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C 1000 | 다윗이 여부스 족속 정벌과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함. ※ 다윗: 헤브론에서 30세에 왕이 되어 7년 6개월을 통치하고, 37세에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3년을 통치하였으므로 총 40년간 재위 후 70세에 열조에게 돌아감. |
BC 959 | 솔로몬 성전(제1차 성전) 완공 |
BC 722 | 앗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함락함 |
BC 701 |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남왕국 예루살렘을 포위함. ※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여호와의 사자가 앗시리아 군사 18만 5천명을 죽이시므로 산헤립이 앗시리아로 돌아가서 자기의 두 아들들에게 암살 당함 (왕하19:20-37). |
BC 605 | 느브갓네살 원년, 남왕국 유대가 바벨론에 제1차 포로 잡혀감. 다니엘과 세 친구 등이 이때 잡혀감 |
BC 597 | 느브갓네살 7년, 바벨론에 제2차포로 잡혀감. 에스겔과 유대 중산층, 지도자, 군인, 기능공 등이 잡혀감 |
BC 586 | 느부갓네살 18년, 바벨론에 제3차포로 잡혀감. 남왕국 유대가 완전히 함락됨. 예루살렘 성과 솔로몬 성전이 파괴됨. 유대의 빈천한 국민만 남겨놓고 모두 끌고감 |
BC 581 | 느부갓네살 23년, 유대의 남은자들이 바벨론에 제4차포로 잡혀감(렘52:30) |
BC 539 |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점령함 |
BC 538 |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 원년, 바벨론에서 제1차포로 귀환, 유대 총독 스룹 바벨이 인도함 |
BC 536 | 성전 건축 시작과 대적의 방해로 중단됨 |
BC 516 | 스룹바벨 성전(제2차 성전) 완공. 학개와 스가랴가 도움 |
BC 479 | 페르시아에서 왕후로 간택된 에스더 |
BC 458 | 바벨론에서 제2차포로 귀환함.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인도함. 율법을 가르치며 전면적으로 개혁 운동을 함 |
BC 444 | 바벨론에서 제3차포로 귀환함. 왕의 술 관원 이었던 느헤미야가 인도함. 성벽 중수 필역함 |
BC 332 |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시대가 시작 |
BC 167 |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스룹바벨 성전을 약탈하고 모독함. 헬라화 정책으로 유대교를 금지함 |
BC 164 | 마카비 통치. 독립국 유대가됨.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화함(수전절, 하누카) |
BC 63 | 로마 장군 폼페이가 예루살렘 점령 |
BC 37 | 헤롯의 유대왕 즉위 |
BC 20 | 헤롯 대왕이 헤롯 성전 착공. 성전을 미화함 |
BC 4 | 예수 그리스도 탄생 ※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 고향은 나사렛(나사렛 예수),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은 가버나움(공생에 시작하면서 이사가서 사신 곳). 성경에 본 동네가 2회 나오는데 한 번은 나사렛을 말하고(눅2:39), 다른 한 번은 가버나움을 말함(마9:1) |
AD 30 | 예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 골고다 언덕: 석회암 바위로 이루어진 채석장, 나무나 풀이 전혀 없다. |
AD 70 | 로마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 함락. 제1차 유대인 대반란을 진압함. 성전이 완전히 파괴됨 |
AD 135 | 바르 코흐바 반란(제2차 유대인 대반란)을 진압함. 하드리안 로마 황제가 유대인을 국외로 추방시키며, 예루살렘을 정비하고 이름을 알리아 카피톨리나로 바꿈.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으로 부름. |
AD 313 |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됨). 콘스탄틴 로마 황제 기독교로 개종함 |
AD 397 | 카르타고 3차 종교 회의(신약 정경 공포) |
AD 324-640 | 비잔틴 시대의 도래. 아름답고 웅장한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들이 건축됨 |
AD 614 |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비잔틴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조로아스터교) |
AD 638 | 초기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과 전기 움마야드 왕조가 예루살렘을 점령함 |
AD 691 | 움마야드 왕조의 압둘 말리크가 성전산 안의 솔로몬 성전 자리에 바위 돔을 건축함 |
AD 750-969 | 이슬람인 압바스 왕조 시대 |
AD969-1099 | 시아파 이슬람인 파티마 왕조가 몇몇 성지를 파괴함 |
AD 1099 |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함 |
AD 1187 | 이집트에 아이유브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예루살렘을 함락. 히틴의 뿔 전투에서 살라딘이 십자군을 물리침. |
AD 1267 | 이슬람교인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예루살렘을 점령함 |
AD 1516 | 이슬람교인 오스만 터키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함 |
AD 1538 |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 Ⅰ 세가 현재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 |
AD 1917 | 영국의 예루살렘 점령 및 신탁 통치 |
AD 1948. 5. 14. | 현대 이스라엘이 독립함. 텔아비브 독립기념관에서 벤 구리온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함 |
옛 성(Old city)과 성문
요한 계시록 21장에 보면 앞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 성의 모양은 네모가 반듯하며, 장광이 같은 크기인데, 그 성을 척량하면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200km)이며, 장과 광과 고가 같게 됩니다. 또 그 성곽의 높이는 일백 사십 사 규빗(약 65m)이며, 벽옥으로 쌓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며,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게 됩니다.
예루살렘(히, 이르=도시, 살렘=평화)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과 “살렘의 기초”, “평화의 기초”라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다윗 왕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도읍(수도)으로 정한 이래로 약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은 예수님 당시의 성벽이 아니라, 1538-1542년까지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가 재건한 성벽입니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 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이 있었으며. 무려 50차례 이상의 포위공격을 당했고,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크게 구 도시(Old City)와 신 도시(New City)로 나눌 수 있는데, 구 도시는 예루살렘 성 안의 도시를 말하며, 기독교 지역, 아르메니아 지역, 유대인 지역, 이슬람 지역의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기독교 구역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사람들이 살고 있고, 유대인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이슬람 지역에는 회교도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벽의 모양은 사각형 형태로, 총 길이는 4,018m이며, 8개의 성문(욥바 문, 새문, 다메섹 문, 헤롯 문, 사자 문, 황금 문, 분 문, 시온 문)과 성위에 43개의 망대가 있으며, 폐쇄된 황금 문 일대를 제외한 1,950m를 성벽위로 걸어서 성벽 순례를 할 수 도 있습니다. 현재 황금 문은 막혀 있으며 나머지 7개의 성문은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고 그 중에 다메섹 문이 제일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구 도시와 성벽들은 1981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
예루살렘(Holy Land)
예루살렘(Holy Land)
예루살렘의 교회들(Holy Land)
Jerusalem(Holy Land)
Jerusalem(The Golden gate)
Jerusalem(El-Aqsa mosque)
Jerusalem(Wailing Wall, Shrine of the Book)
Jerusalem(Model, Basillica, Kidron -)
Jerusalem(Church of St.Ann, Mount of Olives)
Jerusalem(Palm Sunday, Lord's Supper)
Jerusalem(Grotto of Gethsemane - )
Jerusalem(Lithostrotos, King's Game, Via Dolorsa)
Jerusalem(The Via Dolorosa)
Jerusalem(Sepulchre, Calvary)
Jerusalem(partial view, Golgotha)
Jerusalem(Church of the Assumption, Lazarus)
Jerusalem(Church of Emmaus)
Jerusalem(Church of Primacy)
Jerusalem(Chapel of the Ascension)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5-B)
신약시대의 이스라엘 (5-B)
족장시대의 근동 (32-35)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4-D)
여호수아의 출정
사울에게서 도망가는 다윗
뜻 : 평화의 터전
유대와 베냐민 두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접경을 삼고 있다. 이 명칭은 수10:1에 처음 기재되었으나 오래전부터 있어 옛 이름이 살렘 우루살렘이라라 하나 확증이 없고 확실한 것은 여부스이며 (삿19:10-11)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겔23:4) 시온산의 이름을 따라 시온성 다윗왕의 도성인고로 다윗성, 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의 성이라 하고 하나님 의 성전이 있는고로 거룩한 성이다라 하였다(삼하 5:7,5:9, 눅 2:11,시 46:4, 느11:1,마4:5). 이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겼다(시122:6,137:5-6,왕상8:38, 사62:1, 7, 단6:10,마5:35).
스가랴선지자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를 구하라고 예언하였고(슥8:22-23).사도들은 한층 더 고상히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성이라 하였다(갈4:26).너희가 이를곳은 시온산과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히12:22)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하고(계3: 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다(계21:2).(1)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경 다윗왕이 점령 령하였다.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 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 에서 돌라온 후 다시 재건하였으며 파사 희랍 로마시대를 통하여 그의 신성을을 점점 더하였다.예수의 사역,죽음,부활,승천의 무대였다.A.D.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36년 하도리안 황제때 재건되었었다가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회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1517년 알렌비장군의 연합군이 점령하기까지 터키 사람 의 수중에 있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로 되었다가 제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였다.(2) 위치와 기후고대 문헌을 참고해 볼 때 현재의 예루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터위에 건설된 것이 확실하다. 기후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비슷하며 겨울에는 영하2도쯤되며 눈도 내리지만 오래 쌓여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평균 최고 30도 를 넘지 않는다.(3) 성전의 위치.솔로몬의 성전은 B.C.586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부서지기까지 존속하였고 포로 기간 중에도 그 위 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렘41:5,학2:3,스3:12).B.C.516년 스룹바벨이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었다(스6:15).요세퍼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그런 것을 확장 미화한 데 불과하다고 한다.(4) 지세.가) 기드론 골짜기: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와디 싯티 마리암일 것이다.요18:1과 막14:26 을 보면 예수가 감람산에 가실 때 이 골짜기를 건느셨다나) 힌놈 골짜기: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을 에워싼 넓은 골짜기 로서 와디엘 라바비일 것이다.다) 혈 로겔: 골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샘과 못이다.왕상1:을 보면 아도니아는 엘로겔에서 대관식을 거행 하였으며 솔로몬은 기혼에서 행하였다.라) 베데스다:38년된 병자가 일어난 곳이다(요5:) 예루살렘 부근에는기혼(처녀의 샘)이 유일한 간혈천이다.아마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유적일 것이다.마) 실로암 지금은 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실상은 샘이 아니라 처녀의 샘 이 아니라 처녀의 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서 급수한 것이었다고 한다.(5) 시대적 증거가)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왕궁,바로의 딸의 집이 계속해있으며 주위는 성벽을 쌓았다.왕궁은 남쪽에 있었으리라 본다.왜냐하면 다윗궁 보 다는 높고 경전보다는 낮다고 하였다 (왕상6:36,7:8,12<사1:26,왕상8:1,9:24,10:5,왕하11:19,렘22:1,26:10,왕상7:8,9:24,3:1,9:15).나)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침입을 예상하여 기혼의 물을 다윗성 서쪽에 끌어들이는 수로의 기록이 있다.(왕하20:20,대하32:4,30,7:3,사22:9-11).이것은 바위를 뚫은 굴인데 이 굴 의 안벽에는 옛날 히브 리어의 비문이 조각되어 있다.이것이 실로암 비문이다 다.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이 가장 큰 사건이다 예수님이 처음 세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성전과 관계가 있었다 (눅2:22-39,41-50, 요2:13-22).네번째는 베데스다 못(요 9: 다섯번째는 성전(요7:) 여섯번째는 실로암못과 관계가 있었다(요9:) 일곱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소 수난주일 동안 일,월,화요일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막11:-16:)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만찬을 잡수셨다(막14:15) 이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을 것이다.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전설에 의하면 욥바의 문곁 에 빌라도의 집이 있었다고 하며 헤롯 궁전과 같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십자가와 무던의 장소인 골고다에는 현재의 성묘교회가 서 있다고 한다 옹기쟁이의 밭 아겔다마는 나그네의 매장지였다(행1:18).
느헤미야 시대의 예루살렘 성의 각 문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느 3:1-32).
1. 양문(1절)2. 어문(3절)3. 옛문(6절)4. 골짜기문(13절)5. 분문(14절)6. 샘문(15절)7. 수문(느 8:3, 16절)8. 마문(28절)9. 함밉갓문(31절)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쿠드스(신성한 도시)라고 부른다.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이다. 동부는 요르단령이며, 서쪽은 1948년부터 이스라엘령이 되었고, 1950년에는 그 수도가 되었다.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후로 유대교도·그리스도교도·이슬람교도가 저마다 성지(聖地)로 받들고 있는 동쪽 지역도 이스라엘의 점령지이다.
사해(死海)로부터 25km,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55km, 높이 790m 가량의 팔레스타인 중앙산맥의 분수령상에 있는데, 지중해성기후와 사막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위 31°41'에 위치하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고 봄·가을에는 이따금 37℃의 더위를 겪는다. 동(東)예루살렘에는 사적(史蹟)·성적(聖蹟)이 많으며, 통곡의 벽(유대교), 성묘(聖墓)교회(그리스도교), 오마르사원(이슬람교)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호텔·레스토랑·상점 등이 많다. 서(西)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며, 정부 청사와 히브리대학교·국립박물관·미술관 등이 있다. 또 금속·담배·플라스틱·신발·전기기구 공장 등이 있다.
역사
BC 3000년대 말경에 에브스(여부스)라는 가나안인(人)의 한 부족이 그 동부에 성시(城市)를 지어 거주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우루살림이라고 불렀는데,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BC 2000년대 중엽부터 이집트의 파라오(王)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BC 1000년 무렵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뒤 헤브라이인이 이곳을 점령하였고, 다윗왕이 에브스인을 쫓아내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음에는 솔로몬왕이 지금의 아크사 이슬람교사원이 있는 지점에 궁전을 지었고, 그 북쪽, 지금의 바위사원(쿠바트 앗사흐라)이 있는 곳이며 일찍이 다윗이 건립한 이스라엘의 하느님 제단 앞에 야훼의 성전을 건립하였다. 이 무렵에는 주민들도 늘어났고, 도시 둘레에 성벽도 만들었다.
BC 935년 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되자 예루살렘은 유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586년 신(新)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으며, 시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BC 538년까지 억류하였다(바빌론의 포로). 그뒤 페르시아 왕 키루스(고레스)가 이들을 석방해 줌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야훼의 성전도 재건하였으나, 옛날의 번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뒤 여러 차례 파란을 겪은 끝에 BC 63년 폼페이우스가 거느린 로마군이 성벽을 파괴하고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BC 37년부터 헤로데스(헤롯)왕이 이곳을 점령하고 야훼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솔로몬왕 이래의 번영을 되찾았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의 색채가 농후한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무렵(AD 30년 4월)에는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과 매장지가 북서부의 성벽 밖에 있었는데, 10여 년 뒤에는 이 지역을 둘러싼 새 성벽이 만들어졌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71년에 이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헤로데스 시대의 번영은 사라졌다. 유대교도들은 헤로데스가 지은 성전의 벽, 나중에는 그 성벽을 ‘통곡의 벽’이라 이름짓고 이곳을 찾아가서 통탄하는 풍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뒤에도 유대교도의 반란이 거듭되었기 때문에 로마인은 135년 야훼의 성전을 파괴했으며, 예루살렘을 콜로니아 아이리아 카피토리나라 부르고 직속지로 삼아 유대교도들을 몰아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자로 붐비었으며,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의 성묘(聖墓) 등에 최초의 교회가 건립되었다.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많은 교회를 불사르고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갔다.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인이 이곳을 함락시켰으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비잔틴제국에서 이탈하여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 바위사원에 있는 큰 바위는 무함마드가 꿈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로 제7천에 있는 알라의 앞까지 갔다는 승천(미라지)의 장소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아득한 회교사원(아크사의 마스지드)’을 지었으며,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 때에는 다윗이 제단을 마련한 곳에 바위사원을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서로 상대편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예외로는 이집트의 파티마왕조의 칼리프 하킴(재위 996∼1021)이 그리스도의 성묘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교도의 몇몇 성지를 파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비잔틴제국의 도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1099년에는 제1차 십자군이 성시(聖市)를 침략하였으며,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187년 이집트에 아이유브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이를 탈환하였다. 그뒤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1229년 2월에서 1244년 8월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의 화의(和議)로 이 땅을 회복한 적이 있을 뿐 성지 탈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 땅은 맘루크왕조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다마스쿠스 총독이 이를 관할하였다. 그러나 1516년 12월 말에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셀림 1세가 시리아에 있는 맘루크왕조의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그 지배하에 두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투르크령이 되고 난 뒤 쉴레이만 1세(재위 1520∼1566) 때 축조된 것인데, 투르크령 시대에는 차차 쇠퇴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인구가 1만 1000명 정도로 감소하였다.
한편, 19세기 중엽부터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이 투르크에 압력을 가하여 이곳의 성지 보호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투르크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가자 그 수도가 되었다. 그뒤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밸푸어선언에 따라 유대교도의 이민이 격증하였으며, 아랍족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도와 아랍 각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이듬해 2월에 이스라엘국이 성립하였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하여 각각 한 쪽을 영유하였는데, 1967년 6월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의 동부마저 점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