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오후 6시, 매주 일요일 오전 8시와 오후 1시는 약 20년 전에 KBS, MBC, SBS가 여러 애니메이션을 틀어준 시간대입니다. <세일러문>, <천사소녀 네티>, <슈퍼 그랑죠>, <디즈니 만화동산>과 같은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은 우리를 30분 동안이나마 텔레비전 앞으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애니메이션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것은 당연히 전문 성우의 몫입니다. 심술궂은 스크루지부터 꾀 많은 티몬, 코믹한 말투로 성대모사를 줄줄이 내뱉는 저팔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문 성우들은 능숙한 연기로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KBS2에서 방영된 미국 연속극 <엑스파일>에 대한 기억도 전문 성우와 닿아 있습니다. <엑스파일>의 주인공 스컬리의 도도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전문 성우는 목소리로 일하기 때문에 쉽게 뜨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문 성우는 단순한 목소리 배우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국어를 말로서 지키는 문화 전사이며, 라디오 연속극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는 등장 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국가의 정신입니다.
또한, 전문 성우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오가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말을 정확히 구사할 수 있고, 연기두 가능한 전문성을 갖추었습니다. 알맞은 소리를 찾아내는 감각도 뛰어나고 전달력도 좋습니다. 따라서 전문 성우야말로 순수 대중 문화를 이끌어가는 장르의 장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성우에 대한 세간의 대우는 미천을 넘어서 야만과 폭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소리 연기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는 가난뱅이 배급업자들이 제3국가(일본, 미 합중국 외 국가)에서 들어온 극장 애니메이션의 한국어 더빙 작업을 벌이면서 방송사와 대형 영화 배급사마저 단지 시청률 경쟁만을 위해 1인당 수천 만 원에서 1억 원의 출연료를 걸고 유명 연예인을 앞다투어 뽑아 쓰는 반면, 전문 성우를 뽑아 쓸 때는 시간당 50만 원도 안 되는 출연료마저 깎아내립니다. 이른바 출연료 후려치기라 합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극장 애니메이션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 및 벨기에 극장 애니메이션 <새미의 어드벤쳐2>의 한국어 더빙판은 주연급 등장 인물의 역할을 김원효와 같은 개그맨이 맡으면서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가 만들어낸 유행어가 쓸데없이 마구 튀어나와 배급사의 기대와 신문방송 대부분의 찬양·미화성 보도와는 달리, 관객들은 지루한 나머지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방송사와 영화 배급업자들은 전혀 뉘우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난 2015년 10월 21일에 투니버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엠스타(아이카츠)2> 2기의 방영이 시작되기로 결정되었을 때도 담당 PD는 대놓고 캐릭터랑 비슷한 이를 뽑겠다며 미르(나츠키 미쿠루)의 연기를 영화/텔레비전 연속극 배우인 유인나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유인나의 어떤 특징이 미르와 비슷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미르가 처음 나타나는 29일 방영분을 본 결과, 입연기에 혼신을 다해야 한단 입연기의 특성상 유인나의 입연기는 함께 일하는 전문 성우에 비해 뒤떨어진단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더빙)는 오로지 입연기에만 혼신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입연기와 몸짓연기에 혼신이 나뉘는 영화/텔레비전 연속극 연기보다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영화/텔레비전 연속극 연기를 통해 쌓은 비법이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 분야에서 수십 년이나 굴러다닌 전문 성우라면, PD가 제정신 똑바로 차리고 뽑는다면 유인나가 뽑아낸 퀄리티를 능가하는 퀄리티 정도는 간단히,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뿐더러 소위 미스캐스팅 또한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는 언제나 최고의 결과물만을 지향해야 하는 분야기에 노력만으로는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으며, 결과물이 개판이면 광고 효과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담당 PD가 유인나에게 애니메이션 캐릭터 연기를 맡긴 것은 허황된 노력과 광고 효과만 따진 불법과 부패의 비극으로,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의 특성을 무시한 對시청자 모독을 넘어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한국어 연기 업계의 흑역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 연기에 전문 성우가 아닌 이를 집어넣고 싶다면 적어도 정상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타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서 이야기한 <아이엠스타2> 2기 한국어 더빙판처럼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2016년 2월 29일에 EBS에서 방영을 시작한 <플라워링 하트>의 총감독인 이우진 또한 어린이 캐릭터인 진아리, 우수하, 선우민, 슈엘, 나기찬의 연기를 아역배우들에게 맡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따지는 대상이 허황된 노력과 광고 효과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바뀌었을 뿐, 마찬가지로 한국어 더빙 업계의 흑역사요, 불법과 부패의 비극입니다.
베테랑 전문 성우는 영화 한 편의 목소리 연기를 해내는 데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목소리 연기 분야에서만큼은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극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전문 성우를 대하는 영상 업계의 태도를 불쾌히 여겨 이를 엄히 꾸짖으며,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를 바라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 아래와 같은 한국 전문 성우 처우 개선책을 건의해 보았습니다.
1. 자국어 더빙 쿼터제 법적 근거 마련
2. 성우 지망생 섭외에 대한 상한선을 두는 법적 장치 마련
3. 애니메이션/라디오 연속극에 연예인 섭외를 금지하는 법적 장치 마련
4. 프리랜서 성우에 대한 4대보험과 고정 월급제 실시
5. 라디오 연속극 연기 담당 성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프리랜서 성우로 채우는 법적 장치 마련
6. 1인 1역제 상식화 및 합당한 사유 없는 중복 섭외를 막는 법적 장치 마련
7. 전문 성우에 대한 '출연료 후려치기' 방지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
자국어 더빙 쿼터제란, 자국에서 상영 혹은 방영되는 외산 영상물의 일정 비율 이상 혹은 전부를 자국어 더빙으로만 내보내도록 지시하는 제도로, 자막을 읽기 힘든 노인 및 자막을 아예 읽을 수 없는 시각 장애인에게 기본적인 '음성 제공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복지 차원에서도, 민족혼인 국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합니다.
성우 지망생 섭외란 말 그대로 성우 지망생에게 연기를 맡기는 행위입니다. 이는 성우 지망생이 출연료가 워낙 싼 탓에 최근들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우 희망자는 늘어났지만, 성우 공채 규모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인건비만 따지는 분위기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성우 지망생 섭외에 대한 상한선은 필요합니다. 또한, 성우도 엄연히 '노동자'이기 때문에 프리랜서 성우에게도 4대보험에 가입하고 본래 소속 방송사로부터 고정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전문 성우에 대한 출연료 후려치기 관행 역시 국가의 정신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철저히 뿌리뽑아야 합니다.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인, KBS 성우극회원 김영진의 증언에 따르면 KBS의 라디오 연속극 녹음 작업은 거의 전속 성우로 벌어지며, 녹음 작업에 참여하는 프리랜서 성우의 비중은 20%도 안 된다고 합니다. 전속 성우들은 경력이 겨우 2년 이하이기 때문에 당연히 프리랜서 성우들보다 연기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방송사로 하여금 라디오 연속극 연기 담당 성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프리랜서 성우로 채우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1인 1역제는 한 명의 성우에게 한 개의 배역만을 맡기는 제도를 말합니다. 최고의 연출은 PD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따라서 최고의 연출을 위해서는 비용 및 제작 환경을 핑계로 조역을 고정된 적은 성우에게 몰아서 맡기는 관행을 몰아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속 성우 투입이 불가능한 방송사라도 PD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중복 섭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PD 스스로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PD 계몽 차원에서도 1인 1역제 확립 및 합당한 사유 없는 중복 섭외 금지책은 필요합니다. 비용 문제로 성우진 숫자에 제한이 있다 해도 그 숫자 안에서 매번 다른 성우를 섭외하는 것은 PD의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화부는 성우협회와 방송사와 배급사와의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하단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으며, 콘텐츠진흥원 또한 산하에 대중문화예술인지원센터를 두어 대중문화예술업계 종사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단 동문서답만 내놓을 뿐입니다. 이렇게 들은 척도 하지 않은 티를 훤히 드러냈습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경찰의 칠순 잔칫상에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자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습니다.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의 정신인 전문 성우를 무시하고 억누르는 자입니다. 이를 같이 저지르려고 끼어들거나, 방관자로 남아 재미있다며 구경하는 자 역시 넓은 의미에서 헌법 정신 훼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는 대한민국 최고 법규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 첫 문장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
이 얼마나 위대하고 당당한 선언입니까?!
뿐만 아니라, 헌법은 제9조에서 위 선언을 또다시 강조하며 실천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제69조를 통해서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취임식장에서 아래와 같은 취임 선서문을 읊으며 성실한 수행을 맹세케 하고 있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헌법 정신과 지시에 따라 한국 전문 성우는 국어 수호를 통한 바른 국어 사용 및 자막 이용이 어려운 어린이, 시각 장애인, 노인 계층에 대한 문화 향유를 동시에 이룬단 중요한 역할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 마땅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어의 수호자를 옥죄어 죽인다면,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 법규를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약 20년 전엔 한국 전문 성우들이, 당시 유소년기였던 우리가 텔레비전 앞에서 각종 명작 애니메이션 이야기로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수호천사였다면, 지금은 우리가 싸게 뽑히고 버림받는 한국 전문 성우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할 때입니다.
서명하는 곳 ↓
첫댓글 예전에 올렸던 게시글을 내용을 보충해서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