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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 1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본문 1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입니다.
1. 모세는 3장에서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창조주를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처음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마침내는 잃어버릴 정도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세상도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본래의 원형으로부터 떨어져 인간과 같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 결과 본연의 우수성이 거의 파괴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야기됩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뱀을 다른 모든 동물 중 가장 간교하다고 말할 때, 뱀이 사단의 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뱀 자체의 원한으로 인간을 속였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사단이 뱀의 내적인 간교함을 이용하여 인간을 타락시키려 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사단은 도구가 필요했으므로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여 마침내는 아주 조심스럽게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말하자면 하와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함정을 파놓은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까지 한번도 인간과 대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동물의 몸을 덧입고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뱀이 무엇 때문에 (아룸; 간교하다)이라고 묘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이 단어로 ‘간사하다’ 는 것뿐만 아니라 ‘신중하다’ 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의미로 보기도 하고, 또는 나쁜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연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뱀에게 특별한 재주를 부여하셨고, 다른 모든 짐승보다 예민하고 눈이 밝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자신의 기만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뱀에게 부여하신 은사를 왜곡시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많은 동물을 살펴보면 뱀에게서보다 더 예리한 면이 발견된다고 트집을 잡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를 죄악 가운데 빠뜨린 그러한 재주가 뱀에게서 제거되었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불합리하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알게 되겠지만 뱀에게는 다른 징벌도 내려졌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자연의 역사를 다루는 작가들도 모세와는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경험에 의해서도 모든 것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게 되라’(마10:16) 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뱀만이 부각되어 있고 사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이 뱀에게 속았다는 점 이외에는 다른 것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뱀이 단지 마귀의 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는 증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뱀이 아닌 마귀가 ‘거짓의 아비, 사기의 조작자, 죽음의 조성자’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왜 사단의 이름을 감추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분명하고 확실한 빛이 보류되어야 하므로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한편 선지자들은 우리의 멸망에 대한 책임을 마귀에게 돌리며, 자기들이야말로 모세의 의도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세가 백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조잡하고 미숙한 문체로 표현했다고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가르침을 받지 못한 무지한 종족을 가르쳐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세대가 너무나 철이 없어 그보다 더 차원 높은 교훈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그의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얼마 동안은 젖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어린아이와 같이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닙니다. 만일 모세가 자신에게 부과된 선생으로서의 직무를 염두에 두고 어린아이들에게 적합한 기초적인 것을 주장하고 있다면 결코 비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단순성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든 경영을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께서 성령의 은밀한 계시를 통해 명료하지 않은 모든 것을 객관적인 표현으로 채워 주셨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단을 인류의 진정한 대적이며, 모든 재앙을 획책하는 존재이며, 온갖 속임수와 악랄한 방법으로 파멸과 손해를 불러들이는 원수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경건한 자들이 아무리 소란을 피울지라도 교회의 머리이시며 의의 근본이신 그리스도께서 아직 공공연하게 빛을 발하지 않으신 그때에, 사단의 종과 도구 때문에 사단을 죄악의 왕자라고 표현하는 모세의 문체를 놓고 힐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더욱이 아담과 하와는 모든 동물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자기들에게 예속되도록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스스로 자기가 부려야 할 종의 하나인 뱀의 꾐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했으므로 인간의 배은망덕한 비천함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어느 동물을 보더라도 그때마다 하나님의 지극하신 위엄과 탁월하신 은총을 상기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뱀이 하나님을 배반했음을 알고서도 벌주는 것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모든 질서를 무시하고 뱀에게 복종하고 마음을 쏟아 똑같이 반역을 행했습니다. 이와 같은 타락보다 더 치욕적인 것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뱀의 이름을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화적인 것이 아니라 그 본래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2. 모세는 인간이 사단의 충동에 의해 영원한 멸망에 떨어졌다고 간략하면서도 마치 비약적인 것처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단이 어떻게 하나님께 반역을 꾀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래서 광신주의자들은 사단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그대로 사악하고 위험하게 창조되었다고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반역에 대해서는 성경의 다른 구절에 의해 입증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악하고 부패한 모든 피조물도 창조하셨다고 전가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모두 창조하셨을 때 ‘좋았다’ 라는 증거를 각각 그 피조물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부여받은 죄악의 근본을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변절에 의한 것이라고 이의 없이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단은 의와 정직에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에서 사단의 타락에 대해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목적은 인간 본성의 타락을 간략히 언급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아담이 원래 그처럼 비참한 존재로 창조되어 그의 모든 후손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스스로의 잘못으로 그러한 불행을 겪는다는 사실을 가르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그와 같은 재앙의 본질과 다양함에 대해 생각이 미치면 하나님께 투덜거리며 대항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까지도 경솔히 비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보다 개나 돼지를 더 자비롭게 대하신다고 불평하는데, 이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참하고 파멸된 상태를 아담의 죄에 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모든 악, 예를 들면 완악함, 하나님을 대적하는 강퍅함, 사악한 욕망, 악행을 즐기는 포악한 성벽 등의 원인이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전가하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의 사악한 기질이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겸손하게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우리의 불행을 슬퍼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현재 상태가 최초의 본래적인 상태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몇 마디 말로 써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기술하려는 역사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일이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됩니다.
3. 이제 우리는 자만심이 강하고 일관성이 없는 사람들을 크게 동요시키는 문제를 고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시험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슬픈 결과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면서, 왜 그것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도록 시험하기 위해 사단의 고삐를 풀어놓으셨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한 댓가로서 내리신 심판과 보응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아직 순전하고 올바른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었습니다.그러므로 그와 같은 주장은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전혀 죄악과 관련이 없는 인간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 경우에 있었던 일이지만 동물을 사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파멸을 위해서 대적을 무장시키신다는 것은 무슨 뜻이 더 있습니까? 이것은 마니교에서 두 가지 원칙의 존재를 주장하는 전거가 된 듯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단이 하늘의 뜻에 대적하여 인간에게 함정을 놓았고 또한 이 사단은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도 우월한 존재였다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합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에는 가공할 만한 오류에 빠져버립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두 신이 있으며, 첫째 신이 경쟁자인 다른 신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권능에 관해서 경건하고 신실히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 악마도 절대로 활동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 전혀 무지하지 않으시며 그것을 막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락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명령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은 아담이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하도록 방임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타락시키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죄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주 혹심한 형벌을 수없이 내리시며 죄인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담이 타락한 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마치 죄를 기뻐하시거나 하나님께서 베푸신 율법이 위반되기를 바라신 것처럼 시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의 타락이 공정성과 잘 이룩된 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이며, 율법을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적하여 불순종하고 의를 거역하는 범죄인 이상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그런데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떤 확실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의도하셨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타락을 계획하셨다고 말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허락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주관하시며 예방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모하게 판단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에게 심판 받는 것을 감수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육신의 시험에 종속시키는 것은 육신의 교만함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의심과 회의의 상태에 빠지도록 하나님에 의한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특성을 파괴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고부동한 공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전에 미리 결정해 두셨다고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미숙한 사람들은 인간이 자유에 의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성급하게 추리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가 지나치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가 필요에 의해 범죄 했는지, 혹은 우발적으로 죄를 지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독교 강요와 예정론의 논문들을 참고 할 수 있습니다.
4.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라는 말씀에서 불경한 사람들은 이 구절을 공박하며 조소합니다.
모세가 뱀이라는 동물이 웅변을 한 것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뱀은 ‘쉿’이라는 소리를 낼 뿐 갈라진 혀를 가진 짐승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먼저 동물이 특이한 언어를 사용했다면 언제부터 벙어리가 되기 시작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뱀은 본래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는데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도구가 되도록 했을 때, 비로소 말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와가 이러한 것을 아주 특이하게 느꼈으며, 그 때문에 자기가 감탄했던 것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만일 사람들이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무엇이든지 믿을 수 없는 우화적인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면, 결코 기적을 행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연의 일반적인 질서를 초월하여 역사 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익숙하지 않다고 핑계를 대면서 비웃는다면, 너무나 선입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동물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말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혀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혀도 없는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야수가 입으로 말을 했다는 것보다 가능성이 더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불경건한 자들은 그와 같은 독설에 대해 무엇이라고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의 통치자라고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기만 하시면 동물들에게도 말을 가르치실 수 있는데, 이것은 대화를 원하는 사람을 벙어리로 만드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런 점에서 사단의 간교함은 본색이 드러납니다. 남자에게 직접 공격을 가하지 않고 아내를 통해 접근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활한 공격 방법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신중하게 이와 같은 공격에 대항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단은 우리가 가장 나약한 것처럼 보일 때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 오는데, 자신이 원하는 곳에 침투하기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때까지 불화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여자도 뱀과 말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뱀을 단순히 짐승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5.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무엇 때문에 인간의 멸망을 그토록 획책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궤변가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덧입으셨음을 보고 사단이 질투심에 불타 그렇게 했다고 가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으며, 우리는 그분 때문에 비참한 멸망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어떻게 예측 되었겠습니까? 그보다는 오히려 사단이 일종의 분노감에 휩싸여(보통 자포자기한 사람이 그렇듯이) 자기 자신과 함께 인간을 영원한 멸망으로 몰아가려 했을런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보다 타당성이 있는 가설은 사단이 하나님의 대적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질서를 뒤엎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높으신 보좌에서 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인간을 공격했다는 추측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파멸과 더불어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혼동이 초래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인간의 인격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려고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헛된 모든 허구적인 사상을 배격하고 간결하면서도 확고한 가르침을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6.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는 이 구절은 본래 모호하고, 한편으로는 히브리어 불변화사의 애매한 중요성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고 심지어는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아프 키)라는 단어는 ‘그렇지만’ 혹은 ‘실제로’ 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얼마나 더’ 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David Kimvhi 는 맨 끝의 해석을 받아들이면서, 뱀이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이 서로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뱀은 다른 말로 하나님을 헐뜯고 나서는 마침내 ‘하나님이 너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너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가 얼마나 질시적이고 배타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고 결론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억지 해석이며, 하와의 대답을 통해 그릇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이것은 갈대아어역에 대한 설명이 보다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이 사실이냐?”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단순하게 보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역설적인 질문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의문을 제기한다면 단순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과 큰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네가 그 나무 열매를 따먹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라고 헛된 두려움을 해소시킬 목적으로 말한 것이라면 역설적인 질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자의 견해를 더 지지합니다. 그것은 사단이 여자를 보다 은밀히 속이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얼버무리며 하나님께 적대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첫 조상이 들었던 말을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분명히 부정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단이 그 원인을 묻는 척하면서 간접적으로 말씀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약화시키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후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고대 해석가도 이 구절을 분명히 ‘왜 하나님이 말씀 하셨겠는가?’ 라고 변역 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뱀이 다른 방법으로는 여자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없었으므로 다른 원인을 찾아보도록 재촉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유혹 받을 때, 그 시험은 아주 위험스러운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우리가 순수한 명령에 만족하면서 하나님께서 분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공의롭고 옳다는 점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역량보다 지나치게 지혜로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단은 그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경외심을 버리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즉시 하나님을 공공연히 비난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문법적인 구조에 맞추어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말씀까지 하셨겠느냐?’ 혹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겠느냐?’ 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우리는 여기에서 사단의 술책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여자의 마음에 의심을 불어넣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믿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그런 행위에 대한 이유는 확실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7.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이라는 말씀에서 주석가들은 이 구절에 대해 두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단이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모든 나무가 금지되었다고 암시하는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정말로 너에게 어떤 나무도 만지지 말라고 분부하시더냐?’ 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너는 네가 좋아하는 과실을 네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없느냐?’ 라고 해석합니다. 전자는 마귀의 의견과 보다 잘 일치하는 해석인데, 그것은 마귀가 악심을 품고 금지된 것을 확대시키며, 하와가 그 말을 인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가 하나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먹는다고 말할 때, 일반적인 금지 사항에 대해 일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단순하고 공공연한 금지에 대한 질문을 암시하고 있는 후자의 의미는 더 속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사단이 언제나 하는 식의 교활함으로 유혹을 시작하여 ‘네가 무슨 나무의 열매든지 따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지 아니하신다니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 라고 말했으리라는 것은 신빙성이 있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하와의 대답은 오직 한 나무만이 금지되었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그 명령을 변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와는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여러 가지 풍성한 것 중에서 오직 한 나무만을 제외시키셨으므로 이 금지는 가혹하거나 부담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고 부인하는 듯합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실제로 한 나무만이 금지되었다는 양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나무가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수없이 많고 그 모두를 허락 받았으므로 곤란하거나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는 증상에 대한 반박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와로서는 자신과 남편이 하나님에 의해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유리한 점도 넘칠 정도로 풍부하다는 사실을 들어 사단을 공격하는 것보다 더 신중하고 용감하게 사단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그와 같은 풍성함에 만족하지 않고서 정당하게 주어진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가장 배은망덕한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거나 만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나 가혹하다는 사실을 비난할 목적으로 덧붙인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지지도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와가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왔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경건성을 나타내려 했다고 이해합니다. 다만 그녀는 형벌을 밝히는데 있어서 ‘아마’ 라는 말을 삽입하여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펜)이라는 단어가 항상 의혹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러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와가 동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꺼이 지지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어도 죽음을 그 즉시 목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와는 죽음이라는 진정한 위험에 대해서 그 느낌이 상당히 거리가 멀고 실감이 나지 않는 냉냉한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