로다."
그가 지은 시 만큼이나 허무하게 그는 갔다.
승전을 눈 앞에 둔 그 때, 하지만 이순신은 아마도
왜군이 철수하는 그 시점의 마지막 전투에서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왕과 권세가들의 칼이 자기 목을 겨누고 있을 것이므로......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 또 백성들을 짓밟고 설 것이므로......
***
410여년이 지난 오늘,
일본과 한국, 이 땅에서
거짓과 모략을 일삼는 자들의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지난 세월 한민족을 유린한 일본 침략자들은 뻔뻔스럽게도 아직도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강제로 병탄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침략자 일본을 찬양할 거리를 찾는 더러운 일군의 무리들이 대학과 권좌와 국부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백성들의 삶을 끔찍하게 만드는 방사능이 땅과 하늘과 바다를 훼손하지만
일본의 집권자들과 전력장사아치들은 백성들을 기만하며 방기하고 있다.
이웃인 한국민에게도 적절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있으며
한민족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와 그 주변의 안전에 대해 모르쇠를 하고 있다.
결국 세계가 놀라고 칭송하는 일본인들의 질서는 정의가 결여된, 양들의 침묵에 의한 질서일 뿐,
일본 권력층은 침묵하는 양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오랜 기득권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친일전력으로 기득권을 유지했거나, 불법 탈법으로 기득권을 취득한 자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이익과 결부시켜
자신들을 비판하는 상대나 백성들의 입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켰으며
반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북정권과 정치적 품앗이를 수시로 도모해왔었다.
현 정권은
환율과 본원통화, 그리고 세금 정책을 교묘하게 요리하여 부 위에 부를 덧입히는 작업을 자행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외부에서 오는, 또는 올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자국민을 지켜 줄 의사도 능력도 별반없다.
북한 정권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작금의 모든 모순과 패악을 합한 것보다 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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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금의 이 싯점에서
410년 전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백성의 편에 서서 의롭고 능력 있는 칼을 찬 장군 이순신이 없다는 것이리라.
참 장수가 없는 이 시점에서
현충사에 걸린 장군을 칼을 보고난 뒤,
김훈은 말한다.
"칼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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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에 대한 졸문
아량으로 읽어 주시길....
첫댓글 10여년 전 제가 강원도 치악산에서 근무할 때 긴 겨울밤을 하얗게 밝히며 읽었던 칼의 노래!
우리 역사 속에서 다시 찾은 위대한 영웅, 인간으로써 더는 오를 수없을 것 같던 그 높은 정신의 향기에 취해
울면서 읽었던 충무공!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도 치졸하고 어리석으며 악하기까지 한 왕과 조정 중신이란 자들...
아!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긴 글 감사합니다.
조선인의 터전을 지킨 영웅, 당대에 그 업적에 대한 인정을받지 못한 영웅.
하지만 그 공적은 한민족이 있는 한 기려질 것입니다.
분명 민족을 구한 위대한 분이 셨지만,,,,
어찌보면 사대부 계급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애석한 부분도 있는데,,,, 달 밝은 밤에
고민도 많이 하셨겠죠^^
변화가 당연히 있어야 했는데,,, 놓아 버렸으니,,
이순신은 나라를 지키려했지 혁명을 하려한 인물이 아니었지요.
주군인 임금이 죽으라면 죽을 충신이었을 터.
그래도 신분제가 뼈속까지 스며있는 시대에 백성을 사랑한 사대부였었으니 인정할만 합니다.
물론 조선을 뒤집어 업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었으면 좋겠지만
그는 종묘에 충성하는 장수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베어지지않는 권력자들 앞에서 절망까지 했으니...
그래서 저자 김 훈은
영웅 이순신의 삶과 생각을 빌어
가녀린 백성들을 지켜주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줄 칼,
즉 선한 힘을 가진 능자에 촛점을 맞추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칼의 노래'! 촛점이 이순신을 넘어선다는...
노통께서 탄핵받을 때 읽어셨던 목록 중에 한 권이었습니다.
그 분께서 그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며 뭘 생각하셨을까요?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이란게...ㅠ_ㅠ
사람사는 세상, 약자인 시민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생각하셨겠지요. ㅠ ㅠ
그래서 더러운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사법권력에 맞서셨던 것일 거고.
그 뜻을 잊지말고 우리가 그들을 이겨 내야죠.
3년전 이맘때 퇴근하자 마자 당시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이었던 아이들과 부인 저 봉화마을로 향했습니다.
봉화마을 가는 입구부터 분향소까지 3시간이 넘게 걸릴정도로인파가 많더군요.
굳이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이유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때 이럴한 기억들을 더듬으며 역사나 정의 등에 대해 분노할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우리시대의 참 장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코 그의 죽음을 자자손손 잊지 말아야 겠지요
그 때, 그곳에 있던 그 아이들이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베고,
분명 좋은 세상 만들어 갈겁니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고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