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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흉패를 만드는 규례
출 28:15-30
15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3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24 땋은 두 금 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25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어깨받이의 금 테에 매고
26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쪽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27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띠 위쪽에 달고
28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
29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출 28:15-30 / [가슴받이] 판결 내리는 데 쓰는 가슴받이를 짜거라. 이것도 에봇을 만드는 솜씨로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곧 금실과 자줏빛 털실과 붉은빛 털실과 진홍빛 털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무늬를 놓아 가며 짜야 한다. 16) 두 겹으로 네모나게 만들어야 하는데 길이와 나비가 각각 한 뼘이 되게 하여라. 17) 보석 열두 개를 네 줄로 꼭 끼워 박아라. 첫 줄에는 홍옥수와 황옥과 취옥을, 18) 둘째 줄에는 홍옥과 청옥과 백수정을, 19) 셋째 줄은 풍신자석과 마노와 자수정을. 20) 넷째 줄에는 감람석과 얼룩마노와 벽옥을 박아라. 이 보석들은 모두 금테에 끼워 박아 넣어야 한다. 21) 이 보석이 열두 개인 까닭은 이스라엘의 아들이 열두 명이기 때문이다. 보석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인장반지 새기듯 새겨 넣어라. 22) 순금으로 꼬아 만든 사슬을 가슴받이 위에 붙이고 23) 또 금고리 두 개를 만들어 가슴받이 양쪽 끝에 달아라. 24) 또한 순금으로 꼬아 만든 두 사슬을 가슴받이 양쪽 끝에 붙인 두 금고리에 매고 25) 그 두 순금 사슬의 다른 쪽 두 끝은 에봇 어깨걸이 앞쪽에 붙여라. 26) 그리고 금고리 두 개를 만들어 가슴걸이의 양쪽 끝에 붙이고 에봇 양 옆구리의 안깃에 달아라. 27) 금고리 두 개를 또 만들어 에봇 어깨걸이 양쪽 앞자락 가장자리에 가까운 에봇 띠 조금 위쪽에 달아라. 28) 그리고 자줏빛 털실로 꼰 줄을 가슴받이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가슴받이가 에봇 띠보다 조금 위쪽에 자리 잡아 에봇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여라. 29)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열두 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판결 가슴받이를 가슴에 달고 들어가거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영원히 잊지 않으실 것이다. 30) 그 판결 가슴받이 속에는 ㄱ) 우림과 ㄴ) 둠밈을 늘 넣어 두어라. 그래서 아론이 여호와 앞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 우림과 둠밈이 늘 그 가슴 위에 있게 하여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송 사건 등을 판결할 때 내 뜻을 물어 볼 수 있도록 늘 이 가슴받이를 달고 있어야 한다. (ㄱ. 우림에는 `빛'`밝음'이라는 뜻이 있다. ㄴ. 둠밈에는 `온전'`완전'이라는 뜻이 있다.)
판결 흉패가 제사장 아론의 에봇 가슴덮개로 붙어 있게 하신 것은 모세의 재판권이 제사장에게 위임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판결 흉패 디자인과 제작 과정(15-21) 제사장의 에봇에 붙여 갖추어야 할 중요 장식품으로 가슴 덮개 곧 판결 흉패를 만들라고 합니다. 이 흉패를 만드는 과정은 에봇을 짜던 것과 같은 재료, 같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이한 점은 흉패가 될 천은 두 겹으로 하라는 것인데, 이는 우림과 둠밈을 넣어두며 매달린 열두 개 보석 무게를 잘 지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흉패에는 각양각색 빛깔의 열두 보석들을 모두 금테에 끼워 네 줄로 박아 넣고, 보석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인장반지 새기듯 새겨 넣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구원받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목전에 잊혀지지 않으며, 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일일이 기록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판결 흉패의 연결 부속물 제작 과정(22-28) 판결 흉패를 에봇에 고정시키기 위한 부속들로서 총 4개의 고리를 제작하라고 합니다. 이중 두 개는 판결흉패 윗부분에, 남은 두 개는 판결흉패 뒷면의 아랫부분에 달며, 윗부분의 것으로 여기에 금 사슬을 꿴 후 에봇의 두 견대에 달린 금테 즉 고리에 연결하라고 합니다(13). 남은 금 고리 두 개를 에봇의 양쪽 멜빵 앞자락 아래 곧 정교하게 짠 에봇의 띠를 매는 곳 조금 위에 달며, 청색 끈으로는 판결 흉패 고리를 에봇 고리에 매개하여 그 판결 흉패가 움직이지 않고 허리띠 위쪽 에봇에 부착되어 있도록 하였습니다.
판결 흉패의 사용 메뉴얼과 의미(29-30) 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이스라엘 열두 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판결 흉패를 가슴에 달고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는 대제사장이 하나님 백성들을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항상 가슴에 두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가슴으로 품어주신다는 것을 예표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아론이 여호와 앞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 우림과 둠밈이 늘 그 가슴 위에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송 사건 등을 판결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적용: 당신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까?(빌 1:10)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까?(롬 12:2)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할 때 그 유익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몸 안에 영혼이 있고 영혼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영혼이 메마르면 몸도 마음도 메말라 버립니다. 영혼이 지치면 몸도 마음도 삶도 무너집니다.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을 주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내 영혼에 물을 주는 시간입니다. 최고의 영적 휴식입니다.
열두 보석과 판결흉패
출 28:15-30 / 이상호 목사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옷을 입습니다. 군인은 군복, 경찰은 경찰복, 노동자는작업복, 중은 승복, 법관은 법복을 이듯이 제사장은 제사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판결 흉패에 대한 말씀입니다. 판결 흉패는 두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주머니와 같다고 말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판결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판결 흉패의 중심에는 12보석이 달리게 됩니다. 가로 3줄, 세로 4줄로 달리게 되는 12개의 보석이 판결 흉패의 중앙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12 보석은 12지파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한 보석 당 하나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 보석에 '한 지파의 이름'이 도장되어지게 됩니다.
오늘 저로 감동하게 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보석마다 열두 지판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21하)라는 말씀에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12지파,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가슴에 12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 넣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한 보석에 하나씩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한 보석에 하나의 이름! 12지파의 이름은 각각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리고 12지파의 영역도 다릅니다. 너무도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발꿀 수 없는 귀한 영혼들이기에 보석위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연합이지 않습니까? 열두 보석의 이름의 형상이 각각 다르며 그 영역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질서가 정연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생각과 기질과 기업이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되는 하모니를 이룹니다. 할렐루야! 놀랍지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의 생활의 환경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나 교회의 중심에는 우리의 이름이 각자의 독특성에 맞게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독특성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그 독특성에 질서의 아름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깃을 각기 다르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 사람은 저렇게 사용되는데, 저는 뭡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대로 새겨진 보석일 뿐입니다. 그리고 '나의 보석'은 하나님의 가슴에 '나의 형상'대로 새겨지며 질서 지워지는 것뿐입니다. 각기 다른 보석의 아름다움이 '하모니'를 이루는 은혜가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살필 부분은 에봇과 판결흉패, 그리고 거기 관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제사장의 옷 중에서 가장 바깥 부분에 입는 옷들인데요. 에봇은 우리 복식으로 치면 앞치마처럼 겉옷을 덮는 형태로 되어 있고 판결흉패는 옷이라기보다는 그 위에 덧붙이는 장식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 우선 에봇은 아주 화려한 색실로 짜여져 있었는데, 이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봇의 어깨부분에는 어깨받이가 달려 있었는데, 이것은 에봇을 옷 모양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에봇에 다는 판결흉패를 에봇과 연결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어깨받이에는 두 개의 호마노라는 보석이 넓적한 형태로 덧붙여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는 금으로 태를 물리고 그 위에 각각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기게 되어 있었는데요. 여기에 고리를 달아서 에봇에 고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두 개의 호마노를 기념보석이라고 부르시면서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라고 하셨습니다.
우선 보석과 보석에 새겨진 이름,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금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은 보석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주 귀하고 중요한 존재입니다. 금으로 둘러싸서 보호하실 정도로 그렇게 귀한 존재들입니다. 금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금속이라면 이 기념보석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직접 보호하시고 또 붙들어 주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개의 보석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이 자기들 앞에 설 때마다 제사장의 어깨에서 함께 새겨져 있는 자신들의 이름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반복해서 기억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자기 지파, 자기 가족, 또 개인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사가 드려지는 날이면 그 모든 사람들은 한 제사장을 바라보며 그 제사장에 어깨에 함께 쓰여있는 자신들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개인이나 가족, 그리고 지파만 고집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며 항상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그 하나됨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2. 다음에 판결흉패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판결흉패는 이 중으로 짜여지게 되어 있는데, 그 중간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물건이 들어갑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데 사용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판결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판결흉패 위에는 우리가 함께 읽은 대로 열 두 개의 보석이 옆으로 세 줄 아래로 네 줄로 장식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흉패는 금 고리로 어깨받이와 연결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판결흉패 위의 열 두 개의 보석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는데요. 이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귀하게 보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 그 어떤 차이점이나 다양성도 없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또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하게 여겨지는 그런 방식의 연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각기 다르지만 하나를 이루어서 각기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일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그것을 통해서 서로를 더욱 풍성하고 온전하게 하는 그런 연합이어야 합니다. 마치 한 사람의 몸처럼 말이죠. 몸 안의 지체는 서로가 모양도 역할도 구조도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몸 안에서는 하나로 완전히 연합되어 있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섬기고 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판결흉패 뒤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분별하는데 사용하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물건을 넣고서 항상 하나님 앞에 서야 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는 제사를 드리는 역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 역할도 맡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우리는 제사장이 항상 가슴에 열둘이면서 하나인 이스라엘 전체를 담고 그 일을 했다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찾아진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 제사장의 판결원칙
1) 생명을 주는 방향으로 - 죽이려 하지 말고 살려야 합니다.
2) 왕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 자색실은 왕권을 의미
3)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심정으로 판결해야 합니다. 홍색실 - 희생
4) 믿음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금실 = 믿음
5) 공의로 판단해야 합니다.
6) 하나님 앞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 하나님 면전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7) 사랑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12지파를 가슴에 품은 뜻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별 것 아닌 사람들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금테로 둘러쌓인 보석처럼 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가 뭐래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적으로 어떤 모양이건 하나님께는 우리가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 위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기 위해서 지불하신 값입니다. 그 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안다면, 우리는 결코 무엇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세속적인 가치 평가기준에 우리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그렇게 값진 존재로 서 있으려면 우리는 하나로 연합하여 서로 다른 일을 통해서 서로 서로를 섬기며 다른 지체들을 더 유익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분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성결의 속옷, 생명의 에봇받침 겉옷, 예복, 그리고 두 견대를 찼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는 판결흉패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대를 대고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를 쓴 모자를 썼습니다.
언제나 제사장의 가슴에 달린 열두 개의 보석들처럼 서로 다른 빛을 발하면서도 하나를 이루어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항상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눈앞에 있는 제사장 옷에 달린 보석처럼 가치있고 빛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판결 흉패
출 28:15-30 / 임덕순 목사
여성들은 남의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매우 깊습니다. 옷을 자주 바꾸어 입고 헤어스타일도 바꿉니다. 그리고는 남편한테 “나 달라진 것 없어?”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백이면 거의 99명은 몰라봅니다. “응 글쎄 모르겠는데?” 하면 그때부터 남편이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짜증냅니다. 아내들이여, 제발 남편들 고문 그만좀 하시기 바랍니다. 남자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무슨 옷을 입었는가 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아내가 무슨 옷을 입고 머리를 어떻게 했기 때문에 예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내이기에 예쁜 것일 뿐입니다. 다만 자기 아내의 옷이 아니라 마음이 아름답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부분은 제사장의 복식에 관한 내용인데, 무슨 색 무슨 색 실로 어떻게 꼬아서 무슨 수를 놓고 띠는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무엇을 받쳐 입고 하는 내용들로서 남자들에게는 정말 시시콜콜하게 느껴지고 불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입히라고 명령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세세하게 명령을 하셨다면, 이 복장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계급을 알리는 의미보다 다른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는 매우 중요한 옷입니다.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에봇이라는 겉옷을 복습해 봅시다. 그것은 앞치마와 같은 조끼인데, 앞치마라고도 하기도 어렵고 조끼라고도 하기 어려우니까 ‘에봇’이라고 그냥 원문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봇에서 중요한 것은 에봇의 어깨받이입니다. 에봇의 어깨받이에는 호마노라는 보석을 박아서 견장을 달았는데, 거기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각 어깨에 여섯 명씩 도장을 새기듯 새겨 넣게 하셨고,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마다 그 에봇을 입고 나아가도록 하시어, 그들의 이름을 메고 가게 하셨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지요?
첫째는, 죄 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얹혀 가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영원하신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얹혀서, 그의 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려고 그 어깨 받이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그 열 두 지파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의 이름을 자기 어깨에 메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들만 메고 갔습니다. 그리스도는 열 두 명의 제자들을 기초로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주님이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당신의 어깨에 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것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께 죄를 맡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되는 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육정도 혈통도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속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 의미가 있고, 그의 어깨에 있을 때에만 보석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열두 지파 안에도 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길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택하신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된 것은 우리가 새로운 열두지파인 교회에 속하여 있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지, 우리 개인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속할 때에만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귀히 여기고 내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에 단단히 붙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 에봇의 앞가슴에는 주머니 같은 것을 하나 붙이게 하셨는데, 그것의 이름은 판결흉패입니다. 오늘은 이 판결흉패를 배우겠습니다. 이 판결흉패는 가로 세로가 한 뼘쯤 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열 두 개의 보석을 한 줄에 세 개씩 네 줄로 열 두 개를 물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2개의 보석이 금 사슬에 매여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어있습니다. 그것도 아무 보석이나 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보석을 정해진 위치에 달고, 거기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각각 새겨 넣게 하셨습니다.
첫째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인데 스블론, 잇사갈, 유다지파를 새겼고,
둘째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인데 갓, 시므온, 르우벤을 새겼습니다.
세째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인데 베냐민, 므낫세, 에브라임을 새겼고,
네째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입니다. 납달리, 아셀, 단 지파를 새겼습니다.
보석의 이름들이 생소해서 요즈음에는 보석으로 치지 않는 것들로 생각되지만, 홍보석은 루비를 말하고, 홍마노는 다이아몬드이고, 녹주옥은 붉은색 수정입니다. 모두가 진귀한 것으로 당시에 최고의 보석들이었습니다.
이 흉패에 물린 네 줄의 12개 보석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한 지파씩을 상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어깨에만 이스라엘의 이름들을 얹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도 제사장의 가슴에 안게 하셨습니다. 이 보석들은 구약시대의 열두지파이며, 신약 시대에는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 즉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름을 가슴에 안고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서 떨어질까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라고 하였고, 고후 7:1에는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권면하였습니다.
보석들은 흉패에 견고하게 물려 있습니다.
이 보석을 물린 판은 아주 값지고 정성들인 수공예품이며, 아주 견고하게 짜서 거기에 열 두 보석을 아주 견고하게 물렸습니다. 그러므로 보석이 쉽게 떨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나가다가 길가에 있는 한 아이를 주워서 입양하듯이 그렇게 입양하여 자식을 삼아 주신 것이 아니라, 수 천년동안 예언하시면서 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크나 큰 공을 들여 당신의 것을 삼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쉽게 떨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 보석들은 금으로 만든 좌대에 물려 아주 견고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금은 믿음의 상징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가슴에 붙어 있으려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항상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우리가 항상 주님의 가슴 안에서 사는 비결입니다. 사람이 자기 혈통이나 공로나 지식으로는 하나님께 속하는 비결이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죄인이 하나님께 속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석입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보석을 달고, 그 보석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들로 불리게 하신 것은, 당신이 택하신 이스라엘, 즉 선택받은 신자들을 당신의 보석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눈으로 보실 때 에야 음식 썩은 쓰레기보다도 더 냄새나고 추한 죄인이고, 우리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리는 구제불능의 죄인이고 스스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도 하나님은 그런 인생들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겨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보배로 여겨주시는 하나님만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 보석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모두가 다릅니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빛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열두 보석을 하나의 보석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열두개의 특색 있는 색깔과 모양과 빛이 합하여 제사장의 가슴을 빛나게 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각자의 특색을 지닌 채 아름답게 발전하여 당신의 보석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제각기 자기의 은사와 달란트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교회라는 흉패를 빛나게 하기를 바라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그렇게 귀한 존재로 여기시는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사43:4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 없도다.”
우리를 보배처럼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표현을 우리는 감사함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원인을 두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의 결과입니다. 자기의 아들이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다가 그들을 위하여 죽은 존재들, 아들의 애틋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석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슴에 달린 보석입니다.
주님의 어깨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거니와, 주님의 가슴에서 여러분이 빛나기를 하나님이 바라십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자랑스러워하시며 대견해하시며, 기뻐하시며 내가 저들을 위해서 죽은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충성하는 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석처럼 삶에서 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왜 제사장의 가슴에 견고하게 달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철저하게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는 제사장의 가슴에 견고하게 달라고 하시는 것으로 암시할 뿐이지만, 다른 예언서에는 아주 확실하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자가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사41:10에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하셨고,
사46:3에는 “야곱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 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 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셨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가슴에 품은 것은 무엇입니까?
부모는 자식이 결혼하고 멀리 분가를 해서 나가도 아직도 그 자식이 가슴속에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자식생각 뿐이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춥거나 무슨 사고가 났다고 뉴스가 전해지거나 하는 어떤 경우에도 가장먼저 자식을 떠올리고 가슴 두근거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기르기 위하여 수고의 세월을 살아온 분들이고, 지금도 자식에 대한 염려와 걱정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죽기 까지는 그 걱정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그렇게 당신의 가슴에 품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당신의 어깨에 메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으며, 지금도 그 죄인들을 가슴에 품고 계시며,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간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부모가 이 같이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주님은 세상의 부모보다 우리를 더 생각하시고 더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감격하여 그의 서신들마다에서 자기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주안에” “그 안에” 라는 말씀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에 편지하면서는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라고 하여 자기 마음 안에도 빌립보교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품어 주시듯이 바울사도도 빌립보 교인들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여러분도 모든 불안 걱정 다 떨쳐 버리고, 늘 주님의 가슴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이웃들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판결 흉패는 우림과 둠밈을 두는 지갑이었습니다.
흉패는 두 겹으로 짜서 만들었습니다.(16) 겉면에는 열두 보석을 물렸으나, 안감과 겉감 중간에 공간이 있어서 지갑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림과 둠밈’ 이란 것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가슴의 보석 판을 판결흉패라고도 불렀습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우림과 둠밈이 항상 그의 흉패 안에 들어있어야 했습니다(30). 레8:8에도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라고 하셨습니다.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은데, 금속이나 보석으로 만든 주사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용도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제비뽑는 도구였습니다.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을 때 사울왕은 답답해서 신접한 여인에게 물으러 갔는데, 그때 사울이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 하시므로” 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삼상30:7절 이하에는 다윗이 하나님께 아말렉 족속을 추격해야 할지를 묻는 내용이 나오는데,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겠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30:7,8) 다윗이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달라고 했고 대답을 해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으려고 오면, 자기 품에 있는 흉패에서 우림과 둠밈을 꺼내어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간단히 묻는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림과 둠밈이란 “빛과 완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두 개인지 하나인지는 모르겠는데, 백성이나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을 때 대제사장에게 가서 질문을 하면 하나님은 이 우림과 둠밈으로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이 한 개인데 양면이 있어서 앞면이 나오면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뒷면이 나오면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든지, 아니면 전면에서 어떤 빛이 나와서 분별하게 했든지, 아니면 그것이 두 개여서 우림이 나오면 가고, 둠밈이 나오면 가지 않았던지, 그런 식으로 분별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할 때나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에 말씀이라는 대원칙이 있기는 했지만, 매일 매일의 구체적인 생활에 들어가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물어야 했는데 그것이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물었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항상 안전했고 일이 잘 되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다기보다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물어서 하는 그들의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셔서 그들이 하는 일을 잘 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물어서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가장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동했을 때는 호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당연히 제사장에게 물었고, 하나님께 묻고서 가는 길만이 빛이요 완전한 길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르는 일을 만날 때마다 제사장에게 와서 물었고, 제사장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물었을 때는 실패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을 때에는 반드시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꼭 물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물어서 순종하는 삶에만 빛과 완전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과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악과 열매 자체가 선과 악을 알도록 지각을 일깨우는 열매가 아니라, 그 열매를 따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선한 사람인지, 거역하는 악한 사람인지를 구분했던 것처럼, 우림과 둠밈도 그것 자체의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으려고 제사장에게 와서 묻느냐 묻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빛과 완전한길로 갈 사람과, 인도를 받지 못하고 어둠과 실패의 길로 갈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새 시대를 예고하는 예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모든 신자의 가슴 안에 우림과 둠밈과 같은 역할을 하실 성령을 파송하시어, 그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우림과 둠밈이 대제사장에게만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각 사람의 가슴에 내주하셔서 언제 어디서라도 주님의 뜻을 묻기만 하면 언제라도 가르치고 인도해 주실 것을 명확하게 예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빛과 완전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파송 받은 주님의 영이요 제 3위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성령께 묻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신 요14:26의 말씀대로 날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셔서 날마다 빛과 완전한 길로 가게 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 주관과 세상의 습관대로 살지 말고 날마다 사건마다 주님께 묻고 성령이 가르치시는 말씀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므로 빛과 완전한 길로 인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판결 흉패
출 28:15-30
하나님은 제사장의 옷에 판결흉패를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손 한 뼘씩 정사각형으로 정교하게 짜서 가슴에 붙이도록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름이 호쉔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옷은 이 흉패로 인하여 훨씬 위엄이 있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흉패는 보석들을 달아야했기 때문에 두겹으로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흉패 안쪽 밑에 두 개의 금고리가 달려 있어서 에봇의 청색 띠에 든든히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15절에 이 흉패의 이름을 판결흉패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흉패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을 물렸습니다. 그리고 28절에 보면 이 판결흉패는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위치하도록 분명히 장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흉패 속에 우림과 둠밈을 넣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흉패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열두 개의 보석과 우림과 둠밈을 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제사장의 에봇이 더욱 아름답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12개의 보석들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백성들을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고 보존하며 하나님 앞에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이 흉패를 절대로 떼지 않도록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품에 안으시고 당신의 능력과 사랑으로 영원한 지키시겠다는 의미를 더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29절에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품에 새겨진 당신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어떤 환경이나 어떤 세력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변하지 않습니까? 보석 위에 쓴 것이라면 지워지겠으나 새기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변치 않을 사랑과 보존을 의미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각 보석마다 마치 에봇 앞과 뒤를 어깨에서 연결할 때 호마노라는 보석을 물려서 서로 연결한 것처럼 또 그 때 그 보석을 금테를 둘렀던 것처럼 흉패에 붙일 각 보석들 역시 금테를 둘러서 흉패에 물렸습니다. 여기에다가 또 순금실로 노끈처럼 꼬아서 흉패에 물린 금고리에 연결하여 묶음으로써 절대로 보석들이 이탈되는 일이 없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에 보호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 설 것이며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10:28~29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판결흉패에 달린 보석들은 모두 네 줄로 세 개의 보석씩 달려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석에 그 이름을 새겨 흉패에 달아놓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백성들이 이 보석처럼 귀중하고 아름답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보석의 진가입니다. 사실 보석은 빛에 드러났을 때 아름답고 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지요 캄캄한 밤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그 보석의 진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보석에 새겨진 이름이고 그 보석은 우리 자신들을 의미하지만 어둠속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보석됨이 우리의 귀중함이 우리의 아름다움이 하나님께 열납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21:24절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그리고 또 하나의 영적인 의미는 그 보석에 새겨진 이름입니다. 이는 백성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개별적으로 아십니다. 내 이름도 아십니다.
사49:15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육신의 부모는 혹 잊을 수 있는 내 이름을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보석에 새겨진 이름이 지워질 수 없는 것처럼 역시 보석이라는 것은 변질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보석입니다. 변질이 없다는 것은 그 보석의 내구성이 참으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얻은 구원받은 그 이름과 그리고 이루신 그 구원은 완전하다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발견되는 영적인 의미는 열두 개의 보석이 각기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 형태도 깍아진 모양도 그리고 그 보석들의 성질도 아름다움과 반사되는 색깔까지 모두가 각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 보석들은 한곳에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 나라 각 지역의 땅 속 깊은 곳에서 얻어진 것들이 지금 대제사장의 에봇 흉패에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 그 귀한 보석에 이름이 새겨진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는 서로 다릅니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자라온 배경도 출신도 가진 지식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가 다르더라도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가슴에 붙어있는 보석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낫고 모자란 것도 없습니다. 12개의 보석은 모두 동일한 가치와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슴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린 모두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로 선택을 받았고 부름을 받아서 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며 똑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의의옷을 입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금으로 테를 입혀서 주님의 가슴에 붙어있는 보석들인 것입니다.
판결흉패와 우림과 둠밈
출 28:15-30 / 박홍섭 목사
지금 우리는 대제사장의 의복에 대해서 살펴보는 중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에도 특별히 흉패와 그 안에 넣으라고 하신 우림과 둠밈에 대한 내용입니다. 흉패는 지난주에 살펴 본 대제사장 의복의 겉 조끼에 해당되는 에봇의 가슴에 붙이는 것으로 길이 넓이가 약 20cm 정도 되는 정사각형의 천입니다. 하나님은 이 흉패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 열두 개를 네 줄로 세 지파씩 박아서 위로는 에봇의 견대에 연결하고, 아래는 에봇의 허리에 매는 띠에 연결을 하되 단단히 고정하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으라고 했습니다(21-29절).
왜 이렇게 하라고 하셨을까요?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가 백성을 대표한다면 양 어깨에 늘 12지파의 이름을 짊어져야 했고, 가슴에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로 대제사장은 엄청나게 무거운 직분인 것입니다. 무겁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이죠. 그의 의복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영화롭다(무겁다)는 것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흉패에 붙여진 12보석과 12지파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배처럼 그렇게 보시고 그렇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19:4-6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게 하겠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소유는 보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보배처럼 보십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새겨진 이들의 이름은 비록 그들이 연약하고 완악하고 한없이 부족하지만 이들을 보배처럼 보셔서 대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어 진짜 보배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우리는 성막과 성막을 섬기는 구약의 인간 대제사장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그림자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율법 전체가 그리스도를 내다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두 어깨 위에 우리의 모든 죄와 삶의 짐을 다 짊어지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에는 언제나 당신의 택한 백성들, 아버지가 주신 이들의 이름이 품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셨을 때,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그렇게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이름을 가슴에 품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나심은 우리를 위한 나심이고 그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죽으심이고 그의 살아나심은 우리를 위한 우리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그의 백성들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중보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가슴에는 우리의 모든 문제, 우리의 모든 필요, 우리의 모든 사정이 다 품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이름을 어깨에 짊어지고 그 이름을 가슴에 품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고 눈치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혼자 내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분의 가슴에 여러분이 있고 그분의 어깨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위하셨습니다. 그리고 위하십니다. 앞으로도 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두려워 마십시오. 돈이 없다고, 병들었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작은 교회 다닌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래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아십니다. 여러분을 가슴으로 품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어깨로 지고 있습니다. 제발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맡기시고 그분을 따라가십시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 다음 살펴야 할 것이 판결흉패 안에 있는 우림과 둠밈의 의미입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배 안에 넣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흉패가 아니라 판결 흉패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림과 둠밈의 의미가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는 용도로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죠.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하지 않고 빛처럼 선명하고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지만, 또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림과 둠밈을 통해 드러났는지도 모르지만 용도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우림과 둠밈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에게만 주셨습니다. 일상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게 계시되어 있었으니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한 하나님의 뜻 분별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위해 주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도들에게 우림과 둠밈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큰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인 구원의 경륜이 복음으로 계시되고 나타났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졌다가 밝히 드러난 복음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점치는 식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와 가슴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은 없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히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대제사장의 가슴 흉패에 들어 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들어 있었던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뜻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면 모호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합니다. 사랑에는 애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내가 앞으로 무엇이 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가장 선명하고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고 방향이 됩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힘과 성품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얼마나 선명합니까? 이 말씀 앞에 순종할 의지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할지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오늘과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가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할 것입니다. 다만 그분을 사랑하고 우리에게 붙여주신 이웃들을 사랑하면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는 대 제사장의 가슴에 붙여진 보석 같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어 보석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림과 두밈이 들어있는 흉패
출 28:15-30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판결 흉패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과 에봇 짜는 법대로 공교히 짜서 판결 흉패를 만들고 우림과 둠밈을 그 안에 넣어서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항상 그 가슴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판결 흉패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들어 있는데 우림이라는 말은 빛이라는 말이요, 둠밈이라는 말은 완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제비 뽑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판결할 때에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의 판결대로 하지 말고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서 판결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서 무엇을 판정하면 그것은 훌륭한 판정이 될 것입니다.
1. 흉패
(1) 세공 15, 16, 21, 28절에 세공하는 방법에 대하여 길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흉패 자체는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었습니다. 15절에 아름답게 짠 세 가지 색깔이 언급되어 있고 그것은 사각형입니다. 이는 놋 제단이나 향단과 닮았습니다. 그 치수는 한 뺨이었습니다. 흉패의 안쪽 밑에는 두 개의 금고리가 있고 에봇에도 의아스러운 띠가 있고 바로 위에 금고리가 붙여 있어 흉패는 청색끈, 그리고 이 고리들에 의하여 에봇에 묶었습니다. 두 개의 금으로 된 고리환은 호마노 보석을 물린 고리편에 접착되어 있었고 그 맞은편 두 끝은 흉패의 꼭대기에 있는 두 개의 고리에 걸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에봇, 호마노, 보석 그리고 흉패가 하나로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여기에 출 28:14, 22절에 땋은 이라고 했는데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사슬을 꼬아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2) 중대성-제사장의 옷에는 다섯 가지 의의로 봅니다. 첫째, 이름으로 판결 흉패라 합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열 두 보석이 물려 있습니다(17-21절). 세째, 에봇과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28절에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네째, 그 흉패가 붙은 장소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었습니다. 다섯째, 신비스러운 우림과 둠밈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흉패의 목적과 설계는 그 속에 물린 보석들을 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울러 그것들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석들 위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이 사실이 예시해 주는 것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산 백성들을 그의 가슴에 걸머지시고 보존하며 하나님 앞에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정금으로 두 사슬을 꼬아 만들었던 흉패끈입니다. 고리로 된 이라는 말에 꼬았다는 말은 기술과 견고한 조화를 나타내며 또한 흉패가 견대에 있는 보석들과 분리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대제사장의 어깨가 흉패에 영향을 미칠 때마다. 그리고 흉패를 움직여 주는 심장의 고동이 있을 때마다 고리로 된 사슬에 의하여 견대에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대성은 여호와의 전능하신 팔이 부드러운 그의 사랑의 가슴에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자들의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는 그들을 넘어짐으로부터 보호하시어 그들을 넘기는 기쁨으로 그의 영광의 임존 앞에 흠 없이 나타내게 하십니다. (3) 보석 열 두 패로써 열 두 지파에 하나씩 4줄로 3개씩 배열하였습니다. 이 보석은 첫째,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대신하도록 택하심은 그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소중함을 나타냅니다. 둘째, 그것들의 우수성을 나타냅니다. 세째, 여호와의 온전한 지식이 그를 따르는 자들과 관여할 때는 개별적인 지파의 이름들을 밝히 아셨습니다. (4) 연관성 흉패는 에봇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연결시켰습니다. 에봇은 흉패를 위해서 만들어졌으나, 흉패는 에봇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28절에 “흉패로 공교히 잔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의 옷입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은 그것들이 새겨진 보석 위에서 찬란한 영광과 아름다운 빛을 발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도 역시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영접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5) 명칭 15절에 판결 흉패라고 불렀습니다. 29절에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홍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써 회상을 불러 일으키는 괄목할만한 말입니다. (6) 끈 출 28:28에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여 흉패로 공교히 잔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청색은 천상적 색깔이며 그의 천상적 제사장직이 계속되는 한 흉패에 달린 우리와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우리는 근심 걱정이 없으며 항상 감사하며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2. 우림과 둠밈
(1) 이름 이 두 가지가 모두 복수이기는 하지만 존칭 복수로써 어떤 사물의 중대성이나 위엄을 강조하는데 사용되어진 것 같습니다. 우림은 빛이라는 말이며, 둠밈은 온전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 일곱 번이나 이 말이 나와 있습니다. 출 28:30, 레 8:8, 스 2:63, 느 7:65에서는 우림과 둠밈으로 말씀하셨으나 민 27:21, 삼상 28:6에는 우림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는 지시는 없고 다만 넣으라고만 했습니다. (2) 위치 출 28:30에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에 “두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라고 하셨는데 이를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흉패를 만든 세마포 천이 자루의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역시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기록한 보석들 아래 있었고 아론의 어깨에 있는 호마노 보석들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3) 용도 우림과 둠밈은 여호와의 판결을 알아내는 제비로 사용된 두 개의 보석인 것 같습니다. 잠 16:33에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자루 안에 있었고 그 하나를 꼬집어 내어 어느 것이 “여호와의 것”인지를 판단하게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는다는 말은 에봇을 자루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스 2:61-63의 기록의 내용은 흉패에 달린 자루에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여호와의 결정을 보여줄 수 있는 대제사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판결을 내릴 수 없음을 말합니다. (4) 연관성 첫째, 흉패의 자루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의 예복의 일부인 이 중대한 부분은 이러한 사유로 그 명칭이 채택되었는데 판결 흉패라 함은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흉패는 대제사장의 에봇에 불가분의 요소를 이루는 것으로써(출 28:6, 7:28) 그들의 주의를 집중한 것입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의 특별한 옷을 말합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5) 중대성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새겨진 열 두 개의 보석들은 아론의 가슴 위에 걸려 있었으며, 우림과 둠밈은 보석 밑에 있는 흉패 속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것들은 무엇보다 먼저 주 예수님의 가슴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고백하기를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빛과 온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이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우림의 원형을 봅니다. 하나님은 빛이라 하셨고(요일 1:5)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요 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둠밈의 원형을 봅니다. 그 안에 모든 온전이 있음을 봅니다. 아 5:16에 “전체가 사랑스럽다” 라고 했고, 롬 9:5에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림과 둠밈에 대한 또 다른 복된 진리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어느 경로를 따라야 할지 의심스러워 결정할 필요가 있을 때 제사장에게 와서 물어 그 응답을 얻었습니다. 민 27:21에 “그는 제사장 엘로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로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회중들을 판결할 뿐만 아니라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판결을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진지하고 준엄한 직책이었습니다. 요약해서 그리스도 안에 우림과 둠밈이 예시한 실체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는 하나님의 빛이 온전하시며 그의 영광은 광채십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빛과 생명, 의와 은혜가 만나며, 그 균형이 온전히 유지되었습니다. 세째, 그리스도는 그 안에 하나님의 모든 모략의 중심이 발견되는 자이십니다. 네째,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묘략은 그의 백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에게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정이 온전히 드러난 것은 골 2:3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여섯째,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영에 의하여 우리들은 발걸음마다 인도함을 받습니다. 일곱째, 그리스도에 의하여 약속함을 받아 값으로 산 유업이 다스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말씀의 능력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