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블랙박스들. (위로부터) 벤츄리씨엔씨의 VB2, 셀픽의 큐브-7100, 아이트로닉스의 아이패스블랙
'블랙박스'라는 말은 항공기의 운행상황이나 외부로부터 받은 힘(충격) 등을 자동적으로 기록하는 장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비행 고도, 속도, 기수방위, 수직가속도, 시간 등을 기록해 항공기 사고 때 원인을 알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자동차 사고의 유형도 매우 복잡해졌다. 따라서 자동차에도 비행기의 블랙박스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꾸준히 늘어 지난 2006년 말 처음 선보였다. 그 무렵만 해도 제조업체 사이에 기술 표준 도출과 가격, 성능의 문제점 등으로 외면받아 지난해만 해도 전체등록대수의 0.4%(제조업체추정)인 7만여 대만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블랙박스를 통한 사건해결이 알려지면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현금수송차 탈취미수사건도 그런 변화에 한몫 거들었다. 용의자 검거 과정에서 자동차용 블랙박스가 용의자 얼굴을 정면으로 담아냈던 것.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사고에서 운전자 과실 여부를 비롯한 많은 문제점들이 녹화된 영상을 통해 해결된 사례가 잇달아 보고됐다. 이 처럼 직접 영상이 녹화되기에 교통사고가 일어나도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블랙박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사고의 과실 문제도 녹화된 영상을 증거로 이용,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요긴하게 쓴다. 이 때문에 일부 보험회사는 사고 예방 효과를 인정, 블랙박스를 단 차는 보험료를 3% 깎아주기도 한다.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특히 아직 법적 증거 자료로 채택되지 못한다는 점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자동차 사고 발생 시의 영상기록, 주행거리, 속도, 방향, 브레이크 작동, 안전띠 착용 유무 등 관련 데이터를 저장해야 한다'는 기술표준원의 규정 때문이다. 단순한 영상기록만으로는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을 판단하기 어려워 규정에 맞는 블랙박스를 쓰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실제 블랙박스 영상 화면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GPS와 연동이 되는 기능이 주목받고 있다. GPS 연동기능은 블랙박스 내부에 GPS 기능이 내장돼 사고가 발생하면 주행 궤적과 사고 위치 등이 동시에 저장되는 기능이다. 저장된 자료는 사후 처리에서 법적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가치가 크다. 따라서 사고가 잦은 영업용차에서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완성차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올 1월부터 업계 최초로 체어맨H 구입자에게 고급차용 블랙박스를 증정했다.
블랙박스의 녹화방식은 상시 녹화, 이벤트 녹화로 나눠진다. 상시 녹화는 자동차 전원에 연결만 돼 있으면 연속적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방식이다. 주행 상황을 계속 기록하며, 주차 때에는 운전자가 자리를 비워도 녹화를 계속해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한다. 녹화된 영상 위에 덮어쓰기를 할 수 있어 상시녹화라면 몇 번이고 재촬영이 가능하다. 이벤트 녹화는 충격을 감지하면 상황을 녹화한다. 사고에 반응하는 녹화여서 덮어쓰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사고가 발생해야만 기록을 하기 때문에 주행 중 사고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상시 녹화와 병행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한다.
전원은 시거 잭을 이용해 차의 전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차한 뒤에도 녹화를 계속하는 경우 내장 배터리를 쓰는 제품도 있다. 내장 배터리를 이용할 때는 전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녹화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늘 배터리 잔량을 살펴야 한다. 또한, 저장 매체인 SD메모리의 용량도 신경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