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이기리
시간을 묶는 매듭이 필요해서
기억력이 점점 좋아지는 걸까
서툰 손재주로 꿰맨 서른 개의 진주 목걸이를 호접란 꽃대에 걸고
꽃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면
자연은 인위인가
인위가 자연인가
알 수 없지만
고바야시 다키지가 1903년부터 1933년까지 살았고
기형도가 1960년부터 1989년까지 살았고
보부아르는 1908년부터 1986년까지 살았는데
1986년 비 오는 삼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퇴계로에 있는 행복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이는 모두 매듭의 향연으로 지속되는 세계의 평범한 말장난이다
말은 처음부터 장난을 좋아했으므로
장난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죽을 수도 있는 것
부디 만년을 기념하지 마세요
줄이 좀더 꼬일 뿐이니까요
앞만 잘 보고 걸으면 다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뒤에 무언가 푹 찔리는 느낌이 온다면
선물 받은 방향은 저리 치워주겠니
얼룩이 생기자마자 닦았으면 좋았을 텐데
거의 다 지울 수는 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 지울 수 없단 뜻이군요
충분히 오고 있는 대답 속에서
누군가 한평생 살았던 시간을 외우려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
이제 막 태어난 곡선
자연은 자연이 극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말은
물에 깎인 돌을 보며 들은 것 같은데
물을 깎으려면 더 많은 얼굴이 필요한데
맑음이 깊어지면 더욱 투명한 어둠이 된다는 게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오고 있는 매듭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힘차게
작별하는 주기를 끊는다
극세사
“골프입니다” 하면서 전단지를 내미는 할머니들
아직 비가 내리는 줄 알고 우산을 쓰며 걷는 사람들
“비 안 와요. 우산 더 안 써도 돼요” 하면서 전단지를 계속 내밀고
누굴 기다리느라 옆에서 10분 넘도록 책을 읽는 사내에게는 전단지를 내밀지 않는다
우산을 접으며
우산을 펴며
끊임없이 발소리를 내는 사람들
더 안 해도 되는 일들이 거리에는 많다
역사 미화원은 출구 앞에 파란 우산털이통 하나를 놓으며
“아이고, 사람들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정신없어 죽겠다. 미치겠다” 하면서 계단을 오르는데
지하철에서 방금 내렸는지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계단을 내려온다
사람이 사람을 지나친다고 해서
시간이 교차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들고 있는 시집을
가끔씩 툭툭 건드리는 어깨들이 있다고 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곧장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르는 얼굴이 또 하나 늘어나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잠시 까먹을 뿐이다
망원역에는 출구가 두 군데밖에 없고
출구끼리 서로 마주 보고 있으므로
여기로 나오면 저기를 바라보게 되고
여기로 나왔기에 저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상점마다 비추는 빛들이 물기 가득한 자리로 한데 모인다
저 빛을 밟으면 순간 모든 길들이 환해질 것만 같은데
스친 옷자락 사이로 잠깐 먼지가 붕 떠오르다가
접은 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과 펼친 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모인 자리를 향해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잠깐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사이에
사내가 어디론가 가고 없다
시집을 덮고 반가운 얼굴로 기다렸던 사람을 만난
사내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을 놓친 자에게 영원이란 행방불명일 것
손에 쥔 전단지를 다 돌린 할머니들이
검은 봉지 속에서 잡히는 대로 한 묶음을 새로 꺼낸다
어쩌면 이번 겨울은 좀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지도
눈빛들이 얽히는 파장 속에서
기워볼 만한 순간들은 다 기워봐야지
젖은 풍경은
햇볕에 잘 말리기.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이라면 어디든
삼월에는 유독 지독하게 심장을 느꼈다. 그것이 일종의 신경증으로 변질되어 계절이 바뀌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아무에게도 이 아픔을 털어놓을 순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 이를 제대로 말할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꽃이 하나둘 피어나는데도 내면은 갈수록 침잠하고 있었고 삶은 거의 무너지는 형색으로 하루하루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마침 함께 등산을 다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옆에 있던 누나가 앞으로 가면서 말했다.
“저기 라일락 좀 봐!”
나는 그 옆에 한가득 피어난 겹벚꽃을 올려다보면서 그저 봄이 다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라일락은 어느 사유지 근처에 조그맣게 핀 모습이었다. 아직 완연한 모습으로 피어난 상태는 아니었지만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코를 바짝 갖다 대면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어.”
누나가 말하고는 내 등을 가볍게 밀며 가까이 가보라고 부추겼다. 라일락에 코를 가까이 대고 숨을 편히 들이쉬었다. 부드러운 라일락 향기가 숨결을 입고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듯 주변에 퍼지면서 내 몸은 새삼 생명의 신비로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향해 이리 가까이 다가갔던 적이 있던가. 무엇이 어떤 존재의 의미로 둘러싸여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던가. 이를테면, 내가 꽃향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맡았던 게 또 언제였던가.
집으로 가는 길에 몇몇 카페가 보일 땐 들어가서 커피 한잔하면서 마들렌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운동하고 난 뒤라 이내 그만두었고 대신 근처 빵집에 들러 샌드위치와 빵 몇 개 사서 들어갔다. 씻고 아버지와 누나와 거실에 앉아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야구를 봤다. 배트에 맞은 공이 더 높이 멀리 날아갈수록 사람들은 열광했다. 공 하나에 울고 웃을 수 있는 삶도 어찌 보면 웃긴 일이었다. 딱 이렇게만 살면 되는데. 오후의 거실 속에서 이렇게 웃고 먹으면 되는데.
한동안 죽음이 사실이라는 사실이 괴롭고 두려웠다. 일월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렀고, 이월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했고, 삼월에는 죽음이라는 선연한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평소 소파에 앉거나 누워 있는 일상에서도 내가 없는 세계를 쉽게 상상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무엇이든 끝난다, 진짜 다 끝나버린다고. 죽음은 시시때때로 내게 말했다. 나는 목소리에 압도되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너무 잘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라는 숫자의 반복이 힘들었고 심장이 혈관을 통해 피를 운반하며 온몸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감각이 처절했다. 살아 있음이 지나치게 신경을 건드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두드러기처럼 피부에 돋았다.
그렇다면 사월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가. 사월은 반대로 삶을 충만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삶이 통사적이라면, 죽음은 비통사적인 언어에 불과하다고. 우울에 빠질 시간 없이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다이어리에 적힌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여행을 가야 하기에. 잘 해내고 싶은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에.
이 글이 잘 흐른다면 아마 언젠가 나를 ‘죽음을 두려워한 작가’로 기억하는 사료가 되어 기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현재 나의 입장을 확실하게 못 박아 두는 것이 좋겠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이 기분은 당분간 변하지 않겠지만 일상을 해하지 않을 만큼 죽음 의식을 최대한 줄이며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주어지는 소중한 순간들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행복을 보호할 것이다. 나는 메멘토 모리가 싫고 힘들지만 결국 글쓰기가 추구하는 모든 문제가 삶과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죽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고 했다지만 술 한잔 걸친 어느 여름밤 버스에 치이기 직전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작가와 철학자가 말하는 죽음을 읽으며 위로를 얻곤 했는데 정작 삶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그간 헤밍웨이의 텍스트를 읽으며 헤밍웨이가 그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작가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어느 여름 아침에 입으로 엽총을 물고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었다.
그 마지막이 두려움인지 희열인지 기쁨인지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문득 그가 쓴 유명한 단편 제목을 떠올리는 것으로 다시 차분해지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 가서 허무를 말하는 대신 마저 쓰던 시를 쓰겠다. 언젠가 지어질 ‘생몰년’이란 매듭은 끈이 다 풀려버리고 말았을 때 무릎을 꿇고 짓겠다. 매듭을 묶는 동안 갈 사람은 갈 것이고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릴 것이다. 모두가 나와 함께한다면.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