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갑자기 지인(知人)이라도 만나게 되면 찻집이나 음식점에 찾아들어 대화를 청하게 마련이다.
특히 그게 저녁나절이면, 또 그것이 사내들끼리의 경우라면 흔히는 술집을 찾게 마련이기도 하다.
오늘은 날도 어둑하고 또 한 지인은 마침 산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했으니 셋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어느 낙지집에 찾아들었다.
사내들의 하초(下焦)를 강화하기 위해 낙지는 모름지기 산채로 먹어야 한다는데 여름철 힘에 부쳐 쓰러진 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막걸리에 산 낙지를 담가 먹인 것을 보면 미루어 그 효험을 일부 짐작해봄직도 하다. 다른 한편 혈기와 입맛을 돋우기 위해선 매큼한 낙지볶음이 제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젠 하얀 박속이나 무를 썰어 넣고 싱거이 끓여 싱건지와 함께 내놓는 낙지연포탕이 제격인 것 같다. 그건 정력도 혈기도 잠시 미뤄놓고 담백한 맛을 즐기면서 하초와 상초를 진정시키기에 안성맞춤일 거란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낙지연포탕으로 한 끼를 때웠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려니 이 집은 오래 전 치기(稚氣) 어린 시절 밤늦게 매큼한 낙지볶음을 먹고 일어섰던 그 집이었다.
70년대 초반이었나 보다. 입담으론 자칭 호남에서 내로라하는 선배 한 분과 영남에서 역시 자칭 내로라하는 선배 한 분과 이렇게 셋이 이 낙지집에서 술판을 벌였던 것이다.
못난 후배 한 사람 앞에 앉혀놓고 입담대결을 한참 하더니 술은 물론 술값도 거나하게 나왔는데 통금 가까이에서야 집에 가자 했다. 이게 사달이었다.
시각은 10분전 열두시였을 게다. 한참 취객들 틈에 섞여 허둥대다가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긴 했는데 한 사람은 용산 쪽으로 가자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포까지 가자고 했다.
이렇게 손님끼리 승강이를 벌이니 운전사는 어찌 하랴. 가다 말고 서울역 앞 양동 근방에 차를 대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각은 영시,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우왕좌왕하는데 밤의 여인들이 쉬었다 가라 한다. 또 한편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다가와 파출소로 가자했다.
밤의 여인들이 유인하는 대로 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지만 모두 식식거리며 역전파출소로 따라갔다.
여기는 별천지다. 싸워서 피를 흘리는 사내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하다 붙들려온 소녀 남의 좌판 물건을 훔쳐내다 들킨 아저씨 손님을 유인하다 붙잡혀온 포주
경찰관은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을 두지 아니한 채 연신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새벽 한 시쯤이었을까.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왜 붙들어놓고 가라고도 안 하느냐?” “민중의 지팡이가 이럴 수가 있느냐?”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택시기사는 어디로 빼돌렸느냐?”
그래도 경찰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혼자 어찌 그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랴. 그리고 우린 이미 통금 시각을 위반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일행 중 한 사람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물 마시던 컵을 땅바닥에 던져버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자 주전자를 벽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더니 수화기를 들어 책상에 내꽂았다.
그래도 경찰관은 아무 반응이 없이 무언가를 계속 써대고만 있었다.
그런 다음 새벽 두 시쯤 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가 한 대 왔다. 모두 거기에 타라는 것이었다. 막무가내였다.
선배들은 경찰서에 가서 단단히 따진다는 기세였지만 경찰서에 들어가니 한 사람씩 불러 세워놓고 사건조서와 대조하면서 쇠창살이 쳐진 방으로 들여보냈다. 파출소에서 경찰관은 바로 하나하나 사건조서를 쓴 것이었는데
우리들은 공무집행 방해죄와 기물 손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행패를 부린 것이 덫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술 마시고 택시 탄 것이 죄가 되는지는 알바 아니지만 그것을 소명해나가는 과정에 행패를 부린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었던 기억이었으니, 지금도 우리는 사건의 본질은 놔둔 채 거친 입씨름 해대며 화를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난생 처음 철창 안에 갇혀보니 여기도 별천지였다. 푸른 집의 박모 군이 친구라는 사람 차 모씨가 집안 형님이라는 사람 어느 경찰서장이 자기 동창이라는 사람 자기 집에 전화를 해달라는 사람...
그러나 당직 경찰관은 아무 들은 척도 않는다. 그 많은 불평과 주문을 어찌 다 들어줄 수 있으랴. 새벽녘이 되니 모두 제풀에 죽어 조용해지기 시작할 뿐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물이 모든 걸 휘감아 아래로 흘려보내듯 그렇게 격앙된 감정들을 진정해나갔던 것이니 바로 시간이 약이었던 셈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경찰관들이 출근해 정상업무가 시작되고 하나씩 변명을 들어보고는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우린 허허 웃으며 양동 뒷골목에 찾아들어 얼큰한 콩나물해장국으로 씁쓸한 속을 풀어냈던 것이다.
풀어낸 것은 다름 아닌 치기(稚氣)였던 셈인데, 세월이 흘러 그런 것인지 그땐 낙지볶음이나 매운탕이었지만 이젠 싱검싱검한 연포탕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지난날의 단상 중에서)
형광등등 님 글을 읽어보니 "쉬었다 가시라"는 밤의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오래 전의 글을 소환해보았다.
살아가노라면 가벼운 범칙들을 범하게 마련이다. 술을 마셔서도 그러한데 기분은 기분대로 내되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순하게 피해가야 한다. 그게 술 마시고 일으켰던 해프닝을 돌아보는 이유의 하나다. 이젠 매운탕이 아니라 연포탕이다.
두 빛덩이를 하늘에 두었던바 한 덩이더러 낮을 또 한덩이더러 밤을 주관하라!. 만물의 영장으로 전권을 준 인간을 밤에 묶어늫진 않았으니 육은 지 맘대로 댕길거고 영은 지 중심일테고 ~~~11~~11~~11~~~2 일일이 참관치 않는 조물주의 방관은 인간들의 방종을 허한 셈이라~ 악법도 법 ㅡ통금도 ㅡ금法 그래서 한넘은 창살로 들어가면서 한 마디 하더라 " 창강에 물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 흐리면 발 씻으면 되지~ "
첫댓글 빵 하고 웃음이 터졌어요,ㅎㅎ
그랬나요?
고맙습니다.ㅎ
난석 선배님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듯한
그때 그 시절이
전성시대
보내고 나니 그립고
되돌릴 수 없으니 안타까워라
난석 선배님
편안한 밤 되세요. ㅎ
그런가요?
덜익었을 때의 객기였지요.ㅎ
젊은 시절 호기롭던
어느날의 하루밤이었군요
저도 연포탕이 시원한 국물이 좋아요
그런가요?
그럼 목포 한 번 가보실까요?
ㅎㅎ
두 빛덩이를 하늘에 두었던바
한 덩이더러 낮을
또 한덩이더러 밤을 주관하라!.
만물의 영장으로 전권을 준 인간을 밤에 묶어늫진 않았으니 육은
지 맘대로 댕길거고 영은 지 중심일테고
~~~11~~11~~11~~~2
일일이 참관치 않는 조물주의 방관은
인간들의 방종을 허한 셈이라~
악법도 법 ㅡ통금도 ㅡ금法
그래서 한넘은 창살로 들어가면서 한 마디 하더라
" 창강에 물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 흐리면 발 씻으면 되지~ "
맞아요, 상황을 잘 받아드리는 삶이 편안하지요.
하지만 개척자들은 때로 상황에 반기를 들지요.
아유 난석님 제 아름을 도용했으니 저에게도 연포탕 한그릇 사 주세요 하하하
글을 재미나게 잘 쓰십니다. 감사
그럼 오늘 석촌호수로 오시지요.
연포탕은 아니더라도 곰탕이라도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난석님 稚氣어린 시절 우왕 좌왕한 행동으로 못볼꼴 볼꼴 다보긴 하셨으나
웬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도 철없는 사람들의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치기를 너무 멀리하면 또 꼰대라고도 하데요. ㅎ
난석님~
그 시절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통금있던 시절에 흔히 일어난 일이지요
저도 대학때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일박 한 일이 있답니다 ㅎ
그랬나요?
일박이라...ㅎ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있던 시절에
그러그러한 이유로 하룻밤 철창 신세를 지셨네요.
술과 낙지집은 과거이고
연포탕은 엊그제 일이시고요.
석촌호수의 물이 초록이네요.
어느새 초록빛을 물속에 담구었을까요...
과거나 현재나 지금이나 금방금방이네요...ㅎ