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달아나 버렸다 – 서리산, 축령산
1. 오른쪽은 천마산, 왼쪽은 송라산, 그 뒤는 운길산과 예봉산
축령산 및 서리산은 한북정맥(광주산맥)상의 운악산 남서쪽 서파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지맥상의 주금산에서 다시
동쪽으로 가지 친 여맥에 솟아 있는 산이며, 여맥은 두 산과 깃대봉을 거쳐 북한강에 가라앉는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고려 말에 사냥을 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는 몰이꾼의 말을 듣고, 제(祭)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고사를 올린 신령
스러운 산이라 하여 축령산(祝靈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능선에는 독수리 바위 ㆍ 남이바위 등 거암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전망이
좋고 단풍나무가 특히 많아 축령산 지능선 중에서는 백미를 이루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2002, 깊은솔), ‘축령산(祝靈山) 879.5m’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4월 14일(일),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5명(악수, 버들, 다훤, 메아리, 하운)
▶ 산행코스 : 개누리고개,293m봉,442m봉,잣향기 푸른숲,683m봉,서리산(832m),709m봉,축령산(887m),
수래너머골,불당골,외방1리,축령산 입구 버스승강장
▶ 산행거리 : 도상 14.6km
▶ 산행시간 : 8시간 10분(09 : 00 ~ 17 : 10)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대성리역으로 가서, 현리 가는 버스로 환승하여 개누리고개에서 내림
▶ 올 때 : 축령산 입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마석으로 가서 저녁 먹고,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5 – 상봉역
08 : 05 – 대성리역( ~ 08 : 25)
09 : 00 – 개누리고개, 산행시작
09 : 23 – 백련사(2.0km) 갈림길
10 : 00 – 293m봉
10 : 41 – 임도, 잣향기 푸른숲 길
11 : 28 – 헬기장, 쉼터, 서리산(1.38km), 점심( ~ 12 : 50)
13 : 18 – 서리산(霜山, 832m), 휴식( ~ 13 : 30)
14 : 06 – 사거리 갈림길 안부, 서리산 1.71km, 축령산 1.15km
14 : 37 – 축령산(祝靈山, △887m), 휴식( ~ 14 : 57)
15 : 38 – 전망바위
16 : 10 – 수레너머골, 임도
16 : 45 – 불당골 버스종점
17 : 10 – 축령산 입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17 : 35 - 마석장터
2. 산행지도
▶ 서리산(霜山, 832m)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
(みんな噓にして春は逃げてしまつた)
일본의 방랑 시인인 다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 1882~1940)의 하이쿠이다. 봄이라는 오늘이 딱 그러하다. 들녘을
달리는 전철에도 버스에도 봄은 없다. 이 하이쿠에 대해 류시화는 “어떤 아름다움은 통증이다. 다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봄도 사람도 갑자기 떠나간다. 이 하이쿠를 쓴 4월 마지막 날의 일기에 다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는 ‘늦봄에
서 초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상투적인 병 - 초조, 우울, 고뇌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적었다.”고 했다.
방랑시인 다네다 산토카는 홀로 탁발(托鉢)하며 길을 떠났고 독백처럼 길가에 널린 말들을 주워 담으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하이쿠를 지었다고 한다. 수십 년이래 산꾼으로 잠깐씩 방랑하는 우리에게 그의 하이쿠는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헤치고 들어가도 헤치고 들어가도 푸른 산(分け入つても分け入つても靑い山)”이라든
가, “간신히 피어난 흰 꽃이었다(やつと笑いて白い花だつた)”라든가, “미끄러져 구른 산의 고요(すべつてころん
で山がひつそり” 등이 그것이다.
오늘은 서리산의 들머리로 개누리고개를 잡는다. ‘개누리고개’라는 지명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개’라는 접두사가
들어갈 경우 대개 그렇다. 여기 개누리는 고개 지형이 마치 누각(樓閣)의 다락문을 여는 것 같이 환하게 트인 형국이
라고 하여 ‘개누리(開樓里)’라고 표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이곳이 개노동(介老洞) 마을인데, 국토정보플랫
폼의 지명사전에 따르면, “이 동네를 설립한 후 한 사람은 오래 살고 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나는 곳이라 ‘介老
洞’이라 하던 것을 길이 동네 뒤로 나서 ‘개로리’라 함.”이라고 한다.
나는 개로리가 개누리로 바뀐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몇 가구 되지 않는 개누리마을 고샅길을 지나고 산비탈 농로를 따라 야산에 들어간다. 야산이 넘을수록 어수선하다.
리조트 또는 펜션을 짓는 공사판의 망치질, 기계톱 소리가 산골을 울린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피하고자 가시덤불을
헤치더라도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지도 자세히 읽어 길 없는 우리의 길을 찾아가는 재미가 각별하다. 야산
에서는 293m봉도 준봉이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442m봉 넘고 약간 내려 만난 임도는 ‘잣향기 푸른숲’ 길이다. 잣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휴식한다. 어느덧 냉탁주
와 얼음물이 맛 나는 계절이다. 우리는 당분간 이 임도를 따른다. 임도 주변의 울창한 잣나무 숲이 하나 같이 거목들
이다. 볼만하다. 임도가 끊겨도 그와 비슷하게 널찍한 길이다. 목덜미가 따갑도록 땡볕을 받으며 긴 오르막을 묵언
수행으로 오르면 넓은 헬기장이 나온다. 그늘이 없지만 장의자 여러 개 놓인 쉼터이기도 하다.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가서 휴식 겸해 점심 자리 편다. 지도에는 여기까지가 잣향기 푸른숲이다. 봄날에는 산상성찬
(칼국수 육개장, 넙죽이 어묵 등)이 더욱 맛있다. 식탐 부려 만복이 되어 일어난다. 이정표에 서리산 1.38km이다.
길은 잘 다듬었다. 부드러운 산책길이다. 다만, 봄은 달아나 버렸고 팍팍한 한여름을 걷는다. 길섶에 간신히(?) 핀 풀
꽃을 보면 가던 걸음 멈추고 눈 맞춤한다. 노랑제비꽃, 얼레지, 양지꽃, 현호색 등등.
서리산. 한자로는 상산(霜山)이라고 한다. 넓은 공터다. 진달래는 끝물이고 그 옆 철쭉동산은 새벽이다. 서리산 정상
에서 조망은 시원치 않다. 미세먼지 훼방이 심한 중에 주금산만 서리산의 모산이라 우뚝할 뿐이다.
3. 큰구슬붕이
4. 축령산
5. 운악산
6. 잣향기 푸른숲 길을 벗어나 서리산 가는 길
7. 서리산 가는 길섶의 얼레지
8. 서리산 정상
9. 천마산
▶ 축령산(祝靈山, △887m)
서리산에서 축령산까지 도상 2.55km다. 그 절반을 길게 내렸다가 한 차례 길게 오르면 축령산이다. 험로는 없다.
숲 그늘이 없는 방화선이라 땡볕이 고역이다. 지난날 들렀던 등로 벗어난 전망바위를 들른다. 천마산과 송라산이
반갑다. 가파른 데는 데크계단으로 내리고 슬랩은 그 왼쪽 사면을 돌아내린다. 바닥 친 안부는 사거리 갈림길이다.
아까 우리가 지나왔던 잣향기 푸른숲으로도 이어진다. 이정표에 서리산 정상 1.71km, 축령산 1.15km이다.
축령산 가는 길이 줄곧 긴 오르막이다. 등로 옆 헬기장에 들러 운악산과 연인산 바라본다. 길섶 풀꽃들이 응원한다.
스퍼트 낸다. 데크계단 오르고 바윗길 오른다. 가쁜 숨이 턱에 받치고서야 축령산 정상이다. 커다란 돌탑 앞에 정상
표지석과 2등 삼각점이 있다. 일동 25, 1983 재설. 조망이 훤히 트이는 경점이기도 하다. 북으로는 운악산과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이, 동으로는 호명산, 뾰루봉, 화야산, 그 너머로 용문산이, 남으로는 천마산과, 송라산, 그 너머로
운길산, 예봉산이 뚜렷하고, 서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을 알아보겠다.
김장호의 『韓國名山記』 ‘축령산(祝靈山)’의 한 대목이다.
“물골안의 우두머리, 그 축령산은 이 전지라골 냇가에서 가장 잘 어울린다. 북쪽 서리산에서부터 흐르는 능선이
정상으로 비스듬히 기어오르면서 정수리 언저리에 괴이한 암봉들을 튕겨내는가 싶다가는 별안간 가평 쪽으로 사정
없이 내지르는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우람하여, 미더운 사내처럼 그 산자락에 안겨 있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정수리 암봉은 수리바위요, 그 왼편 한양 쪽으로 삐딱하게 기운 것은 독수리바위, 그리고 남이바위는 여기
서는 그 옆구리만 비칠 뿐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산! 우리는 ‘정수리 언저리에 괴이한 암봉들을 튕겨내는가 싶다가는 별안간 가평 쪽으로 사정없이 내지르는 산
세’를 타려고 한다. 절벽 덮은 데크계단 내리고 평탄한 능선을 간다.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남이바위 바로 직전에서
왼쪽의 급사면을 내린다. 비지정탐방로라며 금줄을 쳤다. 인적이 뜸하다. 축령산 유일의 험로이기도 하다.
바로 앞이 남이바위이니 지나지는 않지만 남이장군 그의 의기를 생각한다. 그가 북진(北鎭)에서 회군하며 읊었다는
한시다. 호탕하여 속이 후련하다.
백두산 바위 돌을 칼끝으로 문지르고
두만강 푸른 물을 말에다 다 먹여서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못 건지면
후세에 그 누구가 대장부라 일러주랴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波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김장호가 이에 덧붙인 말이다.
“5 ㆍ 60대면 젊은 시절 누구나 줄줄이 외웠던 한시를 흥얼거리며 그 이름도 구성진 불당골로 내려서면, 그 언저리
막걸리 한 사발은, 내게 무슨 못 다 푼 한이 서렸다고 시원하기가 차라리 청정약수에 못지않다.”
10. 오른쪽은 천마산, 왼쪽은 송라산
11. 얼레지
12. 노랑붓꽃
13. 앞에서부터 오독산, 운두산, 화야산, 용문산
14. 앞은 운두산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너머 오른쪽은 뾰루봉
15. 가운데는 송라산, 그 뒤는 운길산
16. 송라산과 천마산
17. 운악산
18. 앞은 오독산, 멀리 가운데 흐릿한 산은 청계산
급전직하 가파른 내리막이다. 오르기보다 더 고약하다. 갈지자 그리며 내린다. 한 차례 긴장하며 내리면 바위 슬랩
이 나온다. 고정밧줄 붙잡고 내린다. 여간해서 가파름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내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서일까,
예전보다 지나기가 더 가파르고 까다로운 것 같다. 더구나 인적은 수북한 낙엽에 묻혀 더듬거리며 내리기 일쑤다.
노송 아래 절벽 위 암반인 전망바위에 다다라서야 한숨 돌린다. 송라산, 천마산, 운길산 등 첩첩 산을 또 본다.
무턱대고 능선 잡고 내리쏟다가 수레넘이고개로 가는 능선을 놓치고 만다. “미끄러져 구른 산의 고요(すべつてころ
んで山がひつそり)”를 느끼게 가파른 내리막에 미끄러져 구르고 문득 지도 들여다보니 수레너미고개를 한참 벗어
난 그 오른쪽 지능선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산의 고요함이란, 나의 불찰을 꾸짖는 것 같다. 그대로 쏟는
다. 이게 오히려 잘 되었다. 길 저축한다. 묵은 임도에 내리고 잡목 숲 헤쳐 잘난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불당골로 이어진다. 줄달음한다. 외방1리 산골마을이다. 농로를 지난다. 전원주택 앞뜰에 심은 금낭화가
한창이다. 대로에 다다르고 축령산 입구 버스승강장이다. 운이 좋았다. 때마침 석고개 쪽에서 마석 가는 버스가
오는 게 아닌가.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를 나눌 틈이 없이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25분 후 마석장터에서
내리고, 마석 최고의 맛집(우리가 가는 음식점은 항상 그렇다)에 들어간다. 우선 맥주 두 병을 주문한다. 시원하기가
청정약수에 못지않다.
19. 축령산 정상에서
22. 송라산과 천마산
23. 송라산
24. 각시붓꽃
25. 피나물
26. 흰제비꽃
27. 광대나물
첫댓글 서리산에서 축령산을 향하다가 생전 처음 홀아비꽃대를 만났었지요. 독특한 모습에 오래도록 기억에 살아있는...
그때만 해도 옛날이었나 보군요.
지금은 얼레지가 드물게 있고, 노랑제비꽃은 흔전합니다.^^
따사한 봄날은 금새 사라지고 무더위만 남았습니다ㅏ...
갑자기 여름입니다.
산꾼으로서는 혹한보다 더 괴로운 계절입니다.
타네다산토카를 말씀하시니
青葉に
寝転ぶや死を
感じつつ
♣種田山頭火
(あおばに
ねころぶやしを
かんじつつ)
파아란 신록
드러누워 죽음을
생각하누나
♣타네다산토카
저는 지금 이 하이쿠가 생각나네요.
술독에 빠져 살았던 시인, 생의 버거움에 눈물겹습니다.
축령산 산이 참 좋습니다.
구경 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을 무척 힘들게 산 시인이더군요.
하기사 시인에게 태평세월은 무덤이기도 합니다.
나두 개누리고개서 간적이 있네유
더븐데 수고하셨읍니다
개누리고개로 가기가 거리로는 상당하더군요.
개고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