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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방의 논제하고는 거리가 멀겠으나 한 시대를 앞서 간 연암(燕巖) 박지원은 이러한 분들이 계셔서 기우러져 가는
조선사회의 큰 학자임을 느께게 됩니다. 어렵살이 노구(老耉)를 이끌고 공부룰 하여 어렵게 만든 글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람니다 다산 정약용선생에 이어 2번째로 학자의 고향을 올려봄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이
러한 훌륭한 안목을 가진 어진 학자들이 생각이 남니다
박지원의’연암집(燕巖集)‘을 읽고
1.들어가면서
가) 시대적인 배경과 작자소개
연암집의 작자 연암(燕巖) 박지원은 173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조선 은 성리학의 사상으로 고려의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받아들어 통치를 국가의 이념으로 신분사회의 불평등,남존여비, 서얼제도의 불합리성를 그의 작품에서 제시를 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양반전(兩班傳)’‘허생전’그리고 ‘호질(虎叱)’ 그리고 청나라의 북경을 경유하여 열하까지 사신과 함께 동행하면서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작품과 ‘연암집’외 기타등등이 있다.
영국의 섹스피어가 있다면 조선에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으며 그의 시대를 비판하고 불합리성을 고발하는 내용이 요소요소 에 있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의 모습을 우리는 느낄수 있다. 조선사회의 신분질서의 맹점을 지적한 교산 허균과 당시대를 비판하고 특히 붕당정치와 관리들의 부페에 염증을 느끼고 작품을 남겼던 백호(白湖)임제와 17세기의 연암 박지원의 당대의 모순점을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그리고 병자호란등의 외침과 국내적으로는 당파와 사화 세도정치의 섭정으로 어려운 국난에 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 사상은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근대시민혁명에서 찾아 볼 수가 있으며.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권리장전, 근대 헌법의 시작은 1215년 마르나카르타 대 헌장이,근대 헌법의 효시(嚆矢)로 볼 수가 있다. 1776년 미국의‘버지니아의 권리장전’에서,1789년의 프랑스의 시민혁명에서도 그 정신을 찾아 볼 수가 있으며 철학자나 계몽사상가들에 의하여 민주주의 사상이 싹이 트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인권의 보장은 민주주의가 전제 되어야 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명권과 존엄성이 존중되며 법치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아진다.
서구의 유럽과 미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 봉건제도도 붕괴를 하여 민주주의가 태동을 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로 경제제도가 운영을 산업혁병이 일어나고 있으며 종교개혁등의 조치들이 싻을 트기 시작한는데, 조선에서는 먹고 놀기만 하는 양반 숫자만 많아지고 농민들은 관리들의 혹세(酷稅)에 시달리어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에 있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관군으로 집압을 못하여 청.일본나라들을 불러들어 일본의 승리로 일제 36년간의 기나긴 식민지 시대로 들어가고 만다.
2. 본 론
가) 연암의 작품 소개와 정리
연암의‘호질(虎叱)’에서는 호랑이가 인간들에게 질타하는 방면에서" 우리호랑이는 기껏해야 야생들을 잡아서 먹고 살지만,인간이란 자들은 온갖 동물과 식물 바다에 고기들도 다 잡아 먹고 식물들도, 누애와 벌들이 평생을 노력해서 모아 논 '꿀'들도 한 번에 따서 먹고 살아가는 비겁한 인간이라고 질타를 한다.“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인 '북곽의'라는 선비는 어느 과부집이나 들낙 거리다 가 그의 성이 다른 5섯명의 자녀들에게 쫒기다가 똥물이 있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그때 마침 호랑이의 앞에서 옷에서는 똥 냄새가 나면서 호랑 이게 신날하게 질타를 당하게 된다.양반의 허구성과 가치 없는 삶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당시의 지배계급인 양반사회의 지식으로써로써 박제가와 같은 분들이 그를 스승으로 받들기에 이르렀으며,가난한 살림살이에도 학문에 뜻을 두고 중앙관서에 높은 자리를 갖지는 못하였지만 관인으로써 온포(蘊抱)를 펼수있었으며 문인으로 사상가로 그리고 영채(映彩)를 발했다. 44세때 (정조4년 1780)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의 건륭제의 칠순축하자리를 함께 참석하기 위하여 건륭제가 여름휴가를 즐기는 열하로 가서 ‘열하일기’26권을 유창하고 발랄한 수필체로 청나라의 문물제도와 명류석학들과 교류하면서 조선보다 앞서 있는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의 기록을 하여 ‘열하일기’를 저술 하였다. 청나라는 이미 서구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일본과 함께 깨어 있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열하일기’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수록되었는 ’허생전‘과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있는’양반전‘에서는 당대의 양반사회의 무능함과 비생산적이며 조선후기사회에서는 양반을 사고 팔고하여 먹고는양반사류들이 늘어나 사회의 문제점을 갖게 되었으며, 관리들의 농민이나 노예들의 하층민들의 혹세와 갈취로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게 되었다.대표적으로 ’동학농민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단아한 논리는 중국의 ’맹자‘를 본받을만하고 풍자와 비유등은 ’장자‘의 버금가는 문체로써 당대의 북학파인 ’홍대용‘’이덕무‘’박제가‘이서구’ 유득공‘과 경세치용의 이용후생의 실학파의 학자로 관직에는 뜻이 없었으며 우리고전의 최고봉으로 꼽혔으며 농사를 경작하는 실용서를 발간 하였으며,연암집은 자유로운 사유 단편소설,기행문을 정통적인 문장론을 벗어난 형식과 내용으로 하층민의 삶을 중심으로 신분질서를 혼란시키는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서얼출신의 선비들과도 마음을 터 놓고 진실하게 교류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하풍죽로당기‘(荷風竹露堂記)에서는 ”절로 무릅을치게 할 정도의 절묘한 비유와 격조 높은 운치가 보인다. 하풍(荷風)은 연꽃의 바람이라는 뜻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 연꽃의 향기가 불어오는 것을 하풍이라고 표현한것이며,죽로(竹露)는 댓잎에 맺힌 이슬로 백성을 사랑하는 선비의 마음을 비유 한 것이다. 그가 안의현감의 지방관으로 가 있을 때 ’하풍죽로당‘의 장소는 온갖 쓰리기와 오물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 자리에 깨끗하게 치우고 연꽃의 바람이 향기를 나게 하였으며 수령은 모름지기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경계하여‘하풍죽로당’을 짓고 그의 기문(記文)에서 기록하고 있다“그리고 불이당기(不移堂記)에서도 보이지않는 속의 잣나무의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는 조선의 사대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조때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목민심서’와 흠흠신서,경세유포‘를 포함하여 500 여권의 작품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목민관은 농민과 백성을 위하여 사사로운 사익을 추구해서는 않된다고 하는 다산(茶山) 장약용과 같은 경세가와 같은 학자와 같은 사상을 가진 선비로 당대의 사회에 깨어 있는 지식인으로 국가와 사회 그리고 백성을 위한 서구의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계시는 분으로 이해가 간다.
나) 연암의 원문읽기에서는
글의 뜻함 드러나면 그만이지,공작관문서(孔雀館文稿序)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다 글제를 앞에 두고 붓을 쥐고서 갑작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쯧을 찾으며 거짓으로 근엄한체 하며 글자마다 엄숙한척하는 것은 이유하자면 화공을 불러 자기의 모습을 그리게 할제 자기의 모습을 고치고 나서는 것과 같다.
말을 그리 거창하게 하게 할 것도 없고 또는 털끝만한 차이로 나뉘는 법이니 내듯을 말 할 수 있는 것이면 아무리 하찬은 것이라도 어찌 버리겠는가
다) 백번싸워 일긴 글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글을 잘짓는 것은 병법을 잘 알 것이다.글자는 비유하자면 군사이고 뜻을 비유하자면 장수이고 제목은 적국이고 고사를 다루는 것은 전장의 진지이고 글자를 묶어서 구를 만들고 구를 엮어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지어 행진하는 이외에도 옛 것을 만들어 새것을 만든다-초정집서(楚亭集序) 조선 사람은 조선의 시를 써야한다 길가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 등에서 연암은 글쓰기의 방법과 문장을 제시하고 있다.
3. 나오면서
연암은 이용후생 ,실사구시 실학자로써 현실에 맞는 글과 사상가로써 또는 경세가로써 18세기의 서구의 도도히 흐르는 선진문물에 눈을 뜨는 학자요
선비로써 구태의연한 조선사회에 정치사회의 모순점을 이해를 하고 거기에 때한 불합리한 문제점을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진정한 한 시대를 앞서가는 문장가로 그 모습을 볼수가 있다.
參 考 文獻 : 1 헌법의 기초 :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2 고전소설강독 : 설성경.박태상 공저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부
3. 고소설론과작가: 이상택. 박종성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4. 호질(虎叱) 허생전 기타 다수 작품집
5. 인 용_: 2번째장 하단 ”하풍죽로당기‘(荷風竹露堂記)에서 9행
동서양 고전의 이해 교재에서 인용
6 다산 정약용:윤동환 저 다산기념사업회
첫댓글 으으으으음~~
혼자 하시면 되실것을 저희까지~~
만학이사 분명 매력있지만
의지에 따르나니...
방통만학의 험로 이 글로 알겠나이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에 저는 먹고 살기위하여 법학과 행정학을 한 사람으로
은퇴후에 문학중에 고전문학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시대를 걱정하고 작금의 우리민족의 나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어럼픗이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국은 두동강이로 나누어지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 감사합니다
연암 박지원 매운 훌륭하신
분이시지요 그 깊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나이가 드니 잠이 일찍깨입니다
힘들게 공부를 하니 힘드는 글을 쓰게 됩니다
18세기의 세계의 질서는 복잡하여 짐니다 이러한 시대의 선각자들이 있어
우리나라도 세계속에 한국인임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동구리님`
연암 박지원의 책은 거의 다 읽다 싶이 했네요
조선후기 실학의 거두인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열하일기는 정말 정말 후세에 길이 남을 책이지요
일직 일어나셨네요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연암집을 읽은거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당대사회의 거의 직시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학자이며
과거시험장에서 답안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희롱할정도에 관직에는 관심이 없고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을 가진 학자며 깨어있는 지식인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연암을 다시 떠올리게 하네요..
선배님 감사하니다
전에 공부를 하였던 것을 정리를 하여 보았습니다
배우고 갑니다.
지식의 수평선이
넓어졌습니다.
대단한 글에 쉬어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식의 지평을 넓으셨으니 영광입니다 제나름대로는 열심히 책을 보았습니다
연암 박지원님 조선사회의 큰 학자
다산 정약용선생님
잠시나마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사회의 저러한 큰 학자들이 있어서 5백년의 긴역사가
유지된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얼마전에 열하일기 상 . 하 사서 읽어봤지요
하여간 종횡무진 으로 장르를 뛰어 넘는 글은 여깃 천재예요.
열심히 노력하시는 동구리님 역시 대단한 분이신 것을 느끼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씁니다.
어느사회에서 저렇게 훌륭한 인물들이 있어서 사회는 발전하고
인류는 발전을 하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