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났다. 배우들은 훌륭했다. 끝까지 관객들의 상상을 비웃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자신들이 진정한 프로임을 보여 주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만큼이나 정교한 속임수로 막판까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극의 제목은 ‘새 장가’였다.
두 주연 여배우 틈새에서 남자 주인공 장동영은 삼각관계의 쓰라림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막이 내릴 무렵 주인공은 두 여자 모두를 떠나겠노라며 자살을 결심했다. 관객들은 화들짝 놀랐다. 놀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까짓 일로 자살을 결심하다니, 사내가….’ 그렇지만 그는 비장한 독백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는 자살의 방법으로 굶어 죽는 것을 선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분명히 일러두었던 ‘굶으면 죽게 된다’는 법칙을 증명해 보기로 결심했던 듯했다.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이었다. 평소의 장동영답지 않은 느려터진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상황은 갑자기 반전한다. 그 상황에서 그를 사랑했던 여인, 그와 오래도록 열애를 나누었던 비련의 여인, 차미애는 두 남녀의 행복을 위해 어디론가 멀리 떠나 버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장동영으로서는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 셈이었다. 굶어 죽는 방법을 그만두어도 될 상황이었다.
해묵은 신파였지만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관객들도 한 60명쯤 들었다. 100명 정원이었지만, 원래 썰렁한 연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럭저럭한 흥행이었다.
“글쎄요.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인데, 결국 맺어지는 사이도 아니니 삼각관계도 아니고…. 한국판 ‘세빌리아의 이발사’라고나 할까요? 프랑스의 3개 정파가 갈등하던 그 모습이 겹쳐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연극학과 교수는 총선에 등장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갈등 국면을 그렇게 풀어 주었다. 이래서 삶은 흥미로운 것인가 보다. 이 땅 저 땅, 이 때 저 때. 시대와 사람은 달라도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갈등과 해결의 방법이 겹쳐 드러난다. 매일 밤 한국 TV의 9시 뉴스만 보면 난생 처음 보는 일들이라며 제 가슴만 두드리겠지만 말이다.
이번 총선 역시 호남과 영남을 배경으로 한 ‘황산벌 전투’여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탄핵이라는 에피소드가 들어가면서 국민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었다. 영남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새로운 개혁의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정도였다. 말버릇 없는 대통령과 그 일당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기성세대들조차 이번에는 한나라당을 ‘간나라당’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작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탄핵은 모두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박근혜, 혼돈을 잠재우다?
그렇지만 카오스는 곧 컨트롤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훌륭했다. 자신도 모르게 사고를 쳐 버린 영남 사람들과 왠지 조금씩 새벽잠이 짧아져 가는 사람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로…. 사람들은 풀빵 받은 초등학생들처럼 수더분해졌다. 그 들끓던 혼란은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쉽게 길이 들다니…. 그렇지만 정치인들은 혼란을 자신들 존재의 원천으로 삼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트렌드 분석의 왕’으로 불리는 독일의 포스트 휴머니스트 노르베르트 볼츠가 “예술가들은 소음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고 일러두었듯 말이다.
박근혜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예술가였다.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이번에 낙선한 조순형·추미애·홍사덕·이부영 같은 사람들은 정치인들이었다. 인간은 내면세계의 울림으로 교류되는 정신적 존재라는 점을 깊이 깨닫지 못한 조금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묵상의 시간이 주어졌음은 그들에게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능력과 경험 역시 소중한 자산으로 품어 주어야 할 우리 사회에도 역시 축복이다. 박근혜.
“한국 사람들에게는 1970, 80년대의 개발독재에 대한 묘한 향수가 있어요.”
낙선한 한 민주노동당 후보의 말이다. 많은 사람은 박근혜를 무대의 전면으로 불러들인 힘은 바로 보릿고개를 넘기게 하고 서민생활을 안정시킨 박정희에 대한 향수라고 말한다. 쉽게 보면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박근혜의 등장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고마움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깊은 이유는 기성세대들이 전통의 유교문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가슴 속에 숨겨놓은 가부장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또 그와 동시에 가부장에 대한 반발 의식이 박근혜를 무대 전면으로 불러들인 힘이다. ‘아버지다움’에 대한 동경과 ‘아버지식’에 대한 이중적 반발 심리가 만들어 내는 떨칠 수 없는 흡인력, 그 아이러니를 박근혜는 모두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남겨둔 것이었다. 참으로 묘한 우리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이제 그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개표 뚜껑을 열고 보니 헌정 사상 처음으로 무려 39명의 여성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몇 명이 국회의원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박근혜가 당 대표의 자리에 들어서는 모습, 각 당이 여성 후보를 눈에 띌 정도로 공천하고, 비례대표에 남성들과 함께 파트너처럼 배열해 놓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 문화가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고 있음을 느꼈다.
사내들의 연령이 현저하게 젊어지고 있음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우먼파워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여기에는 남성들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구색 맞추기가 여전히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 역사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밀림이라고 해석해야 옳을 일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여성 후보들의 이력과 특성들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네 가지 유형이 드러나 보였다. 사회운동가형, 생활정치형, 야심만만형, 자기 성취형.
이 유형에 맞는 사람들을 꼽아 살펴보기로 하고 하나하나 대표 선수를 뽑아 보았다. 생활정치형에는 당연히 박근혜 대표, 야심만만형은 우리 시대의 돌고집 추미애, 자기성취형은 정치를 떠나 정치를 하는 강금실 장관이 각각의 범주에 맞을 듯싶다. 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르포에 나섰다. 그렇지만 초반부터 삼진이었다.
“강장관께서 총선 전에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겠답니다.”
사무관의 전화였다.
‘음….’
안녕하세요? 우리 사회의 내면을 바꾸어 가는 여성들의 에너지를 문화적 측면에서 다루어볼 생각으로… 여쭙고 싶은 내용은,
1. 남성성 강한 한국 조직사회의 약점, 또는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
2. 부드러운 리더십이 작동할 수 있는 문화적 시스템 구축에 대한 나름의 아이디어
3. 남성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프리미엄에 대한 솔직한 생각 등입니다. 시간은 1시간 정도면 될 듯합니다(사진 찍게 됩니다).
다음 시간이 강장관님도 마침 마음이 한가한 때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
다음:
4월5일, 월 anytime (휴일입니다.)
4월6일, 화 오후 2시 이후
4월8일, 목 오후 5시 이전까지 (6시30분에 대학원 강의가 있습니다) 장소는 아무 곳이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Peace….
이런 이메일에 대한 사무관의 전언 답변이었다.
‘흠,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군.’
한(漢) 고조 유방이 말 위에서 얻은 천하를 말을 내려 다스려야 할 고민의 순간에 전해진 육가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무위이치(無爲而治, 조용한 정치로 정치)하십시오.” 자성취뿐 아니라 자기관리도 철저한 사람이었다. ‘한번 크게 나타나겠군.’
“아, 예. 그럼 다음에 기회가 있기를….”
박근혜의 ‘평범한 언어’가 갖는 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건네는 장미를 받고 있다.
4월3일, 박근혜 대표를 만나러 아침 일찍 인천으로 갔다. 송도경제특구였다. 택시 기사도 장소를 몰라 전화로 물어물어 갔다. 황량한 벌판에 건물이 하나 있다. 홍보관이었다. 건물 한쪽, 바람이 덜 부는 곳에 ‘바바리맨’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기자들이었다. 웬 녀석이냐는 투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매일 거물들을 보다 보면 점퍼 입은 사내 정도는 흥미조차 없어지는 것이겠지. 일본인이나 미국 사람들 같으면 슬쩍 미소라도 서로 주고받을 텐데. 더구나 이른 아침인데. 하는 수 없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나타나는 여성 정치인들의 모습들이 그저 간단한 현상이 아닌 듯해요.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 트렌드의 핵심에 박근혜 대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좀 따라다녀 보려고요.”
한 사내가 말을 받아 준다.
“뭔가 깊이가 있어요. 신비감도 있고. 집에 가 봐도 가구나 생활도구들이 아주 검박한 점이 특이하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조금 드라이하다고 느낄 정도예요.”
‘드라이’하다는 말이 조금 크게 들렸다. 순간 그의 홈페이지가 떠올랐다. 깔끔하면서도 정감 있는 그리고 구석구석에 잔손질이 많이 간 홈페이지였다. 군더더기가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웹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그의 홈페이지 정도면 제작비가 1,000만 원대가 넘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들려준다. 상당히 공을 들인 셈이다.
“야! 왔다. 왔다.”
주변이 어수선해지더니 기자들이 이리 저리 움직인다. 카메라를 멘 친구들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잽싸게들 움직인다. TV에서 보던 얼굴이 나타났다. 키는 160㎝를 조금 넘어 보인다. 얼굴이 말라 있다. 몸도 말랐지만 강단이 있어 보였다. 체형은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그렇지만 목선이 유연하다. 헤어스타일에서 귀, 턱선과 그곳에서 이어진 목선은 분명 육영수 여사적인 분위기인데… 화장은 약하지만 아이라인은 분명했다. 그래서 눈이 깊어 보였고, 언저리에는 날카로움이 서려 있다. 옷은 검은 바지에 짙은 색상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홍보관 안으로 들어서더니 방명록에 기념 사인을 했다.
끝나고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경제와 운명이 걸려 있는 이곳의 성공을 기원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굵기로 눌러 놓았다. 집중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남성적인 힘이 느껴졌다. 키워드는 경제·운명·성공이었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눈에 걸린다. 순간순간을 운명적 차원에서 가늠해 보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의 삶이 너무도 평범하지 못해 운명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단어가 익숙해진 것일까.
기자들이 코멘트를 요청하자 천천히 입을 연다.“이제는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세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천은 대표 선수예요.”
말을 너무 작게 했다. 목 깊은 곳에서 소리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내는 스타일이었다. 입술로 가볍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약간 허스키였지만 느리게 말을 뱉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은 정확했다. 곱씹는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단어들은 평상의 구어체였다.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복잡한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가족들이 주고받는 수준의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추미애 씨(4월13일 저녁에 인터뷰할 때는 추위원장님이라고 불렀는데)처럼 정치권의 인증을 거친 한자어 단어들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단어들은 언제나 필요한 핵심을 정확하게 관통시키고 있었다. 이 점이 박근혜 대표의 소리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면서도 리더십을 느끼게 하는 이유였다. 추미애 씨의 말이 구구절절 옳으면서도 어딘지 사나운 듯한 분위기를 끝내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를 보면서 그 ‘드라이’함 여부가 못내 궁금했는데, 찬스가 왔다. 기념 식수를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박대표가 다 심어놓은 나무 곁에 흙을 퍼부었다. 삽질이 서툴렀다. 한 삽 푹 푸는 스타일이 아니라 흙을 삽에 담은 후 균형을 맞추면서 붓고 있었다. 나무의 입장에 선 것일까. 돌아서서 자동차로 향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면 내공이 있거든요”
“나무를 심으시니 어떤 느낌이 드세요?”
“참 좋네요. 파랗게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런 비슷한 대답을 기대했었다. ‘시심이 물씬 묻어나는 코멘트라도 해 주면 좀 더 깊은 분석이 가능할 텐데’ 하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니 박대표는 그냥 웃음을 지으면서 지나친다.
‘어, 질문이 이상했나?’
순간 누군가가 다가선다.
“질문은 나중에 기자들이 함께할 때 해 주세요.”
전여옥 대변인이다.
‘그렇구나! 판을 몰라서리….’
그냥 물으면 편안하게 답을 해 줄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다 짜고 쳐야 한다. 그렇다고 속인다는 뜻은 아니고 아무 때나 마음대로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고 기자들이 작전을 짜고 함께 질문을 던지고 하는, 자기들끼리 정해 놓은 규율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 어느 친구가 혼자 특종 질문을 하고 달아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느슨한 형태의 마피아 규약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필자는 어쩌다 끼어든 불청객,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그렇지만 대표는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 곁에 둘러서 있는 서너 명의 보디가드들 때문에 바짝 붙어 지나가는 말로 질문을 던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전여옥 대변인과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중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나라당이 다급하니까 일단 일회용으로 박근혜 대표를 써먹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가까이에서 보니 내공이 있어요. 그리고 담대하고…. 혼비백산할 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보통사람이 아니에요.”
‘영남 공주 박근혜는 안 돼!’라는 칼럼을 일간지에 실었던 사람의 고백이니 믿어 주어야 한다. 수행기자들 중에도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당 관계자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담대함’이라…. 그 담대함의 표현 속에서 오래 전 대만의 총통 장징궈(蔣經國)가 떠올랐다. 점퍼만 입고다니던 총통, 걸핏하면 미니버스를 타고 시장통에 나타나 주부들 장바구니나 열어 보던 총통, 설날이면 자기 가족사진이 올려져 있는 조그만 책상 앞에서 TV를 통해 국민에게 ‘꽁시 꽁시’(恭喜恭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중얼거리던 총통. 그 장 총통의 좌우명은 ‘대지약우’(大智若愚, 커다란 지혜는 오히려 어리석게 보인다)와 ‘처변불경’(處變不驚, 상황이 급변해도 놀라지 않는다)였다. 어리어리해 보이는 그가 죽었을 때 대만 꽃시장의 꽃이 바닥나 네덜란드에서 꽃을 공수해 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을 가슴 깊이 울려 놓았다.
장징궈의 그 깊은 처세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동아시아의 한 시대를 건너간 정치인 장제스(蔣介石) 때문이었다. 가학(家學) 때문이었다. 시대를 읽고, 사회를 꿰뚫어 보고,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독특한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유의 능력은 피터 드러커의 표현대로 깊은 인문학적 통찰력에서 배양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교에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에게만 배울 수 있는 구별된 재능이다. 그 스승이 아버지인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행운아다. 따라서 박대표는 대단한 행운아다. 한명숙 의원은 박대표와 자신을 좀 비교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네루의 딸처럼 부모의 이미지를 통한 후광을 얻고 있지요. 거기에 복고의 이미지까지…. 때문에 독립성에서 저와는 다르지요. 저는 여성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했습니다.”
차분히 그러나 정확하게 자신과 타인을 비교했다. 말쑥한 말씨 때문에 아주 객관적으로 들렸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말하듯 박근혜는 사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떴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공격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확한 공격이 아니다. 헛방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당시 30% 하던 시중금리를 무시하고 무역업체들에 8% 안팎의 특혜 이자를 제공하면서 산업화를 일구어낸 반칙왕이었기에 보통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병풍 치고 기타 치면서 술 마시는 재미에 빠져 장기집권을 획책했기에 보통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부하이며 친구였던 한 사내의 총을 맞고 죽어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치, 그것은 도덕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사술(邪術) 풀이에 다름아니다. 부모도, 친구도 물론 법도 없는 비정한 인간들의 저열한 파티가 바로 한국정치다. 박정희를 과녁으로 일평생 투쟁의 세월을 살아온 YS와 DJ 역시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청와대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들을 따라 주류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 우뚝 섰다. 대통령이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백수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죽어간 자들은 말이 없다. 물론 연봉도 없다. 그만하면 산 자들에게는 과분한 보상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고, 그 정치 속에서 박근혜가 컸다. 아버지에게 경제를 배웠노라는 박근혜의 말은 그래서 절반만 맞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총알로 잃었다. 전쟁의 총성이 그친 이 땅에서 총 맞은 부모를 둔 사람은 박근혜와 여동생, 남동생뿐이다. 그리고 그 셋 중에서 빳빳하게 정신차리고 있는 이는 박근혜밖에 없다. 그의 담대함은 따라서 생리학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것이다. 그의 담대함의 차원은, 따라서 여간한 체험의 사람 아니면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귀족적인 박근혜, 소탈한 추미애
1979년 새해를 맞아 청와대 뜰에서 기념 촬영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가 어느 시장에 도착했다. 길거리에 서서 어묵을 씹어가며 잠시 늦은 점심을 때운다.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박근혜를 관찰하느라 정작 내 점심은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그는 입을 다물고 꼭꼭 씹었다. 미니버스 안에서 호떡을 베어 물면서 “아이고, 정치하다 보니 양반 못 되네요” 하며 소탈하게 웃던 추미애 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근접하기 힘든 뭔가가 확실히 있었다. 공주병 종류는 분명히 아니었다. 여학생들이나 아내를 통해 가짜 공주들의 황실 분위기를 나름대로 알고 있기에 박근혜의 분위기가 그와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권위? 그것도 아닌 듯했다. 뭐랄까. 그것은 일종의 귀족 분위기였다.
“박근혜는 이미지 프리미엄이 있어요. 고급 패션 브랜드나 역사, 전통, 권위가 느껴지는 시계나 옷 종류의 모델로 어울릴 거예요.”
총선을 계기로 박근혜 대표를 정점으로 열리는 여성들의 리더십에 대한 조사를 좀 더 심화하기 위해 문화산업 트렌드 분석팀장을 만났었다. 한국인이 살지 않는 한국 속의 외국,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팀장을 만났다. 수소문 끝에 한국 사회 내면에 흐르는 문화 트렌드, 특히 나이별, 성별 특성을 가장 잘 조사해 놓은 팀을 알게 되었고 만나기로 했었다. 사진도 찍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 아침, 이메일이 날아왔다.
“회사에서 정치인에 관한 인터뷰라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며….”
전화를 하자 미안해 하면서 이름 없이 소속도 없이 그냥 만나 주겠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조직의 뜨거운 맛을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이 잔존해 있다. 별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그렇지만 필자도 당해 봐서 안다.
순한 사람은 소화불량에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만났다. 그리고 ‘만일 분위기만 감안해 박근혜 대표, 추미애 씨, 강금실 장관 등을 광고 모델로 한다면 어떤 상품이 어울리겠느냐’는 질문에 위의 대답을 해 준 것이다. 오랜 세월 한국사회 최상류층과만 상대하면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신중함이 박근혜 대표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 프리미엄의 실체인 것이었다.
“추미애는 강하고 딴딴하니 신뢰성이 느껴지지요. 이동통신·은행·카드회사가 어울릴 것 같아요. 아, 또 ‘볼보’(Volvo) 같은 자동차도 좋겠네요. 절대 사고 안 날 분위기니까.”
아, 그런데 사고가 나고 말았다. 자기 지역구에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으니. TV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흔들리는 미니버스에서 인터뷰할 때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성실하게 대답해 줘서 고마웠는데…. 더구나 밤 늦은 시간에…. 추미애 위원장은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를 스케치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도 서울·호남을 오르내려 필자의 학교 스케줄과 맞지 않았다. 또 그가 3보1배를 할 때는 일부러 스케치하러 가지 않았다. 너무 치우친 감정만 보게 될 것이 뻔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르포가 가장 힘들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도 사고가 나고 말았다.
“강금실 장관은 전형적인 여성적 감성 스타일이에요. 자신의 매력을 잘 이용하는 스타일이지요. 보석·화장품류의 여성 브랜드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한국사회 내면에는 짙은 여성성이 흐르고 있어요. 13∼18세, 19∼24세, 25∼35세를 나누어 볼 때 조금씩 개성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존재하는 감성 코드는 여성성이에요.”
“35세 이상은 분석 안 하나요?”
“예,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이상은 취향이 바뀌지 않아요. 그냥 굳어지지요. 특히 남성 40대는 구매력 측면에서 죽은 세대예요.”
“와, 슬프네요. 그런데 듣고 보니 제가 무엇을 사는 일이 없네요. 어쩌다 자판기 커피 외에는….”
“모든 구매의 주도권은 자녀나 여성들이 쥐고 있지요.”
그러고 보니 월급은 은행으로 들어가고, 어쩌다 외식을 해도 계산은 아내가 한다. 목돈은 아이가 가져가고…. 저녁 조깅을 하면서 ‘아, 나는 뛰고 있다. 고로 나는 살아 있다’고 즐거워 했지만, 그것은 오해였는지도 모른다. 시장에서 남성 40대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요즘 영화계의 뛰어난 기획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에요. 시장에 대한 직관력이 뛰어나고, 꼼꼼한 분석력 때문에 홍보나 마케팅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지요. 사회가 점차 여성화해가고 있어요. 사내 녀석들도 요즘에는 피부나 머리 염색 잘하는 데 관심을 가져요.”
영화학과에서 시나리오를 강의하는 동료에게 물어보니 그런 대답을 들려준다. 아령과 팔굽혀펴기로 못 먹은 가슴을 펴는 것이 우리 시대의 최대 관심사였는데 요즘 애들은 워낙 지방이 남아돌아 저절로 가슴이 딱 벌어져 있다.
“요즘에는 옛날 같은 사내 스타일은 한물 갔어요. 최민수나 이정재 같은 남성들이 아니라 안정환·베컴같이 얼굴은 멜로, 몸은 거친 남자들이 뜨지요. 그런 것을 ‘메트로 섹슈얼’이라고 해요. 따라서 여성 취향의 상품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면 남성은 자동으로 따라붙어요.”
사회 전반을 통해 흐르는 여성성의 트렌드는 무의식을 통해 학습되고 있다. 교실을 드나드는 선생님들의 거의 대부분이 여성임은 물론이고 엄마들의 가정에서의 적극적인 역할 때문에라도 자녀들, 남편들은 여성적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일종의 남녀평등 의식이 트렌드를 주도하기 때문이지요. 그 가장 중요한 사회 도구가 인터넷 등의 뉴 미디어예요. 현재 상품 광고만 해도 뉴 미디어를 드나드는 여성을 잡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어요.”
즉,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여성성에 대한 잠재의식적 추구까지 가미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나름의 학습 기간 덕택에 이전에 여성들에게 지녔던 막연한 불안감이 희석되고 있었다. 한 60대 남성은 ‘여성 정치인이 불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불안하지 않아요.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요. 외국과 비교하면.”
바로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표가 등장한 것이었다. 10년 전이었으면 ‘지지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10년 뒤면 ‘늙은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적당한 나이, 여성성이 저변에 흐르는 사회적 환경 덕분에 박근혜 대표가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시장이든 거리든 축구장이든 그의 손을 한번 잡아 보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50, 60대였다는 점이다. 총선 중간에 열린우리당에서 날아든 응원가 ‘어르신들은 집에서 쉬세요’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그것은 오히려 소외된 세대들의 자기 확인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보니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1970년대에 이른바 산업화를 일구어가던 이 세대들의 사회적 존재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의 총소리와 함께 소멸하고 말았다. 역사에서의 퇴출이었다. 그리고 등장한 1980년대, 그 시대를 관통해온 386은 지금 시대의 주류가 되어 있다.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475 세대 역시 나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죄수 번호 같은 숫자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말이다.
“아이고, 완전 육영수 여사야”
그렇지만 50, 60대, 그들은 박정희 시대의 종말과 함께 시대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더는 역사 속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묵묵히 돈 버는 일만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온갖 모멸들이었다. IMF, 명퇴, 컴맹, 침침한 눈, 풀린 무릎…. 최악의 세대였다. 그 외로운 길목에서 박정희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박정희의 남성적 의리, 가부장적 책임감, 근검절약, 나라사랑 등의 촌스러운 이미지가 박근혜의 여성성을 통해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50, 60대는 박근혜에서 자신들의 잃어버린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끊어진 역사의 끈을 이어 보려는 안타까움이 곳곳에서 들렸다.
“아이고, 완전 육영수 여사야.”
“박대통령 따님.”
그의 뒷덜미에 쏟아지는 이런 목소리들은 바로 이들이 박근혜를 박근혜로만 보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아저씨들은 아줌마보다 먼발치에서 더 수줍어 했다. 사내 체면에 다가서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젊은 친구들이 그를 외면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장통에서 길을 막고 사인을 받으려는 10대들의 모습은 박근혜라는 사람의 흡인력이 간단하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필자는 총선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초 04학번, 그러니까 올해 신입생 약 60명에게 ‘한국사회에 여성 대통령이 필요할까’라는 제목의 작문을 시켜 보았다. 매주 15분씩 진행하는 ‘느낌이 있는 글쓰기 연습’ 시간을 이용해서였다. 그러자 서너 명 정도만 여성 대통령에 대해 주저할 뿐 나머지는 필자가 박근혜라는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예로 들며 대담하고 시원한 의견을 제시했다. 한번 보자. 먼저 잠깐 부정적인 대답을 한둘 소개해 본다.
“국회에서 넥타이 풀어헤치고 싸우는 남자들 대신 머리끄덩이 쥐고 흔드는 여자 국회의원들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도 이렇게 말이 많은데,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
“우리 엄마가 대통령이라면…, 무조건 반대다!!”
이번에는 찬성 이야기를 들어 보자.
“질문부터 웃기는 것 같다. 여자라고 해서 대통령을 못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여자라고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교수인 필자가 글을 볼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요즘 학생들은 이렇듯 자기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귀여운 녀석들.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나라의 일들은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될 것이다.”
때문에 박근혜 대표의 등장을, 그것이 분명한 노림수임이 틀림없어도, 영남을 먹기 위한 지역주의적 전략이라고만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편가르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즉, 박근혜라는 여성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지역주의라는 부정적 암시를 통해 사장시키려는 단수 높은 인질극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 노무현이나, 가치와 나이로 국민을 분리시키는 데 익숙한 사고를 지닌 정동영 의장 모두 가부장적 사고를 그들 인생관의 본질적 DNA로 지니고 있다면 향후 정국은 끝없는 부부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열린우리당이 총선 때 던진 여러 가지 농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르신 휴식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손녀가 있네 없네’의 채팅이나 ‘박근혜=영남’의 등식 깊은 곳에는 뿌리 깊은 여성 비하의 치졸함이 가라앉아 있다. 그 치졸함이 앞으로도 작동한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쉽지 않게 길러 놓은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우를 저지를 수 있다. 남성사회는 여성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사장시켜 왔다. 그간의 잘못을 고치고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이번 박근혜 대표의 등장이다.
‘아시아인들의 가부장문화로 인해 함몰되는 여성들의 자아와 그로 인한 문화 손실을 고려해 볼 때 아시아의 발전은 그저 놀라울 뿐’이라는 어느 하버드 대학 교수의 평가가 상당부분 과장되었다손치더라도 그 목소리의 여운은 여전히 우리 귓가에 남는다.
물론 지역의 힘은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앞으로도 동서로 갈린 이 지역감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남서여동(男西女東)이라는 난생 처음 보는 형국이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그 속살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내용을 여기서 또 분석해 보는 일은 시간 낭비이고 독자들 수준을 하향평준화하는 일이겠기에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지만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는 것도 사실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어느 심심한 네티즌이 이 말만 톡 잘라 김경일 교수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해 버리면 할 말은 없지만, 지역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애착은 인류가 오랜 시간 숙성시켜온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청국장이다.
미국인들도 동부 뉴욕 사람들은 서부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서북부 멋쟁이 시애틀 사람들은 남부 앨라배마 사람들을 촌놈 취급한다. 베이징(北京)의 내로라하는 집안 사람들 역시 상하이(上海) 사람들과 혼인을 꺼리고, 상하이 사람들 역시 내륙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서도 역시 도쿄(東京)와 나고야(名古屋)의 우동 맛이 다르고 교토(京都)와 시모노세키(下關)의 거리 풍광은 확연히 다르다. 서로 다르지 않고 은근히 시샘하고 경쟁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본 프로야구나 J 리그 프로축구는 그날로 영업 끝이다. 따라서 지역감정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이 옳다.
그건 그렇고, 영남의 지역감정이 이번에는 박근혜라는 한 인물을 통해 되살아났다. 이 표현은 박근혜가 지역감정을 이용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좀 더 공평할 것이다. 영남 출신 국회의원이 수십 명인데 굳이 여성을 대표로 삼을 이유가 있었을까. 왜 영남 사람들은 하필 박근혜를 통해 그들의 노여움을 풀려고 할까. 이 질문에서 우리는 박근혜를 따로 떼어내 읽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는 해석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물론 그 지역성은 박근혜의 강점 중의 강점이고, 약점 중의 약점이다. 그렇지만 박근혜를 부른 더 적극적인 힘은 우리 시대의 변화한 문화다.
“여성 정치인의 등장이 어느날 갑자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몇십 년 쌓인 문화적 축적에 따른 시간적으로 맞는 현상입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톡’ 터져나온 현상이지요. 개인적으로도 딸 가진 입장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2만 달러의 동력은 여성에게서 찾을 수 있어요.”
국제 헤드헌팅 기업인 ‘Korn-Ferry Inter national’의 이성훈 부사장(43)의 이야기다.
“탤런트 풀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남자들에서만 사람을 골라 쓰는 것보다 여성들까지 섞어 인재를 찾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요. 2,000만 명보다 4,000만 명에서 찾는 것이 더 좋지요.”
박근혜 대표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전여옥 대변인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전화번호와 시간을 얻었다. 그런데 비서가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다시 전대변인에게 전화를 했다.
“제 전화가 낯설어 전화를 안 받는 모양인데, 이야기 좀 다시 해 주십시오.”
마침내 통화가 되었다. 이 짧은 통화를 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고나 할까.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인 삶에서나 홀로서기를 하고 계신데, 홀로서기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뭔가요?”
‘삶’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는지 잠시 멈칫하는 느낌이 있더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사적인 욕심 없이 바르게 살려고 하고 있어요.”
탁했지만 솔직한 목소리였다. 정치인들 특유의 너스레는 전혀 없었다.
“한국은 남성사회인데 여성이 정치를 할 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모성애지요. 약한 듯하지만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 살아온 우리 어머님들의 힘 같은 조용한 힘, 그런 것이 강점이지요.”
이 똑같은 질문에 추미애 씨는 이렇게 답했다.
“남성문화가 패거리문화라면 여성의 힘은 책임감과 감성이라고 봅니다.”
이 질문을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던져 보았는데, 대부분의 대답은 여성의 ‘깨끗함’이었다.
“정치인들이 하도 해 처먹어싸니 여자들이 하는 것이 낫지.”
이번에는 이 질문을 멀리 베이징으로 던져 보았다. 아무래도 여성 정치인들의 사회 진출은 중국 쪽이 더 경험이 많을 테니 말이다. 쉬홍(徐泓)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자생활을 거쳐 베이징대 박사 코스 지도를 맡고 있는 중견 여교수였다.
“남성사회에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 강점이지요.”
부패 문제로 지겨운 중국이기에 여성들은 조직의 공기청정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표의 급부상, 이른바 ‘박풍’의 내면에는 바로 이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다. 모두 짐작하는 것이어서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박근혜 대표나 이번에 들어서는 여성들이 과연 정치권을 깨끗이 만들 수 있을까.
필자 개인의 느낌으로는 정치권이,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깨끗해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재미는 있을 것 같다. 의원들 개인 개인에 대한 느낌도 그렇거니와 보좌관인지 뭔지 하는 친구들의 면면이나 그 주변을 맴도는 양복 입은 이상한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정치라는 것이 백수에게는 최고의 직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스파게티에 나무 젓가락을 꼽아 놓고 방울토마토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잘 모르는 먹이사슬이 있다. 그 먹이사슬 속에 들어앉아 있는 이상 그들은 돈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여성 정치인에게서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적지 않은 여성 정치인들이 길들여질 테니까.
“통상적으로 남녀 범죄자의 구성 비율을 보면 85대 15가 됩니다. 여성이 남성의 6분의 1에 불과하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본능적으로 범죄 성향이 적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범죄심리학자 곽대경 박사는 ‘여성이 남성보다 범죄 성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휴대전화에서 속사포 같은 설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활동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지요.”
“저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범죄 성향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권력지향적이어서 공금횡령이나 권력남용 사례를 볼 때 남성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여성이 많은 여자 대학들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남자 대학 못지않아요.”
박근혜, 검증은 이제부터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그랬구나! 여자라고는 아내밖에 관찰 데이터가 없으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이래서 분석은 풍부한 데이터가 필수다.
“남성들은 실수를 해도 금방 복구되지만, 여성은 한번 실수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복원력이 약하지요.”
그랬구나! 나는 여자는 선천적으로 착한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선악과를 먼저 먹은 것은 아담이 아니었다. 이브였다. 결국 기회의 문제였구나.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범죄가 늘고 있어요. 이전에는 없었던 폭력도 증가하고요.”
자, 그러면 우리 국민이 ‘깨끗함’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여성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시선은 조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제는 어느날 검찰에 불려가는 정치인 중에 여성도 낄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도 열어 놓을 필요가 있게 되었다.
“기대는 있지요. 정치판에서 순기능을 발휘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동화를 거부한다면 말입니다.”
이런 힘이 박근혜 대표에게 있을까. 글쎄…. 겉보기에는 그런데….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가 있나?
“남성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잊고 ‘중성색채’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리지만, 넓은 시야를 갖춘 남성들의 장점을 끊임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게 바로 ‘중성색채’예요.”
쉬홍 교수의 말이었다. 중국 여성들은 열매가 되기를 원하고, 한국 여성들은 꽃이 되기를 원하는 현상이 이 말 속에서 잘 이해된다. 한국 여성들은 걸핏하면 어리광 속으로 빠져든다. 한국 여성, 중국 여성들과 일하면서 느낀 필자 나름의 감정이다.
‘중성색채!’ 그래, 박근혜 대표에게서 풀지 못한 ‘드라이’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목소리도 들어 보면 다분히 중성적 느낌이 강하다. 마치 한때 전 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킨 최초의 여전사, 쌍권총의 라라 크로프트 같은 이미지가 그에게는 있었다.
“일이 있으면 이것이 옳은 것인가 하고 여러 번 생각하지요.”
그러고는 정제된 문장으로 만들어 던지는 그의 말 속에는 분명 여성들 특유의 재잘거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잘 펴서 웃는 웃음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총선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박근혜라는 새로운 배우를 얻게 되었다. 분명 신인이지만 신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노련하다. 그가 받은 가학(家學)은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고의 경제 발전과 최악의 권모술수, 그는 사실 비정(悲情)의 사원에서 길러진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여성성이 사회 주류 트렌드로 흐르는 시대적 환경, 확률 제로(0)의 다 죽어가는 한나라당을 회생시킨 정치력, 그를 향해 일편단심을 맹세한 동쪽나라 사람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르신 세대,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얻은 정치인이 이전에 있었을까. 박근혜, 그래서 검증은 이제부터다.
총선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박근혜라는 새로운 배우를 얻게 되었다. 분명 신인이지만 신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노련하다. 그가 받은 家學은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고의 경제 발전과 최악의 권모술수, 그는 悲情한 역사의 경험에서 길러진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인이다...
첫댓글 넘 길어서 머리아포...*^^*
대장님 죄송^^ 그래서 천천히 보시라 했음당...결론은 좋은 이야기에요...
글 잘봤습니다... 특정인물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느끼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거 같네요..우리 매스컴도 이렇게 되어야 할텐데...
총선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박근혜라는 새로운 배우를 얻게 되었다. 분명 신인이지만 신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노련하다. 그가 받은 家學은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고의 경제 발전과 최악의 권모술수, 그는 悲情한 역사의 경험에서 길러진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인이다...
제 생각에는 필자가 은근히 박근혜님에게 우호적 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